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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노을빛에 물들어 가는 꿈

해거름에 동네 공원을 찾는다. 으늑한 뜨락에는 오늘따라 지나는 이들이 눈에 띄지 않아 휑하기만 하다. 무시로 지나는 실바람만 스르륵 다가와 말없이 옷깃을 스치고 간다. 눈에 보이는 정경이 마치 사진 속 장면처럼 고요 속에 머물러 있다. 흐르던 시간마저도 흠칫 멈춰선 듯하다.공원 의자에 기대앉아 망연히 건너편을 바라본다. 때마침 떨어져 가는 해님이 얼굴을 붉

  • 김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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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꽃 피는 봄날의 기다림

아침에 일어나 유리문을 열면 제일 먼저 하늘을 올려다보며 해를 찾는다. 해의 위치를 보면 대략 시간을 알 수 있다. 언덕 위 나무들 아래 소나무가 담을 치고 개나리 담장이 있다.아랫지방에서 홍매가 피었다고 하고, 아파트 입구에는 산수유가 피고 매화나무에도 흰 꽃봉오리가 올망졸망 달려 있는데 개나리 담장은 줄기만 덩굴져 있다. 아침마다 꽃을 기다리며 겨울 동

  • 최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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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순천을 걷다

순천에 산 지도 어느덧 30년이다. 이렇게 오래 머물 줄은 미처 몰랐다. 앞으로의 삶을 단정할 수는 없지만, 퇴직 이후의 시간 또한 이곳에서 이어질 것만 같다. 그만큼 순천은 내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곳에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났고, 마음을 나눌 인연을 얻었다.요즘도 ‘동사연’(전남동부지역사회연구소의 약칭)의 ‘순천길 따라 걷기'(하늘 따라 길 걷기)

  • 전흥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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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칠월의 치자꽃 향기

칠월의 달력에 눈길이 머물렀다. 계절의 결을 미처 느끼지 못한 채, 나는 어느새 여름 한복판에 서 있었다. 예전에는 바쁠수록 세월이 빠르게 흘렀지만, 요즘은 바쁘지 않아도 바람에 밀려가는 듯한데, 어쩌면 내가 자연에 무심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의 섭리는 나무와 풀, 꽃의 생장을 비롯해 곳곳에서 또렷하게 드러난다. 예컨대, 겨울을 견딘 나무가 새순을 틔우

  • 김춘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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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버들강아지

내 낡은 일기장을 펼친다.거기 유년의 기억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봄날의 아련한 기억이다. 어린 시절 나는 집에서 멀지 않은 냇가에 자주 나갔다. 특히, 매서운 겨울이 끝나가는 이른 봄날이면 제일 먼저 냇가로 달려나갔다. 그곳에서 나는 한 생명을 만나는 기쁨을 느꼈다. 바로 버들강아지다.아직 바람은 차고, 햇살도 완전히 풀리지 않은 이른 봄날. 진분홍 가

  • 위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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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고창흥부설전>과 제비의 미학

<고창흥부설전>을 무대에 올렸다. 전통 판소리 <흥보가>가 고창의 특산물인 복분자를 만나 새롭게 태어난 작품이다. 내용은 기존 흥부전처럼 형제간의 극과 극의 상황을 다룬 ‘선악 형제담’, 제비가 씨앗을 물어다 주는 ‘동물 보은담’, 그리고 박 속에서 금은보화가 쏟아지는 ‘무한 재보담’을 새롭게 재해석했다.가장 큰 변화는 전통 판소리의

  • 임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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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유년의 추억

울산군 대현면 장생포리 205번지. 지금은 울산광역시 남구 장생포동, 나는 이곳에서 1942년 장생포우체국 직원이던 김해김씨 아버지 김용준, 경주김씨 어머니 사이에서 7남매의 셋째로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때라 일본인들이 많이 살았고 바닷가에는 일본 가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여관도 있고 요정도 많았다.봄철부터 가을까지 장생포항은 고래잡이로 시끌벅적했고,

  • 김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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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아침 단상

이른 새벽 집을 나섰다. 밤과 낮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문밖 공기가 차갑게 느껴진다. 거리에는 사람보다 고요가 어둠을 장악 중이다. 밤을 밝히던 가로등 불빛은 더듬듯 스며 오는 여명에 숨 고르기를 한다. 이 시간 익숙한 발걸음으로 산행을 시작하는 나의 일과는 하루를 여는 의식처럼 자리를 잡았다.아파트 광장을 지나 4차선 횡단보도 신호등 앞에서 잠시 걸음을

  • 박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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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반디

깊은 숲속, 달빛이 실처럼 풀려 나뭇잎 위에 걸렸어요. 잎사귀들은 그 실을 살짝 잡아당기듯 흔들며 길을 밝혔지요. 풀잎 끝에 맺힌 이슬은 은빛으로 흔들렸고, 작은 벌레들은 그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며 거의 들리지 않는 소리를 남겼어요.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움직임들이 겹쳐 숲을 조용히 살아 움직이게 만들었어요.그 길 위로 작은 빛들이 맴돌았어요. 둥글게 천

  • 서승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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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무녀리

어느 시골집 개가 마루 밑에서 어린 강아지 다섯 마리에게 젖을 먹여요. 강아지들은 나란히, 나란히 엄마 젖을 물고서 열심히 젖을 빨지요.엄마 젖을 먹는 강아지들 중엔 무녀리가 한 마리 있는데 형제들보다 몸집이 아주 작았어요. 때문에 엄마 젖을 먹을 때면 형제들에게 떠밀려서 데굴데굴 토방 아래로 굴러 떨어지곤 했어요.아니나 다를까, 무녀리는 오늘도 형제 강아

  • 김경자(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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