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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장죽리 버스

안개로 세수하고 얼굴만 내민 마둔 저수지햇살이 어루만져 드러난 산천초목물살에 업힌 햇살은물풀처럼 춤을 춘다 골짜기 곱이곱이 다정히 앉은 마을평안함 알려주는 여유로운 굴뚝 연기마을의 선한 모습은 부러울게 없는주인을 닮았다 “영희엄마는 어디 가노? ”“무릎이 아파서 병원 갈려고” “수철이 아저씨 고비는 넘겼나? ”“좋아졌습니다”&nb

  • 김은희(안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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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2025.3 70호 양말, 남은 한 짝

어딘가로 달아나 버린 양말 한 짝함께 달아났다면 완전범죄지만양말, 남은 한 짝알리바이가 없어아침마다 심문을 받는다 스스로 찾아갈 수 없는 거리 몇 군데 짚히는 곳이 있지만체념으로 수모를 견디는 남은 한 짝 자유는구가하는 자의 몫,행적이 묘연한 그 분방을용납하고 사랑하여기다림을 형벌로무기형을 사는 서랍형 여자.양말, 남은 한 짝

  • 김무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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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2025.3 70호 청청거목(靑靑巨木)

거대한 산에 청청히 서 있는나무 한 그루푸르다어느날푸르듯 기어오른뼈대 없는 줄기청다래 이름을 가장해청청거목 머리 위에 서서거목의 목덜미에 머리채 잡듯온 힘 뱉어낸다 청다래 이름 빌어 푸르다지만누구도 알 리 없는 엉킨 실타래일 뿐햇볕 창창한 날푸른 잎들 시늉한 치마 펼쳐들어큰 나무의 등줄 타고 올라거대한 빛 가리려 하나 가을 겨울이 오는 진

  • 노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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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2025.3 70호 인생 별곡

수많은 시간이 지나도 지난 추억은늘 그대로 마음에 담겨 있는데세월은 우리의 모습을더덕더덕 변화시켜 버린 생의 무적 까맣고 덥수룩하던 머리카락이이젠 세월에 바래버린 반백가뭄 들녘에 타든 식물들마냥 듬성듬성거울에 비친 머리숱을 보며어찌 인생이 허무하다 하지 않으리 훨훨 날아가 버린 시절항상 그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우리 아이들이그때의 우리들

  • 김순옥(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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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2025.3 70호 지나다라는 말은 잡식성일까요

풀밭을 문 뚱카롱 슬리퍼 두 짝몇 발짝 못 가노랑 장화가 모로 엎질러지는데요장맛비에 주저앉은 약속뒤끝 있는 장화는굽히지 않는 빗물 대신눈물 한 덩이 굽혀기어코 언덕을 올라가는데좀 봐 달라는 당부인 듯빈속 내보이는 임대 점포 지나침묵으로 답하는 눈길 지나오후 여섯 시를 몰고 가는남색 오토바이 지나장화 신은 먹구름이 꽃구름을 물었네요꽃구름 속에 숨은 마카롱자몽

  • 최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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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2025.3 70호 마을버스

나무 의자에 노인들만 멀뚱멀뚱 앉아 있는 정류장에서낯선 동네의 이방인처럼 버스를 기다린다 도착한 버스 속에는 노인들뿐,고개를 돌려가며 젊은이를 찾았으나 보기 어렵다 노인들의 밭은기침 소리를 들으며살아 있는 것이 왠지 눈물겨워 숨소리도 죽인다 버스 창 너머 멀리 보이는 앞산 어디쯤한 줌의 흙으로 어느 순간 세 들 것만 같다 

  • 김희진(양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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