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한 오후에 배달된덜 말라 비릿한 잉크 냄새가 가시지 않은 신선한 책 한 권을 꺼내든다.누구냐서툰 춤솜씨에 볼레로*를 틀어 놓고아직도 토슈즈*를 고치는 너는나는 너무 가벼워 불안한개나리 입술 끝에 앉은 봄바람 손을 잡고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깃발에 꽂혀 덩실대는 꽹과리 소리를 따라 나선다.그래, 언제부턴가 달짝지근하게 풍기며&nb
- 이기찬(성남)
나른한 오후에 배달된덜 말라 비릿한 잉크 냄새가 가시지 않은 신선한 책 한 권을 꺼내든다.누구냐서툰 춤솜씨에 볼레로*를 틀어 놓고아직도 토슈즈*를 고치는 너는나는 너무 가벼워 불안한개나리 입술 끝에 앉은 봄바람 손을 잡고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 깃발에 꽂혀 덩실대는 꽹과리 소리를 따라 나선다.그래, 언제부턴가 달짝지근하게 풍기며&nb
혼돈의 세계불확실성의 세상희미한 안개 속의 현실 모든 규칙이 깨어지고 있다 익숙한 하루하루가멀미가 나니불안한 기억들은촘촘한 그물망을 짠다 훗날 봄날의 화사한 빛이희망의 창을 두드리면새로운 세계의 문이 열릴 것이다
내 영혼은 파도가 되어바닷속 깊은 뻘 속에 묻히고떨어져 나가고 흩어지고흘러 다니고 뭉개지고고기 떼가 물고 다니고내 영혼은 파도가 된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보고 싶은 곳한라산은 백록담은성산일출봉 천제연폭포 우도는 천연동굴은 언제 갈거나그래도 가야 해 봐야 해내 영혼은 파도가 되어찰짝 찰짝 부딪치며용두암 절리대 이어도라도 가야 해 먼
한때 나는가지마다 일이 매달린 나무였다 돌봄과 책임과 역할의 이름들 나를 부르는 소리마다가지를 뻗듯응답하며 살았다 어느 날하나씩 손에서 풀려났다 아이들은 제 길로 떠나고 내가 붙들고 있던 일들도 늦가을 잎처럼조용히 마당을 떠났다 처음엔꽃이 지고 난 가지처럼 허공에 남겨진 느낌이었다쓸모가
뽀드득세상이 처음으로 귀를 여는 소리 아무도 밟지 않은 순백의 길 위에 첫걸음을 새긴다 밤새 소리 없이 내려온 눈이아픈 기억을 부드럽게 덮어준다 시리던 겨울바람이포근한 숨결로 변해굳은 마음을 녹이며설렘 한 줌을 심는다 ‘첫눈 쌓이면 만나자’던그 약속 하나 꺼내 들고 지나온 길 모두 눈 속에 묻어두고&nb
달 고개 너머 환한 웃음복숭아 익어 가는 외딴 농장달덩이 같은 환한 얼굴이파란 하늘에 가득 담긴곱고 해맑은 접시꽃 어디서 날아온 씨앗 하나가어느 집 담장 밑에 뿌리를 내리고 해마다 이맘때면 그리움의 꽃으로 피어나는가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비가 오면 젖으면서도오직 한 사람만을 기다리는 수정의 꽃 아, 오늘도내 마음의
오래 전 내 안에 있었다고 착각을 했다볼 때마다 내 속으로 들어와그것이 때로 궁금하였지만긴 외로움이 눈을 가렸다 새벽부터 물안개가먼 산과 가까운 나무를 깨우고 있었다 순간이 세월이었다그 속에 나무 위 까치집도나도 있었다 그 봄, 바람 자리마다만 가지 생각이 흔들리는데, 너는물 속에 비치는 산꽃으로 화장을 했다 너의 봄 여
벽이라는 게 그렇다허물면 그만인 것을스무 날 혹은 몇십 년을끌어안고 내처 통곡을 하는 이것이 벽이다 적막으로 달을 키웠으니 그럴 만도 하지변방을 이는 바람 같은 내내 풍설인 무소식 이것이 벽이다.
산이 벙그러지고 있다초록은 넘치며분홍은 번지며봄이 벙그러짐을 부추기고 있다 부추기는 것들능선이 넘쳐 봉우리가 되고골짜기가 넘쳐 개울이 된다 벙그러짐 속에서 아이들은 자라고벙그러짐 안의 웃음소리 시냇물처럼 흘러가고 오월은 넘쳐 유월이 된다 너와 내가 벙그러짐으로 소매를 걷어 붙이듯이 햇볕이 넘쳐 칠월이 팔월의 종아
모기가 엥∼가느다란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날아갔다 새벽 두 시는 조용한데, 고요하지는 않다 천장에 붙은 검은 점 하나움직일 기미가 없다아니 나를 노리고 있는지 모른다 점 하나에 집중한다빨고 빨리고죽고 죽이고 가렵다물린 자국에서 모기 소리가 들린다 침대 머리맡에 놓인 시집얇고 단정한 문장들이 손에 쥐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