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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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터미널은 저마다 시간 속을 서성거리는 사람들로 소란스럽다. 어딘가로 떠나려는 사람,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 누군가는 크고 허름한 가방을 또 누구는 앙증스런 가방을 손에 든 채, 출발과 정착이 엇갈리는 생의 이면(裏面)을 가슴에 안고 왔다 갔다 서성대고 있었다.
막 출발하려는 버스 앞으로 검버섯 덮인 추레한 노인이 휘청휘청 걸어온다. 굽은 허리를 지팡이에 의지한 채 힘겹고 궁상스런 모습. 노인의 주름진 손에도 낡고 헤진 가방이 들려 있다. 꾸부정한 등 뒤에서 어른거리는 신산했을 지난 세월의 무거운 흔적들. 노인을 밀칠 듯 깡충 뛰어오르는 아가씨. 큰 키에 하이힐을 신은 그녀는 화려하고 아름답다. 어깨에 멘 작은 핸드백은 고급스럽다.
손에 표를 쥔 사람들이 하나둘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주춤거리며 서 있던 나도 낯선 사람들을 따라 올라탔다.
달리는 차창 사이로 낯선 마을들이 주마간산으로 쓱쓱 지나갔다. 꽤 오랜 시간 버스는 바람처럼 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슬그머니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낯선 길은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앞섰다.
“환승하라고 했는데 가르쳐 주십시오.”
버스표를 힐끔 보던 기사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다음 정류장에서 내려요, 지금 가면 마침 하루 한 번 운행하는 버스가 있을 겁니다. 운 좋습니다.”
“여기서 내려요.”
갑자기 기사의 큰소리에 서둘러 내렸다. 저만치 시동을 거는 버스가 눈에 보였다. 손을 들고 뛰기 시작했다. 뛸 때마다 무릎이 욱신거렸다. 차 안에는 늙수그레한 노파 두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오르는 나를 낯설다는 눈길로 바라볼 뿐, 승객은 철 지난 중절모를 쓴 노인 한 분 그리고 내가 전부였다.
“어디 가요?”
노파 한 분이 말을 걸었다.
“실시리 가는데 먼가요?”
“종점까지 가시네, 초행이요, 그 오지를 무슨 일로 가시우.”
여행 삼아 왔다는 내 말에, ‘거기 뭐 볼 게 있다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별일이라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렇게 찾아간 마을 실시리. 야트막한 산자락과 오붓하고 넉넉한 들녘이 어우러진 소박하고 정겨운 마을이었다.
낯선 마을로 들어서자 처음 나를 반긴 건 고요였다. 기다렸다는 듯 정갈한 고요가 안개처럼 작은 마을을 덮고 있었다. 이 고요한 풍경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마치 시간마저 정지된 마법의 마을에 들어선 듯 갑자기 묘한 매력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산바람이 지날 때마다 초록 소음이 들려왔다. 사삭, 사삭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소리들. 흐드러지게 핀 길가 여릿여릿한 들꽃들. 그 사이로 쑥부쟁이, 도깨비바늘, 쑥방망이, 산박하, 오이풀, 달개비와 여뀌들. 마치 휘파람을 부는 듯 쓰르륵∼ 휘이∼쓰륵, 풋것들이 풍겨 오는 알싸한 작은 숨소리들. 그동안 도심의 일상에 가려져 잊고 지냈던 풍광이 길을 막고 있었다.
걸을수록 저절로 스며드는 고요함.
‘이상하다. 깊은 산속 암자에 들어섰나?’
일상의 소란함도 내가 묻혀 온 도시의 속진까지 쓸어내릴 듯 고요한 마을의 숨결이 낯선 나를 반겨주었다. 부유한 도시의 불빛도 치열했던 일상의 끝도 이곳은 존재하지 않는 듯. 피곤이 발끝부터 녹아내린다.
그때였다. 어디선가에서 고소한 향이 마치 봄날 편서풍처럼 솔솔 후각을 자극하며 바람에 실려 오고 있었다. 나를 부르는 듯. 이른 새벽 빈속으로 나선 탓일까, 걷잡을 수 없는 허기가 몰려왔다.
저만치 골목 끝에 고즈넉한 기와집 한 채가 보였다. 새막이도 없이 낮은 강담이 정갈하게 손을 맞아들이고 있었다. 살짝 열린 대문, 무작정 성큼성큼 들어갔다. 주인을 찾자, 한참 만에 나이 지긋한 여인이 나와 의아한 표정으로 낯선 길손을 바라보고 서 있다.
