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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를 닮았어요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정순(강릉)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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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는 아빠를 쏙 빼닮아서 아빠가 얼마나 귀여워해 줬는지 몰라요. 기분이 좋아서 아빠의 어깨를 안마해 드린 적도 많았어요. 어떤 날에는 아빠의 발을 씻겨 드리기도 하고 구두도 반짝반짝 윤이 나도록 닦아 드렸죠.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딸이라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 주셨죠.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정아와 아빠 사이는 좀 서먹해지기 시작했어요. 딱딱하고 웃지도 않는 아빠 곁에 다가가고 싶지가 않아요. 아주 작은 일에도 벌컥 화를 내고 큰소리치는 아빠가 무서웠어요. 아빠는 정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고 잘랐어요. 이럴수록 정아는 아빠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가 쌓여만 갔어요. 어제도 밥을 먹는데 밥을 좀 흘렸다고 아빠가 무뚝뚝한 소리로 한마디 했어요.
“정아야, 밥 먹을 때 흘리면 어떻게 하니? 지저분해 보이잖아. 어서 닦아.”
아빠는 명령하듯이 얼굴을 찌푸리며 큰소리로 말했어요. 정아는 그 순간 기분이 확 상했어요. 맛있게 먹던 밥도 먹기 싫어 숟가락을 놓고 싶었어요.
“애가 그럴 수도 있지. 주눅 들게 왜 자꾸 화내듯이 말해요?”
옆에서 안쓰럽게 바라보던 엄마가 또 말했어요.
“제발 정아에게 부드럽게 다정하게 말 좀 해줘요. 정아 소심한 거 몰라요? 그렇게 대하면 정아가 상처 받는다는 말이에요.”
“허참, 부드럽게 이야기하면 얘가 말을 듣겠냐고? 당신은 좀 가만있어. 밥상머리 교육을 시키려면 제대로 시켜야지. 맨날 오냐오냐 하면 애가 제대로 자라겠냐고.”
아빠는 아빠대로 벌컥 화를 냈어요. 그때부터 엄마 아빠가 다투기 시작했어요. 정아는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갔어요. 자신 때문에 엄마 아빠가 싸우는 것이 싫어 귀를 꼭 막았어요.
“정아야, 속상했지?”
한참 뒤 정아 방에 들어온 엄마가 말했어요.
“아빠는 왜 저래?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정아는 속상해서 엄마에게 하소연을 했어요.
“그러게 말이다. 쯧쯧.”
엄마는 속상하다고 했어요. 정아 엄마는 아빠가 나이도 많은데 직장 일이 힘들어져서 신경이 예민해졌다고 하면서 이해해 달라는 듯이 말했어요.
“그래도 난 아빠가 싫어.”
정아는 거의 날마다 잔소리하고 짜증내는 아빠가 곁에 있는 게 불편하기만 할 뿐이었어요.
정아는 학교에서도 점점 말하기가 싫어졌어요. 아니 말하라고 하면 왠지 가슴부터 두근거리고 불안했어요.
어느 수업 시간이었어요. 선생님은 갑자기 친구들을 둘러보며 한 명씩 발표를 시켰어요. 정아는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면 발표를 시킬까 봐 일부러 고개를 숙이고 책만 뚫어지게 바라보았어요.
“정아야, 그다음 읽어 봐.”
정아는 가슴이 쿵쿵거렸어요. 손도 다리도 심하게 떨리고 얼굴도 화끈거렸어요.
‘큰일 났네. 어쩌지?’
정아는 발을 동동 구르며 울고 싶은 마음이었어요.
‘책도 제대로 못 읽는다고 친구들이 놀리면 어쩌지?’
정아의 머릿속에는 온통 불안한 생각이 가득했어요. 정아는 발표를 시키는 선생님이 얄미웠어요.
“정아야, 어서 읽어 봐.”
선생님이 다시 말했어요. 그제야 정아는 겨우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었어요. 중간쯤 책을 읽어 가는데 숨이 차고 목소리가 막 떨렸어요.
잠시 숨을 고르는데 정아는 선생님과 눈이 딱 마주쳤어요. 정아는 몹시 창피했어요. 선생님과 아이들이 자신을 우습게 볼까 봐 두려웠어요.
