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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잿빛 허무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종걸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2월 6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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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의 풍경은 한 폭의 그림 같다. 단풍은 바람에 흩날리고 햇살은 유리창 위로 길게 드리운다. 하지만 이런 화려함도 오래 가지 못한다. 잠시 후면 겨울빛으로 바뀔 것이 뻔하다. 자연은 봄과 여름, 가을과 겨울을 거쳐 제 길을 걷는다. 그 순환은 인간의 삶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맘때면 수첩에 빼곡히 적어 두었던 일정표가 하나둘 지워진다. 시간은 흘러가고, 기억은 과거의 서랍 속으로 밀려 들어간다. 인생의 절기와 맞물리듯 11월은 허무의 빛을 띤다. 하지만 단순한 비움이 아니라, 고인을 기억하고 영혼을 위로하는 위령성월(慰靈聖月)*이기도 하다.

 

4년 전 11월, 장례식장 유리창 너머에 서 있었다. 저 목관 하나가 세상과 저세상을 가르고 있었다. 영혼이 떠난 몸을 담은 관이 움직이는 순간, 남겨진 우리는 더는 고인과 이어질 수 없음을 알고 있다. 그 문턱은 다시 건널 수 없는 경계였다.
유리창 안쪽의 작은 철문이 열리면서 관은 불가마 속으로 빨려들듯 들어갔다. 숨죽인 오열과 짙은 한숨을 꾹꾹 눌러 삼킨 채, 사람들은 서로의 얼굴조차 마주 보지 못했다. 정적만이 굳게 내려앉았다. 잠시 멈추었던 시간이 풀리듯 한 줌의 재로 변한 장모님 앞에서 가족들은 휘청거렸다. 그러나 화부는 스피커로 또 확인하라고 했다. 팔십 평생 지녔던 모든 것이 이미 흩어졌는데, 이제 무엇을 더 확인하라는 말인가. 그 한 줌의 재는 아직도 식지 못한 과거의 온기를 간직한 채 따뜻했는데.
삶이 소각로의 잿빛 가루로 남기까지의 과정은 차마 붙잡고 싶지 않다. 하지만 다시 불러내고 싶은 기억의 조각들은 소중하다. 남겨진 자로서 앞으로의 삶 속에서 고인과 함께했던 역사를 가족들과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4년 전 6월, 끼니조차 무의미하게 여겨지던 어느 날, 장모님께서 말기 암이라는 진단을 받으셨다. 한순간에 삶의 빛깔이 바래고, 집안 공기마저 무거워졌다. 병실은 늘 희미한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지만, 장모님은 아픈 몸으로도 가족의 안부를 먼저 물으셨다.
그 몇 달 동안 우리는 정성을 다했지만, 병은 점점 깊어졌다. 11월 하순, 장모님은 결국 잿빛 허무만 남기고 떠나셨다. 그 몇 달의 시간은 내 마음속에서 이어지지 못한 점선처럼 남아 있다. 정신적·육체적으로 완전히 함께하지 못한 죄스러움이 점선을 더 길게 만든다. 그 시작이 된 11월이 다시 다가올 때마다 가슴은 여전히 무겁다.
세월은 흐른다. 그러나 이별의 그림자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시간이 약이라지만, 상처는 단단한 흉터로만 남을 뿐이다. 담담히 말하고자 해도, 내 안의 허무는 여전히 살아 움직인다.
그 무렵 아내 또한 심한 허리 통증으로 고통스러워했다. 장모님의 병구완과 자신의 치료를 동시에 감당해야 했던 아내의 모습은 눈물겨웠다. 병원을 전전하며 겨우 버텨냈지만, 아직도 완쾌되지는 못했다. 남은 자의 고통은 이렇게 또 다른 모양으로 이어지고 있다.
깊어져 가는 가을날, 산천을 붉게 물들이던 단풍도 곧 저문다. 한때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잔치는 막을 내리고, 나뭇가지에는 바람에 쓸려가는 낙엽만 남는다. 그렇지만 그 낙엽은 무의미한 흔적이 아니다. 나무는 한 계절 내내 치열한 향일성(向日性)으로 태양을 향해 살았고, 그 치열함이 빚어낸 흔적이 바로 낙엽이다. 화려했던 순간이 사라진 자리에 남겨진 잎새조차 나무의 삶을 증언한다.
우리의 삶 또한 다르지 않다. 언젠가는 모두 허무로 흩날리겠지만, 그 허무 속에도 뜨겁게 살았던 흔적은 남는다. 사랑했던 기억, 함께 웃고 울었던 시간, 작은 배려와 손길들. 이 모든 것들이 장모님의 삶을 증명하는 잎새이자 남겨진 우리가 살아가는 힘이다.
11월은 다시 찾아왔다. 단풍은 쓰러지고, 찬 바람은 서서히 겨울을 예고한다. 허무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하지만 허무만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그 속에는 여전히 따뜻했던 순간들의 불씨가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그 불씨를 기억하며 살아가는 일, 그것이 남겨진 자의 몫이다.
잿빛 허무가 내 인생의 틈과 여백 사이로 스며들 때마다 더 단단해진다. 11월의 허무는 결국 삶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또 하나의 계절이 되었다.
*위령성월(慰靈聖月): 죽은 이의 영혼을 기억하고 위로하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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