“식당을 찾는데 알려주십시오.”
“이곳은 식당이 없는데 어쩌지요?”
여자는 난처한 듯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잠시 기다리라며 여자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찬은 없지만 들어오십시오.”
소박하고 정갈한 밥상이었다. 물김치와 배추김치, 취나물과 다래순 나물, 두부조림. 시래기로 끓인 말간 된장국, 한 숟가락을 입에 넣자 깊고 묵직한 된장 맛이 허기진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수저를 놓는 순간 온기와 함께 푸근한 맛이 느껴졌다.
식사가 끝나자 여자가 작은 소반을 들고 나왔다. ‘이게 뭘까’ 눈을 사로잡는 낯선 음식이었다.
“드셔 보십시오.”
“떡인가요?”
“서여향병입니다.”
“서여향병이라니요?”
“서여는 마를 뜻하고 향병은 향기로운 떡이란 의미지요. 200여 년 전 조선 시대 한 지혜로운 여성이, 위와 장을 편안하게 다독여 주는 마를 꿀과 잣을 이용해 만든 떡이랍니다. 뽕잎떡, 매화떡을 비롯해 궁중에서 즐겨 먹었다는 시간의 향기가 깃든 귀한 우리 음식이지요.”
하나를 입에 넣자 아삭, 혀끝에 오묘한 단맛이 느껴졌다. 눈을 크게 뜨자 여자가 슬며시 한마디를 건넸다.
“마침 서여향병을 만드는 중이었습니다, 보시겠습니까?”
뜻밖의 제안을 했다. 호기심에 선뜻 따라 나섰다. 뒤란 작은 방에서 중년의 여자가 갓 쪄낸 마를 꿀에 담고 있었다.
“저는 어머님께 배웠기에 제 딸아이에게도 전수 중입니다.”
방금 꿀에 담갔다 꺼낸 마를 가지런히 놓으며 한 개를 집어 준다. 바로 쪄낸 마에선 은근한 온기와 아삭거리는 단맛이 짙게 배어 있었다. 이어 한지에 잣을 넣고 밀대로 조심스럽게 민 뒤 소창 위에 놓고 곱게 다지자 잣의 기름이 빠져나가며 보슬보슬해지는 잣가루들. 그 위에 곱게 빻은 찹쌀가루를 묻혀 기름에 지져 낸 후 잣가루를 입히기 시작했다. 밋밋하고 수수한 음식에 곱게 간 잣가루를 입히자, 은은하고 기품 있는 여인처럼 음식에서 품위가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잣가루를 뿌리는 단정하고 차분한 모녀의 정성은 마치 사제가 성채를 올리는 듯 경건해 보였다. 온 사방에 퍼지는 잣가루의 고소함은 배가 돼 더 짙은 향을 풍겼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아, 내 발길을 잡던 고소함이 바로 이 잣향이었군요.”
마와 잣가루가 빚어낸 이 소박하고 귀한 음식에서, 옛 선조들의 슬기로운 지혜가 느껴져 왔다. 먼 옛날부터 할머니가 딸에게 다시 손녀에게 구전된 서여향병. 옛것을 지켜 나가는 모녀의 모습이 가상했고, 뭔가 이 마을의 첫인상과 닮아 있었다. 우리는 조상들이 남겨 주신 오래된 음식들이 주는 정감을 곧잘 잊고 산다. 조상들의 손맛과 정성이 깃든 오랜 음식들은 추억과 그리움을 부른다. 옛 음식들이 주는 그 온기가 그립다.
그사이 서서히 이 작은 마을에 해가 지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하룻밤 재워 주실 수 없을까요.”
나이 든 여자들은 때때로 뻔뻔스럽다. 낯선 여인의 몰염치에 여자가 난처한 표정을 짓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밤 골목길에서 어머니를 만난 듯 반가웠다. 우연은 가끔 우리에게 소중한 만남을 선사해 준다. 고소한 향에 이끌려 찾아온 이곳에서 오래전 음식과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있었다.
해가 지고 저녁밥상이 차려졌다. 취나물, 다래순 나물 사이에서 명란젓과 김이 새침하게 놓여 있었다. 갓 구운 김은 씹을 때마다 바삭거리며 혀끝에 들기름의 고소한 향이 따라왔다. 들기름에 볶은 산채들도 고소하고 부들부들해 목젖을 잘 넘어가고 있었다.
“이 깊은 산골에서 귀한 명란젓을 주셨군요.”
