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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7 689호 허공으로 기우는

플라타너스 아래 벤치는 왼쪽 소매가 자꾸 내려가요 거기 헝겊 인형 앉히면 잿빛 블루 안에 코발트색 하늘죽은 별 그리며 태어날 별을 기다려요 파랑의 발자국은 빨강인가요동해에서 노을 지는 서해를 떠올립니다 허공은 비닐 조각마르지 않는 나무 요동치는 이파리 물끄러미 보다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건죄책감 아닌 휴식이야옹

  • 오금희(경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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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026.7 689호 옥잠화

봄과 초여름달콤하고 은은한 시간잔잔하고 푸근한 공간을모두 남에게 양보하고 그대는어찌 어지럽고 뜨거운 시간떠들썩하고 흔들거리는 공간을택하였는가 모든 시름을 껴안을 듯넓고 넉넉한 가슴을 드러내며백설 같은 하얀 얼굴을기린 같은 높은 목 위에올려 놓았네 인고(忍苦)의 혹서를 그냥 묵묵히 지나면서 무엇을 사색했는지세상이여 내 얼굴

  • 유장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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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2026.7 689호 양철지붕

5월 장마가 오기도 전에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달구질 소리를 닮은장단이 지붕을 뚫고 내려온 사이어머니의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끼어들었다새벽부터 늦은 밤까지빗소리에도 잦아들지 않고 돌돌돌 비명을 쏟아낸다 어머니의 고달픔이 실밥에 새겨진다내가 동화책을 읽는 소리형이 영어책을 읽는 혀 꼬부라진 발음아버지가 담배를 피는 소리까지 슬쩍 끼어들었다 

  • 박재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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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2026.7 689호 무의 눈물

여름이 길게 하품하던 날산그늘이 마을에 내려앉을 무렵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밭으로 갔다김장 배추와 무를 심는다며흙을 가르던 손길햇빛보다 뜨거웠다태양이 녹아버릴 것 같은 오후소 끌려가듯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다 첫서리 내리던 날땅속에서 하얗게 건져 올린 무그 속엔 아버지의 땀이 스며 있었다 토굴 속에서 겨울을 나며가족의

  • 조갑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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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2026.7 689호 정(情)·2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만면에 구김살 하나 없는 가만한 웃음은 달빛처럼 주위를 밝힌다 대학 졸업 60주년 행사에 팔십 중반의 노부부가 미국에서 머-언 길을 이렇게 찾아왔다 비는 끈질기게 퍼붓는데 저 부부의 얼굴에는 비 그칠 무렵 꽃이 내뿜는 젖은 향기가 떠나지 않는다 젊은이 둘이 계단을 내려주니 노년의 남편 L동기가 익숙하게 밀고 숲길을 나선다 빗속을 걸어

  • 심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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