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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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안승호가 부서로 배치된 이후 김인문 부장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승호는 기본적인 업무 능력이 없다. 김 부장은 안승호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8명의 부서원을 대상으로 일일이 업무 분담을 했지만, 그에게 맡긴 일은 도무지 불안하다. 가장 쉬운 일을 가장 적게 주었지만, 그조차 실수 연발이다. 안승호가 단독으로 업무를 맡아 진행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은 이 회사 직원 모두가 알고 있다.
안승호는 ㈜상정물산의 창업주이자 현 대표이사인 이진영 회장의 절친한 고향 친구인 안준구의 둘째 아들이다. 안준구는 지역에서 덕망 있는 인사로 잘 알려져 있다. 젊어서 지방의회 의원을 역임했고, 이후 지역에서 시립 문화재단 이사장, 시립 예술회관 관장을 거쳤다. 나이 들어서는 복지법인 ‘애정원’의 시설장을 한동안 맡았다. 60대 후반부터는 현업에서 물러나 소일거리 없이 지내고 있다. 청빈하게 산 그는 남만큼 재산을 모으지 못해 곤궁하게 살았다. 연탄으로 난방해 한겨울에도 온수를 마음껏 쓰지 못하는 지경이다.
부인 윤정숙도 남편이 주는 월급으로 살림하며 살았다. 시집올 때 시아버지가 마련해 준 달동네 집에서 50년 넘게 이사 한 번 못 가보고 눌러 살고 있다. 안준구 부부가 넉넉지 못한 생활에도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은 큰아들 정호 때문이다. 정호는 어려서부터 영특했고, 천재는 아니어도 수재라는 소릴 듣고 자랐다. 미남형 외모를 가졌고, 180㎝의 키에 76㎏의 체중으로 훤칠한 체격 조건을 가졌다. 누가 봐도 1등 사윗감이다. 초·중·고 다니는 동안 학년 전체 중 1등을 놓친 적이 없고, 학급 반장과 전교 회장도 도맡았다. 성격도 좋아 주위에서 정호에 대한 칭찬이 마르지 않았다.
이에 반해 승호는 형과 너무도 대조적이었다. 무능했고 책임감이 없었다. 불성실하여 숙제 한 번 제대로 해 가는 법이 없었고, 늘 사고를 몰고 다녔다. 싸움박질 빼고는 학생이 해서는 안 될 일은 모두 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싸움하지 않고 다니는 것에 부모는 감사했다. 승호는 거짓말도 잘했고, 친구들을 교묘하게 괴롭혀 악명 높았다. 학교에서 말썽꾸러기로 낙인돼 있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형 정호와 같은 학교를 2년 차이로 같이 다녔다. ‘같은 뱃속에서 나온 형제가 어쩌면 저렇게 다르냐?’고 교사들도, 학생들도 입을 모았다.
안 씨 부부는 극과 극의 대조를 보이는 형제로 인해 웃고 울었다. 정호 덕에 친척들 모이면 자랑하기 바빴고, 동네에서도 정호 칭찬이 입이 마를 지경이었다. 어쩌다 학교라도 방문하면 모든 교사가 인사했고, 특별히 교장실로 안내해 교장과 독대할 기회를 주었다. 가난한 살림이지만 어깨 펴고 다닐 수 있던 게 정호 덕이란 사실을 부부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정호만 생각하면 안 먹어도 배가 부를 지경이었다. 부부는 정호 덕을 보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그대로 정호가 큰 인물이 돼 평생 자랑거리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승호는 정반대였다. 어려서부터 승호는 거짓말을 유난히 잘했다. 뻔히 들통날 거짓말을 거리낌 없이 했다. 툭하면 잘난 척을 해대는 통에 친구도 없었다. 늘 외로웠던 승호는 주위의 관심을 끌기 위해 얼토당토않은 거짓말을 했다. 인품이 좋기로 소문난 아버지나 천생 여자란 평을 듣고 산 어머니 밑에서 어찌 저런 자식이 나왔느냐며 모두 수군거렸다. 안 씨 내외도 그런 사정을 잘 알았다. 다만 승호가 싸움질 안 하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며 위안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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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부장은 승호가 자신의 부서로 배치된 이후 회사 출근하기 싫어졌다. 승호는 힘이 되고 보탬이 되는 게 아니라 짐이 될 뿐이었다. 공채 절차를 통해 입사한 다른 사원들도 업무 능력이 없는 승호가 사장이 뒤를 봐줘 회사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잘 안다. 사장과 승호 부친이 둘도 없는 친한 친구란 사실을 모르는 사원은 없었다. 그러나 승호는 이런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승호는 사내에서 따돌림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고 출근해 자리를 지킨다. 시간이 흘러 월급날이 되면 통장에 적지 않은 돈이 정확히 입금되니 그깟 따돌림은 무섭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때 1등을 독차지했던 형 정호는 주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서울대에 입학했다. 담임은 경제학과 진학을 권했지만, 정호는 뜻한 바가 있어 인류학을 선택했다. 아버지 준구 씨가 문화와 예술 분야에 몸담은 것이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데다 “경제 공부는 훗날 할 기회가 많을 텐데 인류학은 대학에서 전공하지 않으면 여간해 공부할 기회가 없는 분야라고 생각한다”라며 인류학을 택했다. 이에 반해 승호는 마땅히 입학할 4년제 대학이 없었다. 여러 곳에 지망한 가운데 지방 소재 신생 전문대에 가까스로 입학했다.
