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맵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

한국문인협회 로고 전명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조회수3

좋아요0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이 있다. 조상님의 묘소가 있는 산등성이에 잘생긴 나무들은 쓸 데가 많아 다 베어가서 없고, 볼품없는 등이 굽은 나무만 남아 더 중요한 일을 한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부모를 모시고 효를 다하며 사는 게 당연한 일이고 미덕이었지만, 가족의 유형이 대가족에서 핵가족화되어 가면서 요즘은 모시고 사는 게 현실적으로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함께 산다 해도 사는 데 치이고 시간적 여유가 없다 보니 잘 보살펴 드리는 게 힘들다는 말을 주위에서 많이 듣게 된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우리 친정도 예외는 아니다. 형제자매가 장성해서 모두 부모님 곁을 떠나 가정을 이루었는데 사는 모습이 다양하다. 부와 명예를 누리며 폼나게 사는 큰여동생,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는데 어른이 되어서도 꾀죄죄한 남동생, 나이 든 후 의상 디자인 학교에 들어가 최고의 상을 받고 졸업한 후 미국 사회에서 자기만의 단단한 예술세계를 인정받은 여동생, 천재라고 불러도 될 만큼 깜짝 놀랄 만한 머리를 가졌지만 결혼 전엔 있는 듯 없는 듯해서 눈에 띄지 않아 가족들은 숨겨진 재능을 몰랐다. 그리고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께 큰 사랑을 받고 자란 머리 좋은 남동생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미국에 산 지 오래되어서 동기들에 대해 속속들이 알지 못했다.
그중에서 가장 못나고 키가 작은 남동생이 장남이다. 선산에 덩그렇게 남아 시원한 그늘을 내어주는 등 굽은 한 그루 소나무 같다. 총명하고 재주 있는 자식들은 바쁘지만, 지지리도 못났다고 여겼던 장남이 제사를 지내며 어머님을 지키고 있다.
어머니는 딸을 연달아 낳은 후 몹시 기다렸던 아들을 낳으셨지만 동생은 병약했다. 잦은 설사와 고열로 경기를 일으키며 축 늘어지곤 했다. 부모님은 어렵게 태어난 아들을 살리려고 애쓰셨다. 아플 때면 동생을 업고 병원에 뛰어가거나, 밤에 의사가 왕진 오곤 했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죽을 고비는 넘겼지만 자라면서 어둔해 보였다. 수많은 양약 또는 한약, 아니면 병이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나이에 맞는 신체적, 정신적인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의료 수준이 지금만 같아도 아무 문제 없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부모님의 기대와 달리 성장하면서 느린 아들을 위해 초등학교부터 사립학교에 입학시켰다. 그럼에도 남동생은 성적이 저조했고, 중학교에 진학하는 데는 실력이 한참 부족했다. 그로 인해 집안은 늘 시끄러웠다. 어머니의 지극한 정성으로 동생은 겨우 고등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장남의 미래가 걱정된 부모님은 무리해서 지방 전문대에 진학시켰고 남동생은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자라면서 남동생은 형제들에게 무시를 당했다. 어휘 습득이 부족하다 보니 의사 표현에 서툴고 말을 조리 있게 못했고, 게다가 나이에 맞는 행동을 못했기 때문이다.
형제들이 결혼하여 가정을 이룬 뒤 제각각 살기 바쁘고 형편이 안 되니 부모님은 결국 큰남동생이 모시게 되었다. 당시 동기들이 보기엔 동생이 부모님을 모시는 게 아니라, 부모님이 동생을 돌보는 것처럼 보였다. 똑똑해서 귀여움을 받던 막냇동생은 특별한 날이나 돼야 잠깐 볼 수 있었고, 나 역시 미국에 사니 자식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큰남동생은 전문대 졸업한 후 취직난에 허덕이다 사람들이 피하는 육체노동을 하였다. 약한 몸으로 힘든 아파트 경비원, 은행 경비원 일을 가리지 않고 했다. 그 당시 하층의 막일은 보장이 안 되는 일이었다. 어둔한 언어 실력 때문에 일을 하다 억울하게 해고당해도 대항하지 못했고, 이내 다른 직장을 찾아 헤맸다. 형제들이 남동생에게 부모님이 연로하니 이제는 양로원에 모셔야 하지 않겠냐고 하면 극구 반대하였다. 걷기 힘든 어머니를 노인 학교에 모시고 다녔으며 부처님이 계신 절과 병원에 가는 것까지 남동생이 도맡아 하였다. 쉬지 않고 일하는 부지런한 장남이었다.
그런 동생을 억울하게 만든 적이 있다. 미국에 살면서 서울 전화번호를 계속 갖고 있었는데, 어느 날 통신사 직원이 요금이 연체되어 정지되었으니 빨리 갚으라는 연락이 왔다. 번호가 금시초문이라 통신사에 확인해 보니 원래의 내 전화번호와 더불어 또 하나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동안은 남동생이 전화요금을 냈다고 했다. 남동생이 내 이름으로 또 하나의 번호를 개설해서 사용했다고 생각하고 직원에게 본인의 동의 없이 전화번호를 개설해 쓸 수 있는지 물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고 싶은데, 화만 내는 동생을 통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몹시 궁금해 예전에 계약했던 직원의 명함과 계약서를 겨우 찾아서 연락하여 추적을 시작했다. 내 잘못이었다. 직원이 말하길 서울에 있을 때 임시로 만든 번호가 있었다. 몇 달 뒤에 해지해야 하는데 깜빡 잊고 있었다. 동생은 내 이름으로 연체가 계속되고 있으니 빨리 갚으라는 독촉 우편이 오니 대신 갚아 주었던 건데 내 이름을 도용해 새로운 번호를 개설해 쓴 걸로 오해했던 거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동생이 번호 하나를 만들어 썼다는 고정관념을 처음부터 가졌던 거다. 동생은 본인도 모르는 일이고, 설명을 잘할 능력은 없으니 억울해서 계속 나에게 화만 냈던 거다. 얼마나 억울했을까. 동생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나이가 들면서 더 약해졌음에도 불평 한마디 없이 열심히 일을 한다. 잘나지도 못하고 가진 건 없지만, 인간의 도리를 다하며 사는 모습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칭찬은 못 해줄망정 잠시라도 의심했던 부족한 누나는 한없이 미안하였다.
이제는 등 굽은 나무도 선산을 지켜주지 않고, 못난 자식도 부모 옆에 있으려 하지 않는다. 부모님을 돌보고 모셔야 한다는 가치관이 무너진 시대에 장남 역할을 충실히 하는 동생이 너무나 고맙다. 멀리서 할 수 있는 게 기도뿐이라 미안하고 마음 아프다. 부모님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동생을 진심으로 존경한다. 사회에서 어눌한 말과 행동으로 인해 억울한 대접이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젠 건강도 챙기고 꿈도 이루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광고의 제목 광고의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