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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속을 둘이서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송연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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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가득한 별은 어디서 살다가 왔을까. 그녀가 사는 동안 잔별들이 무리 지어 황금물결이던 날은 처음이었다. 손에 손을 잡은 별은 금빛 날개를 펼쳐 어둠을 힘껏 밀어냈을 것이다. 긴 머리 나풀대던 여자와 귀에 이어폰을 꽂은 남자는 죽도봉 연자루에서 환호를 지르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흔든다.
“하늘이 우릴 축복하려나 봐, 우리 결혼할까?”
여자의 말에 남자의 눈망울이 커진다.
“금빛 저 하늘을 평생 기억하며 행복하게 살자.”
여자는 들뜬 음성으로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를 떠올린다.
“하느님, 저는 결혼하고 싶고, 아이도 많이 낳아 기르고 싶어요!” 
큰소리로 결혼과 아이를 소원하는데, 남자는 이어폰 때문인지 말이 없다. 여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가 되기를 바라며, ‘저는 마흔 살이 되기 전에 가정을 만들고 싶은 게 꿈이랍니다. 하느님, 제 소원을 꼭 들어주세요’라고 간절히 기도한다.

 

태양은 오월 내내 훈기를 내려보내 보리와 밀이삭이 여물고, 산들바람은 산천을 흔들어 풀 내음을 푼다. 덩굴장미는 사랑에 빠진 여인의 뺨처럼 붉었으며, 들은 생동하는 푸르름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그리며 그녀는 새벽 두 시쯤 잠이 들었다. 사랑한 사람 품에 안긴 것처럼 잠은 더할 나위 없이 포근한데 천사가 꾸며 놓은 듯한 성스러운 무대에서 남녀가 예식을 한다. 신랑 신부의 얼굴에 피어나는 미소, 꿀물이 뚝뚝 떨어지는 남자의 눈빛, 활짝 핀 봄꽃처럼 고운 신부, 신부는 분명 그녀인데 신랑은 그가 아니어서 잠에서 깬다.
휴대전화기를 열어 시간을 확인한다. 취침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세 시 삼십 분이었다. 어제부터 오늘 새벽 한 시경까지 그토록 완벽한 하늘이었는데, 천둥번개를 동반한 비바람이 유리창을 세차게 때린다. 그녀는 날씨도 그렇고 꿈도 마음에 걸려 뒤척인다.
토요일이어서 늘어지게 자려고 다시 이불을 덮고 눕는다. 9층 아파트 창문이 덜컹거려 단잠을 이어 가긴 그른 것 같아 지난밤을 떠올린다. 완벽한 하늘이어서 마가 끼었나? 그가 이름을 불러 주었는데, 왜 난데없이 이름을 불러 주었을까? 뒤숭숭한 기분을 돌변한 날씨 탓으로 돌리려 할수록 서로 부딪혔던 말들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매일 그녀가 잠에 취해 있을 시간에 그의 문자가 온다. 왜 읽지 않느냐고 열 번 이상 재촉하는 문자도 와 있다. 문자 알림이 자주 울려 잠을 설칠 땐 화가 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지금 꿈나라 간다고 문자를 보내고 문자 알림을 끈 후 잠자리에 든다. 그렇게 해도 그는 매일 늦은 밤 문자를 열 번 이상 하는데, 어찌된 일인지 오전 열 시 기상할 때까지 문자음이 울리지 않았다.
