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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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만큼 세상에서 도피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또한 확실하게 세상과 이어 주는 것도 없다고 강조한 괴테의 말에서 문학 최고 사상을 이끌어 준 대문호의 문학 경험과 철학이 빛난다.
생각해 보면 문인의 길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어느 길을 걸으며 방황하고 있을까. 그 어떤 그림도 나를 명징하게 끌어 주며 보람으로 이어 주는 것은 상상이 안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관록이 붙어 더 인정받을 수 있는 문학의 길은 얼마나 아름답고, 고맙고 자신의 생을 책임질 만한 길인가. 어린 시절은 누구나에게 꿈과 희망이 새싹처럼 자라는 시기이고 성장하면서 가능성이 보이기도 하지만 영향력 있는 분들의 한마디의 말은 삶의 방향을 확실하게 바꾸어 놓는다. 어린 시절부터 주위 어른들이나 선생님들은 나에게 말을 또랑하게 잘한다는 칭찬과 함께 방송을 하면 좋겠다고 늘 말씀들을 하셨다. 살면서 잊지 못할 장면들이 가끔 힘이 되는데 선생님들은 나에게 “네가 책을 읽으면 귀에 쏙 들어온다.” 하시며 국어 시간엔 중요한 부분은 꼭 내가 읽도록 해 주셨다. 그때부터 책을 보면 소리 내어 읽게 되었고 내 소리는 유전자가 기우는 쪽으로 스스로의 길을 만들어 갔다.
어느 날 책을 읽으며 녹음 연습을 하는데 어머니가 공부할 시간에 라디오를 듣고 있다고 꾸중을 하셨다. 어머니는 나의 소리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로 착각하신 것인데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서 그때부터 더 열심히 녹음을 하며 낭독에 열을 올렸다. 문화재 공무원이셨던 선친께서는 자식 교육에 남다른 관심과 열정을 보이셨다. 늘 아버지의 서재에서는 묵향이 흘러나왔고 나는 엄한 호출에 의해 한쪽에서 조신하게 먹을 갈며 창밖에서 아이들이 놀자고 부르는 강력한 유혹을 물리쳐야만 했다. 엄격한 관심과 사랑 속에서 자라 온 날들, 어쩌면 그 시절의 추억들은 성장하면서 나에게 고급스러운 정신세계에 대한 동경과 문학을 하면서 자연스런 자긍심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난을 치시며 시조창을 읊으시던 품위 넘치던 아버지의 모습, 아들을 얻고자 미리 이름까지 사내로 지어 놓고 기대하셨던 아버지는 지금도 내 안에서 가끔씩 비뚤어진 내 정신에 불호령을 치신다.
화초도 심을 때는 무슨 씨앗인지 잘 모르고 심어도 차츰 파란 잎새 돋을 때 기대 이상의 것이 나올 수도 있고 실망스러워 물도 주고 싶지 않게 되는 것처럼 나는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고픈 욕심이 차츰 생겨났다. 학교생활에서도 늘 앞에 나서서 분위기를 이끌어 가는 것을 좋아했고 남에게 나의 생각을 펼치면서 긍정을 끌어내는 일이 나의 책임처럼 느껴지는 날이 늘어갔다. 시집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녹음도 해 보고 시어가 주는 아름다운 의미를 느끼게 되고 시낭송에 대한 소중한 가치가 얼마나 나의 적성에 맞고 많은 이들에게 힐링이 되는지 절감하게 되었다.
낭송 문학은 나에게 생을 바라보는 고귀한 시선을 만들고 감정을 표출하는 가장 울림 있고 진실한 표현이 된다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 그래서 시작된 시인의 길보다 시낭송의 길이 먼저였고 열심히 활동하다가 어느 순간에 시에 눈을 돌리게 되었다. 좋은 시편들을 접하면서 의욕도 생기고 시로 등단하라는 선배들 이끌림의 권유도 강했다. 시와 병행을 해야 진정한 낭송 문학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 더욱 시를 공부하게 되었다.
