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오늘 또 그날이다. 6년 전부터 사나흘 주기로 서울 집과 시골 집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두 집을 오가며 지내다 보니 서울 집이 본집인지 시골 집이 본집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아니, 서울 집도 시골 집도 내 집이 아닌 떠돌이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시골 집은 남편이 태어난 고향집이다. 시부모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나도록 방치했었다. 마당은 말할 것도
- 서기향
1오늘 또 그날이다. 6년 전부터 사나흘 주기로 서울 집과 시골 집을 오가며 지내고 있다. 두 집을 오가며 지내다 보니 서울 집이 본집인지 시골 집이 본집인지 헷갈리기까지 한다. 아니, 서울 집도 시골 집도 내 집이 아닌 떠돌이처럼 여겨질 때도 있다. 시골 집은 남편이 태어난 고향집이다. 시부모가 돌아가신 지 3년이 지나도록 방치했었다. 마당은 말할 것도
30년 전 초등학교 교사로 당시 서울에서 제법 크다는 학교에 재직 중일 때의 일이다. 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 시절이니 요즘 말로 말하면 정말 원시시대인 셈이다.학교 형편을 원시시대로 표현한 것은 요즈음의 학교와 비교해서 한 말이다. 돌이켜 보면 그 당시의 학교란 게 정말 형편없는 원시시대 같다고 표현할 만했다.요즘의 아이들은 청소를 하는가, 눈물
스크린 위로 엔딩 크레딧이 정적을 깨며 흐른다. 영화 <내 이름은>이 남긴 여운은 상영관의 어둠보다 깊고 무거웠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한 편의 영화적 서사일지 모르지만, 제주라는 땅에서 나고 자란 내게 그것은 박제된 역사가 아닌 피부로 와닿는, 여전히 아물지 않은 아픔이었다. 영화 속 주인공이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조각난
그동안의 노력이 결실을 맺기 전까지만 해도 많은 기다림이 필요했던 것 같다. 작년 2025년 해외에서 상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불과 신진작가였다. 그때 나는 언제부턴가 엄마에게 이런 말을 은근슬쩍 꺼낸 적이 있었다.“엄마, 아주 만약에 내가 해외에서 상을 받으면 어떤 느낌이 들 것 같아요?”“그럼 대박이지.”엄마는 영혼 없는 어조로 이야기한다. 아마
상견례 날을 받아놓고 아내와 나는 참 많은 고민을 했었다. 결혼식 장소를 우리가 살고 있는 안양에서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신 사돈댁에 대한 감사한 마음으로, 상견례만큼은 무조건 사돈이 계신 청주에서 진행하겠다고 오래전부터 못 박아 둔 터였기에 아이들이 날짜를 정하고 장소를 예약해 통보하기 전까지는 그리 실감이 나지 않았었는데, 막상 모든 일정이 구체화되자
가을이 문을 두드린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더위를 돌려보내려 애쓰는 햇살의 결이 사뭇 다르다. 산허리를 감싼 햇살은 고요하다. 은은하게 비껴드는 가을 햇살은 우리 보고 어서 가라며 손짓하는 아버지를 닮았다.“니가 무슨 말을 해도 난 안 가.”몇 달째 아버지와 같은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올케가 주간보호센터를 운영한 뒤부터는 그 실랑이가 더 잦아졌다. 딸처럼
은퇴한 지 어느덧 아홉 해가 되었다. 직장을 떠나면 비로소 느긋한 삶이 시작될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은퇴하고 보니 나는 여전히 무엇엔가 쫓기듯 살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일정을 확인했고, 저녁이 되면 다음 날 계획을 세웠다. 직장은 떠났지만 분주함은 퇴직하지 못한 셈이었다.은퇴 무렵, 한학에 조예가 깊은 친구가 내게 ‘초은(樵隱)’이라는 호를
오늘은 상현달이 조각배처럼 남쪽 하늘에 떠 있다. 상현달을 바라보는 시인은 어떤 시상이 떠오를까. 화가가 바라보는 상현달은 어떤 그림으로 묘사되어 나올까.오래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이중섭, 백 년의 신화>를 관람했다. 전시실 벽에는 소 한 마리가 그려져 있었다. 굵은 선으로 그려진 그 소는 어딘가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러면서도 끝내 무너
모퉁이를 앞두면 걸음이 느려진다. 저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알 수 없다는 불확실성은 때론 두려움이 되지만 뜻밖의 경이로움을 감추고 있기에, 나는 그 꺾임의 지점에서 늘 숨을 고른다.오래전 고향 마을 끝에는 산허리를 굽어 도는 흙길이 있었다. 모퉁이를 돌아야만 다음 풍경이 비로소 열리던 길. 그 앞에 서면 이유 없이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치 그 너머에서 내가
동화책을 읽고 난 후 손녀는 내 손을 잡아 끈다. 손녀는 동화책 내용의 「부풀어오른 빵」으로 아빠를 만나고자 한다.“할머니, 아빠 얼굴처럼 부푼 빵 사러 가요.” 엄마가 출근하자, 아이는 책꽂이를 살펴보다가 『행복합니다』라는 동화책을 가져왔다.“이 책 읽어 주세요.”책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책 속의 하루도 오늘처럼 비가 오고 있었다.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