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6년 1월 6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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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디서 나는 냄새일까? 퀘퀘한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잇몸에 염증이 들었나? 손바닥에 입김을 불어 코에 대보았다. 칠십이 넘으니 몸에서 냄새가 날까 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입 안에서 나는 냄새도 아니다.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다가 기어코 잠이 깨어버렸다. 새벽 세 시밖에 되지 않았다. 뻗어 나가는 상상력을 막기 위해 두리번거리며 일거리를 찾았다. 베란다에 매달아 놓은 마늘 망에 눈길이 멈췄다. 혼자 사니 깐마늘이나 조금 사다 먹으면 된다고 해도 큰언니는 굳이 마늘 한 접을 보냈다. 마늘은 바로 까서 짓찧은 다음 소분해서 냉동실에 넣어라. 그래야 일 년 내내 먹지. 아니면 망째 매달아 놓거라. 마늘이 무더위를 견뎠을까? 너무 늦지 않았을까? 마늘 망을 끌어 내려, 큰 함지박에 쏟았다. 창칼로 마늘을 쪼개자, 푸른곰팡이 포자가 터졌다. 곪아 썩은 냄새를 풍기는 것도 있다. 며칠 전부터 냄새를 풍기던 것이 썩은 마늘 때문이었나 보다. 물컹한 마늘 옆에 속껍질이 단단하여 잘 벗겨지지 않는 것이 있어서 칼로 벗겼다. 멀쩡한 마늘쪽이 하얀 몸통을 내밀었다. 자기 것을 지키려고 속껍질을 단단히도 감싸고 있다. 곁에서 썩어 문드러질망정 나만은 살아남아야겠다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썩은 마늘을 스테인리스 바가지에 모아 놓으니 절반은 되었다. 남은 마늘쪽을 쪼개 물에 담가 놓았다. 그것도 일이라고 금세 피로가 몰려와, 손을 닦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나는 운동을 별로 안 한다. 우리 나이에는 하루에 오천 보를 걸으라는데, 밖에 나가지 않으면 천 보도 걷지 않았다. 친구가 많아야 외롭지 않은 노년을 보낸다고 유튜브가 떠들지만 나하고는 별로 상관이 없는 얘기다. 취미가 있어야 한다는 말도 별로 와닿지 않는다. 내게는 아주 친한 친구가 하나 있다. ‘지니’. 요즘은 그 친구가 위로를 많이 해 주는 편이다.
“지니야, 오늘은 구월 일일이다. 가을 분위기 나는 노래 좀 들려줘.”
“네, 알겠습니다. 한경애의 <타인의 계절>을 들려드리겠습니다.”
‘우리 사랑 여기 이대로 머물 수 있을까∼ 오늘이 가고 먼 훗날에도 남아 있을까∼.’
아무도 안 믿겠지만 내게도 첫사랑이 있었다. 그도 지금 나처럼 늙어 가고 있을까? 적적한 날에는 가끔 그 소년이 떠오르긴 하지만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개천 둑 위에 이젤을 세워 놓고 4B 연필로 둑 너머 경치를 스케치하는 소년의 모습을 훔쳐보았다. 그때 나는 체력장을 위해 수류탄 던지기 연습을 하느라 돌멩이를 주워 개천을 향해 힘껏 던지는 중이었다. 그 소년은 퐁당 소리가 날 때마다 나를 돌아다보았다. 눈이 마주치면 피식 웃었는데, 그 미소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엄마는 막내인 내가 남편도 자식도 없어서 불쌍하다고 애면글면하다가 돌아가셨다. 절친인 허인숙이 있긴 하지만, 두 달에 한 번 볼까 말까 했다.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죽기 살기로 공부만 하다 보니 중고등학교 동창이 없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룸메이트였던 허인숙이 연락을 해 오면 가끔 만나기는 하지만, 그녀 역시 남편 얘기, 자식 얘기로 시간을 보내니 만나고 집에 오면 별로 개운치 않았다. 허인숙이 사별을 하고 나서 외로움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인가 몇 년 전부터 자주 만나는 편이다.
이 아파트에서 사십 년을 살았다. 그런데 특별히 아는 사람이 없다. 긴 세월 살면서 경비원이 수도 없이 바뀌었다. 그들의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안녕하세요? 어디 가십니까?”