정호는 대학을 졸업하고 곧바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한국인류학회의 추천으로 학비를 면제받았고, 체류 비용도 한국인문학술재단의 도움을 받았다. 양 눈의 시력 차이가 너무 커 부동시 판정을 받아 군 복무가 면제돼 홀가분하게 유학길에 오를 수 있었다. 승호는 4년 내내 낙제를 겨우 면해 가까스로 대학을 졸업했다. 과체중으로 현역 입대가 불가능해 사회복무요원으로 복지시설에서 대체 복무를 했다. 이런 승호의 이력으로는 변변한 직장에 취업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던 절친한 친구인 이진영 사장이 승호를 자신의 회사에 입사하도록 알아서 편의를 봐주었다.
정호는 아이비리그 명문인 이타카 소재 코넬대 석사과정에 입학해 누구보다 잘 적응하며 학업에 열중했다. 박사학위를 취득해 한국에 돌아와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정호의 목표였다. 그는 유학 도중 현지에서 만난 한국인 유학생 유민지와 결혼했다. 민지는 대기업 임원의 외동딸로 밝고 온화한 성격이었다. 민지 아버지가 현지에서 생활할 주택을 마련해 주어 둘은 안정적으로 학교에 다녔다. 둘은 각자가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아이를 갖지 않기로 약속했고, 학업에 전념했다. 민지 아버지 유익상은 사위인 정호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둘이 공부에 열중하도록 전폭적으로 지원해 주었다.
승호는 결혼할 처지가 못 됐다. 나이 20대 후반이 되도록 누구에게 여성을 소개받은 적이 없다. 학생 신분일 때도 여학생은 고사하고 남학생 친구도 없이 지냈다. 그래서 승호는 늘 혼자였고,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그 버릇은 고치지 못했다. 승호는 퇴근 후 PC방에 가서 컵라면 등으로 끼니를 때우며 밤새 게임을 하는 일이 허다했다. PC방에서 새벽까지 게임하다가 뒤늦게 잠이 들어 아침 출근을 제시간에 못 해 지각한 일이 한 달이면 서너 번이다. 회사 일로 외근 출장을 다녀올 일이 생길 때도 한나절을 PC방에서 보내다 들어가는 일이 많았다.
그의 직속상관인 김인문 부장의 속은 새까맣게 타들어 갔다. 김인문 부장은 수시로 임원들에게 자신의 고충을 토로했지만, 늘 같은 대답이었다.
“알아. 자네 힘든 거 잘 알아. 이 회사 직원 중에 그놈 꼴통인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하지만 어쩌겠나? 회장님이 특별 당부하시는 일인데….”
“왜 하필 저냐고요? 그 녀석은 업무에 보탬이 되는 게 아니라 늘 막대한 지장을 부립니다. 그 녀석 때문에 다른 부서원들 통솔이 안 돼요.”
“그래. 안다니까. 그걸 왜 모르겠나? 그래도 김 부장이 가장 인자하고 통솔력 있다고 판단해 놈을 맡긴 거 아니겠나. 조금만 참아주게.”
