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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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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 중등부 산문 차상>

 

어머니의 마른 등이 시야를 벗어난다. 저 멀리로, 아주 멀리로, 길은 초록의 물결 속으로 아득해져 갔다.
비쩍 마른 몸, 깊게 패인 두 볼, 볼품없는 외모, 우리 어머니는 존재 자체만으로 많은 의구심을 품게 하는 사람이었다. 가족도, 친구도, 이웃도 없이 커다란 비밀을 껴안은 채로…. 가족이라 하면 나뿐이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너무 많은 것들을 껴안고 살아온 듯한 어머니는 마치 커다란 숲 같았다.
2년 전 집에 덩치 큰 아저씨들이 들이닥쳤을 때도, 그치지 않는 폭우에 집안이 가라앉았을 때도, 어머니는 쉽게 감정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저 뿌리 깊은 나무처럼 묵묵히 내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한 그 여린 몸을 하고 말이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요즘 자꾸 뒷산으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 어머니가 사라진 집엔 폭우가 들이치고 있었다. 나는 뒷문을 통해 멀어지던 어머니의 모습을 곱씹으며 마루에 걸터앉아 있었다. 마당 바닥 고인 물에 물방울이 마구 떨어진다. 매서운 천둥 소리는 귀를 때리고…. 어머니는 어디쯤에 계실까.
한참을 앉아 있던 나는 평화롭던 숲을 떠올린다. 우직하게 우리 집을 지켜주던 뒷산을 떠올린다. 한때 내가 사랑했던 어머니를, 떠올린다.
“숲은 말이야, 언제든 우릴 지켜줄 거야. 이렇게 커다란 이곳이 바로 우리의 진짜 집이거든.”
어머니는 온화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햇빛은 나무에 가려져 적당한 빛을 뿜고 있었고, 바람은 고요했다. 숲이 곧 우리의 집이라던 어머니는 이내 나의 손을 끌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가파른 비탈을 따라, 시냇물이 흐르는 길을 따라….
“모든 사람은 분명 죽어.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란다. 바람에 부서지고, 강물을 따라 모두 여기에 모이는 거야. 여기. 숲에.”
어머니와 나는 산 중턱에 앉아 있었다. 무덥고 한없이 맑은 날이었다. 모든 건 되돌아온다고, 끝은 없는 거라고. 웃으며 그렇게 말하던 어머니였다. 바닥에 맞닿은 허벅지가 괜스레 따끔해져 왔다.
“오늘은 못 가. 엄마 바쁜 거 안 보여? 얼른 방 안에 들어가 있어. 얼른.”
어머니는 커다란 상자를 옮기고 있었다. 선반에는 각종 서류와 봉투, 돈뭉치, 통장, 그런 것들이 가득했다. 마당에는 비가 들이쳤다. 축 처진 어머니의 등 뒤론 더 이상 맑은 숲이 보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이번 달 내로 꼭 돈 보내 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방문을 조금 열어 놓고 본 집안은 엉망이었다. 여기저기 깨져 있는 그릇과 마구잡이로 열려 있는 선반들, 그리고 마당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 어머니. 무력한 상황에 구토감이 올라왔다. 당장이라도 방 밖을 뛰쳐나가고 싶었다.
여전히 고인 물에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매서운 천둥 소리는 귀를 때리고…. 어머니는 어디쯤에 있을까. 어머니를 찾아야 한다. 순간 나는 마루를 벗어나 뛰기 시작했다. 생각나는 곳이라곤 단 한 곳밖엔 없었다. 나의 집, 푸르른 우리의 집. 나는 뒷산을 향해 사뭇 뛰었다.
질퍽한 바닥이 신발에 엉겨 붙는다. 더욱 거세진 빗물은 눈앞을 가린다. 머리는 비에 젖어 빨다 만 걸레처럼 얼굴을 감싸 온다. 비 오는 숲은 어둡고, 춥고, 무섭다. 어머니가 보고 싶다. 든든하고 우직하던 나의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어머니!”
또 한 번 어머니를 떠올리던 그 찰나의 순간. 저 멀리서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왜소한 뒷모습, 비쩍 마른 등. 어머니는 누군가의 무덤 앞에 있었다.
어머니는 그 앞에 주저앉아 소리 내 울고 있었다. 감히 다가갈 수 없을 만큼, 그 무뚝뚝하던 어머니는 거대한 감정을 토해내고 있었다.
나의 숲이 무너져 내린다. 울창한 숲이, 맑은 숲이 땅속으로 깨져 간다. 내 마음 한편에서도 무언가 무너져 내렸다.
나의 숲이라고 믿어 왔던 사람이 제 숲을 찾아왔다. 제 집을 찾은 저 사람은 그제야 목 놓아 울었다. 그제야.
나는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나의 숲을 찾아온 것처럼, 어머니도 그런 거라 믿었다. 나는 그저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목구멍을 타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을 억누를 뿐이었다. 비에 젖어버린 나의 커다란 숲을 바라보며, 비가 몰아치는 숲 한가운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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