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로 향하는 문턱인 백로(白露)의 절기가 지났지만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온난화가 불러온 이상 고온 현상으로 낮에는 폭염이 계속되고 아침저녁으로도 후덥지근하다.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구입한 지 20년이 지난 오래된 것이라 수리하여 쓸 수가 없게 됐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김치냉장고는 나의 아이가 대학 시절 부두 컨테이너 터미
- 김형수(부산)
가을로 향하는 문턱인 백로(白露)의 절기가 지났지만 환경 오염으로 인한 기후 온난화가 불러온 이상 고온 현상으로 낮에는 폭염이 계속되고 아침저녁으로도 후덥지근하다. 추석 연휴를 며칠 앞두고 김치냉장고가 고장이 났다. 구입한 지 20년이 지난 오래된 것이라 수리하여 쓸 수가 없게 됐다. 지금까지 사용했던 김치냉장고는 나의 아이가 대학 시절 부두 컨테이너 터미
공짜가 아니라는 걸 깨닫기 전에 이미 살아버린단 한 번의 삶과 다시 마주할 수 있다면,닳도록 써먹고 또 써먹은 기억이 아니라지금 여기의 생생한 직관으로 바라볼 수 있다면,비탈진 산마루의 비대칭 삶을 꿋꿋이 버텨내는등산길 참나무가 바람을 맞이하듯아무런 표정 없이 환대할 수 있을까사방의 시선을 침묵 속에 담아내며삶의 의미를 향해 사색의 창끝을 겨눠보고 싶은데&
그 집 내실에 나는 없었다현관에 벗어 놓은 신발도 보이지 않았다장맛비 쏟아지던 지난여름잠시 빌려 신었던 목 긴 회색 장화가신발장 풀린 문틈으로 빼꼼히 발뒤꿈치 한 자락내밀며 지각생 같은 인사를 건네 왔다내가 없는 그 집 내실에나의 실존을 증명해 줄 주인장도 출타 중이었다벽에 걸린 그의 갈색 외투도 모자도 보이지 않은 채 지난 겨울 선물한 붉은 벽돌
바람이 걸어가고그 뒤를 내가 걸어가고슬픔이 따라온다해가 진 후에바람이 슬픔을 지우며내 앞을 걸어간다나는 사람과 헤어져이승의 길목을 돌아서는데바람이 내 팔장을 끼고함께 걷는다비가 내리고어제가 멀어지고 내일도 지나고 옛날이 사라지고오랜 이국생활의 고난이 조국의 하늘에 스미어슬픔을 내려놓고 가는 나에게 늙은 바람이 고난을 지우
눈을 떴다. 병원복을 입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한다. 여기가 어딘가? 병원 같은데… 내가 병원 침대에 누워 있다. 내가 왜 여기에 누워 있지?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그래! 집에 들어오려는데 집 번호가 생각이 안 났어. 이것, 저것 눌러보아도 아니야. 우리 집이 아닌가 하고 집 밖으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았어. 우리 집이 맞는 것 같은데…. 한참을 그러다가
나뭇가지 사이로내려온 햇볕공원 벤치를 톡톡친구들 오라고 비워둔 자리심심해 낮잠 즐기던 벤치화들짝학교 끝나 학원을 빙빙 도는회전그네 친구두 팔 벌려 빙그르르온몸 맡겨 봐그리고 말 걸어 봐상상을 안겨 줄게.
자전거 타고 쌩쌩 달려갑니다할아버지 할머니 얼른 보고 싶어서누나와 나 붕붕 달려갑니다꽃바람 뒤에 태우고 갑니다할아버지 할머니 더우실까 봐자전거 타고 쌩쌩 달려갑니다나비 나비 호랑나비도 따라옵니다유채꽃밭으로 놀러 갑니다복실이도 통통통 달려갑니다할아버지 할머니 심심하실까 봐
울 할아버지 쓰러지셔서오랫동안 의식을 잃었다가몸도 마음도 애기로 돌아가흰머리 할아버지 애기가 되었어요.음식물 삼키기 새로 배우고숟가락으로 밥 먹기,젓가락으로 반찬 집기도다시 배웠죠.누워만 있던 할아버지,걸음마 배우기 시작했어요.누웠다가 일어나 앉기,침대에서 일어서서 바로 서기, 워커 붙잡고 한 걸음씩 걸어보기.엄마가 찍어 보낸 동영상 보며막 박수를
오늘은 5일장이 서는 날입니다.나물을 파는 할머니, 도시에서 유행하는 옷을 파는 멋쟁이 아줌마, 붕어빵과 오뎅을 파는 아저씨, 쿵짝쿵짝 신나는 가요 CD를 파는 할아버지.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여러 가지 물건들이 총집합하는 날입니다.순대국밥집 옆에서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나란히 앉아 콩이나 쌀, 보리, 옥수수 등 곡식과 누룽지를 튀겨 주기도 하고 뻥튀기를 팔
아라가야 고분(古墳) 앞에서남고북저(南高北低)예부터 인걸 난다던 함주(咸州)야말산 낮은 봉우리 나란히 누워어느 겨를 편히 잠들 날 있었으랴아라곡(阿羅谷) 안라왕(安羅王)의 눈물 흰 새벽 옷깃 날리며 해 떠오르니여섯 가야 새 아침 그날일레.다섯 바다 여섯 육지 한 울타리 새 아침 밝아오네해 떠오르네그대 안의 새싹무를 깎다가 빗나간 칼이 손바닥을 깊숙이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