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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땀에 절은 사탕

“내일이 어머니 기일이라 산소에 다녀오려고요.”동생의 전화다. 어머니는 23년 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나는 먼저 내 손을 보게 된다. 내 왼손 세 손가락은 세 마디가 없다. 여섯 살 때 소꿉놀이를 하다 작두에 잘렸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다쳤던 아픔보다 무서웠던 기억이 앞선다. 같이 놀던 나보다 두세 살 많은 동네 언니는 사고가 나자

  • 김영숙(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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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부드러울 유(柔)

혹시… 내일 시간이 되느냐는 문학 선배님 전화를 받았다.통화 중에 얼른 일정을 살펴보니 비어 있다. 일정은 없는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망설이던 선배님이 내일이 며느리 49재인데 절에 같이 가 줄 수 있느냐고 묻는다. 순간 혼란이 온다. 나에게 선배님 며느리면 먼 인연이다. 웃을 일도 아니고 슬픈 일에 참석해 달라니…. 그 순간은 그렇게 생각했다.선배님은

  • 김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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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잠의 빈자리에서

구안와사가 찾아온 뒤로 나는 매일 한의원에 들러 침을 맞는다. 진료실 문을 열면 한의사는 어김없이 ‘이-, 오-, 아-’를 해 보라고 시킨다. 침이 더디 듣는 날이면 그는 조용히 묻는다.“어제, 몇 시간 주무셨어요?”그 한마디가 뜻밖에도 오래 남았다. 밤 열 시에 누워도 새벽 세 시 반이면 눈이 뜨이고, 깨고 난 뒤에도 삼십 분은 더 누워 억지로 여섯 시간

  • 신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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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밝고 선명한 노란색

가을은 참으로 축복받은 계절이다. 은행나무 산책길이 운치 있고 노랑에 취하게 한다. 이제 가을은 부채 모양의 낙엽이 하늘 하늘대며 조금 힘없이 가지가 축 늘어져 가볍게 잇따라 흔들리고 있다. 그 예쁜 노란색이 사람을 홀린다. 길바닥에 수북이 쌓여 발의 촉감이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다.안양시 비산동 미륭아파트 옆길에 위치한 오십여 년 된 삼십여 그루의 은행

  • 이영숙(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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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담사리새

배꽃이 환하게 피는 잎새달. 이적지 찬 기운이 남아 있어 이불을 꺼댕기는 새벽녘, 매화산1) 숲속에서 담사리새2)의 목 쉰 소리가 들린다. 애타게 소쩍 소쩍, 얄부리하이 저며 우는 소리를 들던 울 할매, 명치끝이 알싸해져 담뱃대를 찾으신다. 담사리새는 제 울음을 초가집 조선종이를 바른 문틈으로 슬몃슬몃 밀어 넣고는 앞산 솔수펑이에서 또 운다.울 할매, 나를

  • 손정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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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관전석에서 삶의 무대로

나는 관전을 좋아한다. 관전은 내가 흘리지 않은 땀의 결실을 대신 맛보게 해준다. TV 화면 속에서 누군가의 노력이 환호로 바뀌는 순간, 내 삶의 결핍을 잠시 접어 두고 그들의 성취에 기대어 숨을 고른다. 어쩌면 관전은 욕망의 가장 안전한 형태인지도 모른다. 실패하지 않아도 되고, 상처 입지 않아도 되며, 박수만 치면 되기 때문이다.나는 예체능에 재능이 없

  • 서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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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두 개의 호수

골짜기를 떠나온 물은 호수에서 맞이하는 물과 함께 몸을 섞으며 흘러간다. 운 좋은 날엔 내 고향 호수에서 여느 날과 다르게 심연에서 물꽃을 끌어올리는 온천수처럼, 때론 오빠의 철없이 만들어 내던 담배 연기의 모양처럼 진귀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호수가 물꽃을 피워 올리는 시간이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다. 저수지를 가까이에 두고 자랐다. 잔잔한 호수에 일렁이는

  • 김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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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혼(魂)이라도 네 곁에

젊은 아내와 어린 딸들을 남겨 두고 떠난 그도 정녕 가고 싶은 길은 아니었을 것이다. 보고 싶을 때마다 힘들 때마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울부짖는 나를 분명 그는 보았을 것이다. 어쩌다 꿈에서라도 만나게 되면 그리도 반가웠는데, 너무도 짧은 만남은 아쉬움으로 끝나 가슴이 먹먹해 왔다. 1965년 여름, 그가 내게 사랑을 고백했던 날은 달맞이꽃이 흐드러

  • 남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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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꽃무릇 법문

가을빛이 짙다. 공원에는 꽃무릇이 지천이다. 활활 타올라 사방으로 불꽃이 튀던 시기는 살짝 지난 듯하다.여자 셋 앞서거니 뒤서거니 숲길로 들어선다. 분명 까르르 까르르 웃음소리가 높았는데 치솟는 불길 앞에서 웃음기를 싹 거둔다. 하긴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는 구경거리가 아닌가. 검은 선글라스의 여자, 눈 화장이 짙은 여자, 입술 연지가 붉은 여자가 꽃 속으로

  • 배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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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3 685호 나비 신부

“이얍! 이얍! 나가고 싶어!”용쓰고 나온 세상너무 눈부시고 아름다워두 날개 팔랑팔랑드높이 날아보네. 해님이 살포시 들판에 내려앉은 봄날, 노랑나비와 흰나비는 세상에 나왔어요.“아이, 눈부셔!”“너무 신기하다!”엄마나비가 말했어요.“애들아, 마음껏 날아보렴. 많은 꽃들이 너희를 기다리고 있단다. 좋은 친구들을 만나 세상을 멋지게 살아보렴.”노랑나비

  • 이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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