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중등부 산문 차하> 경쾌한 발걸음으로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 경적 소리가 크게 울리는 도로변까지 왔을 때, 핸드폰 화면에 알림이 떴다.‘엄마 오늘 늦으니까 밥 잘 챙겨 먹고 먼저 자.’설마 싶었는데, 오늘이 내 생일인 걸 잊었나 보다. 엄마의 문자에 퉁명스럽게 대답을 보내곤
- 강다인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중등부 산문 차하> 경쾌한 발걸음으로 하교하는 아이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 경적 소리가 크게 울리는 도로변까지 왔을 때, 핸드폰 화면에 알림이 떴다.‘엄마 오늘 늦으니까 밥 잘 챙겨 먹고 먼저 자.’설마 싶었는데, 오늘이 내 생일인 걸 잊었나 보다. 엄마의 문자에 퉁명스럽게 대답을 보내곤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 중등부 산문 차상> 어머니의 마른 등이 시야를 벗어난다. 저 멀리로, 아주 멀리로, 길은 초록의 물결 속으로 아득해져 갔다.비쩍 마른 몸, 깊게 패인 두 볼, 볼품없는 외모, 우리 어머니는 존재 자체만으로 많은 의구심을 품게 하는 사람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없이 커다란 비밀을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중등부 산문 장원> 요즘 들어 편지를 쓰는 사람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학교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편지지를 받았을 때, 주변에서 편지보다는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드리는 것이 더 좋다며 쓰지 않는 학생이 대다수였다. 쓰는 학생 중에서도 진심으로 쓰는 학생은 소수에 속했다.나에게 편지란 특별한 날에만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중등부 운문 차하> 누군가를 떠올렸다초여름의 후덥지근한 날씨 탓인지누군가가 떠올랐다 방 불을 껐다세상은 금세 어두워졌고난 보이지 않는 종이에 글을 썼다난 보일 수 없는 누군가에게 글을 썼다 사진 한 장을 찍었다부서진 누군가의 음성을 바다에 흩뿌린 뒤불 켜진 가로등 사진이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중등부 운문 차상> 너는 학생이다갈팡질팡 갈 길을 정하지 못하고고민만 하고 헤매는 사람 적정만 앞서고 있을 때 나타난한번도 보지 못했던너의 마음속 어딘가의 낡은 나무 문"너의 나이테는 어디 갔니"나무의 나이테는 어디 가고가운데에는 아마도 열여섯 줄이 그어져 있어 네가 열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중등부 운문 장원> 해와 헤어져 해와 만날 때까지의자에 꼬옥 붙어 있었던시험 전날 사춘기 소녀의 방문처럼 열리지 않는 눈꺼풀진동벨처럼 덜덜 울리는 손나를 들었다 놨다 하는 정신머리내 어깨에 앉은 새까매진 시간의 무게 내 앞에 시험지가 나를 비웃었다시험지의 글자들은 춤을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산문 차하> 진득한 가래를 목뿌리에서부터 긁었다. 방독면을 넘어 집안에는 가래 긁는 소리가 넘실거렸다. 손에는 경호가 그린 그림 두어 점이 있었다. 경호의 말로는 이 그림들이 숲이라고 했다. 그림 속엔 나무들뿐이었다. 그것도 잎이 덕지덕지 발린 건강한 나무였다. 나는 이런 게 어디 있냐며 그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산문 차상> 하얀 이어폰의 줄이 엄마의 손에 걸려 있었다. 반대쪽 손에는 손바닥만 한 MP3가 들려 있었다. 귀에 이어폰을 꽂은 엄마의 입가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엄마는 귀를 통해 숲을, 오래된 추억을, 삶을 느끼고 있었다.두껍고 어두운 헤드폰과 커다란 구형 수음기, 그리고 이름 모를 장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산문 장원> 후덥지근한 공기 사이로 천일염의 짠내가 코를 찔렀다. 아빠는 좁은 가마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검게 구워진 도자기들을 밖으로 날랐다. 바닥을 가득 채운 도기들의 절반은 뭉개진 모양이었다. 아빠는 늘 겪는 절반의 실패에 좀처럼 무뎌지지 못했다.원래 어떤 모양의 그릇이었는지 알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운문 차하> 어머니, 그 별에서 기형도를 만나셨나요?구겨진 편지들이 바닥에서 나뒹군다문장들이 심전도 곡선의 걸음걸이처럼 뚝뚝 끊기고 돋아난 마침표가 빠르게 부서진다 영정사진 속 웃고 있는 당신검은 정장을 입은 그림자들소녀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목울대를 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