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작가 지망생에게 등단이란 각고 끝에 얻은 첫 결실 혹은 오래 품어 온 꿈의 서막일 테다. 근래 등단제도를 거부하고 독자들과 바로 소통하는 이들도 다수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등단은 문학 세계로 입문하는 작가의 첫 관문이다.보통 등단은 저명한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여러 해 글을 배우면서 쓰디쓴 합평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자괴감으
- 심은신소설가
대부분의 작가 지망생에게 등단이란 각고 끝에 얻은 첫 결실 혹은 오래 품어 온 꿈의 서막일 테다. 근래 등단제도를 거부하고 독자들과 바로 소통하는 이들도 다수 있지만, 아직도 여전히 등단은 문학 세계로 입문하는 작가의 첫 관문이다.보통 등단은 저명한 작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여러 해 글을 배우면서 쓰디쓴 합평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 자괴감으
수서 선생님 작업실을 방문한 날은 사흘 동안이나 장맛비가 계속 내리던 날이었다.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자 액자 속 아프리카 여인이 먼저 반겨주는 작업실 안에서 선생님은 여전히 넉넉한 웃음으로 나를 반기신다. 직접 물을 끓여 타 주시는 커피 향이 은은하게 작업실에 퍼지고,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은 선생님은 느긋하게 담배 한 개비를 물고 불을 붙인다. 언제나처럼
1턱 관절이 아리도록 껌을 씹어댔다. 질겅질겅 씹어대던 껌을 더는 씹고 싶지 않아 버릴 종이를 찾아 호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호주머니 안 쪽에 있는 껌 종이가 손끝에 닿았다. 단물이 빠진 껌은 귀찮았고, 불편 했다. 단물이 빠진 껌이 사라지자 다시 껌을 사야하나 망설였다. 불필요한 거스러미처럼 호주머니 안에서 놀던 껌을 의식한 건 한 시간이 지난 후였다.시
문 화백을 인터뷰하기 위해 미술관을 찾은 날은 유난히 날씨가 맑았다. 바람은 초여름의 먼지를 몰고 사라졌고, 맑아진 시야는 미술관 앞으로 펼쳐진 들판의 끝으로 시원스레 뻗어 나갔다. 먼 들판의 끝엔 두 개로 쪼개어진 채계 산이 조각상처럼 서 있었는데, 쪼개어진 산등성이를 출렁 다리가 느슨하게 잇고 있다. 누구라도 이곳을 찾게 되면 품게 되는 의문이 있을 것
힘들다. 오늘도 산더미 같이 쌓여 있다. 일거리가 있어 좋다마는 해도 해도 너무했다. 야속한 컨베이어 벨트는 한시도 쉬지 않았다. 말로만 듣던 과로사가 이해되었다. 일이 없어 스트레스 받아 죽으나 일이 너무 많아 스트레 스 받아 죽으나 죽을 사람은 이래 죽어나 저래 죽어나 죽 게 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언제 죽음을 생각해 본 일은 없다. 인제는 죽음이 간당
“이 선생, 우리 다음엔 어디로 탐방 가면 좋겠나? ” 이 선생은 멈칫했다. 학교 현장에서 고향사랑인문지리지 동아리 활동할 때 아이들에게서 듣던 소리다. 해맞이 가 모임의 주제로 떠올라 한참 열띤 토의가 진행되고 있었다.산악회 회원이 산에 갈 때는 안 모이고 회 먹으러 간다 니까 다 모이냐고 핏대를 세웠던 이도, 인류를 구하든지 나라를 구해 보려 모인 협회
거울 앞에서 지난 세월의 먼지를 걷어내듯 내 모습을 들여다본다. 내 나이는 바람결에 떠밀린 세월의 자취처럼 어느새 만 68세이다. 아내의 나이는 내 그림자를 좇는 바람결처럼 비슷한 만 71세이다. 현실을 점검하려는 듯 근래의 내 생활의 흐름을 둘러본다. 민달준(閔達俊)이란 내 이름에 걸맞게 고공의 매처럼 당당하게 살아왔다고 여긴다. 고등학교의 미술 교사로
松林길끝 지점엔옛날 친구 홍이네 집볼 때마다 정겹구나 뒤뜰에는 까치집 짓고 석류꽃 피는 집.언제쯤내게도저런 집을 질까.
잎새의 속삼임을 갉아먹는 추일 하오 무채색 나무 위로 바람이 건 듯 불어 담벽에기댄 실루엣살풀이를 연출한다엇각을 빚어내며 매달린 무성 영상 이따금 흥겨우면 옷자락 날리지만 한사코 묵언 수행을 과업으로 삼는다언젠가 떠나보낼 일체형 복제품도 유체의 짐을 벗고 반구형에 영주할 때 소롯이그도 나처럼 피
가을은울긋불긋마음도 물이 들고가을은나뭇잎이제 무게 달아보고가을은맷방석 같은달도 든다, 휘영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