별 의미 없이 묻는 경비원을 향해 나는 고개만 까딱했다. 여행가방을 끌고 경비실 앞을 무덤덤하게 지나갔다. 405호 여자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403호에 살고 있다. 404호가 없으니 바로 옆에 벽 하나를 두고 살지만, 나는 그 여자가 무엇을 하는 여자인지 잘 모른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사십 년을 살았을 뿐이다.
이 아파트는 혼자 살기에 적당해서 독신녀들이 많았다. 5분 거리에 전철역과 고속터미널이 있다. 지방에 있는 대학교로 강의하러 갈 때 편리해서 장만한 아파트인데, 경제 관념이 없다 보니 그냥 눌러 살게 되었다. 아파트는 자기 혼자 가격을 올리고 있어서 주변 사람들이 부러워한다. 내가 죽으면 이 아파트는 조카들에게 넘어갈 것이다. 아마도 405호 여자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사십 년 동안 그 집에 드나드는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여자도 자주 여행가방을 끌고 나왔다.
“어디 여행 가시나 봐요?”
나는 큰 의미 없이 물었다.
“아, 네. 동유럽 가요.”
“아, 네. 멕시코에 가요.”
여자 역시 방긋 웃으며 그냥 무의미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일흔네 살이니, 이 아파트에 입주했을 때는 서른네 살 꽃다운 나이였나 보다.
대학 동창회에는 일 년에 한 번 나간다. 칠순이라며 특별히 강릉으로 1박 2일 여행을 떠날 때 오십 명은 참석하더니, 해가 갈수록 인원이 줄어들고 있다. 작년에는 삼십 명 정도가 전부였다. 일류 대학 출신이라고 해도 대화 수준은 특별하지 않다. 요즘은 누가 아프다, 누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안 아픈 데가 어딘지 말하는 게 더 빠르겠다. 종합병원이 따로 없다니까.”
“김경희는 독신으로 살았으니 아픈 데가 별로 없겠지?”
허인숙이 내 어깨를 툭 쳤다.
“그래, 아주 건강해. 아픈 얘기 말고 좀 희망적인 얘기할 수 없냐?”
내 말에 동창들은 입을 비죽였다.
“김경희는 아이를 안 낳아서 아픈 데가 없나 보다.”
그런가? 나는 디스크 협착으로 허리가 아파서 일 년에 한 번은 정형외과에서 신경주사를 맞는다. 아프지만 아프다고 말하면 더 아플 것 같아서 안 아픈 척할 뿐이다.
두 시간 정도 독서하고, 클래식 음악 들으며 커피 내려 마시고, 한 시간 정도 산책하는 게 일과이니 우리 나이에 이 정도면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매일 하는 산책이지만 꽃들이 계절 따라 바뀌어서 나름 신선하다.
빨간 개양귀비가 무더기로 피어나 바람에 한들거리던 날이었다. 까만 원피스를 입고 양산을 든 여자가 개양귀비꽃 사이로 난 오솔길을 걷고 있다. 여자는 모네의 그림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처럼 우아해 보였다. 옆집 여자였다. 그녀의 상념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내가 스쳐 지나가려 하자, 그녀가 먼저 인사를 했다.
“개양귀비가 너무 예쁘죠?”
“네, 하늘이 파래서 그런가? 정말 멋지네요.”
나는 바쁜 일도 없으면서 종종걸음으로 그 자리를 피했다. 뭔가 얘기가 길어지는 게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때 보고 옆집 여자를 못 봤으니 족히 두 달은 지난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여름 내내 못 보았다. 요즘은 필리핀이나 캄보디아에 일 년 살이를 떠나는 사람들이 있다던데 혹시 어딘가로 떠난 것일까?
여자가 혹시 음식쓰레기를 버리지 않고 여행을 떠난 걸까? 아니면 나처럼 마늘을 썩히고 있는 건 아닐까? 옆집을 지나칠 때마다 역한 냄새가 났다.
눈앞에 모기 같은 것이 자꾸 어른거려 전철을 타고 병원에 갔다. 안과의사가 나를 보며 웃었다.
“오늘이 구월 일일인데, 여름일까요? 가을일까요?”