‘자기야! 뭐 해?’
삼 년 동안 만나 오면서 그녀가 처음으로 그에게 먼저 문자를 보낸다. 시간이 흐를수록 문자를 먼저 보낸 게 어색하다. 바로 연락이 올 줄 알았는데 답이 오지 않아 더 그런 느낌이 든다. 그녀는 오 분도 못 참고 휴대전화기를 열었다가 닫는다.
그는 그녀와 내기라도 하려는지 토요일이 다 가도록 무소식이다. 
‘결혼식 하는 꿈을 꾸어 문자했는데 아직도 자는 거야?’
그녀는 문자를 전송하고 연락 올 때까지 참아야지 다짐한다. 심란한 그녀처럼 하늘은 종일 먹구름이다. 우비를 입고 밖으로 나가 편의점에 들러 크림빵과 음료를 사 들고 집으로 온다. 기분 전환을 하려고 빵을 한입 베어 문다. 빵과 음료가 서먹서먹한 맛이다.
몇 번이나 휴대전화기를 안 봐야지 다짐하지만, 어느새 열어 본다. 그녀는 ‘나, 정말 삐진다!’ 하고 문자를 보내려다 휴대전화기를 내려놓는다. 꿈이 자꾸만 신경이 쓰여 그의 흔적을 찾아본다. 그가 이용하던 계정은 엿새 전으로 모두 멈춰 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연락이 오겠지, 망설이다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보지만, 전화 연결이 되지 않는다.
그는 그다음 날 일요일이 지나도록 연락두절이다. 오월 마지막 날 밤부터 그와 헤어지던 시간까지, 아름다운 밤하늘과 감탄을 자아낸 연인의 함성엔 그럴 만한 이유는 없었다. 그녀는 그때의 시간을 끌어다 놓고 세심히 살핀다. 그가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한동안 바라보던 게 생각난다.
닷새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아 그녀는 안절부절못한다. 사고가 났나? 몸이 아픈가? 전화를 연거푸 건다. 전화는 소리샘으로 연결한다는 음성이 나온다. 그녀는 그의 표정을 셀 수 없이 뒤적이며 거리를 서성이다가 그가 세 들어 사는 아파트로 발길을 돌린다. 비밀번호를 바꿨나 고개를 갸우뚱하며 현관문을 두드린다. 기척이 없어 유튜브에 올릴 맛집을 촬영 나갔나 중얼거린다. 어디서 그를 찾지 생각하다가 관리실로 향한다. 여직원에게 그에 관해 묻자 일주일 전에 집을 비웠다고 한다. 
그날 밤 그와 헤어질 때 정지은 씨라고 부르던 게 모난 돌처럼 튀어 나온다.
‘이름을 불러 준 게 이별의 의미였나. 한밤중에 갑자기 만나자고 한 게 이별을 말하려고 그랬나. 뜬금없이 사라질 거면 사랑한다는 말은 남발하지 말았어야지. 맞아, 마지막 날만 사랑한다는 말을 안 했지.’
그녀는 그 생각이 이제야 나 속이 상한다. 그가 말없이 사라져 버려 그녀는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면 이런 참담함일까? 두 눈에 눈물이 흐른다. 차라리, 네가 싫어져서라고 말해 주면 손 흔들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없이 가버릴 만큼 그녀가 그에게 큰 잘못을 했나?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까닭을 모른다.

