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 해적들이 허공을 치켜드네굶주린 짐승처럼 이빨을 드러내며빗장을 풀어제치고 해안을 물어뜯네매미는 목청 돋워 속옷까지 훑어가네 갈비뼈 드러난 채 핏줄이 돋아난 채 설계도 디자인도 없이 돌을 쌓아 올리네땀 한 말 눈물 한 홉 달빛에게 바치네 너울이 솟구치면 한밤에도 달려와 뭉툭한 손가락 세워 성채 높이 받드네*2003년
- 김덕남
바다 위 해적들이 허공을 치켜드네굶주린 짐승처럼 이빨을 드러내며빗장을 풀어제치고 해안을 물어뜯네매미는 목청 돋워 속옷까지 훑어가네 갈비뼈 드러난 채 핏줄이 돋아난 채 설계도 디자인도 없이 돌을 쌓아 올리네땀 한 말 눈물 한 홉 달빛에게 바치네 너울이 솟구치면 한밤에도 달려와 뭉툭한 손가락 세워 성채 높이 받드네*2003년
추억은 봄비였고 만남은 꽃이었다생각의 푯대 끝에 한송이 꽃이 필때서늘한바람이 불어상념에 젖어든다잘못된 길이었나 뉘 탓도 아닌것을 꽃잎이 떨어지는 진리를 보았을때 달빛은창가에 앉아실타래를 풀었다길아닌길을가는허공의새를보며 처마 끝에 달이 뜨듯 이슬이 맺혀진다 그믐달창가에 홀로 뒤척이고 있었다.
아버지 모신 흙집 아롱이다롱이 다 모여서 검불을 걷어내고 잡풀을 뽑았더니제비꽃 웃음 터지고 산새도 날아든다방아잎 부침개를 알싸하게 풀어놓고젓가락 쥐어주듯 드시라고 권하다가막걸리 빠질 수 없지, 한잔 가득 올린다겨울잠 깨셨을까 잔디 파릇 돋아나고바람도 껑충대니 봉분 어깨 움쭐움쭐 완성된 가족구성원 봄품이 따스하다
승강기 버튼 앞에 백발의 우리 엄마반쯤은 굽은 날개 고개를 들다말다기억의 터널 깊은 곳 터벅터벅 걷는지오르내린 많은 날이 구름을 짚고 선 듯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가가면 멀어지는지 버튼도 어머니처럼 꾸벅꾸벅 졸고 있다
들추는 네 별칭은 가을을 빚는 사람푸석한 가슴 닦아 시어를 쏟아낸다 서두는 도시 발길에 은유 듬뿍 입히며집 없는 벌레 찾아 추위 대신 껴안는 너 헐벗은 잔뿌리에게 체온을 나눠주다 우듬지 먼발치에서 성자로도 만나지설렘을 덧대주는 사랑학 전임 강사 밋밋한 하루 뒤꼍 불꽃 한 점 되살리며 더듬다 보태는 경력 남은 칸이
초췌한 일상들이 늘 발목 잡아채는떠밀린 가장자리 자분자분 흙을 밟고 풀꽃과 하늘 냄새와 내통, 외려 느껍다느닷없는 만분위중(萬分危重)마음고름* 동이며돌아본 푸른 날이 불꽃처럼 뜨거워도정작에 버킷 리스트 망설이다 관두고유년의 반딧불이은하로 흐르는 날아슴아슴 멀어지는 절박한 시마(詩魔) 당겨모든 게 은혜였다고새물 맞듯 읊으리*순우리말로 마음속을 드러내
장미꽃 불 지펴서 검붉게 익는 오디 흰 백합 꽃향기에 내뿜는 수련처럼 그리움 감꽃 목걸이 밤꽃 향기 전한다뻐꾹새 울음 뉘여 감자꽃 열매 맺듯 오디로 물든 입술 웃음꽃 젖는 하루 샛노란 꾀꼬리 한 쌍 숨바꼭질 바쁘다찔레꽃 명지바람 머물다 지는 꽃잎뭇 별빛 젖어 들어 가슴속 멍든 앙금하짓날 농익은 쪽문 한여름을 달군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너의 가슴 열어젖히고내 욕심 채우려고 네 속을 얼렸다마지막 전원을 뽑는 순간가족사가 풀풀 난다큰아들 고등학교때 우리 집에 들였으니주민등록상 함께 산 것은 아내 다음 너였구나네 속을 닦아내다가울컥 목이 북받친다고향집 공구통은 어머니의 헌 냉장고옆집 고모 오이맷국 넣으러 오던 그 냉장고 주인집 괄세 받던 시절문간살이 생각난다이 빠진
진달래 개나리가 활짝 피는 소월리에입춘대길 찾아오면 오십천은 흐르고아득한 수평선 위로 갈매기 떼 날으네어두운 근심 같은 칠흑빛 동해에는그 어둠 밝히려는 하나의 등불이듯주문진 밤바다 가득 집어등이 켜진다
황망히돌아서 간다바람 찬담 모롱이를식어버린 눈물 한 술데워 먹일 겨를도 없이찢기고얼룩진 채로 가출하는 저 치맛자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