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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봉지쌀

비와 싸락눈이 종일 오락가락하던 날 엄마는 달포째 누워만 계세요 동네 의원에 한번 다녀오신 뒤로 약 같은 약도 못 쓴 채 해가 일찍 떨어지자 동생들 배고픈 눈이 저만 빤히 쳐다봐요 대추나무에 연 걸리듯 외상값은 주렁주렁하지만 어쩌겠어요 네 살배기 막내를 들쳐업었지요 반 친구들 만날까 동네 골목 요리조리 피해 외상 쌀 구하러 나섰죠 집집마다 흘러 풍기는 된장

  • 박수자(과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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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소리, 귀를 얻다

소리의 성(城)대사습으로 가는 길은 멀었다 천년의 소리, 하늘을 향해 팔을 벌리고 거친 삶을 머금은 몸짓, 불꽃처럼 타오르면성벽은 무너질 듯 흔들리고귀는 칼을 간다 신명이 사방을 휘감고,목울대 뚫고 꿈과 눈물로 벼려진 소리,얼마나 세상 밖이 그리웠던가 한생을 걸어온 외로운 길,핏빛으로 엮어진 소리 마디마디는어두운 날들의

  • 박진철(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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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바람이 머문 자리

한 계절이 끝을 맺을 때또 다른 걸음으로 다가서는 향기에 눈을 감는다 비릿한 가을비가 가슴에 내리고손님이 되어 찾아오는 인연은먼 발치로 떠나며 뜨거운 눈물을 남긴다 낙엽 한 잎 바람에 떨어질 때남은 빈자리는 다시 채워지고바람은 조용히 머물다 간다 들꽃처럼 피어나서늘한 바람 속에 흔들리며간이역을 지나새로운 계절 속으로 들어서는 가을

  • 김재원(인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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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쑥부쟁이의 노래

돌틈 사이로 하늘하늘그리움이 모여연보랏빛 꽃잎 피웠네 맑은 이슬로 닦은보랏빛 진주 알알이꽃잎에 살포시 내려앉으면 순정(純情)한 시어들이해맑게 미소 짓고티끌 하나 없는 바람에산들산들 춤을 추었다 칡넝쿨 우거진 틈새에도가느다란 목을 길게 빼고파란 하늘 우러르는 쑥부쟁이 아직 그리움은 끝나지 않았다 햇살처럼 꽃잎 싱싱

  • 김순희(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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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여름 ——당신과 나의 지쳐 있던 한때

검은 무개화차에 실려 새벽 연무는 왔다그해 그 여름엔 그리 굵던 장맛비도유난히 빨리 잦아들기 시작했다망간이 되어 밤이 밝아지자그곳에선 라벤더 향이 난다고 했다오래 전 헤어진 연인과 같은 향이 난다고 했다매 걸음걸음그의 흔적이 배어 나온다고도 했다그렇게 보랏빛 향이 필 즈음이면난 항상 당신이 떠난 자리에 서 있곤 했다오랜 노동에 지친 무개화차는 긴 한숨을경적

  • 박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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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 683호 가을 햇살에 윤슬이 비칠 때면

가슴 깊은 곳분홍빛 둥지를 틀어숨 쉴 때마다 고운 날갯짓사랑으로 승화된 너의 영혼 상상의 중심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물결 소처럼 내 가슴 휘감아 돌아끊으래야 끊을 수 없는 인연의 고리가 되어 기억 속 소품으로 남은 이름 석 자그 이름 엉킨 실타래처럼풀어도 풀어도 풀리지 않는 미로의 사슬 가을날햇살에 반짝이는 윤슬너의 눈빛처

  • 문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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