 

지난해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진 늦가을 중순쯤이었다. 이 노래 참 좋다 들어 볼래, 그녀에게 묻곤 그는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흥얼거렸다. 만날 때마다 그 곡을 들려줘서 그녀는 자신들의 이야기가 될까 봐 그만 듣고 싶다고 말한다.
“그대 보내고 멀리∼ 가을 새와 작별하듯∼ 그대 떠나보내고∼ 돌아와 술잔 앞에 앉으면∼.”
그녀는 다른 노래를 들려달라고 부탁한다.
“그대 보내고 아주∼ 지는 별빛 바라볼 때∼ 눈에 흘러내리는∼ 못다 한 말들∼.”
“도대체 왜 그래?”
그녀가 목소리를 높여 이유를 묻는다. 그는 대답을 피하며 마저 부른다.
“계절이 겨울 문을 닫으면 이 몸은 봄바람을 타고 날아봐야지.”
그 말을 할 때 그의 목소리는 해질녘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 같았다.
“우리 어깨를 나란히 하고 새봄을 맞이하자.”
그녀는 그의 말에 힘을 실어준다.
“에이, 자기는 초여름만 좋아해야지.”
미소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그의 말을 그녀는 놀란 눈으로 본다.
“나는 요즘 자기가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느껴져, 왜 그럴까?”
“뜨는 해는 설레고, 봄바람은 살랑살랑.”
그녀가 묻는 말은 피하고 그는 어깨춤을 추며 중얼거린다.
“사랑은 봄이지?”
싱글벙글한 얼굴로 그가 엉뚱한 질문을 한다. 그녀는 여름이라고 대답한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짝꿍인 그를 입하 날 호수공원에서 마주쳤다. 여학생들을 괴롭히던 아이가 그여서 지나치려 했는데 그녀의 이름을 큰소리로 부르며 따라왔다. 그는 그녀가 사는 집과 다니는 영어학원과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와 문자를 하기 시작했다. 만나지 않으려 할수록 그는 매달렸고 그녀가 근무하는 학원 입구에 자주 서 있었다.
“입하가 우리의 기념일이니까 그렇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런데 난 아니거든.”
처음 만나던 날을 그가 기억하고 있어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는데, 아니라는 말에 기분이 상한다.
“내가 봄을 기다리는 건, 사랑이 봄바람에 실려 오기 때문이야.”
“사랑을 혼란스럽게 할 권리를 누가 허락했는데?”
그녀가 찡그린 얼굴로 묻는다.
“그대에게 사랑 권리를 허락받아야 해?”
그가 목청을 높인다.
“자기가 그렇게 말하면 정말 속상해!”
그의 말투가 무례해 그녀는 한숨을 내쉰다.
“공원에서 처음 만나던 날부터 지금까지,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하는데 넌 나를 바꾸려 했어, 그리고 자주 내 마음에 생채기를 내는 말을 했고 때론 강요했어, 너를 놓아줘야 하는데 첫사랑이어서 놓을 수가 없었어, 너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나인 거 같아서 안타까워.”
그가 한동안 그녀를 갈구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속마음을 털어놓는다.
“내가 뭘 강요했는데?”
금시초문인 말이어서 그녀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나는 결혼할 준비도 아이를 책임질 준비도 돼 있지 않은데, 네가 설계한 미래로 나를 끌고 들어가려 해서 혼란스러워.”
그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그가 했던 말을 벌써 잊어버렸나 생각한다.
“날 사랑한다며? 내가 바라는 건 다 들어준다며? 미혼인 남녀가 사랑하면 결혼하고 아이들을 낳아 기르는 건 당연한 거지.”
“부모 형제나, 어떠한 신도 너처럼 바라면 좋아하지 않을 거야. 전혀 다른 성향인 내가 무슨 재주로 네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겠어.”
“내가 바라는 결혼이 네겐 큰 부담이었구나!”
“아직은 할 때가 아니라는 거지.”
“나도 알아야 하니까 전하고 생각이 달라진 이유를 말해줘?”
“남녀의 연애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거야.”
그는 그녀가 바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자기는 나하고는 연애만 하고 싶지?”
그녀가 그의 눈을 보며 묻는다.
“너와 대화할수록 난 왜 숨이 막히지!”
그는 짜증 난 음성으로 투덜거린다.
“내가 널 숨 막히게 해?”
그녀는 그가 힘들어진 이유가 알고 싶어 재촉한다.
“우리 친구들은 결혼 관심 없어.”
그의 말에 그녀는 지난겨울과 올봄에 결혼한 그의 친구를 떠올린다.
시시비비를 가리려다가, 일주년 기념일 때 그가 했던 말이 생각나 참는다. 너 닮은 딸 하나 낳아줘, 둘이면 더 좋고, 사랑하는 가족 살 내음 맡으며 살고 싶어, 나를 버리지 않을 거지, 내 곁에 천년만년 있어 줄 거지, 그녀의 새끼손가락을 끌어다 맹세하던 그였기에, 살다 보면 잠깐 마음이 흔들릴 때도 있겠지 싶어 문제 삼지 않으려 애썼다.