김 부장은 승호 때문에 회사만 출근하면 머리가 지끈거렸다. 20년 넘게 회사에 다니면서 요즘처럼 출근하기 싫고, 이진영 회장이 원망스러운 것은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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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호에게 일을 맡기면 제대로 처리하는 건이 없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본인이 시작하는 게 낫지, 엉터리 문서를 수정하는 일은 도무지 답이 없었다. 김 부장은 “살다 살다 이런 둔재는 처음이야”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서 내에서 안승호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갈수록 줄어들었다. 부서원의 불만도 날로 늘어갔다.
“부장님! 임원들에게 보고해서 조치하셔야지. 이대로 가면 우리 부서 전체가 공멸합니다. 안승호 그놈 하나가 깎아 먹는 우리 부서 실적이 얼마인지는 아시죠?”
“자네들보다 내가 더 미칠 지경이야. 나라고 이런 사정을 임원들에게 보고를 안 했겠나? 벌써 수십 번 보고했지만, 모두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가르쳐 보라는 얘기만 하신다니까. 오죽하면 내가 휴직하겠다고까지 했겠나?”
“우리 부서 분위기가 엉망입니다. 이대로 방치하시면 부서원들 모두 퇴사하고 말 겁니다.”
안승호가 그런 사정을 모를 리 없었다. 모두 자기를 대놓고 따돌리고, 제대로 업무 배정도 안 한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못 버티고 퇴사한다면 아무 곳도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뻔뻔하게 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마다 승호는 ‘네놈들이 아무리 나를 몰아내려고 용을 써 봐라. 내가 내 발로 물러나는 일은 없을 거다’라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전까지 이진영 회장과 허물없이 지내던 안준구는 승호가 상정물산에 취업한 이후 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진영 회장은 이전처럼 스스럼없이 전화도 걸고, 만나서 대포 한잔하자고 권하지만, 안준구는 이 핑계 저 핑계로 외면한다. 친구를 볼 면목이 없기 때문이다. 무능한 자식을 맡겨 놓고 이진영 회장을 이전처럼 허물없이 대한다는 게, 못내 미안했다.
이진영 회장에게 전화만 걸려 와도 쥐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다. 실력 있고 인품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 안준구지만, 아들 승호 탓에 기가 많이 꺾였다. 이진영 회장은 안준구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고, 승호 탓에 민망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승호가 사내에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고, 상사들이 승호 때문에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승호가 직장을 잃고 집에서 빈둥거리게 되면, 지역 사회에서 오랜 세월 친구로 지내 온 안준구가 얼마나 힘든 처지가 되는지 잘 알고 있어 달리 조치를 못 하고 있다.
친구인 안준구가 살아 있는 동안 자신이 큰 짐을 하나 덜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면서 정호가 하루속히 모든 학위 과정을 마치고 귀국해 아버지 안준구를 봉양하고, 집안을 일으켜 세우길 바라고 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승호는 무엇 하나 나아지는 것 없이 불성실하게 회사생활을 이어갔다. 음주운전을 하다가 경찰 단속에 적발돼 면허 취소가 된 사실이 회사에 통보되기도 했다. 승호는 오래전부터 상습적으로 음주운전을 일삼았지만, 요행히도 단속을 잘 피해 다녔다. 그러다가 긴 꼬리가 잡히고 말았다.
회사는 승호에게 “또다시 사법기관에서 회사로 비위 사실이 통보되면 사규에 따라 퇴사 조치하겠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특히 “면허 취소 기간 중 절대 운전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승호는 평소처럼 운전했고, 차를 회사 주변 골목에 주차하고 출근했다. 승호는 평소 사회의 규범이나 규칙, 법규 등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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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히도 더운 여름 한복판이라 잠을 제대로 청하기 어려운 날씨가 며칠째 이어졌다. 곤궁한 살림에 근검절약이 몸에 익은 안씨 부부는 평소 선풍기조차 여간해 작동하지 않는다. 그러나 며칠째 계속된 혹독한 더위에 선풍기를 밤새 틀고 잔다. 더위가 너무 심해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겨우 잠이 들어 숙면 단계로 접어든 새벽 4시 무렵 전화벨이 울렸다. 안준구는 왠지 불길한 예감이 밀려왔다. 순간 미국에서 걸려 온 전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차가 있는 미국에서 걸려 온 전화가 아니라면 굳이 이 시간에 올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실례합니다. 새벽 시간일 텐데요. 안준구 선생님 댁이 맞나요? 여기는 워싱턴 주미 한국대사관입니다. 저는 사무관 이윤태입니다.”
