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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문어

끓는 물 속에연신 넣었다 뺄 때마다바다 깊은 곳으로부터동그랗게 몸을 말아 올리는 문어제사상에 올리니덤불 헤쳐 가며 피워올린어머니의 모란꽃 닮았다소곡주 한 잔 부어 올릴 때마다 행간 문 열고 나오는생전의 세로줄 손편지 말씀 빨판의 강력한 흡착력처럼 지방(紙榜)을넘어뇌리에 착 달라붙는다껌벅거린다이루지 못한 어머니의 바람 마고

  • 박선희(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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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희망을 열다

푸른 어둠초연하게은하수가득 메운 새벽처음처럼 날고 싶어별이 떨어진 곳을 향해 어둠에 몸을 씻고희망을 기다린다.파도는 떨림 속에얼음 같은 시간을 가르며 울먹이는 까만 현무암을 잠재우고조금씩 잊혀 가듯아쉬움은 바람에 씻기어 새길을찾는하얀 등대 ㅌ꿈과 욕망 사이로여명이 내려앉는다.선명한 불덩이 솟아파도 가르면흐르는 물

  • 길공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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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해나루* 해변

갯바위는 파도가 친구랍니다아무도 찾지 않아도 파도만있으면 외롭지 않답니다농게랑 소라가 찾아오는별빛 찬란한 밤이면조용히 불러주는 파도의 노래에따개비는 굴껍데기를 베고 잠이 듭니다수평선 저 끝에 떠 있는 섬들이보였다가안 보였다가 또 보이면육지가 궁금하여 휘저은 물안개랍니다기다림이 없는 만남은 놀람도 없겠지만 오늘도 어제같이 기다림은파도의 약속이기에갯바

  • 황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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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2024.12 670호 파도

파도가 잠든바다는 외롭다바람이 불어 흔들어야웃기도 하고 울기도 한다내가 바다에 가는 것은세상에서들을수없는말을듣고만날 수 없는그리움을 만나기 위해서다쪽빛 물결 넘실대는푸른 꿈들이 먼 길을 달려와갯바위에 드러누운 지친 그림자를 깨우고 소멸한다그 흔적 지우려무리 지어 피고 지는 해국 보랏빛 유혹에 가슴을 연다 비로소일어서는 아픔들 햇살

  • 염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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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가을을 사는 삶

몇 이파리 낙엽을장신구처럼 매달고횅댕그렁하니 늘어선 가로수 빛바랜 흑백 사진첩에서나 본 ‘을씨년스럽다’라는 비유가 참으로 실감 나게 다가오는 늦가을 길거리 풍경불현듯 그 너머로겹쳐 오는 얼굴이 하나오랜 세월 오롯이 챙겨주던 손길 거두고 가을바람에휩쓸려 간 낙엽처럼황망하게 떠난 얼굴이절기가 바뀌어도따스한 미소와 함

  • 정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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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보도블록 길

평탄한 길인 줄 알았습니다저희가 어렸을 때는자식들에게 햇과일 사다 주신다고먼 시장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다녀오시던 어머니를 오늘은 휠체어에 모시고 병원 가는 길평탄한 길인 줄 알았는데어머니의 휠체어를 밀어보고서얼마나 험난한 길인지를 알았습니다깔 때는 평평하게 깔았을 텐데세월 좀 지났다고 울퉁불퉁해지는 보도블록들 원래는 고우셨을 텐데주름이 진

  • 김근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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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억수비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립니다비를 좋아하지만억수비에 심장이 쿵쾅거립니다바짝 숨죽이며 쌕쌕거리는 바람의 소리를 듣습니다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 같습니다나무 군락들 사이로 어둑한 불빛이 보입니다이 폭우로팍팍한 인심이 도드라질 것 같습니다그리운 사람들이 하나둘씩 떠나갑니다소리 없는 작별에도 세파를 느낍니다비바람에 이른 낙엽들의 아픔이 고스란히 묻어납니다

  • 윤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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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 670호 매복

우직스럽게 보슬비 내리고사방으로 성벽을 쌓은 안개코앞을 가린다40도의 무더위와 35킬로 완전군장에판초까지 둘러쓰고,조명지뢰, 크레모아, 자동화기로 완성된 진지숨막히는 초죽음으로 숲에 섞인다시시각각으로 생명을 노리는전갈, 독거머리, 독거미, 독충, 독사, 말라리아모기 밀림의 적은 총알보다 더 두렵다자신을 이겨 강점을 찾아야전쟁을 이겨낼 수 있다정글에

  • 류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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