“너를 만나 얼마간 행복했어! 사랑이 네 말에 밟힐 때마다 행복했던 날이 물거품이 될까 봐 인내하며 노력했어. 일 년쯤 정말 좋았어. 네가 데면데면한 시기에 난 널 참 좋아하고 사랑했지. 활활 타오르면 재가 된다는 걸 생각 못 했어. 머릿속이 네 생각으로 미칠 것 같은 밤이면, 너를 사랑한 사람이 정말 나일까, 시간이 흐를수록 너를 평생 사랑할 수 있을까, 이런 걱정을 하는 내가 두려워!”
그녀의 사랑은 일주년을 찍으면서 피어나기 시작했고, 이주년일 때는 평생 함께하리라 마음먹은 상태여서 그의 말과 행동이 좀 버거워도 웃어주었다.
“나는 여왕, 너는 시종이란 생각을 하면 예전의 감정이 살아날 수도 있을 거야.”
사랑이 활활 타올라 마치겠다던 그가, 너는 여왕으로 살고 나는 너의 시종으로 살 테니 제발 내 사랑을 받아줘, 네가 곁에 있기만 해도 나는 행복할 거라고 말했던 게 생각나, 그의 기억을 들췄다.
“넌, 내가 평생 너의 시종으로 살았으면 좋겠지. 아아, 바람! 자유롭게 부는 봄바람!”
그녀는 그가 달라졌다는 생각을 한다.
“네 사랑이 내게 몽땅 와 버려서 다른 사랑은 절대 없을 것 같은데!”
그녀는 그가 그녀 곁에 있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말한다.
“나는 사랑을 봄꽃이라 생각해, 쉽게 지는 봄꽃.”
사랑을 그가 봄꽃이라고 말해, 꽃샘추위에 나뒹굴던 꽃들이 생각나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다.
“여름 가을 겨울에 피는 사랑은 뭔데?”
“하하, 꽃이 사계절 피는 거 보면 사랑이 나를 닮았나.”
그는 엉뚱한 말을 하고 웃는다.
“꽃의 의견을 듣지 않고 섣불리 판단하지 마, 내게 보여준 표정, 몸짓, 고백, 그런 사랑도 좋지만, 나이에 맞는 사랑을 나누었으면 해, 너의 사랑 고백은 백두산 계단을 열두 번 쌓고도 남을 만큼이지만, 눈에 보이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고 증표도 없잖아.”
그녀는 그의 표정이 어두워 말을 잘못했나 걱정한다.
“너를 사랑한 건 정말 진심이었어.”
“그러니까 진심인 사랑으로 결혼하고 아이도 낳아 기르면서 살자.”
그녀는 그를 다독인다.
“시종이 어떻게 여왕과 결혼을 하냐?”
그녀의 말을 그는 차갑게 자른다.
“그건 네가 한 말이었으면서 왜 내 핑계를 해, 난 너를 시종이라 생각한 적 없어.”
“일 년간 네가 너무 도도하게 굴어서 뻥친 건데, 참말인 줄 알았구나.”
사랑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했다는 말에, 그녀는 그의 말이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생각한다.
“너처럼 예쁜 여자는 처음이라면서 꽃 한 송이 준 적 없었잖아, 들꽃 한 송이라도 들고 프러포즈하길 바랐어. 사랑한다면서 왜 내가 바라는 건 한 번도 안 해? 시도 때도 없이 미칠 것 같다더니 아기가 생기면 결혼하자고 말한 순간부터 선을 그은 건 너였어, 내가 지난해 난자 얼린 건 기억나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될까 봐 난 초조해, 우리 두 해만 지나면 마흔 살이야.”
그녀의 말을 듣던 그의 얼굴이 굳어진다.
오월 삼십일일, 늦은 밤 그가 갑자기 만나자는 문자를 했다. 그를 못 본 지 일주일쯤 돼 그녀는 약속 장소로 달렸다. 빛나는 별과 보름달이 없었더라면 어두웠을 하늘이 그날따라 참 밝았다. 아름다운 풍경에 남녀는 한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별 무리에 동요된 시간이 흐르고 둘은 마주 보았다.
“달빛 아래 네 얼굴 오랜만에 본다.”
그녀가 결혼을 바라며 기도하던 순간, 그도 무언가를 소원하고 나서 그녀를 보며 말한다. 그녀는 그의 입술에 살포시 입술을 댄다. 그는 고개를 돌려 별 무리를 본다.
“아름다운 별빛 아래니까 우리 뽀뽀해?”
그녀가 그에게 입술을 내밀며 말한다. 그는 밤하늘을 향해 두 팔을 강력하게 흔든다.
“하늘 정말 아름답다! 오늘 밤과 저 금빛 풍경을 평생 잊지 못하면 어쩌지!”
그의 말처럼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밤하늘이다. 그래서 그녀는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줄 거라는 믿음 하나로 그에게 달콤한 게 땅긴다고 말한다.
“편의점 보이면 사줄게.”
“아우, 이렇게 좋은 날에 왜 사랑하는 여자의 마음을 못 읽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거 아냐?”
“아이스크림 좋아하지! 하지만 난 자기를…. 자기야 저 하늘의 황금 물결을 양탄자 삼아 우리.”
그는 그녀의 얼굴을 무표정으로 바라본다.
“편의점이 안 보이면 어떡하지?”
그의 첫사랑 고백을 그녀가 거절할 때 표정이어서 그녀는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은 것처럼 수선을 떤다.
“편의점은 많아.”
그의 말처럼 편의점은 많다. 대화가 꼬여 민망해진 그녀는 어디서부터 말 단추를 잘못 끼웠나 생각하다가 그의 볼에 살짝 입술을 댄다.
“너무 늦은 밤이야!”
그가 입술 닿은 볼을 손으로 닦으며 말한다. 그녀는 붉어진 얼굴로 귀가를 서두른다.
“정지은 씨 안녕!”
“하정빈 씨 안녕! 내일 봐!”
그녀를 십여 초간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졸음이 밀려오는 미소로 손을 흔든다.
이게 두 사람의 마지막 대화다.