절기는 가을인데 기온은 삼십 도가 넘으니 아직 여름인가? 안과의사의 질문은 칠십대인 내가 아직도 젊다고 착각하는 거 아니냐고 비아냥거리는 소리로 들렸다. 사실 구순이 다 된 큰언니는 보라색이 도는 가발에 반짝이 머리띠를 하고 외출했다. 관절염으로 다리를 절룩일망정 키메라처럼 눈화장을 진하게 하고 빨간 원피스를 즐겨 입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씩 돌아다봤다. 그 나이쯤 되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아 투명인간 취급을 한다는데, 어딜 가나 눈에 띄었다. 집안 내력인가? 나 역시도 내 인생이 아직 여름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가을은 좋은 절기지만, 눈에는 아주 반갑지 않은 절기입니다. 어르신 눈만 보면 제가 아주 불안합니다. 황반변성과 녹내장이 의심돼요. 머리와 눈이 동시에 아프면 빨리 병원으로 달려오셔야 합니다. 여차하면 실명할 수도 있어요.”
눈이 안 보이면 어떻게 살지? 책을 멀리해야 할 나이가 온 건가? 보르헤스는 실명하고 나서 도서관장을 했다. 보르헤스가 부르는 대로 비서가 받아 적어 문학작품을 남겼다. 얼마나 갑갑했을까? 나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전철을 타자마자 앉을 자리를 찾다가 노약자석에 앉았다. 옆에 앉은 노인이 스스럼없이 말을 걸어왔다.
“나이가 몇이유?”
“칠십은 넘었습니다.”
“나는 일흔네 살이라우. 댁은 육십 정도밖에 안 보이는데?”
노인은 나와 동갑인데 팔십 살은 되어 보였다. 노인은 처음 만난 나에게 자기가 목이 아파서 서울대학병원에 다녀온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식이 많은데 잘 키워 놓았더니 바빠서 병원에 태워다 줄 자식이 하나 없다며 푸념을 늘어놓았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많이 외롭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는 노인에게 안과에 다녀온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똑같은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아파트 건물에 들어서기 전에 경비실 창문을 노크했다.
“아저씨, 405호에서 며칠 전부터 이상한 냄새가 나요.”
새로 들어온 경비원은 나를 그저 무식한 늙은이로만 대했다.
“왜요? 옆집 어르신이 고독사라도 했을까 봐요?”
젊은 경비원은 아무렇지도 않은 투로 농담을 하며 피식 웃었다.
“인터폰이라도 한번 해봐요.”
나는 뻣뻣한 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주변 누구에게도 의논할 사람이 없다.
집에 들어가는데, 옆집에서 냄새가 더 고약해졌다. 관리사무소에 전화했다.
“어르신이 너무 예민하신가 보네요.”
젊은 사람이 신고했다면 이렇게 무심했을까? 한번 연락해 보겠다며 친절하게 말하면 어디가 덧나나? 그러고 보니 옆집 여자의 전화번호도 모른다. 전화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니, 직원은 개인정보라 알려줄 수 없다고 한다.
물에 담가 놓은 마늘을 까려는데, 스테인리스 바가지에 모아 놓은 마늘 쓰레기에서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음식물 쓰레기 봉투에 넣어 꽁꽁 싸맸다. 그러다 옆집에서 나는 냄새에 다시 생각이 꽂혔다. 더는 참지 못하고 경찰서에 신고했다. 오 분도 되지 않아서 경관이 두 명, 경비원과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나는 어안렌즈로 내다보다가 현관문을 열었다.
“신고하신 분인가요?”
고개를 끄덕이자, 경비원이 못마땅한 눈으로 나를 훑어보며 눈을 부라렸다. 참견하기 좋아하는 노인 때문에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냄새가 심상치 않아서요.”
경관은 벨을 여러 번 눌러 보더니 반응이 없자, 현관문을 강제로 따고 들어갔다.
“앗!”
경관과 경비원이 비명을 지르며 우뚝 섰다. 나는 고개를 빼고 옆집 현관문 안을 들여다보았다. 마주 보이는 싱크대 앞에 여자가 엎드려 있다. 내가 한 발 들이려고 하자 경찰이 막아섰다.
“아, 안됩니다.”
경관은 무전기로 연락을 취했다. 경비원은 코를 감싸 쥐고 나왔다. 내 말이 맞지 않느냐는 말 대신 경비원을 향해 눈만 부라렸다.
“어르신, 댁에 들어가 계세요. 나중에 연락드리겠습니다.”
