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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화대의 빨간 운동화

한국문인협회 로고 임성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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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여름은 유난히도 더웠다. 추석이 눈앞인 9월 하순인데 날씨는 아직도 덥다. 새벽 5시 시끄러운 알림 소리에 선잠을 깼다. 밤새 사나운 꿈자리에 시달려서 그런지 온몸이 찌뿌둥하다. 바깥에서 부스럭거리는 인기척이 났다. 아 참! 오늘 큰딸을 만나러 가는 길이지! 몸을 비틀면서 일어나 방을 나왔다. 주방에서 아내가 큰딸이 좋아하는 한우 스테이크를 굽고 있다. 부랴부랴 떡집으로 가서 어제 맞추어 놓은 송편을 찾아왔다.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고 아내와 같이 강남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세종 터미널에 내렸다. 큰사위가 외손녀 둘과 같이 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은하수 공원으로 갔다. 추석 전 휴일이라 그런지 주차장에는 차를 세울 곳이 없다. 큰길가에 어찌어찌 차를 대고 봉안당 1층 제례실로 갔다. 사람들이 많았다. 추석 직전이라 그런지 나름대로 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아이들도 몇이 있다. 아마도 그중에는 추석빔으로 마련한 것이 있을 것도 같았다. 한참을 기다려서 제례실로 들어갔다. 준비한 음식으로 상을 차렸다. 간단히 기도만 하기로 했다. 기도하는 두 손녀의 눈가가 촉촉하고 목소리에 물기가 축축하다.
“잘 있었느냐! 네가 항암으로 그렇게 아파했으면서도 입시학원에서 밤늦게 집에 오는 큰외손녀 앞에서 너는 늘 억지로 안 아픈 척했지. 그 아이가 이제 어엿한 명문 대학 학생이 되어 여기 와 있다. 너도 좋지. 기쁘지. 먼저 알고 좋아했겠지. 생전에 네가 그렇게 바랬던 일이니 여기서도 먼저 알아보고 좋아했겠지!”
3층 봉안실로 갔다. 하얀 도자기함에서 활짝 웃는 앳된(?) 모습의 큰딸이 거기 있다. 갑자기 아내가 흑! 하고 울음을 터트린다. 큰애 세 살 때 우리 가족 셋은 경기도 광명리 5층짜리 주공아파트 5층에 살았다. 그해 추석빔으로 세 살배기 딸에게 홈드레스를 사주었는데 너무 좋아했다 한다. 세 살배기 어린애가 거울을 보고 앞뒤를 비춰보고 자꾸 그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내려가 세발자전거를 타려 했다. 그 옷만 입으면 하루에도 몇 번씩 밖에 나가자고 엄마에게 보챘다. 엘리베이터도 없는 아파트 5층에서 아이를 데리고 세발자전거를 들고 오르내리기가 너무 힘들어 그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울며 떼를 쓰곤 했는데 오늘 그때 그 모습이 앳되어 보이는 큰딸의 영정사진에 겹쳐 떠올라 흑! 하고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다.
1층 헌화대로 내려왔다. 작은외손녀가 가져온 꽃다발을 놓는다. 제 엄마가 있는 곳에서 잘 보이는 곳을 찾아 꽃다발을 놓으려 하는데 거기에 생뚱맞게 빨간 어린이 운동화와 손때 묻은 인형이 놓여 있다. 흑! 숨이 막히는 듯했다.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것들이 왜 여기에 있지! 신고 있다가 막 벗어 놓은 듯한 빨간 어린이 운동화, 조금 전까지도 가지고 놀았던 것처럼 깨끗한 인형이었다. 아마도 그 물건의 주인은 어린 여자아이 같은데. 그 아이도 지금 여기에 와 있는가! 어린 딸 먼저 보낸 엄마가 그 아이를 차마 못 잊어 없애지 못하고 그 아이 보듯 집에서 보고 있다가 추석이라 그 아이 추석빔으로 여기 가져다 놓은 것인가! 가슴에 품고 못 떠나보낸 어린 딸을 이제 억지로 떠나보내려고 울면서 가져다 놓은 것인가! 젊은 엄마의 울고 있는 애처로운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가슴이 아파 한참이나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밖으로 나왔다.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오늘도 역시 높고 푸르다. 부모들 두고 먼저 간 아이들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갔을까? ‘부모가 죽으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 했는데…. 가슴에 묻혀 있는 우리 큰딸애도 이제 하늘나라로 보내야겠다. 그 애가 가고 이제 두 번째의 추석을 맞이하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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