1996년 M문학사를 통해 일단 등단을 하고 나서 선명히 보이는 부족한 자화상을 느끼게 되었다. 선 등단 후 공부의 길로 접어들었을 때 사숙하면서 말없는 가르침으로 시인의 길을 일러 주신 선생님들이 계신다. 홍윤숙 선생님은 가끔씩 압구정동 음식점에서 만나 맛난 음식을 사 주시면서 시는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으로 감동을 주는 것이다,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열심히 배워야 한다 하시며 “내 시는 장 시인이 언제든지 맘대로 낭송해도 좋다.” 하시면서 낭송가의 길에 힘을 주셨다. 황금찬 선생님은 시인의 넉넉한 마음 자세와 후배들을 아끼시는 정다운 매너로 늘 뵙고 싶은 선생님이셨다. 하늘나라에서도 인자하신 미소로 시를 쓰고 계실 것이다. 그리고 엉성한 홈질에서 제대로 박음질을 할 수 있게 직접 가르침을 주신 실력과 열정의 문효치 교수님은 제자들의 실력 향상을 위해 지금도 최선을 다하시는 보배로운 분이시다. 동시에 오랜 세월 낭송가로서의 자긍심도 갖게 해 주셨다. 국민의 큰 사랑을 받으시는 유안진 교수님은 잊을 수 없는 여러 번의 감동으로 시와 시낭송 활동에 자양분을 주신 진정 귀한 분이시다. 문단 대선배님들의 가르침은 나에게 어떤 물질의 유혹보다 편안한 삶의 자세로 정신의 부유를 지키게 해 준 가장 아름다운 감사의 대상이다.
시로 등단한 지도 벌써 30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고마운 분들의 가르침이 무조건 등단에서, 제대로 된 글을 쓰고 싶다는 욕구를 갖게 해 준 소중한 기회로 나의 생을 성숙하게 해 준 햇살 같은 분들이다. 또한 젊은 날 다년간 라디오 프리랜서 방송 활동으로 자신감이 생겼고 탄력이 붙어 기업체의 초대 행사 진행, 감성 스피치, 매너 강의를 비롯하여 서울 경찰청 소속 강사로, 서울 수도권의 여러 경찰서 특강과 국방대학원 강사로, 인재개발원, 문화원 등 시낭송 감성 스피치 강의를 한 지도 벌써 사반세기가 되었다.
특히 요즘은 시낭송에 관한 행사들이 곳곳에서 성대하게 펼쳐지고 대중과 친숙하게 소통하며 문학에 대한 친근감으로 발전되고 있다.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란 말처럼 낭송의 발전이 문화예술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낭송도 문학의 한 장르라는 생각으로 시를 이해 분석하며 어문법에 의한 발음과 음성 예술을 연구하는 자세가 병행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국어 사랑의 정신을 지켜 가는 올바른 자세가 낭송의 울림보다 선행되기를 바라며 발전을 기원한다.
낭송법을 가르치며 낭송 문학을 사랑하는 후배들과 아름다운 시낭송 울림을 채색하는 치유의 시간을 만들어 가는 것이 시간이 지날수록 보람의 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현재 한국문협 평생교육원과 강남문화원, 서초문화원, 잔아박물관, 메타문학, 숭실대 미래교육원 등에서 감성 스피치 시낭송 관련 강의를 하면서 후진 양성을 하는 즐거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특별한 자족감의 생활이 되었다.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 시낭송과 감성 스피치 강의로 감동적인 작품을 만나는 기쁨은 나에게도 수강생들과 청자들에게도 즐거운 힐링이 되고 있다.
윗칸과 아랫칸 사이에서/ 복잡한 마음 비우면/ 차분하게 정리되는/ 이어짐의 단계를 만난다/ 내려다보기도 하고/ 올려다보기도 하는 간격의 미학/ 바람도 방향을 잡고 달려가고/ 꽃도 시기를 보며 웃음을 터뜨린다/ 생의 어느 것 하나/ 욕심 없는 것이 없겠지만/ 한 계단, 한 단계 진실한 채움이/ 결 고운 생이 된다는 걸.(장충열, 「계단」 전문)
욕심을 내지 않고 열정과 진실의 자세로 계단을 오르듯 단계를 오르는 성실한 마음이 더욱 절실한 요즘 분위기다. 젊은이들에게 주고픈 시인데 대학로 혜화역 스크린도어에서 많은 문인들이 사진을 찍어 보낸다. 좋은 작품만이 남는다는 말은 언제나 절실하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라는 생텍쥐페리의 명언을 새기며 문인으로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시로써 누군가에게 감동을 준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할까 자문하며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문학의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고 그 높이와 넓이도 아득하지만 향하여 달리는 마음만은 흐트러짐 없이 겸허한 자세로 현재진행형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보여지는 모든 내용들이 문학 나이와 비례하기를 기도하며 오늘도 한 줄의 시를 소중하게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