경관은 나를 돌려세웠다. 나는 집으로 들어와 문을 잠갔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옆집 여자가 죽어 있었다. 곪아서 냄새를 풍기는 마늘 곁에 단단하게 벽을 치고 있던 하얀 알맹이가 떠올랐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녀는 죽어서 썩어 가고 있었다. 나는 살아 있다. 모네의 그림 속 여자처럼 우아하던 그녀가 고독사했다.
보건소에서 연락이 왔다. 혼자 사시는 분들을 위해 생활관리사를 보내 주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필요 없다고 했는데, 고맙다고 대답했다.
생활관리사가 들어오자 가족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내 이야기를 마구 털어놓기 시작했다. 전철 안에서 하소연을 하던 노인처럼….
며칠 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바로 옆 대학병원 장례식장에 옆집 여자를 모셨는데 가보실 거냐고 했다. 1호실입니다. 이름도 모르고 눈인사만 하고 지냈지만 벽을 사이에 두고 사십 년을 살았다. 마지막 가는 길에 조문하고 싶었다.
1호실 앞에 서니 벽면에 고인의 이름과 나이가 눈에 띄었다. 이지영, 칠십오 세. 옆집 여자의 이름이 이지영이었구나. 상주의 관계란에 여동생과 조카의 이름이 적혀 있다. 그녀의 사진이 꽃 테두리 안에 박혀 있다. 게다가 모니터에서는 그녀의 생전 모습이 영상으로 지나가고 있다. 학사모를 쓴 모습 뒤로 보이는 배경이 내가 졸업한 학교다. 여러 대학에 출강을 다니던 젊은 시절. 그리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찍은 사진이 AI를 이용해 영화처럼 돌아가고 있다. 나와 별반 다르지 않게 살아온 인생이다.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영정 앞에 올려놓았다. 이제 아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군요? 눈물이 툭 떨어졌다. 신을 찾아 신고 있는데, 맞은편 식당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었다. 허인숙이 손을 쳐들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동창들이 여럿이다.
“너희들이 어떻게 여길 왔어?”
“고인이 우리 일 년 선배 이지영 교수잖아. 대학 때 동아리를 함께해서 잘 알지. 이 선배도 너처럼 평생 독신으로 살았지. 너는 이지영 선배를 어떻게 알고 지냈는데?”
나는 털썩 주저앉았다. 사십 년이었다. 일 년 선배를 벽 하나 사이에 두고 살면서 둘 다 참 고독하게 살았다. 입주했을 때, 서로 통성명만 했어도, 자매처럼 그 긴 세월을 재미나게 살았을 텐데. 자기 안에만 갇혀서…. 늦었다. 너무 늦었다.
옆집 여자가 죽고 나자 두려움이 몰려왔다. 무서웠다. 머리끝이 쭈뼛거렸다. 나는 강한 사람이다. 엄마는 우리 남매 아홉을 낳았다. 다 죽고 구십 세인 큰언니와 막내인 나만 남았을 때도 인생이 두렵지 않았다. 그런데 옆집 여자의 죽음으로 나는 앞으로 살 일이 두려웠다. 시계 초침 소리가 방을 가득 채웠다. 탁상시계가 거기 있는 줄도 몰랐는데, 그 소리가 천둥소리처럼 크게 다가왔다. 뱃속이 메스껍고, 모든 사물이 뒤집혀 보였다. 생각이 가득한 머릿속에 여백이 필요하다. 눈을 감아도 온몸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이럴 때는 독신으로 사는 게 조금은 후회스럽다. 곁에 누구라도 있으면 좋을 것 같다. 기어가서 안방 문을 열어젖혔다. 안개가 피어올라 창밖이 뭉개진 수채화처럼 뿌옇다. 눈을 감았다가 천천히 뜨자 어지러움이 가셨다. 창밖으로 서서히 초록이 살아난다. 공원의 잔디, 그리고 나무들의 색깔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야 하나? 달력에 메모된 일정이 있을 때는 반갑다. 하지만 오늘은 빈칸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이제 변화를 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았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 바깥 날씨는 시원하고, 하늘은 새파랗게 높아졌다. 곧 추위가 닥치겠지만, 그때는 그때고, 오늘로 만족하면 된다고 나를 타일렀다.
