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있던 자리엔언제나 바람이 있었다. 개울은 흐르고 있었지만그날만은물살이 숨을 죽인 듯했다. 그녀가 튕긴 돌 하나,물 위에 맴돌다내 안에 오래 번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발끝에 머문 바람이말보다 먼저 떨었다. 햇빛이 그녀의 머리칼에 내려앉고 맑은 눈동자가물빛처럼 스며들었다. 그녀가 웃을 때
- 전우석
그녀가 있던 자리엔언제나 바람이 있었다. 개울은 흐르고 있었지만그날만은물살이 숨을 죽인 듯했다. 그녀가 튕긴 돌 하나,물 위에 맴돌다내 안에 오래 번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발끝에 머문 바람이말보다 먼저 떨었다. 햇빛이 그녀의 머리칼에 내려앉고 맑은 눈동자가물빛처럼 스며들었다. 그녀가 웃을 때
가없이 광활한 밤하늘에영롱한 빛으로외롭게 떠 있는 달님아 불 꺼진 창문을 들여다보며침실을 오렌지색으로 적시는달빛에 잠 못 이루어전전반측하는 밤 시리도록 외롭고저리도록 그리움을너만은 외면하지 않고내 마음을 알아주겠지 밤새도록 애연하게울어대는 풀벌레 소리에열꽃처럼 피어나는내 마음의 한 자락을흐르는 달빛에 띄워 너에게 보낸다.
시냇가 돌 오랜 세월에닳고 닳아서 둥그러지듯너와 나 모난 마음 세월에 부딪히며 모난 곳 깎이고 깎이어 끝없이 깎이어 너와 나 이젠 화나는 일에도웃음 지울 수 있다네세월이 못난 나를 둥글게 둥글게 다시 만들었다네흐르는 물이 아니어도흐르는 바람과 구름이모난 곳 모두 앗아가 버렸다네
수백 년 세월 동안 지치지 않고 푸르름을 지켜온 사철나무도 바다 위에 떠오르는 달을 보고 득도하려 여기에 서 있나 보다 깜깜한 밤하늘에 환한 달 보면 행여나 이 몸도 깨침을 얻을까 먼 바다 바라보며 설레다가밀물이 들면 가는 길 막힐라서둘러 뭍으로 향한다 아무래도부처님의 가피(加被)를입을날은&nb
눈이 온다는 소설엔눈은 아니 오고소국이 피더니 오늘에야 첫눈이 내려 흰 이불처럼 소국을 보드랍게 덮어준다 손녀 닮은 소국 눈 이불 덮고 졸고 소국 닮은 손녀눈 온 화단에서 신난다
괜찮아요 이젠내게만 있던 아픔이 아닌 걸 내 눈물이 너무 커서그 누구의 눈물도 보이지 않았죠 그런 찬바람이라도 업고 가니 어느새 등줄기 따스한 걸음입니다 당신 길에도 그랬을 텐데어디서 잠시 쉬었나요 이젠 다 괜찮아요겨울을 견딘 가지가 새싹 피우듯 마주 보며 얘기해요우리가 웃음꽃 전부 전부 피워요
청포도를 매만지다가푸른 송이 사잇길에서육사를 만났다 하이얀 세마포를 입은 그가 은쟁반에 모시 수건을마련해놓고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오랑을 기다리는 세오녀처럼 주렁주렁 포도알 너머바다 빛 하늘을 담을선한 눈빛의 귀인이 오기를 넝쿨 사이마다 그림자가 내리고 바닷바람에 향기는 익어갔지만 풍문이었는지
아메리카노 한 잔에 오롯이 담긴 가을풍경 빨갛게, 노랗게, 파랗게 그리고… 가을을 찾아 떠나온 사람, 사람들단풍 속에서무엇을 바라보고 있을까 첫가을과 끝가을은소리도 없이익을 만큼 익어흔들리는데 화들짝 풍경에 젖어버린 나는 어디로너는 어디로우리는 어디로가고 있을까
골목에 숨어든 바람이 추운 밤 모퉁이를 붙들고 있다바람은 젖은 등처럼 휘어지고 시멘트 바닥에 한숨이 깔린다한숨은 보이지 않아도 무겁고 길 위로 천천히 흘러가 사람들 창문마다 서성이며 잠든 얼굴들을 만지고 간다 막차가 끊어진 정류장엔 바람이 남긴 한숨이 고인다흐릿한 등불만이 떨리듯 서 있고 한숨은 길을 잃은 아이처럼 아무도 모르는 골목을 떠
무슨 일이 있었길래갑자기 저리 얼굴을 붉히시나이까 길고 긴 여름날에도차분하게 냉정을 잃지 않으시더니 그 뜨거웠던 여름날에도오로지 초록만을 변치 않고 간직하시더니 여름 다 가고뜨거움도 다 사라졌는데 서늘한 바람 불어세상의 모든 사물들이 차분히게 냉정한 이성의 기운을 찾아가고 있는데 무슨 일이 있었길래오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