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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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대상>
책상을 두드리는 볼펜 소리에 방 밖으로 나가자 거실 책상에 앉아 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허리를 굽히고 편지를 쓰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편지지들에는 황영섭, 김혜숙 같은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내가 어떤 편지들이냐고 묻자 아빠는 그저 연탄 같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만 말했다. 나는 그게 아빠가 연탄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마지막을 지키던 사람이었다. 우리나라 마지막 연탄 공장. 그곳이 아빠의 일터였다. 아빠와 내가 살던 산 위 달동네 근처 공장이었는데, 연탄을 사용하는 집이 점점 줄어들어 달동네 옆에 있던 아빠의 공장만 살아남았던 것이다. 아빠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 전 실험 연탄만 드는 일을 했다. 무거운 삽으로 연탄을 퍼 올려 기계에 채워 넣는 아빠의 뒷모습은 그 어떤 영웅보다 멋있어 보인다고 어릴 적의 내가 생각했다. 공장 속 기계들은 마치 악당처럼 크고 시끄러웠다. 아빠가 그것을 물리치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인지 아빠가 늘 얼굴에 묻히고 오는 검댕이 영광의 흔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빠를 안을 때 나는 쿰쿰한 냄새도 좋았다.
그런데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아빠의 기침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빠의 손에 묻은 검댕과 그 아래의 굳은살, 타고 남은 회색빛 연탄 같은 아빠의 흰머리가 보였다. 이후 언젠가 따라갔던 공장에서 본 아빠의 뒷모습은 아주 작아 보였다. 정말 작아 보였다. 뿌연 연기 속으로 들어가는 아빠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말릴 수 없었다. 띠링, 하고 울린 휴대전화에는 내일까지 수능 특강 교재를 사 오라는 선생님의 메시지가 있었다. 나는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연탄 하나를 바라보았다. 구멍이 뚫려 있는 새까만 연탄을 보자 아빠가 생각났다. 연탄이 아빠라면 구멍은 나 같았다.
연탄 공장이 사라진 건 얼마 전의 일이었다. 우리나라 마지막 연탄 공장이 문을 닫았다. 아빠와 아빠의 동료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아빠가 더 이상 힘든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과 앞으로의 돈 문제 생각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내가 달동네의 남은 겨울에 대해 깨닫게 된 것은 나중의 일이었다.
거동에 불편함이 없고 그렇게 나이가 많은 편이 아니기 때문인지 아빠는 금방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대리운전 일이었다. 이력서에 연탄 공장 일과 운전면허증밖에 적혀 있지 않은 아빠에게 유일한 선택지였다. 대리운전 일을 위해 아빠와 나는 달동네와 그리 멀지는 않은 도심으로 이사를 갔다. 그게 지금의 집이다.
아빠는 이사를 온 이후로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투박한 아빠가 편지를 쓴다는 게 웃겼지만 몇 개월간 꾸준히 편지를 보내는 아빠에게서는 진심이 느껴졌다. 답장 또한 꼬박꼬박 오는 편이었는데, 아빠는 내용과는 상관없이 답장이 온다는 사실만으로 기뻐 보였다. 그런데 그날만은 달랐다. 답장으로 온 편지들을 하나씩 세어 보더니 아빠는 말을 꺼냈다.
“답장이 안 왔네.”
아빠는 그렇게 말하고는 집 밖으로 나섰다. 내가 학교에 다녀오고 나서도 아빠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 저녁을 먹고 잘 준비를 하자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심 걱정하고 있었기에 다급하게 아빠에게로 달려갔다.
“어디 다녀왔어?”
“잠깐 장례식장 좀 갔다 왔어. 얘기 안 하고 가서 미안해.”
아빠는 그렇게 대답하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의문이 생겼다. 갑자기 웬 장례식장. 내가 묻자 아빠가 얘기를 시작했다. 달동네에 사는, 연탄을 자주 배달 가던 집의 할머니였다고. 답장이 안 와서 달동네에 가 수소문해 보고 나서야 돌아가신 걸 알게 되었다고. 혼자 사시던 분이라 아무도 곁을 지켜주지 못했을 거야. 나한테 참 잘해 주셨는데. 아빠는 그렇게 덧붙였다. 아빠는 어쩐지 쓸쓸해 보였다.
나는 그제야 연탄 같은 사람들이라던 아빠의 말이 생각났다. 찾는 사람이 없어 잊혀 버린 연탄. 그렇게 결국 사라져 버린 연탄 공장. 아빠가 보내는 편지들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거실 바닥에 떨어져 있는 편지 하나를 만져 봤다. 어째서인지 온기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