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아주 어려철 아직 나지 못했을 때 내 나이 조금씩 더해턱수염 까칠까칠해 올 때 내 나이 한참 들어고향 박차고 뛰쳐나올 때 한 장의 흑백사진에 그려진숨은 그림은 그대로의 명암(明暗)밖에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숨어버렸지 내 나이 혼자는 어려워아내 얻어 같이 섞을 때 내 나이 이제는 부끄러워어린것
- 전민시인
내 나이 아주 어려철 아직 나지 못했을 때 내 나이 조금씩 더해턱수염 까칠까칠해 올 때 내 나이 한참 들어고향 박차고 뛰쳐나올 때 한 장의 흑백사진에 그려진숨은 그림은 그대로의 명암(明暗)밖에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하고 숨어버렸지 내 나이 혼자는 어려워아내 얻어 같이 섞을 때 내 나이 이제는 부끄러워어린것
플라타너스 아래 벤치는 왼쪽 소매가 자꾸 내려가요 거기 헝겊 인형 앉히면 잿빛 블루 안에 코발트색 하늘죽은 별 그리며 태어날 별을 기다려요 파랑의 발자국은 빨강인가요동해에서 노을 지는 서해를 떠올립니다 허공은 비닐 조각마르지 않는 나무 요동치는 이파리 물끄러미 보다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건죄책감 아닌 휴식이야옹
손바닥 위에 얹힌작은 온기 하나누군가의 오래된 이름이 되어조용히 나를 건너간다빛은 물처럼 스며돌아갈 길을 스스로 기억하고 그 흐름 속에서나를 조금씩 덜어내며누군가의 강이 된다 얼어붙은 시간의 가장자리에서 한 방울 햇살이 풀리면보이지 않던 길들이 연둣빛으로 스며나와 조용히 나를 지나간다 봄은 머물지 않고&
봄과 초여름달콤하고 은은한 시간잔잔하고 푸근한 공간을모두 남에게 양보하고 그대는어찌 어지럽고 뜨거운 시간떠들썩하고 흔들거리는 공간을택하였는가 모든 시름을 껴안을 듯넓고 넉넉한 가슴을 드러내며백설 같은 하얀 얼굴을기린 같은 높은 목 위에올려 놓았네 인고(忍苦)의 혹서를 그냥 묵묵히 지나면서 무엇을 사색했는지세상이여 내 얼굴
5월 장마가 오기도 전에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달구질 소리를 닮은장단이 지붕을 뚫고 내려온 사이어머니의 재봉틀 돌리는 소리가 끼어들었다새벽부터 늦은 밤까지빗소리에도 잦아들지 않고 돌돌돌 비명을 쏟아낸다 어머니의 고달픔이 실밥에 새겨진다내가 동화책을 읽는 소리형이 영어책을 읽는 혀 꼬부라진 발음아버지가 담배를 피는 소리까지 슬쩍 끼어들었다
여름이 길게 하품하던 날산그늘이 마을에 내려앉을 무렵아버지는 지게를 지고 밭으로 갔다김장 배추와 무를 심는다며흙을 가르던 손길햇빛보다 뜨거웠다태양이 녹아버릴 것 같은 오후소 끌려가듯 아버지를 따라 나섰다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다 첫서리 내리던 날땅속에서 하얗게 건져 올린 무그 속엔 아버지의 땀이 스며 있었다 토굴 속에서 겨울을 나며가족의
깊은 속은 전시되지 않는다 불을 켜도 빛은 겉면의 거친 살결에서 꺾이고 안쪽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어둠으로 남는다 수면 위로 몇 개의 문장을 던져보지만물결은 옆으로만 번질 뿐바닥에서 건져 올린 기척은 없다 입술은 얼어붙은 선(線) 아래 묶여 있고침묵은 잘 달궈진 쇠처럼 단단하게 입을 닫는다 나를 향한 고백은 늘
삶의 전통주 추억의 주전자 향기는지역을 퉁치고 전국으로 날아향기롭게 만인을 유혹하며 반긴다 희로애락 미지의 삶에일과를 마치고 온 누리에 퍼지는 한잔의 향기는 행복의 꿈길로 항해 길에 고추바람 잠재우며사계절의 꽃들은 향기롭게희망의 가곡을 노래하고 결혼과 출산, 생사의 인생길에약주는 사전에 가득한 역사의 향기 꽃길만
벚꽃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해 글쎄빵 터진 웃음아니면분칠한 얼굴아니면그 여자의 살빛아니면그렁그렁한 눈물아니면허공을 나는 나비 떼 아니면곱디고운 분노아니면밤하늘에 쏘아 올린 폭죽 아니면못자리에 낳은 개구리알 아니면땅에 떨어진 찬란한 죽음 아니면술아니면유혹아니면아니면화려한 딴따라
휠체어를 밀고 들어온다 만면에 구김살 하나 없는 가만한 웃음은 달빛처럼 주위를 밝힌다 대학 졸업 60주년 행사에 팔십 중반의 노부부가 미국에서 머-언 길을 이렇게 찾아왔다 비는 끈질기게 퍼붓는데 저 부부의 얼굴에는 비 그칠 무렵 꽃이 내뿜는 젖은 향기가 떠나지 않는다 젊은이 둘이 계단을 내려주니 노년의 남편 L동기가 익숙하게 밀고 숲길을 나선다 빗속을 걸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