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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과 금강경 4구게와 오온개공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법

한국문인협회 로고 장경진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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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경 제1권 제1 사구게(四句偈), 제5 여리실견분>에 무릇 상(相)이 있는 바는 다 허망함이니, 만약 모든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곧 여래를 볼 것이다(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 非相卽見如來).
<금강경 제2권 제2 사구게, 제26 법신비상분> 만일 모양으로써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써 나를 구하려 하면 이 사람은 사도(邪道)를 행함이라,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若以色見我 以音聲求我 是人行邪道不能見如來).
<금강경 종결(제3 사구게, 제32 응화비진분)> 일체 하염 있는 법(유위법)은 꿈, 환영, 물거품, 그림자와 같고, 이슬과 또한 번개와 같으니, 마땅히 이와 같이 관할지이다(一切有위法 如 蒙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상의 모든 게송이 결국 상을 깨라는 그 한 가지 법문(法文)인 것입니다. 상이라는 것은 꿈과 같고, 환영과 같아 그 고정된 실체가 없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처라는 것에도 상을 지어서는 안 되며, 여실히 상을 깨고 바라보아야지, 음성이나 색상으로 부처를 보아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상이 상이 아님을 바로 보기(正見; 있는 그대로 보는 것)만 하면 여래, 부처라고 했는데 그럼 과연 상이란 무엇인가. 상이라고 하면, 우리들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혹은 무시 이래로 지어 온 온갖 고정관념, 선입견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것들 때문에 우리는 대상을 인식할 때 그 대상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잣대를 가지고 색안경을 쓰고 대상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백이면 백 명 모두가 그 대상에 대해서 제각각 다르게 판단, 생각하게 마련인 것입니다.
불교는 나를 중심으로 모든 일체를 바라봅니다. 나를 바로 보는 것이 불교이며, 인간 중심적인 종교가 바로 불교입니다.
상이라고 했을 때 상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물론 금강경에서는 아상(我相; ‘나다’ 하는 고집), 인상(人相; 나와 너를 구분 짓는 마음), 중생상(衆生相; 안이비설신의 6근에 따라 좋고 나쁜 것을 분별하는 마음), 수자상(壽者相; 내가 영원할 것이라는 상)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 모든 상은 바로 ‘나’라는 상을 근본으로 하여 나오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라는 개인에 적용시키면, 상은 곧 ‘나’라는 상(아상), 즉 ‘나’라는 모양을 제멋대로 설정해 두고, 그 모양에 집착해 버리는 아집(我執)이 됩니다. 그리고 이 상을 일체 대상에 적용시키면 법집(法執)이 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진실하게 보면, 그것이 곧 실상(實相)인데, 그 실상이라는 것에 어떤 그림을 그려 놓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을 법집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금강경의 가르침에 의거해 생각해 볼 때, 아집을 깨고 법집을 깨면 부처가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약견제상비상즉견여래> 그런데 아집이 없는 사람에게 어찌 법집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법집은 아집으로 인해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좀 더 자세히 아상, 아집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아집은 ‘나다’라는 고집입니다. 쉽게 말하면, ‘이 몸뚱이에 대한 집착’, ‘나에 대한 집착’을 없애 버리는 것이 아상 타파의 첫걸음이며, 성불하는 첫 계단입니다.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 말도, 사실은 아집, 아상을 깨는 작업인 것입니다. 모든 수행의 핵심은 무집착(無執着)이며, ‘나에 대한 무집착’이야말로 모든 불교 수행의 근본이 되는 실천적 가르침입니다.
이처럼 반야심경의 핵심인 <조견오온개공 도일체고액(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과 금강경의 핵심인 제1 사구게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는 그 내용 면에서 볼 때 같은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상의 내용을 ‘아상’의 관점에서 좀 더 구체적인 실천 수행의 방향으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아상을 타파하는 것이야말로 ‘나’라는 존재가 공임을 여실히 보는 것이며, 아상이 타파되어 아공(我空)이 이루어졌을 때, 그 기초 위에서 법공(法空), 즉 일체의 제법이 모두 공함을 여실히 볼 수 있다고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상 타파’가 수행의 관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상을 타파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이 불교 수행의 핵심임을 바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선, 기본적으로 ‘나’를 버리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금년 초 신년 법회에서 조계종 법상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큰 감동과 불자로 지낸 30년간의 고심과 의문점을 많이 해결하게 되어 글로 남겨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정각(正覺)을 단적으로 나타낸 삼법인〔三法印; 무상(諸行無常)·고(一切皆苦)·무아(諸法無我)〕의 실체와 현상, 지금의 마음가짐과 향후의 자세 등에 관한 작은 깨달음을 느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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