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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는 것들에 대한 의심——영화 <콘클라베>를 보고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순신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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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성자라 불리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하였다. 많은 사람의 기도 속에 로마 시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얼마 있으면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가 시작될 것이다. 추기경들은 교황청으로 모여들 것이고 철저히 비밀에 부쳐진 교황 선출을 할 것이다. 비밀은 알고 싶고 파헤치고 싶은 게 우리네 심리다. 콘클라베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 비밀의 문 안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들만의 세계인 비밀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갑작스러운 교황의 서거 소식을 듣고 로렌스 추기경은 급히 교황의 방을 찾았다. 교황의 사인이 심장마비라는 대답을 듣고 추기경의 눈빛은 잠깐 떨렸다. 그 떨림이 교황의 시신을 훑고 지나갔지만, 하얀 포로 덮인 교황의 시신은 어디론가 옮겨졌고, 그 방은 봉쇄되었다.
각국의 추기경들이 바티칸시국으로 속속 모여들었다. 그들의 식사를 돕는 수녀들의 손길도 분주하다.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에서 단장을 맡게 된 로렌스 추기경의 고뇌는 깊어진다. 개인적으로 기도가 잘 안 되어서 힘든 시기인데 중책을 맡게 된 것이다. 공정하고 정의롭게 교황 선출을 해야 하는 책임감이 무겁다.
우선 외부와의 철저한 단절을 위해 시설 공사를 했다. 전파에 의한 접근도 불가하도록 유리 창문까지 교체했다. 추기경들은 보안상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을 반납하고 최소의 세면도구만 제공되는 1인 1실에 든다. 로렌스 단장은 기조연설에서 ‘확신을 두려워하고 확신을 가진 모든 것들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하는 교황이 선출되기를 희망한다’라고 강조한다.
확신이 선명하고 밝은 면이라면 그 이면에는 어두움도 있다. ‘확신의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굳게 믿었다가 배신당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매일 주인이 주는 모이를 받아먹던 칠면조가 추수감사절 전날 자신의 목을 비틀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겠는가? 확신에 대하여 끊임없이 의심했더라면 목덜미를 잡히는 일은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옛날에 수박 서리가 죄가 아니었다는 확신으로 오늘날 수박 서리를 한다면 어떨까.
확신은 직·간접적인 경험이나 감각을 통해 만들어진다.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행동하고 말하기도 한다. 그 믿음에 대한 확신이 강할수록 자신을 에워싸는 성벽은 단단해진다. 그 확신의 벽이 단단할수록 독선과 아집, 편견은 그 안에서 독초처럼 자랄 것이다. 성벽 안에 갇히면 외부의 어떤 소리도 들을 수 없다. 비밀의 성에서 이루어지는 콘클라베일지라도 교황은 그 성벽을 뛰어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확신해 왔던 것들에 대하여 의심할 때 새로운 눈이 열리고 지혜가 생긴다.
유력한 교황 후보의 오래전 비행과 그를 둘러싼 또 다른 음모를 밝히는 과정에서 긴장감이 더해진다. 단장이 교황의 방을 열고 비밀 문서를 가져왔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순간 총책인 아네스 수녀가 말문을 열었고 사건의 전모는 드러난다. 흠집이 없는 교황 후보를 찾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추기경들은 자신이 확신하는 것들에 대하여 갑론을박을 펼친다. 대륙 간의 이해관계를 염두에 두고 전통을 강조하는 파, 변화를 추구하는 파, 타 종교에 대해 언제까지 관용을 베풀 것인가 등 서로 목소리를 높인다. 은밀하게 성당 로비에서 만나 표를 모으기 위한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붉은 수단을 입은 그들의 언행은 일반인과 다르지 않았다.
선출된 교황이 확신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면 어떨까? 고정관념에 의해 자신이 옳다는 방향으로 해석하고 이끌어 갈 것이다. 전통을 고수하거나 무시하거나 다른 종교를 비판하거나 포용하거나 어느 한쪽을 선택할 것이다. 반면 확신하는 것들에 대하여 의심하는 교황은 어떨까? 지금까지 확신해 오던 것들에 대하여 고뇌하고 의심하며 시행착오 과정을 거치면서 통합과 포용으로 나아갈 것이다. 단죄보다는 모두가 손을 잡을 수 있는 방도를 찾을 것이다.
몇 번의 투표 끝에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자 외부에서 환성이 들려온다. 새로 선출된 교황은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새로운 교황에 대한 개인적 비밀은 관객에게는 블랙스완처럼 충격이었을 것이다. 로렌스 추기경도 자신이 갖고 있던 확신 목록에 빗금을 하나 그었을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변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장면이다.
AI 시대가 도래했고 그에 따라 지구촌 사람들의 삶의 형태도 더 다양해지고 있다. 나의 지식과 경험 안에서 만들어진 확신하는 것들, 신념이라고 생각한 것들이 얼마나 불완전하고 위험한 것인지 돌아볼 참이다. 잔잔히 흐르는 변화의 물결 속에 깊은 곳에서 굳어진 나의 확신하는 것들을 풀어놓을 것이다.
영화 <콘클라베>는 로버트 해리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에드워드 버거가 감독하고 랄프 파인즈가 주연한 영화다. 교황 선출의 과정을 긴장감을 놓지 않고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보았다. 화면 구도도 아름다웠다. 올해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고,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각색상을 받았다. 완성도가 높고 좋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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