순간 명란젓과 함께 갑자기 한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 낯선 여자가 몇 번인가 차를 함께 마시자고 베란다 창문을 열고 말했다. 그때마다 선뜻 다가서지 못하고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온종일 윤슬처럼 빛나던 햇살이 느슨해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슬며시 눕는 석양녘, 슬그머니 집을 나섰다. 아파트 놀이터를 몇 바퀴째 돌고 있었다. 아무도 나를 아는 체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습관처럼 놀이터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때였다.
“잠깐 들어오세요, 1층이니 따뜻한 생강차 한잔 하세요.”
그날따라 온종일 누군가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웠던 날이었다.
“폐를 끼쳐도 될까요?”
“폐라니요, 제가 부탁드리는데요.”
순간 울컥 가슴을 밀고 올라오는 기쁨인지 슬픔인지 형언키 어려운 뜨거운 무엇이 밀려오고 있었다. 이 낯선 도시에서 누가 나를 이리 반겨 준단 말인가, 고마운 쪽은 오히려 나였다. 어쩌다 나는 이 낯선 도시로 스며들어와 이름도 모르는 이웃을 만나고 있는 것일까.
강남 8학군에서 20여 년 가까이 살아오는 동안, 두 아들은 스스로 잘 자랐다. 큰아이가 학사 졸업 후 미국 대학원의 국비장학생으로 떠났다. 그리고 삼 년 후 막내아들마저 형 따라 유학을 가버렸다. 그럴 즈음 남편의 정년퇴직과 나의 40여 년 교사 생활도 한꺼번에 찾아왔다.
누군가 그랬다.
퇴직은 한 번쯤 지나는 인생 여정의 한 구간. 열심히 살아온 과거에 대한 훈장이자 또 다른 미래를 위한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아침이면 칼같이 집을 나서던 남편은 멈춰 버린 일상 앞에서 모든 시간을 놓은 듯, 꼼짝도 않고 누워만 있었다. 아침마다 출근길에 나서는 사내들 사이에서 자신만 떠나온 듯 못 견뎌 했다.
무미건조한 일상, 비켜 가는 모든 것과 마주할 때마다 몸과 마음이 시려 왔다. 마음에 구멍이 생겨 나고 있었다. 이제는 세상의 속도가 아니었다. 천천히 살아가는 노년의 속도를 배워야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생의 그 내밀한 이치를 미처 익히기도 전에 길을 잃은 듯 헤매고 있었다.
“환경을 바꿔 봐.”
주위에서 미리 떠나온 지인들의 친절한 권유로 찾아온 신도시, 벌써 십 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남편은 나이가 들어갈수록 밤마다 화장실 출입이 잦아졌다. 동네 병원을 다녀온 후 대학병원에서 종합검진을 받겠다고 했다. 예약 날짜가 다가오자 남편은 아이처럼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검진 하루 전날이었다. 새벽녘 ‘쿵’ 소리가 들렸다. 달려가 보니 남편이 침대에서 떨어진 채 누워 있었다. 한마디 말도 못 하고 남편은 그렇게 어이없이 떠나가 버렸다. 갑자기 들이닥친 불행은 손도 쓸 수 없이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인생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더니 참 허망했다. 한동안은 세상의 온갖 일을 놓고 넋을 잃은 듯 누워만 있었다.
중매로 만나 서로 자신의 임무를 성실히 이행했을 뿐 애틋하게 살지도 못했다. 어쩌면 부부란 남남끼리 만나, 자식 낳고 그 자식들 따뜻한 밥 먹이며 어린 자식들 재롱 보던 때가 부부의 봄날이 아니었을까. 돌아보니 남편은 세상에서 가장 든든하고 편안한 의자였고 비바람과 추위를 막아 주는 따뜻한 모자였었다.
그랬던 남편이 사라졌다.