 

지난해 그가 떠나던 날은 정말 많은 비가 내렸었다. 새벽 두 시까지 휘황찬란하게 밝았는데 새벽녘에 비바람이 몰아치기를 반복하더니 한낮까지 장대비가 내렸다.
‘넌, 나의 일상에 우박을 던진 것도 모자라 마음마저 아프게 하려고 작정했니. 매일 내 머릿속에 있는 너 때문에 힘들어. 너는 나를 서럽게 했고, 살아야 할 의미를 훼방 놓았어. 그런데도 네가 매일 생각나. 그리움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언제나 너와 함께하던 강가를 걸어. 네가 부르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그 노래를 흥얼거리면, 네가 내게 노래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져. 그 노래 가사는 왜 그렇게 슬프고 서럽고 가슴이 메는 거니. 그래도 난 견뎌. 간이의자에 앉아 하늘, 땅, 풍경, 꽃, 새, 물고기와 자연과 낭만을 음미하며 행복했던 때를 떠올려. 우린 시간이 흐를수록 행복하던 때가 많았잖아. 함께 있으면 즐거웠잖아. 모든 게 더 나아지고 있었는데 넌 연기처럼 사라졌어. 네가 끝내 내 소망을 외면했다는 게 슬퍼. 그 노래 가사처럼, 사랑이 너무 아파서 떠난 거니? 네 사랑이 물거품이라는 걸 네가 떠난 후 알게 되었어. 그 가사를 내게 들려준 의미가 이별이었다는 것도 깨달았어.’
혼잣말하다가 그녀는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빗속에 내놓고 어깨를 들썩인다. 빗줄기는 하염없이 그녀의 눈물을 쓸어낸다.

 

나는 우리가 자주 만나던 초아의 정원을 못 잊어 찾는데, 너는 어디에 있는 거야? 초아의 정원에 서서 홍매화를 보며 진분홍 정열로 입맞춤하던 기억, 가지마다 튀밥처럼 튀어나온 벚꽃 같은 미소로 두 손 잡고 행복해하던 연인….
그녀는 그가 아무 일 없던 것처럼 환한 미소로 나타날 것 같아 옷매무새를 살피며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그는 어디에도 없고, 흑두루미 한 마리가 그녀의 심정처럼 물 위에 고요히 떠 있다. 밤색 새 떼가 휙 날아왔다가 훅 날고, 풍덕교 밑을 유유히 흐른 물줄기는 그들의 이별을 아는지 고요하다.
그녀는 그를 잊겠다고 오늘도 다짐한다. 그녀 앞에서 그는 애완견처럼 꼬리를 흔들며 온몸을 던져 재롱을 피웠던 때도 있었다.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노력한 그였는데, 그녀는 나이를 들먹이며 어른처럼 하라고 했다. 매일 수십 통의 문자와 열 번 이상 전화를 해서 지겹다고 짜증내던 때도 있었다. 그가 과하게 다가오면 밀어내고, 뜸하면 생각이 나는지 알 수가 없어 나중엔 운명이라고 마음에 새겼다.
잊는다고 마음먹으면 쉬울 줄 알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다. 그녀 앞에 없는 그가, 항상 그녀와 있어 펼쳐진 우산으로 커다란 원을 그리며 추억까지 가져가라고 휘두른다. 내 앞에 너는 없는데, 넌 왜 나와 함께 있는 거니! 허공에 대고 그녀가 소리 지른다.
너무 아픈 사랑이 된 기억을 빗물로 닦아내고,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오늘 그녀의 방식대로 작별하려고 한다. 그와 작별하려 할수록 정신줄을 놓은 그녀의 사랑이 그와의 삼 년을 끌어안는다.
그녀는 자신의 머릿속에 있을 그를 떨치려고 초아의 정원을 뒤로하고 풍덕교를 건너 터벅터벅 걷는다. 마음은 비가 훑고 지나간 가을 거리처럼 쓸쓸한데 그와 보았던 때늦은 장미꽃들이 활짝 웃는다. 코끝에 닿은 향기가 그녀를 위로하는 것 같아 눈물이 솟는다. 그녀가 손을 내밀자 꽃을 흠뻑 적신 물방울이 바람에 툭툭 떨어진다.
바람아 불어라! 세차게 불어와 그의 흔적을 날려다오! 그녀는 미련을 털어내려고 눈물을 닦는다.

