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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 681호 선사인의 편지

대구수목원 앞 삼거리에는모로 누워 잠든 선사인이 있다 까마득한 옛날엔 돌도끼 든 사냥꾼 도원천 개울물은 그를 일깨우려개복숭아 꽃잎 띄우고 월배 선상지 행길을 나서면전봇대 뒤로 빼꼼히 고개 내미는신호등 표지판 위 웃통 벗고 걸터앉은 시간을 건너온 낯익은 얼굴들이쑥덕거린다전신주에 매달린 그가 보내온2만 년 전 기별이 막 도착

  • 이성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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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 681호 우리 집은 백화점

정문 신발가게 앞에서 신발을 벗고 들어오세요거실에 전자제품점과 도자기점과 갤러리와 서점을 둘러보시고 가구점 소파에 앉아 쉬셔도 좋습니다 햇살이 따듯한 베란다 쪽으로풍란과 호접란 군자란이 보이는 꽃집과고추와 상추가 자라는 작은 농장이 있습니다 식당에는 신선한 채소 김치 정육 생선들을 냉장보관하고 있으며 우리집 셰프가 요리하

  • 이원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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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 681호 범부채

호랑나비야 오너라사뿐사뿐 날아 오너라범부채꽃 잔치가 열렸단다 어느새 아침해는 머리 위에바람은 숨을 죽이고뻐꾹새도 울지 않는다 주황빛 호랑무늬 얼룩 반점새색시 이쁜 볼도 순간이다네가 좋아하는 호랑무늬도 하루뿐 꽃잎 돌돌 마는 폐문(閉門)은 영원한 눈물 호랑나비야 어서 오너라제비처럼 날아 오너라시간은 사랑을 기다리지 않는단다

  • 장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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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 681호 오월은 세차 중

비에 젖은 장미는 향기를 놓치고오염으로 찌든 하루를 씻었다 쏴아악 쏴아악 몰려오는 파도 소리당신이 지어 놓은 폐그물 같은 공허와웅크린 고요가 빛을 잃고 있다 섬에 갇힌 고래 뱃속처럼창문은 물기로 가득해서 밖이 보이지 않는다 물거품처럼 번지던 울음이 지워지고거추장스럽던 슬픔의 자락도 침묵 밖으로 밀려왔다 고래 뱃속에 갇힌

  • 이경순(용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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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 681호 8월(of 어느 공간) ——방주 위 세상

연일 계속된강풍 폭우 태풍댐 붕괴 제방 붕괴시스템 붕괴로 나무 집 건물 가축 사람 자동차 논밭 산 온갖것다 떠내려가고 진흙탕 포효가거대한 인공 쓰나미마을 도시 삼키고 사람들 비명 아우성한 시대 문명문화가 물 속에 잠기고전기 통신 끊기니 인간세 고립되고 파괴되고 사라지고암흑천지 아수라장인간과 자연

  • 조기엽(도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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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11 681호 사막으로 떠난 낙타

매일 아침탑골공원 출근길낙타 한 마리새털구름만큼냉동된 서러움 올라온다 대수로 현장기계음 소리마저 녹이던 열기등에 진 시멘트 몇 포대이깟건 아무것도 아니야낙타 열 몫을 해내던 날들 땀내 젖은 부표 한 장손때 묻은서툰 글씨와 성적표척수를 비집고 나오던 웃음 불 꺼진 무대 위늙은 배우의 독백 힘은 들었어도그때가 좋았어 

  • 이서연(서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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