주위에서 건네는 위로도 따뜻한 조언조차 불편하게 느껴졌다.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 누군가 건네는 한마디 한마디가 가시 같았다. 삶은 왜 고비고비마다 모지락스럽고 악착스러울까, 마치 굶주린 짐승처럼. 홀로 전전긍긍하는 사이 불면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일까. 태양이 사라지고 어둠이 내려오는 시간. 남편처럼 서서히 몸을 감추기 시작했다. 초저녁부터 나는 남편을 기다리듯 잠의 신을 기다린다. 밤이 깊어갈수록 밤의 여신이 속울음을 토해내자, 기다렸다는 듯 잠의 신은 불면이란 사나운 짐승으로 돌변했다. 매일 밤 찾아오는 그 손님은 치명적이었다. 나는 우리에 갇힌 채 해가 지고 밤이 오는 시간이 점점 두렵기 시작했다. 잠의 신 히피누스는 이리도 잔인하고 냉정할까? 밤마다 잠을 부르는 나의 목쉰 애소가 처창(凄愴)할수록, 내 머릿속은 온갖 생각과 기억들로 마치 대낮 거리를 활보하듯 소란스러웠다. 흡사 야시장처럼. 밤마다 내 몸을 짓누르는 온갖 생각과 기억들. 그때마다 불면이란 사나운 짐승과 어둠 속에서 웅얼거리며 싸워야 했다.
어둠 속 창틈으로 서서히 새벽 달빛이 스며들고 있었다. 흩어지는 어둠이 만들어내는 푸르스름한 그사이 사이로 새벽빛이 뿜어내는 하얀 여백. 그 낯익은 새벽 풍경과 다르게 불면에 시달리다 지친 내 몸은, 마치 벗어 놓은 빨래처럼 꿉꿉하고 축축했다.
“나는 통 잠을 잘 수가 없어, 밤이 무섭고 너무 고통스러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안쓰러운 듯 바라보던 박 선생이 입을 열었다.
“서향 씨, 우리가 어미로 지어미로 교사로 뛰어다니던 시절 생각나, 그 시절 쏟아지던 잠. 마치 연인의 입술처럼 달콤했었지. 그랬던 우리가 지금은 불면을 호소하다니 참 세월이 많이 흘러갔네.”
그 시절 잠은 나에게 정말로 알뜰하고 다정한 연인 같았다. 그 살갑던 잠이 사라졌다. 그뿐이 아니었다. 조용하고 평온했던 내 일상도 어느새 앗아가 버렸다. 남은 것은 오로지 홀로 살아내야 하는 텅 빈 삶만 존재했다. 밤이면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달빛조차 남편이 찾아온 듯 반가웠다. 어둠 속 적막을 헤치고 지나가는 서늘한 바람소리까지도.
돌보아야 할 부모님들도 다 떠나고, 이미 장성한 아이들도 자신들의 둥우리를 찾아 가버린 빈 둥지. 그 허전한 곁을 TV가 유일한 가족이자 다정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온종일 군입인 채 보내는 날이 허다했다. 저녁이면 마른 군입에서 풀풀 단내가 났다. 몸과 마음이 정착을 못 하고 부유하는 탓일까?
‘방귀가 잦으면 똥 싼다’는 속담처럼 어느 날부터 소소한 병고가 찾아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눈이 흐려져 눈 수술을, 눈 수술이 회복될 즈음 멀쩡하던 이가 빠져 버렸다. 그다음에는 우연히 넘어져 허리 수술을 받고 말았다. 갈수록 누추해지는 육신, 어느 사이 쏘삭쏘삭 따라다니는 잦은 질병들. 평생 내 것인 양 홀대한 내 육신이 갈수록 ‘피곤해, 이제는 고단하다고’ 아픈 신음을 하고 있었다.
“어제 잘 잤어? 밥은 잘 먹고 있지?”
그때마다 박 선생은 수시로 드나들며 따뜻한 음식과 계절 과일을 사 들고 찾아왔다. 그녀는 나에게 살아낼 용기와 응원을 보내는 듯, 참 살뜰하고 다정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사람을 귀히 여길 줄 알고 환대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 주는 따뜻한 사람이었다.
“따순 데 맘 붙이고 살면 살아진다, 동사무소, 복지관에 가 봐. 정 선생님 넘어져 고관절 수술 받으셨어.”
“그 건강한 분이 어쩌다….”
며칠 전 화장실에서 넘어진 그분은 우리 모두 늘 존경했던 선배 선생님이었다. 노인들은 한 발 한 발 움직일 때마다 마치 녹아가는 유빙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매 순간이 위태로웠다.
“하루는 길고 한 달은 왜 그리 빨리 가는지.”
노인들은 말한다. 하루는 그림자 같고 또 하루는 허깨비 같은 노년의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이 존명(存命)보다 더 힘들다고. 혼자 겪는 외로움이 더 무서운 탓일까. 안부 물어주는 전화가 자식처럼 고맙고 반갑다고.
“어서 오세요, 우리 차 같이 마셔요.”