“네. 헌데 얼마나 급한 일이 있어, 이렇게 새벽에 연락하셨는지 궁금하군요?”
“너무 송구한 말씀이라 저희도 어찌 말씀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 혹시 우리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
“…….”
“그런 건가요?”
“아드님 안정호 씨와 며느님 유민지 씨가 이타카에서 뉴욕으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를 당해 둘 다 현장에서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대형 트럭이 안정호 씨가 몰던 승용차를 뒤에서 추돌했습니다. 차 안에는 아드님과 며느님도 동승하고 있었고, 모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안씨가 전화 통화를 하는 사이 아내 윤씨가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보챘다. 안씨는 수화기를 놓쳤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수화기에서 “여보세요. 여보세요?”하며 대화를 이어가려는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으나 이미 블랙아웃 상태에 빠져든 안씨는 다시 수화기를 들 기력이 없었다. 70이 넘는 생을 살면서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블랙아웃 상태였다. 숨이 막히고 앞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자신이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할 뿐 도무지 현실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정호가 죽었다는군. 며늘아이와 함께 고속도로에서 교통사고로 즉사했다네.”
“뭐, 뭐, 뭐라고요? 그럴 리가 없어요. 잘못 걸려 온 전화일 거예요. 누군가 새벽에 장난 전화를 한 거라고요. 우리 정호가 죽다니. 그럴 수는 없어요. 그게 말이 돼요?”
부부는 말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믿으려 하지 않았지만, 현실이었다. 안정호와 유민지는 나이 스물아홉과 스물일곱의 꽃 같은 청춘이 순식간에 세상과 이별했다. 정호의 죽음에 관한 소식은 삽시간에 안준구, 안승호 지인들에게 급히 퍼져 갔다. 모두 혀를 차며 정호의 죽음을 안쓰러워했다.
여러 여건상 사체를 이송하기 위해 미국으로 누군가 건너갈 형편이 못 됐다. 사체는 미국 현지 지인들의 도움을 받고, 대사관의 협조를 얻어 방부 처리하여 비행기 편으로 옮겨졌다. 안씨 내외의 유일한 희망이던 정호가 하루아침에 싸늘한 시체가 돼 비행기 냉동칸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왔다. 정호의 어머니 윤씨는 몇 번이고 혼절하기를 반복했다. 안준구도 조문객을 받을 형편이 못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조문객을 맞이하는 일은 승호의 몫이었다.
아무리 철부지인 데다 야무지지 못한 승호지만, 부모는 물론 집안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던 형 정호가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돌아왔으니,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동안 형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얼마나 자유스러웠는지, 서서히 깨달아 가고 있다. 이제 부모님을 모시는 일부터 집안의 대소사를 챙기는 일까지 모두가 자신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승호는 깨달아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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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소는 부민대학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살만큼 살다 간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의 경우, 빈소에서 조문할 때만 잠시 경건함을 보일 뿐 식당에 가면 바로 웃고 떠들며 친교의 장소로 변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여긴 달랐다. 갓 결혼해 아이도 두지 않은 20대의 청춘 남녀가 끔찍한 사고로 동반 사망했으니, 누구라도 낄낄대지 못했다. 조문객 모두가 죄인인 양 머리를 숙이고 서로의 눈치만 살폈다. 조문객은 저마다 “이렇게 엄숙한 장례식장 분위기는 얼마 만에 경험하는지 모르겠다”라고 한마디씩 했다.
승호가 상주가 돼 꼼짝없이 빈소를 지켰다. 아버지 안씨가 시내에서 덕망 있는 인사로 인정받고 있어 많은 조문객이 방문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에게 조문객들은 뭐라 말을 못 했다. 저마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 인재를 하늘이 너무 서둘러 데려가셨다”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안씨 부부는 친척 등 자별한 인사가 조문을 와서 울음을 터뜨리면 덩달아 울음을 쏟아냈고, 탈진하기를 반복했다.
조문을 마치고 식당에 자리를 잡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약속이나 한 듯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렸다. 뭔가 낮은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승호를 바라보며 행여 눈을 마주칠까 조심스러워했다. 승호는 손님들이 뭐라고 대화를 나누는지 알 듯했다.
