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여름호 2025년 6월 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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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전역 전 마지막 휴가를 나왔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열차를 기다리며 점심을 먹기 위해 용산역 근방에 있는 백반집에 갔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사장님께서 결제가 됐다고 하셨다. 자리가 없어 같은 테이블에 앉았던 20대 여성이었다. 저는 그분께 뛰어가 “백반 결제해 주신 분 맞죠?” 물었고 그분께선 밝게 웃으며 “군인분이셔서요”라고 하셨다.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을 여러 번 하고 열차를 타기 위해 용산역으로 향했다. 가슴 한구석이 벅차올랐고 그 여운이 가시지 않았다. 군인이라는 신분 막바지에 제게 평생 기억에 남을 선물을 주신 분께 감사드린다.
군 관련 페이스북에 실린 어느 병사의 글이다. 바로 닷새 전에도 강원도 철원 GOP에서 근무하는 한 병사가 올린 글을 읽었다. 휴가 중 20대 남자분이 사준 칼국수 한 그릇을 먹고 난 뒤, 매순간이 긴장의 연속인 군생활을 이어나갈 힘이 생겼다며 거듭거듭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글이었다.
우연일까? 같은 날 한 마을에 사는 아우가 말했다. 휴게소 카페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여덟 명의 병사에게 차를 쏘았노라고. 제복들은 햇살처럼 밝은 모습으로 ‘마시고 싶은 것을 시켜도 되느냐?’라고 물은 뒤 자신들이 원하는 차를 주문하더란다. 자기 같았으면 미안해서 하나로 통일하자고 했을 거라며. 그 모습이 참 신선했단다. 힘들어 보이는 이들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심성으로 그녀의 주머니는 채워질 시간이 없다. 그녀는 아마도 지금 전세 들어 사는 낡은 20평대 연립에서 벗어나지 못하지 싶다. 목마른 사람에게 주는 냉수 한 그릇도 기억하신다는 신! 모르는 사람에게 조건 없이 선을 베푸는 이들에게서 신의 그림자를 본다.
군복 입은 모습을 보고 선뜻 밥을 산 이들은 공교롭게도 이삼십대 젊은이들이었다. 공감대가 같아서였을까. 밥을 사야 한다면 주머니의 무게로 보나 삶의 연륜으로 보나 나이 지긋한 나 같은 이들이 사야 했다. 부끄럽게도 요즘 병사들은 봉급이 많아서 부담 없이 밥을 사 먹을 거라 여기고 무심히 지나쳤다. 고맙게도 청춘들은 군복무로 하루하루를 긴장 속에서 보내는 그들의 고된 삶을 읽고 버틸 힘을 실어줬다. 파도치는 바다에서 파도만을 보는 사람과 파도와 함께 물을 보는 사람의 차이라고나 할까. 표면만을 보는, 손을 펼 줄 모르는 내 가난한 모습을 드러내 보여준 청춘들이 피붙이라도 된 듯 자랑스럽고 대견했다. 우리 미래에 대해 막연히 품었던 어두운 그늘이 걷히면서 가슴에 훈풍이 불었다.
이런 이야기는 전염성이 강해서 밥 한 그릇으로 끝나지 않는다. 감동한 사람이 이야기를 올리면 누군가 밥을 사고, 올리고, 또 사고…. 미처 동참하지 못했던 이들도 주머니를 열 준비를 할 것이다. 이어지는 미담을 보자 인접 마을에 사는 커피집 여주인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퍼뜨려야 한다. 그들이 알리지 않았다면 어찌 나에게 이 이야기가 왔겠는가. 난로 같은 사연 하나를 칼바람 부는 2월 하늘 위에 쏘아 올린다. 겨울날 햇살처럼 멀리 퍼지기를 바라며.
대학생 자녀를 둔 그녀는 40년 전통 떡집 따님이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떡집 귀퉁이 네댓 평쯤 되는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고 떡을 판다. 정갈하게 머리를 한 갈래로 묶은 민얼굴은 라일락꽃을 연상케 한다. 살갑진 않아도 잔잔한 미소와 따뜻한 눈빛에 끌려 한 번 온 손님은 대부분 단골이 된다. 이 집에선 두어 가지 진풍경이 벌어지곤 한다.
여주인과 손님 사이에 실랑이가 이는 게 그중 하나다. 주문한 커피에다 이런저런 이유를 달아 떡을 덤으로 얹어주기 때문에 생긴 일이다. 몇 조각 떡이 아니라 커피값보다 더 나가는 떡을 안겨주니 그럴 수밖에. 모든 분에게 매번 그렇게 드리지는 않겠지만, 그 집에선 그런 일이 다반사다. 그녀는 손님들에게 기쁨을 주기 위해 가게 문을 여는 듯하다.
또 하나는 군복을 입은 사람들에겐 장교든 병사든 커피값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 번은 군복을 입은 장교분과 여주인이 커피값을 놓고 옥신각신했다. “그냥 드시라” “그냥은 마실 수 없다”라고. “저는 군인의 계급 같은 건 몰라요. 하지만 군인들 덕에 이렇게 편히 살고 있는데 커피 한 잔 못 드리겠어요?”라는 그녀의 항변에 그 장교분이 돈을 던지고 도망쳤단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웃었다. 그런 일이 그녀에겐 일상이니까. 그 집은 행복을 파는 집이다. 그녀가 내려준 커피를 들고 나오는 이들의 입가에 매달린 웃음을 보면 안다. 주차할 공간도 없고 안이 비좁아 오래 머물 수도 없는 집을 사람들이 쉬지 않고 찾는 것은 사랑이 고파서다. 마음이 울적하고 허허로울 때면 나도 모르게 그 집 앞에 서 있는 나를 본다.
그들이 병사들에게 사준 ‘밥 한 그릇’과 ‘차 한 잔’의 값은 얼마나 될까? 고빗길도 밥 한 그릇과 차 한 잔에 내리막길처럼 가벼이 오를 수 있다. 병사들이 먹은 백반 한 그릇, 칼국수 한 그릇, 커피 한 잔은 훗날 누군가의 가슴으로 흘러가 또 다른 꽃으로 피어나지 않을까. 값을 매길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비싼 밥 한 그릇으로 한낮 기온이 영하 10도를 웃도는 이 겨울에 내 마음은 봄날처럼 훈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