베란다 창을 열고 서 여사가 큰소리로 나를 부르고 있었다. 매번 함께 차 마시자고 부르던 여인이었다. 번번이 거절하기도 민망해 벨을 눌렀다. 거실로 들어서는 순간, 식탁 위에 밥상이 차려져 있었다.
“식구가 계신 모양인데 갑자기 들어와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마침 딸네가 시댁에 일이 있어 가고 저만 남았어요.”
“차나 한 잔 얻어먹을까 했는데 이게 무슨 일입니까.”
“초면이라니요, 그동안 줄곧 지켜보았어요.”
“네.”
아연질색 놀라는 나를 그녀는 식탁 앞으로 잡아당겼다.
조촐한 밥상, 들깨미역국을 한입 넣는 순간이었다. ‘와’ 탄성이 입 안에서 소리쳤다. 어린 미역을 들기름으로 볶아 사골국물과 들깻가루를 섞은 그 미묘하고 깊은 맛. 미역국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본다. 생김새처럼 손맛 역시 결이 곱고 정갈한 여인 같았다.
“제가 가끔은 명란젓 같아요.”
“왜 하필 명란젓이라니요.”
“제 남편은 사시사철 밥상에 명란젓이 없으면 마구 화내곤 했어요.”
갓 구운 간 고등어 가시를 발라 내 밥 위에 얹어주며 말했다. 고슬고슬한 흰쌀밥 그리고 기름이 줄줄 흐르는 푸르스름한 간고등어. 까칠했던 마른 입안에 침이 고인다.
“남편은 외출하셨어요?”
대답 대신 잠시 무거운 침묵이 식탁 위로 안개처럼 흘러내리고 있었다.
“명란을 써는 순간 불현듯 저를 보는 것 같았어요, 토막토막 잘라진 모습이 붉은 울음을 참고 사는 저처럼. 왜 그런지 꽉 찬 명란알 하나하나가 갖가지 슬픔을 안고 사는 우리네 인생 같고.”
살짝 말끝을 흐렸다, 다시 이어갔다.
“참 이상하지요. 명란에 깨소금을 얹고 참기름을 뿌리자 고소한 깨소금과 참기름 향이 마치 할머니, 할머니 부르며 달려와 안기는 손주들 같아요. 그 아이들 덕택에 그럭저럭 살아갑니다.”
긴 이야기를 마치자 그녀는 ‘휴우’ 긴 한숨을 내뱉었다. 갑자기 말을 잃은 내 마른 입 속은 서걱거리기만 했다. 무거운 침묵의 공기가 다시 내려앉고 있었다. 산만한 세월 탓인지, 그녀가 힘에 겨운 듯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식사가 끝나자 일어서려는 나를 그녀가 다시 주저앉혔다.
“따뜻한 차 한 잔 드시고 가셔요. 감백차가 노인들에겐 좋다고 해요.”
찻잔을 드는 순간 진한 감초와 대추 향이 코끝을 스쳐갔다. 회한이 가득한 눈빛으로 서 여사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긴 한숨을 내쉬었다.
15년 전 일이다.
슬하에 딸 셋을 두고 중산층 가정으로 그럭저럭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동창회에 갔다. 어린 시절 짝사랑하던 친구를 만났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날이 갈수록 남편의 태도가 이상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번 두 번 점점 외박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급기야 이혼을 요구하고 나섰다. ‘홀로 사는 그녀를 그냥 둘 수 없어’ 한사코 세 딸과 함께 울고불고 매달렸지만 할 수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이혼을 하고 지금은 둘째 딸네 어린 손주들을 돌보고 있다고 쓸쓸히 웃었다.
“글쎄 자식들도 내 슬하에 있을 때만 자식 같아요. 출가한 자식들은 타인보다 더 냉정하고 이기적이더군요. ‘엄마는 큰딸인 나를 챙기고 도와줘야지 왜 둘째를 챙겨?’ 걷잡을 수 없이 대들면서 ‘엄마도 아니야, 다시 안 봐’ 절연을 선언하며 간 후 몇 년째 소식이 없습니다. 옛날부터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더니 제가 그 꼴입니다.”
세 딸이 자라는 동안 유독 둘째 딸은 스스로 잘 커주었다. 제때 챙겨 주지 못한 미안함이 따라다니는 딸이었다. 세 딸이 결혼을 하고 보니 첫째와 막내는 넉넉한 편이나 둘째는 가난한 시댁 탓에 살림이 늘 곤궁했다. 그런저런 이유로 세 딸 중 둘째를 따라왔다.
지금은 큰딸과 남처럼 지낸다고 털어놓았다.
