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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도토리 속 비밀방

여름 숲은 늘 바빴어요.매미들은 아침 햇살이 나뭇잎에 닿기 바쁘게 맴맴맴 목청을 높였어요. 나비들은 꽃밭 위를 팔랑팔랑 날아다니고, 잠자리들은 연못 위를 쌩 지나며 비행 솜씨를 뽐냈어요. 숲은 온통 움직이고, 소리 지르고, 춤추는 것들로 가득했습니다.하지만 참나무 가지 위에는, 제자리에 묵묵히 멈춰 서 있는 조용한 벌레가 있었어요. 유난히 길고 단단한 주둥

  • 조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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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가족 동요대회

매달 넷째 주 토요일이면 하늘이네 집은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맛있는 음식을 해서 양로원을 방문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엄마, 지난번엔 참치김밥을 했으니까 오늘은 김치김밥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매운 걸 못 드실 텐데 괜찮을까?”엄마는 어르신들이 매운 걸 못 드실까 봐 걱정이 되었어요. 옆에서 햄과 달걀, 맛살 부스

  • 김수영(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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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단풍 물든 그녀

늦가을 햇빛에 눈이 부시다. 감나무잎 사이로 출렁이며 비껴 들어오는 햇살이 가슴을 파고든다. 예년만 못하지만, 주황색 감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유년 시절 도시로 이사 왔을 때 마당 한쪽에 자리를 잡은 감나무를 처음 보았다.5월이 시작되면 연두색 싱싱한 감잎이 달린 가지 사이로 노르스름한 감꽃들이 빼곡히 피어났다. 자고 일어나면 나무 밑에는 떨어진 감꽃

  • 이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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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오늘의 메뉴

퇴근길, 이미 어두컴컴해진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본다. 노상 모니터에 처박느라 길게 늘어진 모가지가 뻐근하다. 찌뿌둥한 허리를 뒤틀어 양껏 괴롭히고 나서 거리를 찬찬히 둘러보니, 어느새 흥청망청 쑥덕쑥덕 난리통인 번화가를 걷고 있다.“누구는 일하고 누구는 노는구나.”짧게 볼멘소리를 해본다.이 시절을 살아내는 여느 청년들과 같이 나 또한 나랏일이 걱정이고, 경

  • 서용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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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내 인생의 선물

인생을 어느 만큼 살고 보니, 이제야 ‘선물’이라는 단어의 테두리가 어디까지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젊은 날의 내게 선물은 그저 고마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대가 없이 주고받는 물건이나 행위에 불과했다. 상대를 기쁘게 하거나 관계를 돈독히 하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일방적인 나눔, 그 안에는 감사와 사랑, 혹은 사과와 축하 같은 선명한 감정들이 담겨 있었다.그

  • 장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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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주변이 산과 논밭으로 둘러싸인 외진 곳이었다. 그곳에 덩그러니 저층 아파트 16개 동이 있었다. ‘영남들국화아파트’였다. 역곡역으로 출발하는 주민 전용 버스 2대가 교통수단이었다. 신혼부부인 우리는, 그 아파트 맨 끝자락에 자리한 1동 5층 꼭대기 16평에서 삶의 둥지를 만났다.새소리로 아침을 맞이하는 날이 다반사였다. 부엌 창문을 열면 찾아오는 이 없는

  • 이순미(서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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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아기는 우리의 희망이자 미래다

살아오면서 출산에 관한 일을 수없이 보고 들었다.출산은 인간세상을 이어가는 인류의 대서사시다. 1960∼70년대만 해도 남아선호 사상이 팽배했다. 그 시절엔 출산에 따른 여성의 희비가 교차했다. 그러한 시기가 지나고 남녀평등시대가 도래하자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고 생활은 윤택해졌다. 하지만 교육문제와 주거비 상승으로 젊은이들의 결혼 기피 현상은 사회문제로 대

  • 이균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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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여름을 열다

“여름” 하고 내뱉으면 우주 만물의 에너지가 파도처럼 밀려와 내 안에 꽉 들어찬다. 온통 짙은 녹색으로 절정에 다다른 풀과 나뭇잎은 청량하다. 애벌레는 밤낮 구분 없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찾고 온전한 모습을 위해서 안간힘을 쏟는다. 미처 증발하지 못한 이슬은 자꾸만 꽃잎 아래로 스며들지만 문전박대를 당한다. 기다리는 벌, 나비가 아니기에 매몰차게 거절하는

  • 박명순(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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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시간을 잇는 선물

선물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다. 주는 이의 손끝에서 받는 이의 가슴까지, 그 온기는 식지 않고 자리를 잡는다. 물건의 형상을 빌려 마음이 건너가는 가장 고요한 인사, 그것이 바로 선물이다.나이테가 선명해진다는 것은 낯익은 것들이 하나둘 조용히 내 곁을 떠나는 걸 의미한다. 그러나 가끔은 뜻밖의 연유로 내민 손길이 생의 새로운 페이지를 열어

  • 남기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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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 690호 개똥벌레 목욕탕

자기가 밤하늘의 별인 줄 알았던 개똥벌레가 있었다. 어느 날 자기가 별이 아니라 벌레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슬프고 충격적이었지만, 우주에서 날아온 별이 반딧불로 다시 태어난 거라 믿으며 ‘그래도 괜찮아, 난 빛날 테니까’라고 노래한다. <나는 반딧불>이라는 유행가 내용이다. 나도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인 줄 알았다.집 앞에는 오래된 목욕

  • 한미경(양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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