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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무착(無着)의길, 연꽃이 피어나는 곳에서

살면서 한 번쯤은 꼭 만나고 싶은 이가 있다. 말 한마디, 글 한 줄 혹은 스치는 인연 하나로 마음 깊은 곳에 조용히 자리 잡은 사람. 나에게 수보리 스님은 그런 분이었다. 불교에 입문하던 시절 우연히 접한 스님의 시 「삭발」은 내 안의 무엇인가를 일깨우는 울림으로 다가왔다.‘업연으로 태어나 번뇌를 씻어… 초연히 잡초 뽑혀 내려가네.’이 짧은 구절은 오랫동

  • 류재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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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장맛비와 소나기

휴대폰에서 카톡의 울림이 들려온다. 얼른 열어 보니 지인이 보내 온 내용이다. 올해는 여름 소나기를 많이 맞았는데 소나기의 기억이 언젠가는 글감으로 요긴하게 쓰이게 되기를 바란다는 내용이다. 그렇지 않아도 요새는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 고민 중이었는데 이런 글감 힌트를 내게 준 것이 아닌가 하고 고마운 마음에 얼른 답을 한다. 글감으로 장맛비와 소나기를 글감

  • 이준희(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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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어머니의 별자리

폭풍이 지나가고 맞이한 청명한 하늘. 밤새 내리친 비와 바람이 모두 사라진 아침 세상은 한결 가볍고 투명하게 깨어 났다가 어젯밤의 폭풍은 마치 모든 것을 씻어 내고자 했던 것처럼 집과 마당의 모든 잔해를 몰아냈고, 그 뒤로 남은 공기는 더없이 청명했다. 하늘은 흐릿하지 않은 깊고 깨끗한 푸른빛을 드리웠다. 햇살은 부드럽게 땅을 스치고 뒷마당에 서 있는 작은

  • 김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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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팥죽 한 그릇

찬란한 4월의 아침은 눈이 부시다. 창밖을 바라보니 수채화 물감으로 그림을 그린 것처럼 꽃과 나무들의 향연이 끝도 없이 펼쳐지고 있어 조용히 집에만 있기가 너무 아쉬워 벚꽃이 만개한 아파트 가로수길로 나갔다. 떨어지는 꽃잎을 두 손으로 살포시 잡으며 꿈을 향해 달려가던 학창 시절의 추억에 잠겨 본다. 여고 2학년, 체력장(體力章) 연습을 하기 위해

  • 명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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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쪽진머리

친구 아들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고향 부모님이 사시는 집에서 잤다. 요즘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행사를 치르려면 관광버스를 빌리고 음식을 마련하여 친지와 하객들을 모시는 것이 보통이다. 서울까지 가야 되니 일찍 출발해야 한다. 아랫쪽에서 빨간색 버스가 양쪽 방향지시등을 깜박거리면서 올라오는 것을 보니 타고 갈 하객을 부르는 게 틀림없었다. 차에 오르니 사람들의

  • 김종윤(전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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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시간의 노예

많은 사람들이 실속도 없이 날이면 날마다 바쁜 시간에 사로잡혀 스스로 담금질할 새도 없이 세상을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자기의 바쁜 시간이 언제 바람같이 왔다 구름같이 사라져 갔는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그러다 보니 현대인들은 시간에 쫓겨 숨 가쁘게 헐떡이면서도 익혀진 답습을 울며 겨자 먹기로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고, 항상 24시간도 부족하다면서

  • 이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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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오늘 커피잔 속엔

아침 식사 후의 커피 맛은 내겐 삶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은은한 커피 향에 매료된 나의 반쯤 감겨진 눈동자가 어항 속에서 노니는 물고기들의 정겨운 모습들을 뜯고 있노라면 난 어느새 깊고 푸른 바닷물 속으로 잠겨 들곤 할 때가 있다. 끝없이 넓고 깊은 그 바닷속엔 이름 모를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아가고 있다. 그런 물고기들의 생태계는

  • 권영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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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힘내요! 님이여

오늘은 아내가 병원 가는 날이다. 지난달 석 달에 한 번 하는 폐암 정기 검사에서 위장에 검은 점이 발견되었다고 하여 받은 위장 내시경 검사 결과를 보러 가는 날이다. 나는 또 나쁜 결과가 나올까 봐 긴장 속에서 기다리고 있다.2년 전 코로나 유행이 끝날 무렵, 아내는 몇 달간 기침을 계속하였다. 그냥 코로나 휴유증이라고 생각하고 동네 병원에서 기침, 감기

  • 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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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깊은 수를 읽는 인재

2021년 겨울, 나는 그때 서오릉 둘레길을 걸으며 ‘권력과 리더십’에 대하여 줄곧 생각을 했고 이것을 변변치 못한 한 편의 글로 정리하여 모 문예지에 기고하였다. 이것은 그해 겨울이 지나고 곧 새해 봄이 되면 제20대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있기에 새로 선출된 국정의 최고 책임자가 최상의 리더십을 보여주길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었다.서오릉에 잠들어 있는 왕과

  • 김보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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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8 678호 가마솥의 눈물

쇠죽을 끓이는 가마솥에서 눈물이 난다. 가슴이 따뜻해서 흘리는 것일까? 아니면 슬퍼서 우는 것일까? 불에 몸이 점점 달아오르면 속에 품고 있는 온갖 잡것들이 익어서 암소 누렁이의 먹이가 되니 기쁨의 눈물이 흐르는 것이다.어릴 때 자란 시골 옛집 뒷간 옆에는 큰 가마솥이 달린 부엌과 외양간이 있었다. 입구에는 뜨물과 음식 찌꺼기를 모두 모아서 쇠죽을 끓일 때

  • 김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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