‘손주들이 어느 정도 크면 작지만 제 집으로 갈 겁니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도 입 안에선 들깨미역국의 미묘하고 깊은 맛이 돌아다녔다. 지금쯤 아내와 자식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떠난 남자는 어디 가서 이 깊고 감칠맛 도는 들깨미역국을 맛볼까?
말을 마친 그녀가 힘에 겨운 듯 연신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그녀의 처연한 눈빛에서 간절함과 결연함이 스쳐 지나갔다. 남편의 외도가 불러온 이혼 앞에서 뼈마디가 마디마디 찢기고, 그 찢긴 상처에선 피고름이 시도 때도 없이 철철 흘러내렸다. 세상천지에서 오직 자신만 여인이고 아내인 줄 알았지 남편의 그 우렁잇속을 어찌 상상이나 했던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쓰러지려는 순간 자신만 쳐다보는 세 딸이 있었다.
“맛있는 음식만 보면 오직 남편과 자식들 입만 입인 줄 알았어요.”
세상의 모든 어미들이 다 그렇듯 자신의 입과 육신을 얼마나 하대하며 살았던가. 운명의 굴레를 담담히 받아들인 한 여인의 절망과 한이 마치 갓 구운 검푸르접접한 간 고등어 껍질을 닮아 있었다.
어느 사진작가는 말했다.
실타래처럼 이리저리 엉킨 전신주를 보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고. 그 이유는 엉켜 있을수록 멋진 사진이 나오기 때문이란다. 우리네 생도 풀 수 없는 실타래처럼 상처와 아픔이 절절할수록 더 곡진한 생을 살아낸다고 생은 말한다.
얘기를 듣는 내내 시간을 달래며 시간과 싸우면서 서서히 짠 기가 스며드는 간 고등어처럼. 자신의 참담하고 비루한 운명 앞에서 시간과의 싸움을 견디며 살아내고 있는 서 여사의 모습이 밥상 위의 간 고등어와 자꾸 겹쳐지곤 했다. 인생에 정답이 없듯 고통도 떨쳐낼 수 없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절망이 어떻게 삶의 위로가 되고, 상처가 어찌해 우리네 생의 텃밭이 되는지.
밤이 깊어 가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소화가 안 되며 뱃속이 거북하고 더부룩했었다. 갑자기 배가 뒤틀리며 꼼짝할 수 없었다, 밤새 보깨다 기어이 새벽녘 구급차로 응급실에 실려 갔다.
“입원 수속하세요, 이삼 일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각종 검사가 끝나자 며칠 지켜보자며 또 입원실로 실려 갔다. 어쩌지, 아이들도 없는데 덜컥 겁이 났다. 같이 밥을 먹는 사이를 식구라 부른다고 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은 남보다 못할 때가 많다.
입원실은 노인들로 만원이었다. 구급차는 연신 노인들을 실어 날랐다. 살기 바쁜 자식들은 자주 올 수 없는 세상으로 변해 있었다. 대다수 노인들은 자식들이 찾지 않는 암흑지대에서 홀로 병든 몸을 이끌고 병마와 싸우고 있는 이 슬픈 현실.
“결혼한 아들은 해외동포라 부른답니다. 핸드폰 볼 때마다 나는 진저리 쳐요. 여행 가자며 공항에 노모를 버리는 자식, 등산 데리고 가서 늙은 아버지를 두고 오는 자식. 그뿐입니까, 부모 몰래 집 팔고 하루아침에 부모 노숙자 만드는 자식. 끝까지 간 세상입니다.”
옆 병상 할머니의 넋두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를 탓하랴, 격변의 현대사를 몸소 피땀으로 일궈낸 산업 역군들에겐 분초가 생존이었다. ‘잘살아 보세.’ 내 아들딸들은 가난과 헐벗은 세상 살지 말라고, 악착같이 이를 악물었다. 지금 노인 세대들은, 독일 광부로 간호사로, 먼 바다 원양어선을 타고, 사막의 모래바람과 싸우면서 수로를 만들어 나라의 기틀을 세운 산업 전사들이었다. 그 번성한 나라를 만든 그들은 왜 지금 잉여 인간처럼 부유하며 떠돌고 있을까? 어쩌면 잘 키운 자식들만 믿고 노후 대책도 내 몸 건강도 돌보지 않은 방심한 죄일까. 아니면 너희들은 무조건 잘 살아야 한다고 몽니를 부린 결과인가.
