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을 보아도길은 없었고 위를 보니말씀이 있었다 그것이큰길이었다
- 정택상
사방을 보아도길은 없었고 위를 보니말씀이 있었다 그것이큰길이었다
저 멀리반짝이는 불빛 하나두 손 내밀어 잡힐 듯 잡힐 듯마음은 벌써 손에 잡은 듯한데 선바람으로 그저 허공을 맴돕니다 두 발은 방아를 찧고입술은 타들어 갑니다 한 발 두 발내딛는 발길은 무거워지고절름거리는 발걸음으로길 위에성근 흔적 그리며 나아갑니다 헤매며 지나온 길돌아보니 그 길은 꽃길이었습니다겨드랑이에 돋아난
넘어지고 나서야아픔에이름이 생겼다 아무일 없다는 얼굴로하루를 건너는 법을너무 일찍 배웠다 기대는 비어 있었고말들은가슴 안에서 늙어 갔다 버텼다고 하기엔길었고포기했다고 하기엔손에 온기가 남아 있었다 행복은 스치듯 왔고불행은 끝까지 오지 않았다 그 사이에서 살아냈다상처는 흉터가 되었고나를 설명했다 무너지지
겨우내 말라버린 가녀린 줄기 살갗 찢어 틔운 노랑 싹눈돌 밑 샘물 파내어에미 젖 물린다 중랑천에 빠진 젖은 봄 건져영축산 바위에 널자작은 노랑 별꽃파란 하늘 보며 오물거린다 따스한 햇살꽃잎마다 행복 담아아주 작은 입들이새 생명 노래한다 바람에 실려온 봄 향기 산에 들에 창문가에도 잎새 보다 먼저내 품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시던 곳내가 태어난 곳어린 시절 떠난 후 돌아가지 못했네 먹이 찾아 이곳저곳 기웃거리던 닭을 쫓던돼지에게 뜨물을 갖다주던마루에 앉아 쪽문으로 바람에 날리는 옥수수잎을 바라보던 그때 그 풍경은 찾을 수 없네 옛집은 사라지고부모님은 하늘에 계시는데자손 대대 이어지기를 원하시던 아버지의 땅 배부르고 가진 것
멀어져 가는 지난날 돌아공평한 시간 함께 해왔건만경험의 폭을 늘려가는 시점인생 견딤과 삶의 즐거움을보상받아야 할 그때 날마다 새로운 것들의 등장디지털의 그림자 속 문맹을 실감하며 화려한 조명 무대 뒤로온건하게 진정시키는 옛것들 가족은 흩어지고 이웃은 멀리 떠나 낭만은 사라지고 추억만 남아내가 아는 이 부르던 이름을하나씩
마그마의 귀속에연결된 첨성대가 달팽이관을관찰하고 있다 지구의수평을 저울질하고 있던 붕장어가 ‘휙’ 지나간 자리에서 회오리의나선을 타고 일어나는 해일 물위로떠오르는 금관 멈춰진 시간이찾아들어간천년고도의 맥박 그 위를지나던 물새소리가 맥박 주위를 맴돌던
내가 가진 초가집이 많다고 생각했다행복을 바램이라는 시인의 초고 같은 눈이 내린다헛된 욕심을 버리면 겨울비도 꽃이 되어최상의 허무 없는 삶으로 마음은 비움겨울이 흘러 내리다 천변에 울고 있다내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행복한 꼭짓점 자리갈대가 눈물 아닌 눈물에 푹 젖어 있다 그리해난 오늘도 초록빛 꿈을 꿈꾼다초록빛에 꿈 꾸는 게 아니라
싸늘한 한기가 감도는시장 입구 난전에어설픈 모습으로 앉은 여인눌러 쓴 모자가 늘어졌다 바닥에 깔린 채소가 안쓰러워고구마 줄기 한 바구니 사고만 원짜리 건네니앞치마에서 나온 거스름 돈 한 손으로 잡기 어려울 만큼두둑한 지폐뭉치잔돈 받아들고 돌아서려니달랑 만원인 지갑이 부끄러워얼굴이 지갑처럼 구겨진다
알아볼 수 있을까다른 얼굴은 아니겠지모르고 지나치진 않을까 52년의 시간을 뛰어넘어친구를 만나러 가는 시간마치 엄청난 사건을 마주하듯 설렘과 반가움이 뒤죽박죽이다 시공간을 넘나들며동화 같은 세상을 나누며다시 써 내려갈 추억의 한 페이지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반세기도 지나 만난다는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