 

그는 그녀에게 초등학교 일학년 입학식 때 첫눈에 반했다고 했다. 그런 그녀를 공원에서 운명처럼 만났으니 하늘이 허락한 인연이라고 말하며, 일 년 정도 매일 보고 싶고 종일 함께하고 싶다고 애원했다. 그녀는 천천히 알아가고 싶었는데 그는 성급하게 다가와 뒷걸음질쳤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그는 그녀의 사랑이 목말라 적극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위한 마중물을 아낌없이 부었다는데 그가 부었다는 마중물은 보이지 않고, 그녀에게 온 사랑 또한 흔적 없는데 그녀는 열병을 앓고 있다.
사랑은 사람을 미치게 한다는 것을, 네가 떠난 후 알게 되어 너무 슬퍼! 내가 좀 더 빨리 너를 사랑했더라면 네가 돌아서지 않았을 건데, 그녀는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빗물에 놓으며 목이 메게 운다.
잊어야 할 날은 더디게 흐르고, 시간은 그녀 마음을 갉아먹으며 유월 중순이 되었다. 여태 비가 내렸는데도 비가 또 내리려는지 하늘은 검은 막을 씌우고 산마루엔 회색 구름이 진을 친다.

 

올해도 천지(天地)는 어김없이 장마를 맞이했다. 기약 없이 떠난 사람인데, 그가 돌아올 거라고 믿게끔 빨간 장미는 몸을 흔들어댄다. 비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더니, 한 잎 남은 꽃잎만 그녀의 눈자위에 그리움을 포갠다.
살포시 내리던 여우비가 하늘 끝으로 물러나기를 사나흘 반복해 장마가 끝나길 바랐는데 꽤 굵은 빗방울이 떨어진다.
비 오는 날 청승맞게 어딜 가나, 내가, 나라는 걸 느낄 수 없어 그를 억지로라도 보내야 하는데, 매일 잊어야지 보내야지 그런 말만 한다는 게 견딜 수 없어서, 그녀는 여름이 가기 전에 반드시 그를 버리리라 다짐하고 결심한다. 그가 떠난 순간 사랑은 멈추었는데, 멈춘 사랑은 수십 개의 바늘이 돼 그녀의 기억들을 찌른다. 너를 털어버릴 거야! 내 안에 있는 너를, 그리고 다시 채울 거야! 너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 주겠어. 그날 밤 내가 소원했던 일이 반드시 올 거니까, 난 그날을 믿어!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하늘을 본다.
종일 쏘다니다가 그녀는 검은빛 밤하늘을 바라보며 침대에 눕는다. 잠을 청할수록 수많은 생각이 아우성이다. 마치 불꽃이 전쟁하는 것처럼 천둥 번개를 친다. 사랑은 달콤한데, 예고 없이 버려진 이별은 참을 수 없을 만큼 쓰리고 아리다. 소금 사탕 한 알을 입에 넣고 오물거린다. 사랑이 단맛인지, 짠맛인지, 혀로 굴리며 음미해 본다. 단맛 짠맛이 사라지고 쓴맛만 입안에 머문다.
쓴맛을 지우려고 딸기 맛 사탕을 입에 넣어 오물거린다. 사랑이 이런 맛이면 얼마나 좋아! 딸기 맛 사탕이 어느새 녹아 여운만 남는다. 달콤한 그 맛이 사랑을 갈구하는 맛처럼 아쉽다. 자야지 할수록 눈망울이 초롱초롱해진다. 하늘을 물고 있던 구름은 사라지고 작은 별이 반짝인다. 그녀는 오늘 밤도 그를 떨쳐내지 못한다. 그를 사랑했는데 간다는 말도 없이 가버려 저절로 눈물이 난다.

 

너는 검은 구름인가 봐, 내게 눈물을 주고 간 너, 사방에 내리는 비는 너의 불장난을 끄려는 눈물이지. 아직도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그녀는 그를 놓을 것처럼 하면서도 놓지 못해 미칠 것 같다.
자정 무렵 구름이 돌아와 하늘이 어둠 속에 다시 갇힌다. 새벽부터 굵어진 빗방울은 유리창을 들여다보며 창을 흔든다. 그녀는 두 눈을 말갛게 뜨고 창밖을 응시한다.
떠난 사람이 왜? 뒤돌아보면 뭐가 달라지는데, 그냥 가던 길을 가! 그녀는 비를 그라 생각하고 싸늘하게 말한다.
아침을 하염없이 적시던 비는 한낮에도 물방울을 튕기며 그녀를 따라다닌다. 비는 철새가 놀던 나뭇가지에, 나비가 날아와 입맞춤하던 꽃망울에, 하늘을 덮고 누운 잔디에, 그녀가 쓴 우산에도 방울방울 떨어지며 그의 흔적을 불러낸다.
오늘은 너를 깨끗이 씻어버리려 해!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던 손짓도,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던 솜사탕 맛도 빗물로 쓸어버릴 거야! 내 안에 있는 너 때문에 내가 너무 힘들어, 네가 내 마음을 빗물로 적셔서 나는 매일 울어! 너무 울어서 몹시 아파, 얼음처럼 차가워진 마지막 날의 네 입술이 떠오르면 육천 마디가 사라질 것처럼 깨져! 정말 잊을 거야! 그가 따라오는 것 같아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녀의 머릿속에 그를 싣고 그녀의 발길은 순천만 국가 정원으로 향한다. 오늘은 그를 그곳에 놓고 와야지, 다짐하며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를 보내려 할수록 그녀의 감정 샘에 눈물이 차오른다.

