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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그날 이후

도현이가 벌떡 일어나 발을 굴렀어요.“이 멍청이, 멍청이, 멍청이! 너는 멍청이야.”껌벅껌벅 나는 도현이를 올려다봤어요. 할머니가 혀를 찼어요. “왜 덕구를 못살게 구는 게야? 네가 덕구를 멍청이라고 부르면 동네 사람도 멍청이라고 부르게 돼. 덕구라는 좋은 이름 놔두고 왜 그랴?” 도현이가 툴툴거렸어요.“손을 달라고 해도 못 알아듣고 손가

  • 소중애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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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동화에는 꽃 피는 봄사월만 있는 것이 아니다

1970년대, 나는 초등학교 교사로 시골 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경직된 시절이었다.독재 정권을 알리거나 자유로운 민중의 삶을 쓴 작가들이 잡혀 가는 필화 사건이 있었다. 대중가요 검열이 심해 금지곡이 수두룩했으며, 영화 및 공연을 할 때는 시나리오부터 상영까지 검열, 간섭이 심했다.홍보용으로 놀부전이라는 얇은 만화책이 학교로 배급되었다. 이 놀부전에서

  • 소중애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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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오감을 넘어 육감이 닿는 곳까지

나에게 창작의 산실은 30평이 안 되는 살림살이하고 있는 아파트가 아니다. 글 쓰겠다고 장만한 17평 남짓한 작업실 또한 아니다.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면서 어린이들과 함께 지냈다. 그것은 마치 꽃밭 속을 날아다니는 꿀벌과 같아서 꿀 같은 소재가 넘쳐났다. 동화를 쓰는 내게는 하늘이 내린 행운이었다. 어린이들은 언제나 나에게 생각거리를 주었고 웃음을 주었다.

  • 소중애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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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9 691호 문학의 품에서 피어나는 영혼의 향연

1. 문학의 향기인생의 황혼에 다다랐을 때, 과거를 뒤돌아보며 우리 영혼을 가장 따스하고 풍요롭게 채워 주는 건 다름 아닌 문학입니다. 문학은 삶의 고유한 결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가장 정직한 그릇입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한 인간의 깊은 내면과 마주하게 되며, 비로소 삶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지나온 삶의 치열함을 지나 여생을 문학과

  • 박덕은문학평론가·광주광역시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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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오늘은 어제 죽은 이의 간절한 내일——임병식 수필집 『아내의 저금통』

누구나 다 아는 거지만, 수필은 개인의 경험과 생각을 길지 않게 서술한 산문이다. 여기에는 자기 내면과 대화하는 일기나 특정한 타인만을 대상으로 해서 보내는 편지에서부터, 어떤 사건이나 인물에 대해 다루는 기사나 전기 같은 것, 예술품을 완상한 감상문, 여행 체험을 다룬 기행문, 어떤 개념에 대해 논증하는 철학론까지 두루 포함된다. 이런 범주에서도 특히 근

  • 박덕규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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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GPT 유토피아

커튼이 자동으로 열리더니 창문을 통해 햇빛이 들어온다. 알람 소리가 울린다. 침대에 있던 호연은 몸을 뒤척인다. 알람 소리가 한 번 더 울리지만 그대로 있다. 호연이 못 일어나자, 마리의 소리가 들렸다.“지금 일어나야 할 시간입니다.”침대는 자동으로 반 접히더니 앉은 자세로 바뀌었다. 이제야 눈을 뜬 호연이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마리, 오늘 아침은 뭐야?

  • 최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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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날개

1뻑뻑한 두 눈에서 이물감이 느껴졌다. 어젯밤부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 네 시였다. 키보드 위를 떠돌던 손가락 끝은 피로로 묵직했다. 숱하게 나를 괴롭혀 온 우울과는 달랐다. 컴컴한 방 안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컴퓨터 화면 속 엽편도 되지 못할 몇 줄의 문장을 지우고 쓰기를 반복했다.백스페이스키를 연타했다. 텅 빈 파일의 하얀 배경을

  • 진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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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마리오네트

내가 다름 아닌 마리오네트라니, 어리둥절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여행지에서 본 꼭두각시 인형이 떠올랐다. 여러 개 줄로 조종하는 그것은 턱 관절이 빠지며 커다랗게 입이 벌어질 때는 우스꽝스러운 한편, 어딘지 공허한 표정이 기억에 남아 있었다. 엄연한 이름을 두고 그리 지칭하다니, 별일이었다. 그새 별명이라도 생겼나 여기며 지켜보기로 했다.수업이 끝난 뒤

  • 정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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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빈 둥지의 숲

1파주 다율리·당하리 지석묘군에서 새암공원까지 이어지는 숲속 8km의 산책길에 발을 들여놓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만이 아니라 몇 겹의 시간을 한꺼번에 밟아 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길의 앞머리에는 넓은 돌뚜껑으로 눌러 놓은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엎드려 있고, 중간쯤에는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의 키 큰 비석과 봉분들이 줄줄이 널려 있으며, 끝자락에는 신도시

  • 강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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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사랑해 그리고 기억해

이충서는 월말 특집 마감을 하고 홀가분하게 부원들과 함께 몇 군데 주점을 돌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귀가 지하철을 탔다. 밤이 깊어서인지 승객들은 많지 않았다. 취기가 오른 상태에서 빈자리를 찾아 앉아 조는 듯 마는 듯 가는데,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눈을 떴다. 그런데 바로 건너편 자리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아, 평생 머리에서 지울 수 없는 여자, 생각할

  • 이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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