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7월 6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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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의 휴가다. 해방감 때문인지 일순 들뜨기까지 했다. 휴가 닷새 중 하루는 건강검진을 하기 위해서 온전히 비워 두긴 했지만, 그래도 나흘이 어딘가.
밀린 부채처럼 압박감을 주는 건강검진을 우선 해치워야 했다. 수면 내시경은 보호자가 동행해야 할 뿐 아니라, 대기자도 많다고 해서 비수면 내시경을 택했다. 검사 후 바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장점도 한몫했다. 소화가 되지 않아 걱정했었는데, 위염이란다. 다들 그 정도야 삶의 훈장처럼 달고 살지 않는가.
휴가라고 머리보다 몸이 빨리 반응하는 건가. 은행이며, 관공서 등 처리해야 할 일이 한두 건이 아닌데, 앞다투며 몸은 빨간 경고음을 울린다. 잇몸이 시리기도 했다가, 발목이 시큰거리기도 한다. 당혹스러운 건 주체할 수 없이 쏟아지는 눈물이다. 찬바람이 불 때면 증세는 더욱 심해진다. 종일 컴퓨터 모니터 앞에 앉아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무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렸다.
남편은 동행하겠다며 앞장선다. 혼자 가도 되는데, 도심지 주차에 어려움을 겪는지라 군말 없이 따라나섰다. 긴 시간을 함께하다 보면 남편이 잔소리꾼이 된다는 걸 알기에 마냥 반갑지는 않지만 어쩔 텐가. 다른 한 귀로 흘려버릴 수밖에 없지 싶다.
눈 상태를 보더니 의사는 눈꺼풀의 마이봄샘이 막혀서 눈물이 빠져나가지 못한다고 한다. 막힌 곳을 뚫어줘야 한다며, 눈꺼풀을 뒤집는다. 얇은 관을 눈 안으로 집어넣더니 눈물을 입속으로 빠지게 한다. 처치도 잘된 것 같고, 당분간 치료하면 괜찮다는 말에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저녁 식사를 마친 후 가벼운 운동으로 몸을 풀고, 스크린 골프장으로 이동했다. 다가오는 주말엔 부부팀끼리 대회도 있고 해서, 남편과 호흡이나 맞춰 볼 요량이었다. 서너 홀 마쳤을까. 스윙하는 순간 허리 근육이 꼬인 건지, 디스크가 터진 건지 통증이 심해진다. 남편은 즉시 중단하자며 골프채를 정리하고는 욕심이 과하다, 준비 운동이 부족하다며, 어김없이 또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하루가 지나도 통증이 멈추질 않는 게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만사 제쳐두고 한의원에 가봐야겠다며, 주섬주섬 챙기는 내가 미덥지 않았던 걸까. 오늘도 남편은 차 키를 챙기고는 따라나선다.
오랜만에 왔다며, 간호사가 반긴다. 늘 밝고 친절한 병원 직원들 때문일까. 대기실에 있는 식물에선 푸른 생기가 넘친다. 창가에 걸린 가느다란 햇살이 더없이 평온하고 따사롭게 느껴진다.
처치실에 들어서니 아픈 데가 더 없냐며, 이곳저곳에 찜질팩을 갖다 댄다. 발목이 삐끗했는데도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보호대를 차고 다닌 지 2년이지만 손사래를 쳤다. 건건이 진료비를 받는다면 발목에, 손목까지 다 내보일 수 있지만 공짜인 게 미안해서다.
미심쩍은 듯이 이곳저곳 살피는 태세에 눌려 손목이 쪼금 시큰거린다고 했더니 찜질에 침이며, 부항까지 붙인다. 손목과 허리를 치료하다 보니 두어 시간을 훌쩍 넘겼다. “남편분이 오래 기다리셔서 어떻게 하죠?”라는 간호사의 말에 눈이 번쩍 뜨인다. 남편이 여태 대기실에 있겠구나, 라는 생각에 정신이 아뜩해졌다.
“오래 기다리느라 지루하셨죠?”라는 간호사의 말을 목 빠지게 기다렸다는 듯 남편은 대뜸 “아내를 기다리는 게 저의 최고 행복입니다.”라며 우렁차게 응수한다. 대기실은 한바탕 웃음바다가 됐다.
몸은 비록 고장 난 하루였지만 무진장 기다려 주는 남편 덕에, 조미료처럼 잔소리를 얹어 가며 건강을 챙겨 주는 남편 덕에, 고장 난 몸이 쉽게 제자리를 찾을 것 같다. 잔소리꾼 남편과 한편 먹고 싶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