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푸른 산자락 아래, 흙이 숨 쉬는 마을이 있었다.사람들은 그곳을 흙마을이라 불렀다.비가 오면 흙은 더 부드러워졌고, 햇볕이 비치면 따뜻한 숨을 내쉬었다.바람은 흙 위를 지나가며 늘 낮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 마을에 같은 흙에서 태어난 세 아이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토기, 도기, 자기였다. 토기는 늘 온기가 있었다.누군가
- 강형주
깊고 푸른 산자락 아래, 흙이 숨 쉬는 마을이 있었다.사람들은 그곳을 흙마을이라 불렀다.비가 오면 흙은 더 부드러워졌고, 햇볕이 비치면 따뜻한 숨을 내쉬었다.바람은 흙 위를 지나가며 늘 낮은 목소리로 노래했다. 그 마을에 같은 흙에서 태어난 세 아이가 살고 있었다. 이름은 토기, 도기, 자기였다. 토기는 늘 온기가 있었다.누군가
나의 10대는 개판이었다. 그렇다고 껌을 씹으면서 다리를 떨고 다닌 건 아니었다. 그저 공부를 안 했을 뿐이다. 개천에서 용 나기란 차라리 하늘에서 별을 따 오는 게 훨씬 더 쉬웠기 때문이다.사실 난 천재였을 가능성이 컸다. 요즘 엄마들 같으면 우리 애가 천재라며 호들갑을 떨었을 게 분명했다. 100까지 쓰는 건 기본이고 구구단도 거꾸로 똑바로 다 외웠기
한양은 내사산으로 둘러싸인 중앙에 개천을 두고 분지에 도시가 정착했다. 북으로는 북악산을 기준으로 남쪽 목멱산(남산)과 동쪽 낙산, 서쪽의 인왕산을 연결하여 도성을 쌓았다. 중앙에 경복궁, 좌우에 종묘와 사직단이 들어서고 광화문 앞을 관청의 거리로 육조가 자리 잡았다. 각종 국가 기관과 군영도 도성 내 자리를 같이했다. 운종가(종로)는 시전이 펼쳤다.북악산
을사년의 막가는 겨울, 조선 시대 유배지였던 동해안의 배움터 장기초등학교를 들리게 되었다. 포항 장기면으로 들어서는 길은 옛 기운이 서려 있는 듯 조용했다. 바다는 가까운데 파도 소리는 멀고, 산은 낮은데 그늘은 깊다.마음의 선입견 탓인지 조선 시대 사람들이 이곳을 유배지로 생각했던 이유를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느낌으로 알 듯했다. 마을 중심에 자리한 작고
아파트 주차장에 차를 세울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곤 한다. 어렵사리 빈자리를 찾아 주차를 하더라도 나갈 때 방해받지 않고 나갈 수 있어야 좋다. 선이 그어진 자리에 주차해 놓아도 다음 사람이 일렬 주차로 앞을 가리기가 일쑤다. 다음날에 새벽 골프라도 나가는 날이면 버티고 있는 앞차들을 끙끙대면서 저만큼 밀어내야 한다.좋은 주차 자리 찾는 일이 일상적인 버릇이
“사물함에 있는 화구(畵具)를 빼주셨으면 합니다.”H대학교 평생교육원 행정실에서 아내에게 걸려온 전화다. 지난 학기에 이어 이번 학기까지 등록하지 않으니 당연한 요구인데도 왠지 야박스럽게 여겨지고 서운했다. 혹시 어깨가 회복되면 다시 등록하게 될지 몰라 그대로 둔 것인데….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사물함 정리를 위해 아내의 뒤를 따라 들어선 평생교육원 강의실
설설 눈발 날리는 초봄의 하룻저녁 닭이 몰살을 당했다. 족제비가 다녀간 것이다. 구사일생 살아남은 한 마리 암탉을 위해 수평아리 한 마리를 사들였다. 유정란 먹을 욕심이다. 두 그루 감나무 아래 망을 치고 닭의 에덴동산을 감상하리라 잔뜩 기대를 걸었다.수평아리는 쉽게 놀이터로 나오질 않는다. 늘 갈고리에 잡혀 나가던 농장의 트라우마가 있는지 닭장 안 어둡고
탄허 스님만큼 올곧은 사람은, 나는 보지 못하였다. 머리부터가 절세의 수재였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박식하셨다. 스님은 아홉 살 적에 한문에 문리가 나서 원전을 해득하였고, 10대에 들어 사서삼경이며 노장(老莊) 사상까지 회통한 기호학파의 마지막 선비였다. 출가 이전에 이미 동양철학의 석학이었다.탄허(呑虛)는 허공을 삼킨다는 뜻이다. 그래도 이 해석으로
안도현 시집 『쓸데없이 눈부신 게 세상에는 있어요』에 수록된 「풀 뽑는 사람」 한 편이 잠 못 드는 밤 내 시선을 끌었다. 노트 세 페이지에 꾹꾹 눌러 필사를 했다. 시인의 섬세한 관찰로 묘사된 문장 행간에서 고향의 풀냄새가 푸르게 났다. 시 한 편에 이름이 불리어진 풀들이 반가웠다.쇠뜨기, 애기똥풀, 개비름, 개망초, 도꼬마리, 바랭이, 애기땅빈대. 고향
아침 러시아워라서 찻길이 매우 복잡했다. 4차선 곧은 도로인데 길 한쪽으로는 고깃배가 드나드는 작은 항구, 맞은편 도로 우측으로는 큰 어시장으로 붐비고 있었다. 도로는 시장 쪽으로 몰려든 사람들로 인해 정차해 놓은 차들로 사실상 3차선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1, 2, 3차선 중 어느 차선이 빠를지를 연방 계산해 가면서 고향 집으로 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