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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주인 잃은 빨랫줄

언제나 활짝 펴 있는 양어깨에벗어준 옷가지 척척 받아 걸고그저 좋아라임 앞에서 궁둥이 흔들며 춤추었지양팔 늘어지도록 많은 옷가지곱게 곱게 잘 펴 말려온 손놀림긴 작수발 곧추세워 가며바람에 떨어질까 꼭 잡고 있었지우리 식구 오면 순순히 내어 주고말없이 칭찬받던 그 옛날이 그리워이제는 저 안방의 옷걸이도 나 같을까기약 없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바람 부는 날이면

  • 최인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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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할머니의 시간

한나절 밭일 마치고할머니가 집으로 간다누가 심었는지 무성한 능소화가토담 너머 골목길을 기웃거린다종일토록 들리는 건 바람 소리 새 소리 손주들 웃음소리가 그리운 할머니해진 바지 땀에 전 적삼호미처럼 굽은 등에시간이 켜로 쌓였다젊은 날 일어나면하늘 보고 날씨를 살폈지만지금은 땅 보고 헤아린다허우적허우적 걸어가는할머니의 골목길능소화 붉은 입술이 낭자하다

  • 이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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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그들은 법을 논하지 않는다

달달한 꿀은 누대의 내력을 이어가는마법의 영약이다‘오직 제 일에 충실한’DNA에 새겨진 불문의 법 꿀벌 한 마리는계보를 지키는 하나의 원소일 뿐설을 맞는 것처럼집 한 덩이가 온 통으로 들썩인다날벌레의 집은세밀하게 구성된 단단한 입법체法의 낱자들이 분주히 잉잉거린다고래 심줄 같은 질긴 힘으로유전자를 지키는저 법엔 이유가 없다파르르 떨리는 가는 날갯짓

  • 문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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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진달래

칼바람 부는 밤이면두 귀를 열어두고그대 따사로운 손길 기다렸다오산허리 붉게 휘감아두견새 울음 토하거든내가 다녀간 줄 아시오그대의 귀한 사랑 아로새겨방방곡곡 산하에 뿌려두겠소타오르는 열정 선혈로 대신하리다하늘거리는 손짓은 사랑이오가냘픈 떨림은 나의 순정이라오잠시 왔다 흔적 없이 가는 나를 잊지 마시오사랑하는 그대여 먼 훗날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그대 곁에 다시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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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어설피 울다

봄부터 다져온 공력힘껏 목을 뽑아 외쳐보지만득음하지 못한 소리꾼의 외침처럼아직 어설프다.꼬끼오-올가락은 서툴고음은 짧고목소리는 변성기 소년처럼 탁하다.갓 솜털을 벗은 날개로그동안 갈고 닦은모든 지식으로 퍼덕거려 보아도허공에 걸린 횃대는 높아만 보인다.옆집에 사는얼굴도 모르는 수탉은노련한 곡조로 길게 목청을 돋우어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꼬끼오∼ 오∼

  • 김경남(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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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하늘을 건너

열 시간이 훌쩍 넘은 하늘길고단함도 잠시 황홀하게 펼쳐진 아름다움의 극치 책이나 영화에서만 보았던 수많은 예술품거리를 온통 작품으로 도배한그 무엇으로도 표현이 무색할 도시들유럽이 무슨 경우랴스스로 선진국이라 으스대며유색인종이라 얕보던 콧대 높은 귀족의 나라에서 하나같이 소매치기 주의라한땐 그랬지 우리도무법천지였던 오래 전 암울했던 날들“눈

  • 신세균(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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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1 669호 마지막 명찰

한 달 동안 기다리던너의 검정 명찰받아 걸어주니 반갑고고맙기 그지없는데작은 명찰 앞에 눈물 글썽이네돌아올 수 없는 나라면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세계에입학해서 등록한 정식 증거라니, 그래도 아들의 명찰이 가장 어여쁘네갓난아기 살갗처럼 빛살 반짝이네눈부신 네 이름자 위로어른거리는 대천사의 위용송근후 미카엘, 스쳐가는성당 유리창 위 스테인드 글라스의&nb

  • 송태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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