‘저 사람들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알 만하네. 무능하고 말썽만 피우는 작은놈이 죽고, 유능하고 성실한 큰놈이 살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군.’
아무리 눈치 없고 우둔한 승호지만 손님들이 자신을 힐끗힐끗 쳐다보며 눈치를 살피면서 소곤거리는 모습을 보고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승호의 예감은 적중했다. 장례식장 식탁에 앉은 조문객은 승호가 짐작한 대로 그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죽은 아들이 수재라며? 학회하고 재단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코넬대학에 다녔다던데. 장인이 대기업 임원인데 사위를 팍팍 밀어줬다는군.”
“그 사람 학교 때 1등을 한 번도 안 놓쳤대. 재수 안 하고 서울대 입학했다고 그러더라고. 상대나 법대 안 가고 교수한다고 인류학과에 들어갔다니 1% 안에 드는 수재지. 아까워서 어쩌나?”
“동생놈은 꼴통이래. 제 아버지가 상정물산 취직시켜 줬는데, 거기서도 온갖 말썽은 다 부린다고 들었어. 업무 능력도 없는데 제 아버지 체면 봐서 회사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끌고 가는가 봐.”
“차라리 저놈이 죽고 제 형이 살았으면 좀 좋아. 안 선생도 말년에 팔자 한 번 펼 수 있었을 텐데. 저 칠칠치 못한 놈이 살아남았으니 이 집안 앞길이 걱정되네. 걱정돼.”
안준구 집안 사정에 대해 아는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이런 대화를 나눴다. 죽은 정호는 모든 이에게 아깝고 안타까움의 대상이 됐지만, 승호는 졸지에 살 가치도 없는 놈이 됐고, 살아서 부모와 집안에 폐를 끼치는 놈이 됐다.
장례 첫날 저녁 상정물산 김인문 부장을 비롯한 승호의 부서 직원이 함께 조문을 왔다. 김 부장이 안타까운 표정을 지어 보이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봐 승호 씨!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났단 말인가? 자네 부모님 마음을 헤아려 보면 뭐라 말이 안 나오네.”
“고맙습니다 부장님. 그러니 어쩝니까? 저도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그럴 테지. 아무쪼록 아버지와 어머니를 잘 보살펴 드려야 하겠네. 그려.”
“우리 부모님도 참 복이 없으세요. 내가 죽고 우리 형이 살았어야 우리 집이 제대로 돌아갔을 텐데. 그래야 우리 부모님에게도 좋았을 텐데.”
“무슨 그런 말을 하는가? 말이라도 그렇게 하면 못써.”
“아니요. 사실 그렇잖아요. 우리 집 사정 아는 사람은 누구랄 것 없이 다 그렇게 말하고 있을 거예요.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여기 조문 온 사람들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거예요. 내 눈치 보면서 수군거리는 거 보면 다 알아요. 맞아요. 내가 대신 죽었어야 해요.”
“예끼 이 사람! 그런 말이 어딨어?”
직원들과 조문 오는 길에 차 안에서 나눴던 얘기를 들은 것처럼 승호가 말하자 김 부장은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자신이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듯 승호 앞에서 태연하게 승호를 위로했다. 함께 조문 오며 차 안에서 김 부장과 그런 대화를 나눴던 직원들도 얼굴이 창백해지며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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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에도 조문은 이어졌다. 자기가 형 대신 죽었어야 했다는 말에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지며 당황하는 모습을 목격한 승호는 그들이 실제로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 확신했다. 그래서 이튿날에는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조문객과 인사 나누며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우리 형은 수재였어요. 아까운 사람이에요. 정말 머리도 좋았고, 수재였어요. 심성도 좋아서 늘 칭찬 받던 사람이에요. 그러니 그런 형 대신 내가 죽고 형이 살았으면 여간 좋아요? 저도 안타깝네요. 제가 살아서.”
승호가 빈번히 조문객에게 괜한 소리를 하고 있다고 판단한 아버지 안 씨는 “공연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고 주의를 시켰지만, 승호는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같은 말을 반복했다.
