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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민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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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중등부 산문 장원>

 

요즘 들어 편지를 쓰는 사람을 보는 것이 힘들어졌다. 학교에서 어버이날을 맞아 편지지를 받았을 때, 주변에서 편지보다는 카네이션 한 송이 사서 드리는 것이 더 좋다며 쓰지 않는 학생이 대다수였다. 쓰는 학생 중에서도 진심으로 쓰는 학생은 소수에 속했다.
나에게 편지란 특별한 날에만 쓰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생일, 어버이날, 스승의 날같이 편지를 써야 하는 날에만 형식적인 문장으로 시작해 끝냈다. 가끔은 그저 편지를 찍어내는 공장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편지에는 큰 뜻을 담지 않았다. 누구나 쓰는 그런 말들을 적고 나면 그대로 끝냈다. 나 역시 그런 편지들밖에 받지 못했다. 형식적인 문장으로만 이루어진 글, 편지는 나에게 그런 것이었다. 나의 열세 번째 생일날, 그런 편지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그날 꽤 많은 편지를 받았다. 집에 와서 하나씩 읽어보니 예상한 대로 형식적인 편지들이 있었다.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고 마지막 한 편지를 보았다. 그 편지는 친한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였다. 정말 자신 있게 가장 친한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친구에게서 받은 편지. 사실 그때까지도 기대는 하지 않았다. 편지지를 펼친 순간 보인 건 줄을 따라 정갈하고 빼곡하게 적힌 편지였다. 같은 말, 같은 형식으로 적힌 글이 아닌 진심을 적은 글이었다. 눈은 홀린 듯이 그 긴 글을 읽고 있었다. 편지에는 그동안의 추억들과 같이하고 싶은 일 등 여러 말들이 적혀 있었다. 몇 번 더 다시 읽고 나니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다. 내가 지금까지 써왔던 것은 편지가 아니었다. 그 사실은 편지에 대한 나의 생각을 바꾸기에는 충분했다.
나도 진정한 나의 진심을 담은 편지를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편지지를 사 와 책상에 앉았다. 마침 그 친구와 생일 차이도 얼마 없었기 때문에 쓸 사람은 명확했다. 호기롭게 연필을 들었지만 정작 쓰지는 못했다. 막상 마음을 다잡고 써보려고 하니 어떻게 써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편지를 써본 적이 없었기에 시작도 못 하고 시간만 보냈다. 그러다 ‘형식적인 것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어느 정도의 기본은 필요하겠지만 진심을 담는 데 형식은 중요하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다. 형식을 지키지 않고 그 친구에게 정말로 해주고 싶었던 말로 꽉꽉 눌러 담았다. 말로 하기는 조금 부끄러웠던 말도 편지로 쓸 때는 술술 적혔다. 어느덧 다 쓰고 나니 내가 받았던 편지처럼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편지를 쓰는 것은 꽤 즐거웠다. 평소에 내가 친구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 이렇게 많았는지 처음 알았다. 쓸 때도 재미있었지만 편지를 받은 친구가 답장을 해주었을 때는 더 좋았다. 한 번 제대로 쓰고 나니 다음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기념일이 오면 편지를 먼저 쓰기도 했다. 나의 편지를 받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떠올리면 손이 저절로 움직였다.
생각보다 나의 편지에 대한 진심이 담긴 편지는 받기 어려웠다. 내가 주는 만큼 오지 않으니, 처음에는 쓰기만 해도 즐거웠던 일이 점점 귀찮아졌다. 분명 즐거웠던 일인데 예전만큼 재밌지도 않고 회의감마저 들었다. 편지를 잘만 쓰던 나는 없어지고 예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편지를 쓰고 싶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나조차도 나를 몰랐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편지를 꼭 타인에게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그 의문은 곧 나에게 편지를 써보자는 생각이 되었다.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 듣고 싶었던 말들을 다른 사람에게 하듯이 적어 내렸다. 쓰면서조차 내가 나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둔 생각들을, 나조차도 다 알지 못했던 것들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조금 더 잘 알 수 있기도 했다. 나를 위한 편지를 다 쓰고 읽어보지도 않고 편지 봉투에 넣었다. 딱히 이유는 없이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 후로도 몇 번 나에게 편지를 썼다. 어느 힘든 일이 있었던 날 그 편지가 생각났다. 내가 썼지만 어떻게 썼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 과거에 내가 썼던 편지들. 가장 밑에 있던 것을 천천히 읽어보니 나에게 필요한 말들이 많이 있었다. 내가 원했던 말은 내가 제일 잘 알았다. 어떤 누구의 말보다 위로가 되어 주기도 했다. 그제야 내가 쓴 편지를 읽어보지도 않고 편지 봉투에 넣었어야만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이 편지를 읽고 나서 다른 편지는 아직 남겨두었다.
편지를 쓰며 글을 좋아할 수 있었고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다른 이들에게 나의 진심을 전할 수도 있었다. 편지는 언제나 힘이 되어 주었다. 진심이 담긴 편지에는 짧든, 길든 무시하지 못할 힘이 담겨 있다. 누구에게든지 진심을 전하고 싶다면 편지를 써보길 권하고 싶다. 편지는 진심을 아는 데 효과적인 열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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