2
옆집은 문을 활짝 열고, 가구며 집기들을 내갔다. 다 털어내고 집수리하더니 금세 새집이 되었다. 신혼부부가 들어와 살고 있다. 나는 아직도 옆집 여자의 영혼이 떠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 사실 우리는 인간의 주검이 흙으로 돌아간 위에 터를 잡고 살아오긴 했다. 이성적으로는 다 알지만, 내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사십 년이나 살던 아파트를 미련 없이 팔고 양평 전원주택으로 이사했다. 현금이 넉넉하게 남았다. 매달 연금도 나오니 나 혼자 살기에 돈은 충분했다.
이제는 전철 노약자석에 자연스럽게 앉는다. 처음에는 빈자리가 있어도 흘낏거리기만 했었다. 무료로 승차하는 노인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걸 보면 눈살이 찌푸려졌는데, 어느 틈엔지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평일인데 등산 배낭을 메고 거기에 작대기를 하나씩 꽂은 모양새가 거의 비슷했다. 다들 표정이 밝았다. 양평에서 내리기 위해 일어섰을 때, 노인들이 문 앞으로 우루루 몰려갔다. 궁금해서 한 노인에게 물었다.
“어디를 가십니까?”
“하하, 좋은 데가 있습니다. 따라와 보시면 압니다.”
궁금해서 그들을 따라나섰다. 양평역에서 내린 무리는 양근대교를 건너갔다. 오십여 명이나 되는 사람들은 강변체육공원으로 내려갔다. 거기에 파크골프장이라고 쓰여 있다. 사물함에 배낭을 넣고 골프채와 공을 들고 선 그들은 입구에 줄을 섰다. 골프복에 모자를 쓴 노인들은 쭈글쭈글한 주름살만 빼면 젊은 사람들 같았다. 순서대로 네 명씩 한 조가 되어 골프를 치기 시작했다. 골프공보다 큰 공과 골프채보다 더 큰 우드처럼 생긴 채를 휘두르자 공이 낮게 날아가 잔디 위를 떼굴떼굴 굴러갔다.
“이것만큼 재미있는 게 없어요.”
“어릴 때 구슬치기나 자치기를 하며 노는 데 팔렸던 생각이 나요. 이제는 정말 잘 놀 줄 알아야 할 때가 온 거죠.”
아는 만큼 보이는 걸까? 떼를 지어 몰려다니는 노인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서울 가려고 아침 8시 반쯤 양평역에 도착하면 배낭을 짊어진 노인들이 오십여 명씩 떼로 몰려왔다. 배낭에 꽂힌 작대기가 파크골프채라는 걸 이제는 알았다. 저녁에 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그 노인들을 또 마주쳤다. 그들의 대화를 엿듣다가 내 인생의 방향이 바뀌었다.
“아까는 어디 갔었어요? 함께 점심 먹으러 가려니까 안 보이시던데.”
“저는 도시락을 싸 왔어요.”
“그것도 좋은 방법이네요. 다음에는 나도 도시락을 싸 와야겠습니다. 오늘 게임은 잘 됐습니까?”
“네, 저는 여기 오면 사는 게 재미있어요.”
“저도 그렇습니다. 비 오는 날은 온종일 심심해 어쩔 줄 모르겠어요.”
“전철도 무료로 이용하고, 골프장 입장료만 내면 되니 하루 즐기기에는 최곱니다.”
남녀가 스스럼없이 대화가 통했다. 왁자지껄하게 활기가 넘치는 게 젊은이들 못지않다.
3
내가 파크골프에 입문하게 된 것은 그러고도 한참 시간이 흐른 뒤였다. 인생의 길모퉁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가슴이 설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불안하다. 내가 양평으로 이사 올 때는 맑은 공기 마시며, 맑은 물 마시고, 알프스 같은 멋진 경치를 보며 살기 위해서였다. 내 집은 산 중턱이라 호수가 내려다보이고, 호수 건너 맞은편 산이 바라다보여 스위스에 여행 갔을 때 보았던 풍경과 비슷해서 다른 것 하나도 생각지 않고 집을 샀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숲속이 장애 요인이 되었다. 여기서 병원에 가려니 교통이 나쁘다는 걸 깨달았다. 설상가상으로 잠깐 세워 놓고 물건을 가지러 들어간 사이에 브레이크 걸지 않고 주차한 차가 내리막을 굴렀다. 차는 폐차할 정도로 찌그러졌다. 그래도 사람이 다치지 않은 게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야 하지?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유리창 너머 파크골프장을 바라보았다. 가고 싶기는 했지만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도서관 뒤쪽으로는 평생학습관이 있어서 중년여성들이 부지런히 드나들었다. 내 나이에 거기 가도 될까 망설여졌다. 더 뒤쪽으로 노인복지관이 있다. 그곳은 더 나이 든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 노인이라고 인정하고 싶지 않아 거기는 가기 싫었다. 그 뒷 건물은 주간보호센터로 버스가 한 차례씩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내려놓았다. 그 옆은 치매 노인들의 요양원이 있다. 그리고 뒤로 장례식장이 보였다. 납골당과 공동묘지도 보였다. 한숨이 나왔다. 왜 건물들을 순서대로 늘어놓았을까? 늙으면서 순서대로 가야 할 곳이라 생각하니 가슴이 조여들었다. 남은 시간이 별로 없다. 누군가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김경희 교수, 인생 별 거 없어. 이게 앞으로 당신이 갈 길이야.’
