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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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운문 장원>
창문으로 여린 빛이 들어오면
집 안은 점점 더 하얗게 어지러워졌다
고요한 거실에서 굴러다니는 계절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오후 따위들
할머니는 자꾸만 집 안을 둥글게 돌아다녔다
머릿속에 새하얀 꽃망울들을 피워
낡은 날짜도 이름도 모두 흩날려 버린 채로
한아름 피어난 달력 위 주름진 봄 어지러운 오월의 아카시아
허공을 바라보며 아이처럼 웃는 할머니
눈동자엔 어느덧 희뿌연 꽃잎이 가득했다
개화의 순간마다 마음의 방에 담긴 숨결들
늦봄에 다시금 태어나는 아카시아가
향기를 타고 날아가 먼 기억까지 전하고 있다
버려진 숫자가 어지럽게 휘날리던 우리 집
칸칸이 채워진 커다란 숫자들은
할머니의 남은 생애를 장식하듯
멀건 꽃망울에서 편지가 되어 있었다
머리 위로 흐트러진 봄이 끝없이 쌓여만 갔다
조금씩 투명해지던 할머니는
베개 밑 꽃말의 사랑을 숨겨두고
깊은 꽃내음에 잠겨 새근거리며 잠에 들었다
사실 봄은 가장 어지러운 계절이어서
꽃잎이 엉키고 흩날리다 보면
터져오르는 슬픔과 온기가 있었다
꽃가루 가득 날리던 거실에서
익숙한 아카시아 향이 밀물처럼 흘렀다
햇살은 등이 굽은 채 낮은 자세로 들어오고
할머니의 느릿한 시간이 아프게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