승호가 그런 말을 반복해서 한 것은 형의 죽음을 안타까워하는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왜 가만히 있는 내가 죽었어야 한다고 말하느냐?’ 는 자기 생각을 역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장례 이틀째 밤에는 일시에 많은 조문객이 몰려와 빈소와 식당이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틀 밤낮 혼자 상주 노릇을 한 승호도 지칠 대로 지쳤다. 밤 10시 무렵 조문객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고 장례식장에는 몇 명의 친지만 남았다. 승호는 긴장이 풀렸고, 그때야 형 생각이 간절하게 밀려왔다. 생전의 형 정호는 자신을 다소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좋은 형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부모가 형 덕에 어깨 펴고 다닐 수 있던 것을 승호는 잘 안다. 승호는 그런 형이 얄미울 때도 있었지만, 자기도 남들 앞에서는 형 자랑을 했다.
승호는 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몹시 큰 부담이 자기에게 몰려오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죽은 형이 안타깝고 불쌍했다. 그러면서 “내가 죽어야 할 만큼 잘못한 게 무엇이냐?” 라고 사람들에게 따지고 싶은 격한 감정이 밀려왔다. 승호는 조용해진 장례식장 식당에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사촌 몇 명과 소주를 한두 병 마시기 시작했지만, 술병이 점점 늘어갔다.
“나도 우리 형 죽어서 너무 슬프다. 우리 형은 공부도 잘했고, 착했고, 성실했다. 나 같은 인간하고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형이 죽었다. 형이 죽었으니 우리 집은 끝났다.”
“무슨 그런 소릴 해. 산 사람은 사는 거지.”
승호의 말을 듣고 있던 사촌 영호가 말했다.
“아니. 난 알아. 사람들이 뭐라고 하는지 나는 잘 알아. 너희들도 마찬가지잖아. 차라리 저놈이 죽지, 왜 똑똑한 정호 형이 죽었냐고. 너희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안 그래? 내 말이 틀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아니, 누가 모를 줄 알고? 난 다 알아.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잘 알아. 나같이 둔하고 맨날 사고만 치는 놈이 이렇게 살았으니 오죽 얄밉겠냐고?”
“승호 형! 많이 취했어. 내일 새벽에 묘지로 가려면 이제 술 그만 마시고 얼른 자.”
“야, 영호야! 공부 못하면 죽어야 하냐? 변변한 대학도 못 나오고, 취직도 못 해서 아버지 빽으로 회사 들어가고, 그런 놈은 죽어야 하냐?”
승호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유가족실에 들어가 있던 아버지 안 씨가 밖이 소란해지는 소릴 듣고 나와 승호에게 술을 그만 마시고 방에 들어가 잠을 자라고 권했다.
“아버지! 아버지 속상하신 거 잘 알아요. 제가 이렇게 아픈데 아버지 어머니는 어떠시겠어요? 그 잘난 형이 죽었으니 우리 집은 이제 끝입니다. 끝이에요.”
승호가 술에 취해 도 넘는 말과 행동을 하자 여럿이 승호를 억지로 방에 밀어 넣었다. 승호는 못 이겨 방으로 들어갔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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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를 모두 마치고 일상이 시작됐다. 안 씨 부부는 장례를 치르는 동안 부쩍 몸이 쇠약해졌다. 70대 초반의 나이에도 건강을 유지해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었지만, 큰아들을 잃고 몰라보게 기운이 빠졌다. 장례 기간 중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하며 몸무게가 많이 줄었고, 볼살이 빠져 한눈에 봐도 수척해졌다. 동네 개인 병원에 입원해 영양제 수액을 맞고 간신히 기력을 회복했지만, 한 번 잃은 입맛이 되돌아오지 않았다. 몸이 쇠약해진 것 외에 노부부는 교대로 정신을 잃어 멍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승호는 직장으로 복귀해 업무에 참여했다. 달라진 것은 없다.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PC방 출입이 다시 잦아졌고, 회사 일에도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건 여전했다. 회사에 몇 달을 다니던 중 퇴근길에 불심검문을 당해 무면허 운전이 발각됐다. 불구속 상태에서 벌금 1,000만 원을 선고받았다. 노부부가 그토록 운전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승호는 겁 없이 무면허 상태에서 차를 몰고 다녔다. 결국, 차를 처분해 벌금을 마련했다.
차가 없어진 후 며칠간 버스로 출근하던 승호는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버스로 출퇴근하면서까지 회사에 다니고 싶지 않았다. 승호의 집은 졸지에 수입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안준구가 직장에 다닐 때 납입한 국민연금이 적은 금액이나마 나왔고, 얼마의 노령연금이 추가됐다. 그것이 이 집안 수입의 전부였다. 승호는 새로운 직장을 찾을 궁리는 하지 않고, 종일 집에서 컴퓨터 게임만 했다. 어머니에게 1만~2만 원씩 용돈을 얻어 가끔 PC방에 다니는 것이 거의 유일한 외출이었다.