정아는 다시 크게 숨을 내쉬며 책을 읽었어요.
“이제 그만.”
정아는 선생님의 지시에 자리에 앉으면서 길게 숨을 내쉬었어요. 수업이 끝나자 정아는 이제 마음이 좀 편안해졌어요.
‘휴, 다행이다.’
하지만 걱정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어요. 수업 시간만 되면 발표를 해야 할까 봐 늘 가슴이 조마조마하고 마음이 불안했어요. 정아는 용기를 내어 발표 잘하는 민주에게 고민을 털어놓았어요.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 네가 신경 쓰는 만큼 아이들은 별로 신경 안 써. 그냥 마음 편하게 말하면 돼.”
민주는 남 눈치 보지 말고 마음 편하게 말하라고 했어요.
“으응… 그래도. 난 남들 시선이 너무 신경 쓰여서.”
정아가 말을 얼버무리자 민주는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톡톡 치며 말했어요.
“넌 너무 소심해서 탈이야. 잘할 수 있으니 걱정 좀 내려놔.”
정아는 민주 말이 조금 위안이 되었어요.
“정아야, 절대로 주위 사람 너무 신경 쓰지 마. 알았지?”
“그, 그래… 알았어.”
집에 돌아온 정아는 휴대폰 녹음기에 자신의 목소리가 어떤지 들어보고 싶었어요.
녹음된 정아의 목소리는 하나도 떨리지 않았고 또랑또랑했어요. 자꾸자꾸 들어봐도 자신감이 넘치는 목소리였어요.
‘혼자 있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남 앞에서는 떨까?’
정아는 고개를 흔들었어요. 그래도 책 읽는 연습을 해서라도 발표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는데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들어가도 되겠니?”
엄마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엄마야?”
정아가 방문을 열려는데 엄마와 아빠가 먼저 방으로 들어섰어요.
“정아야, 뭐 하니?”
“아니, 그냥…. 언제 들어오셨어요?”
정아는 엄마하고만 눈을 마주치고 아빠는 슬쩍 보기만 했어요.
“아까 들어와서 네가 큰 소리로 책 읽는 소리 다 들었어. 요즘 네가 학교에서 발표할 때마다 많이 긴장해서 스트레스받는다는 걸 다 들었어. 똑똑했던 네가 왜 그래 되었는지 한참 동안 생각해 봤는데 다 이 아빠 때문인 것 같았어.”
아빠가 정아를 쳐다보며 말했어요. 정아는 갑자기 아빠가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맞아. 이게 다 아빠 때문이야.”
솔직히 이렇게 외치고 싶어도 말이 나오지 않았어요. 이렇게 말하면 아빠가 또 큰 소리로 야단칠 게 뻔해서 말하기가 망설여졌어요.
“정아야, 아빠가 돌아가신 할아버지 기질을 닮아서 그래. 살다 보니 힘든 일도 많이 생겨 아빠도 모르게 성격이 날카로워졌던 것 같아. 너에게 마음의 상처를 많이 줘서 아빠가 반성할게.”
호랑이 같던 아빠가 이렇게 달라지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어요. 옆에 서 있던 엄마는 정아를 토닥여 주며 말했어요.
“정아야, 너도 알지? 너 아빠가 벌컥벌컥 화는 잘 내도 속정은 깊다는 걸. 아빠도 이제 좋은 아빠가 되도록 노력한다니 믿어 보자. 우리 서로 잘 지내 보자.”
“엄마, 아빠, 난 다정한 사람이 좋다고요. 이제 앞으로는 부드럽게 말해 주세요.”
정아는 용기를 내서 말했어요.
“아,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
아빠의 얼굴이 빨개졌어요.
“지금 정아 네 모습을 보니 아빠를 꼭 닮았구나.”
“뭐? 뭐라고요? 제가요?”
“그래. 너도 가끔 엄마에게 아빠처럼 소리를 버럭 지를 때가 있어.”
“엄마, 내가 언제?”
“넌 잘 모르겠지만 분명 그렇다니까. 하여튼 내가 보기엔 둘 다 닮은 데가 너무 많아.”
엄마가 서로 잘 지내라 하자 정아는 얼굴이 빨개지면서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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