 

비가 많이 내려 국가 정원이 한적할 줄 알았는데 방문객이 꽤 있었다. 입장권 두 장을 끊고 그녀는 결심한다.
정빈아, 오늘만 우리 함께 하자, 어떤 상황일지라도 널 존중할게, 나를 따라다녀도 귀찮아하지 않을게! 다시 돌아와도 웃으며 보낼게, 해 질 녘이면 우린 도화지가 되는 거야! 영원히 잊히는 거야! 국가 정원 순천만 역은 이별한 연인을 놓아주는 역이 되길 바라자. 나는 환승 연애도 덤으로 기도할래. 우리 그렇게 될 거로 믿자. 내가 떠난 후 흘린 눈물을 우리의 마지막 날에 올려 두고 하느님 뜻에 순응하자. 그녀는 성호경을 긋고 기도한다.
몇 해 전에 방문했던 때보다 정원은 더욱 새롭게 단장돼 있었다. 그녀는 순천만 역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개찰구로 들어가 스카이큐브를 타려고 기다린다. 그녀 혼자 스카이큐브를 기다리는데 승차할 인원이 그녀와 먼 거리에서 지켜볼 뿐 아무도 동행하지 않으려는 듯 서 있다. 유니폼을 입은 남자 안내원 두 명이 그녀가 내민 승차권을 확인한다.
“일행은 어디 있습니까?”
그녀는 일행과 함께라고 말하며 스카이큐브에 오른다. 안내원은 동그랗게 뜬 눈을 치뜨고 그녀에게 일행이 오지 않았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그녀는 눈을 지그시 감는다. 안내원이 줄 서 있는 분들에게 자리가 남아 있으니 타라고 한다. 아무도 타겠다고 나서지 않는다. 두 번 더 승객을 부르던 안내원이 스카이큐브 닫힘을 누른다.
스카이큐브는 모노레일을 달린다. 모노레일 위에서 하늘을 보고 물결을 본 그녀는 두 손을 모으고 하느님 한 번만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한다. 그녀는 저 멀리 보이는 모노레일에 울렁증을 느낀다. 나 혼자 해낼 수 있어! 다짐하곤 그녀는 스카이큐브 의자에 앉아 창밖을 본다.
스카이큐브는 레일 위를 곡예하듯이 달린다. 스카이큐브 유리창에 수많은 빗물이 꽃잎이 돼 떨어진다. 그녀는 손을 내민다. 그녀 손에 닿을 듯하던 물방울이 속절없이 흘러내린다. 내부 유리창이 뿌옇게 흐려진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안개빛 창을 닦는다.
정빈아, 함께해 줘서 고마워, 오늘 너와 여행할 수 있어 행복해, 오늘은 울지라도 내일은 절대 울지 않을게! 파릇파릇한 초록 위를 너와 날 수 있어 기뻐! 저 아래 강물의 미소 보이지? 옥천과 서천이 숱한 나날 그리워하다가 하나가 되었을 거야! 자연일지라도 이루어진 사랑은 소중해! 물결은 유유히 평화롭게 마음을 나누며 하늘빛으로 섞이잖아, 우리도 저들처럼 사랑했다고 믿자, 소중한 그 사랑을 저버렸으니 오늘 미안한 마음과 아픈 사랑을 저 맑은 물가에 살포시 내려놓고 새 출발할 수 있도록! 소원할게. 하느님! 하느님! 그녀는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한다.
사랑은 소중한 건데 그가 준 사랑을 일 년 정도 하찮게 생각했었다. 긴 날 아플 줄 알았더라면 그의 사랑도 존중할 것을, 부족한 것은 덮어 줄 것을, 결혼과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은 염원이 그를 떠나게 했지만, 다른 이유도 있었을 거로 생각한다.
너와 내가 생각이 달라 이별했지만, 난 네가 다시 돌아온다 해도 결혼과 아이가 중요해서 받아주지 않을 거야, 너와 내가 우리의 사랑을 망가뜨렸어! 너의 사랑은 나로 인해 너무 아팠을 거야! 그 사실을 오늘 깨달았어! 우린 하늘이 맺어 준 인연이 아니었는데 바보처럼 믿었다는 것도 알았어.
이제 그를 잊고 다가올 삶을 그녀는 풍요롭게 채우리라 다짐한다. 
맞은편에서 스카이큐브가 달려온다. 빗줄기가 강하게 내리쳐 승객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뿌연 유리창을 닦는다. 낯익은 남자의 얼굴이 선명하게 보인다.
“정빈 씨!”
그녀는 그의 이름을 소리 내어 부른다. 그의 목에 팔을 감싼 남자와 눈이 마주친다. 흐려진 스카이큐브 뒷유리로 다가간 그녀는 슬픔인 결로를 손으로 만져 본다. 그 안타깝고 아프고 가녀린 사랑은 빗줄기만도 못한 수분으로 부서진다.
잘 가 정빈아! 너의 사랑은 이해하기 힘든 바람이었구나! 안녕!