아버지는 그런 승호를 볼 때마다 울화가 치밀었다. 그럴 때마다 죽은 정호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고, 남에게 나쁜 짓 한 번 안 하고 살았는데 왜 자신의 노년이 이토록 불행한지 생각하면 억장이 무너졌다. 속으로만 울분을 삼키는 윤정숙은 더 큰 시련을 감내해야 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승호는 빈둥거리기만 할 뿐 돈벌이할 생각을 안 했다. 험한 일은 하기 싫고, 자신의 능력으로 새로운 직장을 잡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안준구의 딱한 처지를 아는 이진영 회장을 비롯한 지인들이 가끔 집에 쌀을 보내주기도 하고 용돈을 주기도 했지만, 살림에 큰 보탬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이진영 회장은 승호가 다시 출근할 수 있도록 조치를 해 볼 생각이었으나, 사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그보다도 승호 스스로가 다시 출근할 생각이 없었다. 따돌림을 당하고, 무시를 당하며 굳이 직장생활을 할 생각이 없던 것이다. 승호는 생활을 위해 돈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차도 없이 출근하기 싫었다. 새로운 일자리를 가지려 들지도 않았다. 몇 달의 실업자 생활을 하면서 오히려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됐다.
살림은 더욱 궁색해졌다. 70대 중반의 어머니 윤 씨는 찬물만 나오는 부엌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 했고, 겨울에는 온 집안이 냉기만 겨우 가실 만큼의 난방을 하고 살아야 했다. 그렇게 지낸 세월에 수년. 안준구의 몸이 더욱 쇠약해졌다. 온몸에 기운이 빠져 거동이 불편해졌다.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가야 할 처지지만, 그럴 형편이 못됐다. 그런데다 안 씨 본인이 집에 있기를 희망했다. 이래저래 부인 윤정숙의 생활고가 더욱 심해졌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70 중반의 늙은 몸으로 살림해야 했고, 남편의 병시중까지 도맡아야 했다.
사정이 이렇지만 도움을 줄 사람은 없었다. 넉넉하지는 않았어도 성실한 남편과 큰아들 정호가 있을 때는 버틸 만했지만, 지금은 희망이 없다. 정숙은 자신이 신랑보다 먼저 세상을 뜰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날로 병세가 심해지던 안준구는 목련이 만발한 봄날 안방에서 스르륵 눈을 감았다. 큰아들을 먼저 보내고 6년 만에 그렇게도 보고 싶어 하던 큰아들 곁으로 떠났다.
안 씨의 장례식 때는 정호의 장례식 때와는 비교도 못 할 정도의 적은 조문객이 다녀갔다. 조문객은 하나같이 혀를 차며 승호의 무능과 무책임한 태도를 안타까워했다. 고인이 된 안준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도 6년 전과 같은 말을 했다.
“차라리 저 바깥노인이 더 살고, 작은아들놈이 먼저 죽었어야 안 노인이 편했을지도 몰라. 작은아들놈 탓에 속만 썩다 가는구먼. 안 노인 불쌍해서 어쩌나.”
승호는 사람들이 자신을 나무라며 차라리 먼저 죽었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잘 안다. 남들이 어머니 불쌍하다고 얘기하며 작은아들놈이 얼른 죽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들 말대로 ‘차라리 자살이라도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여러 번 해봤다. 하지만 죽을 용기는 없었다. 자신이 무능하고 불성실하게 살고 있음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팔자가 그래서 어쩔 수 없다’ 라고 생각할 뿐 달리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8
아버지까지 세상을 뜨자 집에는 승호와 어머니 둘만 남았다. 그렇지만 승호는 달라진 게 없다. 남들처럼 힘든 일을 하면서 살아갈 용기가 없다. 어머니가 늙은 몸을 이끌고 살림하며 밥을 챙겨 주지만, 대책을 세우려 하지 않았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도시가스도 없는 달동네 마을에서 고령의 어머니가 연탄불에 찬물로 밥을 지어 먹으며 고생하니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승호는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지만, 아직껏 결혼을 못 했다. 자신도 결혼하고 싶지만, 무능하고 불성실한 승호에게 관심을 주는 여성은 없었다. 승호는 학교에 다닐 때도 여자 친구 한 번 사귀어 본 일이 없다. 자기가 좋아하는 여학생은 여럿 있었지만, 그들은 승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승호는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 결혼하려고 노력도 하지 않았다. 자신과 결혼해 희생하며 살아갈 여성이 없다는 것을 승호는 잘 안다. 그래서 포기하고 그냥 혼자 살기로 했다.
