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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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산문 차하>
진득한 가래를 목뿌리에서부터 긁었다. 방독면을 넘어 집안에는 가래 긁는 소리가 넘실거렸다. 손에는 경호가 그린 그림 두어 점이 있었다. 경호의 말로는 이 그림들이 숲이라고 했다. 그림 속엔 나무들뿐이었다. 그것도 잎이 덕지덕지 발린 건강한 나무였다. 나는 이런 게 어디 있냐며 그림을 책상 한편에 치웠다. 그때 방독면 필터에는 붉은빛이 떠 있었다. 나는 곧장 여분의 필터를 찾아 들고선 바닥에 앉았다. 경건한 자세를 유지한 채 심호흡을 했다. 그리곤 코와 귀에 먼지가 들어올세라 재빨리 방독면 필터를 갈아 끼우고 얼굴에 덮었다. 이렇게 필사적으로 행동했음에도 코와 귀에 스며든 먼지들은 내 목을 조르고, 코를 찢으려 했다. 한참을 기침했다. 다른 사람들은 실내에서의 방독면이 필수가 아니었지만 나는 달랐다. 실내에서조차 방독면이 필요했다. 나는 훌쩍이며 뿌연 방을 둘러보았다. 시선의 끝은 구겨진 종이로 향했다. 눈물이 고여 앞이 흐릿한 와중에도 분명히 보였다. 따스한 볕에 익어가는 우직한 숲의 형태였다. 그때 머릿속에서 이따금 경호의 목소리가 스쳤다. ‘숲속에서는 너 같은 사람도 숨을 쉴 수 있다던데?’ 나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여겼었다.
나는 곧장 경호에게 전화를 했다. 숲이란 것이 뭐냐고, 어디에 있느냐고. 경호는 일관적이게도 침묵을 유지하다가 이내 폭소를 하며 그 틈을 깼다. 내겐 그다지 유쾌한 폭소는 아니었다. 경호가 말했다.
“그거 실은 학교서 과학 발명품 창작 대회에 낼 거였는데”
그리고 그 그림으로 동상을 탔다고 으스댔다. 나는 방독면에 갇힌 경호의 울림에 다시금 숲 그림을 꽉 쥐었다. 종이는 구겨졌던 자리를 피해 새로운 주름을 나타냈다. 결코 그림과 경호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반드시 존재해야 할 숲에 대한 설움 섞인 믿음 같은 것이었다.
나는 숲을 찾으러 밖으로 나섰다. 방독면 너머로 느껴지는 케케한 입자들이 이따금 내 목을 긁어댔다. 어디로 가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질 않았다. 그래서 일단 지하철을 타고 건물들이 빽빽한 번화가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엔 온통 콘크리트 더미들과 기념비적으로 세워진 나무 한 그루가 있을 뿐이었다. 그마저도 그림과는 달리 날카로운 가지만 뻗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누르스름했던 하늘은 어느새 붉은 기를 머금고 있었다. 넋을 놓고 그 붉은 하늘만 바라보자니 방독면에선 또다시 필터 교체 경고등이 일렁거렸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필터를 꺼내 들었다. 그때 목과 코에서 무엇인가 쏟아져 나올 듯한 구역감이 느껴졌다. 그리곤 폭발하듯 침과 콧물과 맺혀 있던 먼지가 뿜어졌다. 그 여파에 나는 필터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얼굴의 모든 구멍으로 먼지가 들러붙으니 나는 가쁜 숨이 기어코 막혔음을 느끼고 바닥에 나풀거리며 쓰러졌다.
눈을 뜨니 일정한 패턴이 빼곡한 천장이 보였다. 그리고 비프음이 겹친 소리도 들렸다. 의사의 말로는 3분만 더 바깥에서 쓰러져 있었으면 큰일이 났을 것이라고 했다. 의사는 알 만한 사람이 왜 그러느냐고 했다. 나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나는 입을 다문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늘 그렇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하늘이었다. 그리고 창문 바로 아래에는 조그마한 컵이 보였다. 컵에는 물 대신 흙이 담겨 있었고, 흙에는 무언가가 세워져 있었다. 낯설지만 결코 이질적이진 않은 초록빛의 나무였다. 나는 그 조그마한 나무를 가리키며 의사를 바라보았다. 의사는 병원 이사장님이 기부하신 건데 도움이 될까 싶어 병실에 뒀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이 딱히 귀에 박히진 않았다. 이미 나무에 시선을 빼앗겨 관망할 뿐이었다. 나는 비로소 찾은 듯했다. 그것이 숲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