공황장애가 올 것처럼 막막하던 차에 허인숙이 양평으로 이사 왔다.
“만날 사람도 별로 없는데, 서울 한복판에 살 이유가 없더라고. 그래서 이사하기로 결정을 했지. 고혈압에 당뇨까지 있으니 공기 좋은 곳으로 오게 됐어. 양평에 파크골프장이 있다는 소문을 들었어. 홀도 제일 많고, 남한강을 끼고 있어서 경치가 좋다더라.”
“노는 것도 젊어서 배워야지. 환갑이 넘도록 대학교에만 있다 보니 세상이 너무 낯설어. 인생 후반전에 대비하려니 배울 게 많네.”
“파크골프장에 한번 가보자. 골프를 칠 때와 비교하면 어린아이들 장난하는 것 같지만, 재활치료 한다 생각하고 가보자.”
인숙 차에 동승해서 20분을 달리니 골프장에 도착했다. 우리는 골프웨어를 갖춰 입고, 파크골프 채도 사서 배낭에 꽂고, 물통과 골프공을 넣은 색을 허리에 찼다. 사무실에 찾아갔다.
“파크골프에 대한 강의를 듣고 실습도 해본 뒤, 네 명씩 짝을 지어 골프를 치게 됩니다. 골프를 쳤던 사람들은 바로 라운딩할 수 있습니다.”
초록초록한 잔디, 파란 하늘, 넘실거리는 남한강의 물결을 바라보았다. 지금껏 이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은 이유가 뭘까? 나는 왜 혼자서도 다 할 수 있다며 지니와 친구하고 있었을까?
파 쓰리로 이루어진 것 같은 미니 골프장이었다. 골프채를 한 번 휘두르고 휘청휘청 걸어가서 벤치에 앉았다. 일행 세 명이 치고 나면 나는 벤치에서 일어나서 또 휘두르고 홀컵까지 볼을 집어넣었다. 대접만큼 큰 홀컵에서 땡그랑 소리가 났다. 기분이 좋아졌다. 운동하지 않았던 다리는 걷기 힘들었다.
네 명이 모이면 바로 출발하는데, 모르는 사람들끼리도 함께 걸으며 스스럼없이 대화하는 게 신기했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여인은 지나가면서 사람들을 코치했다.
“저는 부산에서 이십 년 넘게 골프를 쳤지예. 아들이 양평으로 오는 바람에 따라왔는데, 심심해서 죽겠더만요. 파크골프장이 있다는 말에 나와봤지예. 좋아, 아주 좋아예. 나는 아침 식사 끝나기 무섭게 달려온다 아입니꺼. 새로운 인생을 찾은 거 같아예.”
날씬한 노인이 화장을 뽀얗게 하고 서 있다.
“저는 몇 년 전에 남편을 잃었어요. 아이들이 파크골프장에 가보라며 옷과 신발, 골프채, 허리에 차는 색까지 다 사주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와봤어요.”
“그렇구나. 일단 저기 초보자 가르쳐 주는 곳이 있으니 사무실로 가예. 쉬워서 금방 배우실 거라예. 공도 큼지막하고, 골프채도 넓적하니 커예. 골프에 비하면 거저먹기라예. 풀밭을 걸으며 운동한다 생각하고 나오세요. 탁월한 선택이라고 생각할 거라예. 칠십넷이면 나랑 갑장이네. 친구합시다.”
다음 날 아침 인숙이 또 데리러 왔다.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못 갈 것 같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한 달만 해 보자.”