가난과 함께 태어난 노인 세대, 태어나기 전 풍요를 먼저 몸에 익힌 젊은 우리네 자식들. 어느 사이 사는 방식도 세상도 달라졌다. 젊음이 우리 노력으로 얻지 않았듯, 늙음도 우리 잘못으로 받은 것은 아니었다. 가난한 나라에서 이제는 당당히 선진국이 된 대한민국은 옛날부터 동방예의지국이란 소리를 듣던 민족이었다. 그랬던 우리가 왜 점점 늙고 병든 부모들을 무의무탁하게 만드는 세상으로 변했을까?
누군가 그랬다. 지금은 불확실성의 시대라지만, 가정과 학교 그리고 직장에 어른이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멘토가 부재한 시대는 쓸쓸하다고.
병원에서 퇴원하고 돌아오던 날이었다. 이틀 만에 병원 문을 나서는 나를 부축하며 박 선생이 어두운 목소리로 뜬금없는 제안을 했다.
“며칠 몸 추스르고 여행을 떠나 봐.”
“글쎄….”
“나도 35년간의 교사 생활, 교단을 떠난 처음 느낌은 마치 알을 깨고 나온 듯 자유를 만끽했지. 그 해방감도 고작 삼 개월. 다시 보이지 않는 큰 창살 속에 갇혀 버리고 말았어, 정해진 무료한 시간을 살아내기가 참 막막했지. 집과 학교밖에 모르고 살아온 세월. 스스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사실을 인지하는 순간 뛰쳐나가 오지를 찾아다니기 시작했어. 만 권의 책을 읽는 것보다, 천 리를 걷는 게 더 큰 공부가 된다는 말이 있어.”
“어디로 갈까.”
“실시리가 괜찮을 것 같아.”
“실시리, 거기가 어딘데…?”
“내가 처음 물어물어 찾아간 곳이야. 관광지도 아니고 오지 속 오지야. 6·25전쟁도 다 지나간 후에 알았다고 해.”
잠자리에 들기 전 잠시 주인 여자와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어찌 이 실시리를 찾아오셨어요?”
“오지 여행하는 친구가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마을 이름이 실시리인가요?”
“오래전 하늘나라 신(神)이 내려왔다 그만 시간을 잊고 머물다 갔다는 전설이 내려오지요. 실시리에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 있어요, 그곳에 신이 내려오셨답니다. 마르지 않는 샘물 곁에는 신을 모시는 사당이 있어요. 그 전설 속 신 탓인지, 그 후부터 이곳은 홍수도 한겨울 폭설도 없이 자연재해를 모르고 산답니다.”
어린 시절 이런 비슷한 전래동화를 읽은 적이 있었다. 말 타고 내려온 신선이 술 마시려 안장을 얹어두고 탕건을 벗어두었다는 ‘안장바위’와 ‘탕건바위’, 술 취해 잠든 신선을 깨우려 말이 울었다는 ‘마병바위’ 이야기. 나는 지금 신이 내려와 시간을 잊고 놀았다는 전설 속 실시리에 와 있다.
“고향이십니까?”
“네.”
실시리는 특별히 눈에 띄는 비경도 없는 전형적인 산간 오지마을이었다. 오직 기이한 것은 다시 하늘로 돌아간 신을 기리는 작은 사당과 그 앞에 배롱나무가 한 그루 서 있을 뿐. 사당도 배롱나무도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오래된 모습이었다. 길을 걷다 마주치는 사람들은 해맑고 순수한 미소와 함께 친절했다. 낯선 사람도 마치 마실 온 이웃 아낙처럼.
왜 신조차 실시리에서 시간을 잊었을까?
이곳은 바쁜 현대사회와 동떨어진 모습으로, 기계보다는 자연에 순응하면서, 자연 본래의 모습이 빚은 분위기대로 자연사회적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나무 하나에도 정령이 깃들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
마치 다른 세상이 흐르는 듯, 아주 묘한 기운을 느꼈다. 세상 속 소음이 정지된 듯 실시리는 무궁의 시간만 존재하는 듯. 옛날 모습 그대로 땅과 집을 지키며 대를 이어가는 고즈넉한 모습이 곧 풍경이었다. 그 풍경은 허기진 배로 저녁밥상을 받았을 때. 이제 막 끓인 여린 배춧국에 밥을 말자, 밥알 사이사이 밴 순한 된장의 온기같이. 나를 감싸안아 주었다. 유년 시절 외갓집에 온 듯 푸근하고 따뜻한 착각마저 들었다.
