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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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산문 장원>
후덥지근한 공기 사이로 천일염의 짠내가 코를 찔렀다. 아빠는 좁은 가마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검게 구워진 도자기들을 밖으로 날랐다. 바닥을 가득 채운 도기들의 절반은 뭉개진 모양이었다. 아빠는 늘 겪는 절반의 실패에 좀처럼 무뎌지지 못했다.
원래 어떤 모양의 그릇이었는지 알아볼 수도 없는 것들을 거칠어진 손으로 매만지며 기다린다고 다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아빠의 얼굴은 잔뜩 상처받은 티가 났다. 그런 아빠를 대신해서 뭉개진 도자기들을 깨트리고 버리는 것이 나의 일이다.
아빠는 한국의 마지막 남은 푸레도기 장인이다. 푸른빛을 띠어 지어진 이름인데 내 눈엔 새카맣게 보이기만 했다. 아주 오랫동안 가마 속에서 1,300도의 열기를 견뎌 내기에 도자기 중 가장 검다. 가마 앞을 지키는 아빠의 얼굴 역시 검게 그을려 있었다. 엄마는 묵묵히 가마 앞을 지키는 아빠를 싫어했다. 아빠에게서 나는 흙냄새와 탄내가 질린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는 나를 두고 흙냄새가 나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아빠는 그날 이후로 계속 엄마를 기다렸다. 묵묵히 가마 앞을 지키듯 엄마를 기다렸다. 푸레도기와 엄마를 기다리며 아빠는 가마에 넣기 전 도기처럼 아주 바싹 말라 버렸다.
아빠를 도와 흙을 골랐다. 높은 온도를 견디려면 흙의 밀도가 높아야 한다. 나는 놀이를 하듯 흙을 주무르며 아빠의 숨소리를 들었다. 기관지가 좋지 않아 숨을 잘 쉬지 못해 거칠고 불규칙한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물레에 흙을 얹고 작은 그릇을 만들며 아빠의 숨구멍을 생각했다. 숨구멍이 없어 보이는 푸레도기도 알고 보면 숨구멍이 매우 많은데, 아빠의 숨구멍은 하나도 없어 보였다. 아빠는 이 흙보다 밀도가 더 높아서 그런 걸까. 아빠의 묵묵한 기다림으로 만들어진 밀도는 아빠의 숨구멍을 막은 것 같았다. 아빠는 그 숨구멍을 뚫어 줄 엄마가 필요했다.
아빠는 도기를 가마에서 꺼내는 날마다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아빠는 새 도기를 넣고 가마에서 꺼낼 때까지 답장을 기다렸다. 나는 그런 아빠가 미련해 보였지만 그저 아빠의 숨구멍이려니 했다.
아빠가 가마 앞을 지키는 시간은 무려 4박 5일이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계속 장작을 넣어야 한다. 그렇게 얼굴이 다 그을려 가며 기다린 도기들 중 반은 실패라니. 오로지 운으로 결정되는 푸레도기의 생사에 아빠는 아빠의 잘못인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엄마는 늘 그런 아빠에게 마음이 너무 약하다며 타박하고 했다. 늘 푸레도기 만드는 것을 그만하라던 엄마의 투정엔 내가 아니면 누가 해, 하며 웃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투정은 아빠가 푸레도기와 엄마 중에서 엄마를 선택하길 바란 마음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엄마를 골라 줄 사람을 찾아서 아빠의 편지에 답장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마에서 꺼낸 푸레도기들은 간혹 회색빛을 띠기도 한다. 열기에 견디다 못해 흙이 쇠처럼 변해 버리는 것이다. 그런 도기들의 겉에는 날 선 문양들이 가득했다. 불꽃이 지나간 자리가 그대로 훈장처럼 남았다. 이제 이 도기들은 쉽게 깨지지 않을 것이다. 아빠는 만족스럽게 구워진 도기들에 기분이 좋았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엄마에게 편지를 썼다.
며칠이 지나, 처음으로 공장의 우편함에 우편이 왔다. 가마 앞에서 졸고 있는 아빠를 대신해 내가 받은 우편에는 보낸 사람에 엄마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나는 아빠의 어깨를 흔들어 깨운 뒤 엄마에게 편지가 왔음을 알렸다. 아빠는 미소를 숨기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아빠의 덜덜 떨리는 손으로 아빠의 기대가 보였다. 그러나 열어 본 편지에는 아빠가 기대한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새 사람을 만났다고, 그러니 앞으로는 편지하지 말아 달라고. 엄마의 손글씨에서는 매정함이 묻어났다. 아빠의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 아빠는 괜찮다고 했지만 가마에 들어간 듯 벌겋게 익어 갔다. 아빠는 엄마를 기다리는 동안 이미 아주 오래 익어 가고 있었다.
일평생의 기다림이 끝나도 아빠는 여전히 묵묵하게 푸레도기를 빚었다. 그 기다림 동안 검게 그을린 아빠는 쇠처럼 단단해졌다. 기다림의 시간 동안 그을리고 상처 입으며 아빠는 편지로 아빠를 깨트려도 깨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진 모양이다. 아빠는 엄마를 기다리며 한층 단단해졌다. 뭉개지지 않은 푸레도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