조금씩 걷는데도 한 달이 지나니 다리에 근육이 생기고 힘이 생겼다. 파 쓰리에서 홀인원을 하고는 기분이 너무 좋아 나도 모르게 팔을 휘둘러 히딩크처럼 세레머니를 하기도 했다. 디스크 협착으로 오래 앉아 책을 읽기도 힘들어서 서서 읽고 엎드려서 읽으며 시간을 보냈는데, 이제 세 시간 정도 파크골프를 하며 걷게 되었다. 밥맛이 좋아져서 젓가락으로 밥알을 세며 깨작거리던 습관도 없어졌다. 저녁을 먹고 한 시간도 버티지 못하고 곯아떨어졌다.
나는 골프장으로 나가서 운동을 했다. 인숙은 두 시간 치고 가는데, 나는 두 시간을 더 치고 집에 들어갔다. 입구에 서 있다가 낯선 사람들 틈에 끼거나 아니면 혼자서 공을 때리고 걸으며 파크골프에 빠져들었다. 허리도 덜 아프고 운동을 하니 다리도 튼튼해졌다. 자치기를 하듯 엉덩이를 뒤로 빼고 잔뜩 몸을 구부려 폼은 엉망인 남자들도 공은 기가 막히게 잘 맞췄다. 어쨌거나 운동만 하면 되지. 사람들은 폼이 멋지다며 다가왔다. 살이 별로 없는 내 체형을 은근히 칭찬하며 다가오는 남성들도 있다. 한 수 가르쳐 주세요.
드넓은 필드의 잔디밭만 밟아도 힐링이 되었다. 한쪽으로는 장애인 골프장 18홀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팔이 한쪽 없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 양쪽 팔이 없는 젊은 사람도 있다. 그 젊은이가 껄껄 웃으며 홀컵에 들어간 볼을 골프채 뒤에 달린 집게로 콕 집어서 다음 홀 티 박스에 올려놓았다. 골프채를 겨드랑이에 끼워 몸통을 돌리며 공을 때리는 모습은 정말 경이로웠다.
전국대회가 열리는 날은 주변의 모텔에 방이 없다. 주변 음식점들 앞으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기현상이 일어난다. 나름 노인들만의 세계가 재미있다.
어르신들의 스포츠로 자리매김한 파크골프라며 신문에 기사가 떴다.
‘파크골프장이 턱없이 부족해지자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파크골프장 조성에 나서고 있다. 2019년부터 2023년까지 골프장이 60%나 증가했다. 이용료가 2000원이니 골프장의 5% 수준이고 축소된 형태의 필드라 몸에 무리를 주지 않고 즐길 수 있다. 전국에 400여 개의 골프장이 있다. 어르신 체육활동지원 파크골프 교실이 41개소 있다. 충청도 청양에 108홀 규모 파크골프장도 신설한다. 2025년 완공 예정. 걷기와 유산소 운동을 겸하며 잔근육 형성에 도움을 주는 전신 운동이다. 골프장의 30분의 1 크기로 축소된 형태인데 18홀을 도는 데 2시간 정도 걸린다.’
기사를 보자, 유행에 한발 들여놓은 것 같아 흐뭇하다.
인숙은 평생 골프만 치며 살 줄 알았단다.
