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 내리는 하굣길학교에서 집까지는 십오 리큰길 버스에서 내리면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짐자전거 세워두고정류장 앞 가게에서 산흰우유 하나 내 손에 쥐여주고꼴깍거리는 목넘김 소리마저 흐뭇한 아버지의 눈눈비 태풍이 몰아치는 날도 고교 3년 동안아버지는 끄떡없이그 자리를 지키셨다도심의 밤 10시나도 흰우유 하나 사들고 자율학습 마치고
- 임정원
어스름 내리는 하굣길학교에서 집까지는 십오 리큰길 버스에서 내리면아버지가 기다리고 있었다짐자전거 세워두고정류장 앞 가게에서 산흰우유 하나 내 손에 쥐여주고꼴깍거리는 목넘김 소리마저 흐뭇한 아버지의 눈눈비 태풍이 몰아치는 날도 고교 3년 동안아버지는 끄떡없이그 자리를 지키셨다도심의 밤 10시나도 흰우유 하나 사들고 자율학습 마치고
술자리를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K는 문득 다들 늙고 추레 해진 친구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 중 누구는 눈을 잃어버렸다고 하고 누구는 귀를 잃어버렸으며 또 누구는 간이며 쓸개까지도 다 잃어버렸다고 씁쓸하게 웃는 대목에 이르러 K는 갑자기 저 자신도 뭔가를 잃어버린 사람처럼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다행히 꼬깃꼬깃한 지폐 몇 장이 아직 그대로
산비둘기 우는 소리먼 계곡에서 들려오면꽃향기 따라 저물어 가는 하루둥둥 뜬 꽃잎 껴안고들판을 가로지르는 실개천 따라시간이 흐르는데달빛 내려앉은 정원 어디쯤 어느 돌 틈에서귀뚜라미가 우는가별빛 총총히 내리는 푸른 밤 자귀나무 아래 누워시들어 가는 꽃잎을 보네
쉼도 없이 달려온 시간알몸뚱이세상 헛된 욕망태우며 또 태우며가슴 깊숙이 흐르는 회한의 빛 물초월한 듯 고요에 드는 평화로움저,아름다운 순응이여!
낫질 고단한 일상우쭐대며 지나가는 떼 바람이 거만하다나를 분리해 내려는 몇 겹의 바람이내 안의 나를 뒤쫓는다바람 빠진 풍선마냥향방을 가늠 못하는 좌충우돌의 언어와 단어의 유희 속쉽게 읽히는 문장에 숨어 지낸다숱한 밑동 잘림의 계절을 땅에 묻고바람 위에 선 부추 뿌리만도 못한 농부놀이만 하고 있는 건 아닌지단풍 쏟아질 때쯤내가 네 곁을 떠나고네가 내 곁에서
돌멩이 하나 강물에 던졌다강변에 펼쳐지더니 밤다운 밤눈썹달이 갈참나무 정수리 위로 막 지나가고어둠을 물고 반짝이는 저 반딧불 좀 봐밤을 감았다 떴다까마득한 그 여름밤 호박꽃 속으로 들어간 개똥벌레 이곳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니유년이곳으로 재잘재잘 걸어서 소풍 왔던 기억그 길은 아득하기만 한데쉼없이 물살은 흐르고더 큰소리로 소용돌이치는 여울물 소리목
조금씩 새어 나오는 숨소리사랑의 마음 행여 들키려나마음의 뒤꿈치를 들어야 했다내 마음 동그랗게 부풀더니 가리고 숨겨도 새어 나와커다란 울림의 종소리 된다천 리 밖까지 울려 퍼지던 애끓는 내 사랑의 종소리 그대의 가슴까지 전달되려나.
산여울 물도 때로는 개여울처럼물살이 빨라져 어미 잃은 듯 슬피운다 흐르고 또 흘러서 귀착 역을 돌고 돌아 어느 때야 다다르랴 내가 갈 종착역머나먼 인생길이 하도 멀어서수십 년을 허덕이며 사려 깊게 생각하는 성찰로산등성이에 올라서서 어느 길로 가야 할지갈팡질팡하면서새롭게 발견하는 통찰력으로 내가 갈 종착역을 찾는구나
달 뜨는 소리 좋아하던 그 사람달무리 속으로 들어가월광이 되어 돌아오지 않았다그의 부재가 또렷해지는 밤온몸이 딸려 들어가는 듯저 만월의울음소리 토해낸다빈 가지에 두고 간따스했던 그의 온기월광 소나타 사이에서 화석이 된다
쏟아붓는 눈발을 지켜본다섬세하게 쌓여 숲은 이내 하얗게 덮이고영원할 것처럼 고요롭다침묵에 갇혀 오가도 못함을 인지할 즈음긴한 어둠 드리우고 바람 한자락 스산하게 스친다슈베르트 겨울 나그네,전곡은 턴테이블에 올려 내내 흐르다, 12번 ‘고독’(Einsamkeit)에 멈칫.어두운 구름 청명한 하늘을 가로지르듯 고독한 사내가 홀로 서 있다가늘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