 

그녀는 스카이큐브에서 내려 순천만 문학관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무진기행 작가의 작품 세계를 감상하고 오세암을 상상하고, 비를 맞으며 갈대길로 향한다.
정빈과 함께한 남자를 보고, 그녀는 꿈속에서 낯선 남자와 결혼식을 하던 게 생각난다. 그동안 그 꿈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그 사람을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느님 꿈속의 의미를 제게 보여 주소서! 소원하며 걷는데 한 남자가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아! 순천만은 상처받은 영혼도 품어 줄 것처럼 포근합니다.”
그의 말에 그녀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어여쁜 숙녀 아가씨, 비 맞으면 감기 걸립니다!”
어디서 본 듯한 남자가 그녀에게 우산을 건네고 앞서 걷는다. 그녀는 비에 젖은 의자에 앉아 개펄을 들여다본다. 칠게 무리가 개펄을 덮고 있고 짱뚱어 가족이 뜀뛰기를 한다. 평화롭고 정다운 광경이다. 이제 그는 떠났다. 그를 그녀가 완전히 보내 버려 가슴 한 곳이 후련하다. 그녀는 갈대숲에 사는 칠게와 짱뚱어처럼, 둥지를 튼 새들처럼 가정을 꾸리리라 다짐한다.
그녀는 순천만 역으로 되돌아가는 스카이큐브를 타려고 버스를 기다린다. 비는 가슴속에 남아 있을 찌꺼기를 씻으려는지 쉬지 않고 내린다. 호수를 불릴 만큼 내렸으면 멈춰야 하는데 마구 쏟아진다.
작은 버스 한 대가 다가온다. 버스가 한참을 달려 스카이큐브 개찰구에 멈춘다. 그녀가 스카이큐브에 오르고 한 남자가 따라 오른다. 둘은 한동안 말없이 창밖을 본다.
“혼자 오셨군요. 저는 순천만 국가 정원에 오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 여수에서 무작정 왔습니다.”
세상에나! 그녀는 화들짝 놀란다. 꿈에 예식을 하던 남자가 그여서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요동친다.
“저에게도 좋은 일이 있을까요?”
떨리는 음성으로 그녀가 묻는다.
“그럼요!”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히자 그의 눈에 눈물이 돈다.
“저는 오빠 없으면 죽을 것 같다던 여자와 이별했습니다.”
“저와 비슷한 아픔이었군요. 그가 떠난 후, 나를 잃어버린 것만큼 아파하면서 깨달은 건, 남녀의 사랑은 방향이 같아야 한다는 겁니다.”
“아하, 정답입니다!”
그가 환한 미소로, 밝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까 제게 우산을 주셨던 분 맞으시죠?”
“네, 그쪽을 처음 보았을 때, 심장이 마구 뛰어 다시 만나면 하느님이 정한 인연이겠구나 생각했는데 스카이큐브를 함께 탈 줄이야! 우리 결혼을 목적지로 두고 만남을 시작해 봅시다.”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다.

 

지난해, 오월 마지막 날 밤하늘이 그토록 찬란했던 이유를 그녀는 그를 만나면서 알게 되었다. 둘은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며 사랑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그리고 그해 흰 눈이 소복이 쌓이던 날 웨딩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신부가 멋진 슈트를 입은 남자의 손을 잡으며 결혼식을 한다. 부부는 이듬해 겨울 쌍둥이 셋을 낳았다. 아들 한 명에 딸 두 명이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웠던 오월 마지막 밤, 하느님! 그 밤 제가 소원했던 소망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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