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산문 장원> 후덥지근한 공기 사이로 천일염의 짠내가 코를 찔렀다. 아빠는 좁은 가마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검게 구워진 도자기들을 밖으로 날랐다. 바닥을 가득 채운 도기들의 절반은 뭉개진 모양이었다. 아빠는 늘 겪는 절반의 실패에 좀처럼 무뎌지지 못했다.원래 어떤 모양의 그릇이었는지 알
- 강혜원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산문 장원> 후덥지근한 공기 사이로 천일염의 짠내가 코를 찔렀다. 아빠는 좁은 가마 안에서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검게 구워진 도자기들을 밖으로 날랐다. 바닥을 가득 채운 도기들의 절반은 뭉개진 모양이었다. 아빠는 늘 겪는 절반의 실패에 좀처럼 무뎌지지 못했다.원래 어떤 모양의 그릇이었는지 알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운문 차하> 어머니, 그 별에서 기형도를 만나셨나요?구겨진 편지들이 바닥에서 나뒹군다문장들이 심전도 곡선의 걸음걸이처럼 뚝뚝 끊기고 돋아난 마침표가 빠르게 부서진다 영정사진 속 웃고 있는 당신검은 정장을 입은 그림자들소녀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목울대를 타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운문 차상> 나는 종이의 여백을 찾아다닌다마음을 연습하기 위해 어떤 종이든 마음을 담으면편지가 되어버리지여백이 가득한 종이에두서없는 마음을 무한히 적어 내린다 흑연이 묻은 연필로진심을 받아쓰다 보면손과 종이에 흐릿한 먹구름이 번진다연습하기 다행이라는 안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고등부 운문 장원> 창문으로 여린 빛이 들어오면집 안은 점점 더 하얗게 어지러워졌다고요한 거실에서 굴러다니는 계절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오후 따위들 할머니는 자꾸만 집 안을 둥글게 돌아다녔다머릿속에 새하얀 꽃망울들을 피워낡은 날짜도 이름도 모두 흩날려 버린 채로한아름 피어난 달력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금상> 나는 편지에 내 슬픔 한 조각을 붙인다 봉투를 열어편지지를 꺼낸다펜으로 편지에 글을 적어 본다 엄마에게 글자를 또박또박 써도편지는 내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내 글씨는자꾸만 뭉개진다썼다 지웠다를 반복한다 엄마,나도 딸이 처음이라서엄마도
제36회 마로니에 전국 청소년 백일장 <대상> 책상을 두드리는 볼펜 소리에 방 밖으로 나가자 거실 책상에 앉아 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허리를 굽히고 편지를 쓰고 있었다. 자주 있는 일이었다. 편지지들에는 황영섭, 김혜숙 같은 이름들이 적혀 있었다. 내가 어떤 편지들이냐고 묻자 아빠는 그저 연탄 같은 사람들에게 보내는 편지라고만 말했
다 저녁때, 막 누나가 차려 준 밥을 먹고 있는데 식탁에 던져 둔 핸드폰이 울린다. 아니다. 핸드폰 벨소리처럼 귀에서 울리는 속삭임이다. 숟갈을 입에서 떼기 무섭게 지상은 얼른 귀를 쫑긋 세운다.“오빠?”“지하?”“뭐 해, 빨랑 오잖고?”“밥 먹고 있는 참이야.”“밥이 급해? 나보다도?”“아니, 그래.”황급히 숟갈을 놓은 지상은 지하의 말대로 빨리 달려갈
하늘 가득한 별은 어디서 살다가 왔을까. 그녀가 사는 동안 잔별들이 무리 지어 황금물결이던 날은 처음이었다. 손에 손을 잡은 별은 금빛 날개를 펼쳐 어둠을 힘껏 밀어냈을 것이다. 긴 머리 나풀대던 여자와 귀에 이어폰을 꽂은 남자는 죽도봉 연자루에서 환호를 지르며 하늘을 향해 두 팔을 흔든다.“하늘이 우릴 축복하려나 봐, 우리 결혼할까?”여자의 말에 남자의
1신입사원 안승호가 부서로 배치된 이후 김인문 부장은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안승호는 기본적인 업무 능력이 없다. 김 부장은 안승호만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8명의 부서원을 대상으로 일일이 업무 분담을 했지만, 그에게 맡긴 일은 도무지 불안하다. 가장 쉬운 일을 가장 적게 주었지만, 그조차 실수 연발이다. 안승호가 단독으로 업무를 맡아 진행할 능력이
폭음과 함께 GP는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 버리는 것이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나는 내 몸이 부서져 허공에서 분해되는 그런 비통한 심정이었다. 아, 혈기 왕성했던 젊음이 혼신을 다해 열정을 쏟아 몰입했던 곳 250 GP. 오래되어 낡은 노트 속에는 젊었던 시절, 전쟁으로 사라져 흔적만 남은 아무도 없는 외가 마을을 가보고 느끼게 된 얘기들이 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