해 뜨면 일어나 해지면 자고 마치 신이 시간을 잊었듯 밤이면 자리에 눕는 순간 그 지긋지긋했던 불면도 모른 채 깊은 잠에 빠져들곤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언제나 회색빛 세상이었다. 그러나 이곳은 내가 살던 세상과 다른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얼핏 단순해 보이지만 자연의 순리 따라 오랜 시간 다져진 깊고 단단한 내공과 속내가 엿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심에서 미처 느끼지 못했던 한가로운 여유. 도심의 일상이 급류라면, 신도 시간을 잊고 쉬어갔다는 실시리(失時里)의 일상은 졸, 졸, 졸 느리게 흘러가는 시냇물이었다. 다른 세상을 보는 듯, 내가 사는 세상과 단절시켜주는 느낌까지 들었다.
저녁녘 주황빛으로 물드는 노을 속 작은 마을은 신비로웠다. 하루 이틀 날짜가 지나면서 오랜 시간 나를 항시 짓누르던 두려움과 불안의 그림자들조차 친절하고 상냥해져 갔다. 경직돼 있던 심신도 조용히 정렬되는 듯 서서히 풀려가는 것 같았다. 말없는 자연이 사람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신비한 경험과, 이 무위의 시간 속에서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을 잠시 잊고 있었다. 시간을 잊은 신처럼.
실시리가 조용히 전하려는 이 오련히 빛나는 고요하고 호젓한 침묵의 함의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것은 치유와 구원을 구하는 인간들에게 몸과 마음을 정화해주는 때 묻지 않은 순정(純正)하고 순백한 고요가 아닐까.
졸졸 흘러가는 실시리의 시냇물이 ‘앞으로는 세상의 시간을 쫓지 말고 너만의 시간으로 살아가라고’ 소곤소곤 속삭인다.
시간이 멈춘 듯, 무언의 위로를 건네는 실시리의 고요, 어쩌면 하늘로 떠난 신이 ‘비우면서 내려놓으며 시간도 잊은 채 쉬어 가라고’ 애써 나를 이곳까지 부른 것은 아닌지.
처음 이 마을을 들어서는 순간 느꼈던 그 낯설음은 어디 가고,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던 듯 실시리가 친밀하고 정답다. 자나 깨나 몸을 짓누르던 불안과 근심도 사라지는 듯 가벼워지고 있었다.
“그게 뭐예요?”
“서여향병입니다. 가시거든 실시리를 소개하셨다는 친구분과 나눠 드십시오. 참 서향 씨라고 하셨지요,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상서로운 서(瑞), 향기로운 향(香), 서향이란 고운 이름을 지어주셨지만, 이름처럼 슬기롭지도 향기롭게도 살지 못한 탓에, 저는 항시 부모님께 죄스럽고 부끄러운 여식입니다.”
‘어서 오세요’ 불쑥 찾아온 낯선 손님을 향해 손 흔들던 들꽃들이 ‘잘 가세요’ 산바람 따라 수줍은 인사를 한다. 신(神)도 시간을 잊고 쉬어갔다는 실시리가 가물가물 내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다시 내가 사는 회색빛 세상으로 돌아왔다.
소연한 저녁나절, 산보 겸 집을 나서는 길이었다. 갑자기 후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급히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안녕하세요.”
누군가 다가왔다. 서 여사였다. 손에는 작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동안 뵙지도 못했고, 어디 다녀오셨어요.”
“네, 어디 가셔요?”
“아, 학원 가요.”
“손자들 데리러 학원 가시는군요.”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요양보호사 자격증 시험 준비하고 있어요.”
“잘 하셨네요.”
“저는 그동안 어머니와 아내로만 살았지, 제 시간을 잃어버리고 살았어요. 이제라도 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 처음인 듯 살아보려 합니다.”
말을 마치자, 늦었다며 자신만의 시간을 향해 황급히 뛰어가는 그녀의 뒷모습 위로 황금빛 노을이 떨어지고 있었다.
여행은 마음에 흔적을 남기는 정서라 했다. 신도 시간을 잊었다는 실시리, 그곳에서 나 역시 잠시 시간을 잊은 채 마음에 흔적을 남기고 돌아온 길이었다. 마치 다른 세상을 다녀온 듯.
도시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잠시잠깐 순수한 자연 속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와 치유를 경험한 여행이었다면 역설적일까? 나는 지금 또 다른 실시리 여행을 꿈꾸며, 쏟아지는 주홍빛 석양 속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