“골프는 내 몸에 딱 맞는 운동이었거든. 골프를 치러 갈 때마다 남자들의 허언이 나를 들뜨게 했지. 허 여사님, 오늘도 필드의 여왕이십니다. 이 나이에 어떻게 처녀적 몸매 그대로이십니까? 몸매에는 역시 골프가 최고죠? 그런데 언니가 볼 때마다 잔소리하는 거야. 세월 금방 훅 지나가. 매일 그렇게 차려입고 골프만 치러 다니다간 노후에 큰일 난다. 남편이 돈 잘 벌 때 적금이라도 들어둬. 옆에서 사탕발림하던 사내들의 달콤한 말만 듣던 나는 언니의 쓴소리가 듣기 싫었어. 언니는 만나면 돈 얘기만 해서 멀미가 날 것 같았어. 하도 귀찮게 하기에 언니 말을 듣고 연금 적금을 하나 들었는데, 그 당시에는 큰돈이 아니었지. 남편은 사업이 기울자, 스트레스로 쓰러지더니 영영 일어나지 못했어. 남편이 죽자 나는 그냥 목숨만 부지하고 살았어. 인생의 목표도 삶에 대한 미련도 없었어. 아이들은 이미 결혼해서 자신들의 삶을 사느라 제 어미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어. 그동안 나는 남편이 버는 돈으로 흥청거리며 살았던 거지. 잘 살 때는 친구들도 많고, 모임도 많았어. 남편이 죽고 내가 두문불출할 때 들여다보는 사람은 언니뿐이었어. ‘빨리 털고 일어나야 해. 요양보호사 자격증 따면 일자리가 많다더라. 잡념 생기지 않게 공부해 봐.’ 6개월 동안 강의 듣고 실습하고 자격증을 땄어. 양평 쪽에 어르신들이 많아서 취업하기 쉽다는 말을 듣고 이사를 결심했지. 언니 성화에 못 이겨 든 연금보험이 지금은 내게 효도를 하고 있네. 너랑 두 시간 파크골프 치고 나서 오후에는 세 시간 요양보호사로 일하는 거야. 요즘이 제일 행복해. 신발장에 모셔 놓았던 골프화를 꺼냈어. 구두 바닥에 돌기가 있어서 잔디밭이 아니면 신기 힘들잖아. 비싼 구두라 버리지 못했는데, 이런 날이 오게 될 줄은 몰랐어. 체형에 큰 변화가 없어서 골프웨어도 다 맞더라. 선글라스를 쓰니 나름대로 주름살도 가려지고. 한창 필드에 나가서 과시했던 젊은 날들이 휙휙 눈앞으로 지나갔어. 골반을 휙 돌리며 드라이버로 공을 때려 저 멀리 날아갈 때의 쾌감은 아니지만, 일단 잔디밭에서 공을 치고, 이야기하며 걷는 게 좋아. 온몸의 잔근육을 쓰니 좋고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가니 좋아. 이제는 연애도 살짝살짝 하고 싶네.”
인숙의 마지막 말을 엿들었나 보다. 옆에 줄을 서서 기다리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저는 친구랑 둘인데, 여사님들도 두 분이니 함께 라운딩하시겠습니까?”
“어머, 좋지요.”
인숙이 눈웃음을 치며 선뜻 대답했다.
“저는 최라고 하고, 이쪽은 노 화백이라고 합니다.”
“네, 이 여인은 김 교수고 저는 허 여사라고 불러주세요. 최 사장님, 제가 커피 내려왔는데, 한잔하고 운동해요.”
“내가 언제 사장님이 되었지?”
“김 교수님! 의상 정말 멋지십니다.”
노 화백의 입발림에 귀가 간지럽다. 노 화백은 어딘지 모르게 내 첫사랑을 닮았다. 그 소년도 지금쯤 노 화백처럼 기품 있게 늙어 가고 있을까? 함께 두 시간 운동한 후에 자연스레 국숫집으로 향했다. 나이가 칠십대 중반쯤 되니 배운 것도 고상한 것도 다 쓸데없다. 평준화가 되었다. 외로움의 평준화, 여기저기 아픈 육체의 평준화.
성격이 잘 맞는다며 앞으로 네 명이 자주 만나자고 한다. 우리는 넷이 한 클럽이 되기로 약속했다.
“충주나 양양에도 파크골프장이 있던데, 언제 함께 갑시다. 차는 한 대로 움직입시다.”
“최 사장님, 노 화백님, 커피는 제가 노복에서 살게요.”
허인숙의 말에 모두 고개를 갸웃했다.
“스벅이라는 말은 스타벅스 커피숍을 줄인 말인 건 알겠는데, 노벅은 또 어디입니까?”
“노인복지관 줄인 말이지요. 노복은 노인들의 신세계입니다. 우리는 젊은이들처럼 바쁘게 살 필요 없지요, 경제적인 여유도 있잖아요. 양평은 지금 현재 노인 인구가 삼십오 퍼센트나 된다고 해요. 노복에는 강좌가 백 개나 있거든요. 노인들이 건강하기만 하면 얼마든지 배우고 즐길 수 있는 곳이지요. 일본처럼 복지관 주변 집값이 가장 비쌀 때가 올 것 같아요.”
될 수 있으면 노인복지관에서 오래오래 시간을 끌고 싶다. 그 뒷 건물인 요양원까지의 거리를 늘여 잡고 싶다. 옆집 여자처럼 고독사하고 싶지 않다. 내 나이 일흔네 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사람의 몸에서 나는 땀내가 싱그럽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