9
그로부터 4년이 흘러 어머니 윤씨는 79세가 되었고, 승호도 서른일곱 살이 되었다. 그러나 승호의 삶은 바뀌지 않았다. 어머니 윤씨의 고된 삶도 이어졌다. 그렇게 고생스러운 삶을 이어 가다가 숙환을 이기지 못하고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승호는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니 그때야 비로소 혼자 남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꼬박 끼니를 챙겨 주던 어머니가 곁을 떠났으니 당장 승호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됐다. 그러나 승호는 어찌 살아야 할지, 삶의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에 대한 아무런 고민이 없다. ‘살다 보면 살아지겠지.’ 이것이 승호의 생각이다.
승호는 어머니 장례식 때도 혼자 빈소를 지켰다. 학교 다닐 때도 유독 친구가 없었고, 사회생활을 안 한 지도 벌써 1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러니 장례식장에 올 손님이 없었다. 그저 몇 명의 친지가 다녀갔을 뿐이다. 장례식장에서 가장 작은 빈소를 사용했지만, 그나마 조문객이 없어 초라하기 그지없는 장례식이다. 몇몇 외가 식구가 조문객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외가 식구들은 승호를 철저히 외면했다.
나이 먹도록 돈벌이를 전혀 안 하고 제 엄마의 등골만 뽑아 먹은 놈이라 생각하여 괘씸하고 한심하게 여겼다. 외가 식구들은 저마다 늙도록 고생만 하다 가엾게 세상을 등진 윤씨에 대한 연민이 들끓었다. 무능한 승호에 대한 원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윤씨의 여동생인 두 명의 승호 이모가 가장 서글피 울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 태어나 호강은 고사하고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골방에서 살다 갔으니 원통해서 어쩌나.”
“그렇게 곱고 착하던 우리 언니! 죽는 그날까지 고생만 하다 갔으니 불쌍해서 어쩌나.”
두 이모는 목을 놓아 통곡했다. 승호는 아무 말 없이 통곡하는 두 이모를 바라보았다. 어머니에 대해 미안하고 불쌍한 마음은 당연하다. 하지만 자신은 그렇게 타고났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승호는 두 이모가 서글피 울며 ‘언니’를 외치며 통곡하는 모습을 보고, 그것이 자신을 향해 “못난 놈”이라고 외쳐 대는 소리란 걸 알았다.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셨으니, 모든 외가 친지와 인연이 끊길 것이란 사실도 직감했다. 앞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친가 식구도 하나둘씩 멀어져 갔다. 만약 형이 살아서 집안을 일으켜 세우고 부모님을 잘 모셨으면 관계가 잘 이어졌으리란 것도 잘 안다.
자신은 남은 일가친척에게 짐만 되고 부담만 되는 존재일 뿐, 아무런 보탬도 줄 수 없고, 그 탓에 철저하게 외면당하고 무시당할 것이란 사실을 승호는 잘 알고 있다. 승호는 생각했다.
‘그래, 난 못난 놈이야. 잘 알지. 공부 잘해서 높은 자리 올라가고,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아야 인정받는 이 나라에서 태어난 게 잘못이지. 공부 못하고, 돈도 못 버는 놈은 대놓고 죽으라는 나라가 이 나라니까. 내가 내일 당장 죽는다고 한들 누가 슬퍼하겠어? 잘 죽었다고 하겠지. 승자만 존중받고, 살아남을 자격이 있는 나라니까. 난 왜 이렇게 무능하고 불성실하게 태어났을까? 능력 있고 성실하게 태어났으면 한평생 존중받고, 인정받으며 살았을 텐데. 또 다들 어머니가 살고, 내가 대신 죽었어야 한다고 말하겠지. 경쟁도 없고, 욕심도 없는 나라에서 태어났으면, 나도 지금보다는 행복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