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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 베는 여자

한국문인협회 로고 김덕중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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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밤 기온이 땀 흘린 적삼 밑으로 스며들자 오소소 소름이 돋는다. 휘영청 쏟아지는 달빛에 누런 보리밭 들판이 밤바다처럼 검푸르다. 더러는 이미 보리를 베어버린 밭이 낡은 잠방이를 덧대 기운 낯선 천 조각처럼 생뚱맞아 보인다. 아낙은 허리를 한번 쭉 펴 올리고 나서 툭툭 등을 두드린다. 초저녁부터 베기 시작한 보리가 가난한 집 자식들처럼 바닥에 나란히 누워 있다. 부지런히 벤다면 새벽까지는 다 벨 수 있을 것이다. 움직이는 모든 생물이 잠드는 시간 아낙은 땀과 이슬에 젖은 채 보리밭에 엎디어 보리를 베고 있는 중이다. 중학교에 다니는 큰아들 수업료를 마련하게 된 아낙은 지치기는커녕 힘이 솟는다. 보리밭 주인을 찾아가 책임지고 보리 베주는 삯을 한꺼번에 받아내 아들 수업료를 마련했던 것이다. 그녀는 추수 때가 되면 일꾼 서너 명의 삯을 미리 받고 이렇게 밤을 새워 추수를 해주었다. 책임감이 강하고 신용이 확실한 그녀는 한 번도 실수한 적이 없었고 밭 임자는 일꾼들 밥 해주는 값을 덤으로 얹어 주곤 했다.
새벽이 부옇게 다가오고 마지막 낫질을 끝낸 아낙이 허리를 편다. 낫질하던 손을 들어 팡팡 어깨를 두드리다가 아낙은 그만 섬광처럼 스치는 것이 있어 집으로 줄달음친다. 잘 먹이지도 못한 아들이 유난히 운동을 잘한다고 학교에서 농구선수로 뽑혔다. 오늘부터 대회에 나갈 연습을 한다고 했다. 아침을 먹여 보내야 하는데 아침거리가 없으니 어쩌면 좋으랴. 그녀는 밤새 낫질하던 고달픔도 잊고 집을 향해 달린다. 집에 와 보니 아들은 이미 학교에 가고 없었다. 다른 자식들은 세상 모르고 자고 있다. 어미가 밤새 보리를 베고 이슬에 젖어 들어온 것도 모르는 아직 철없는 아이들이다. 한 줌 남아 있는 밀가루를 개어 아이들이 먹을 멀건 수제비를 끓여 놓고 그녀는 잰걸음으로 아들 학교를 향해 걷는다. 자식이 뭔지 밤새워 노동을 하고도 어미는 철인이 되어 숫제 십 리가 넘는 시골길을 달리다시피 걷는다. 학교 근처 구멍가게에서 삼립빵 세 개와 우유 하나를 사 들고 교문에 들어서는데 ‘저게 누꼬, 내 아들이 맞나?’ 굶은 아들이 공을 들고 펄떡펄떡 뛰는데 마치 고래가 수면 위로 뛰어오르는 것 같았다. 어미의 눈에 눈물이 고이고 아들 모습이 굴절되어 보였다. 쉬는 시간에 어미를 본 아들은 기함할 듯이 놀란다.
“엄니! 밤새 일하고 여기는 왜 왔어요? 학교에서 점심 사 주는 것 먹으면 되는데….”
“에미 걱정은 마라. 아침도 굶고 무슨 연습이 된다고, 점심은 점심이고 어여 묵고 힘내라.”
배가 고프기는 몹시 고팠던가 보다. 삼립빵 한 개를 한입에 풀떡 넣고 볼이 터지도록 우물우물 씹는다. 아들 입에 들어가는 것만 봐도 금방 내 배가 불러온다. 돌아오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울타리도 없는 마당에 들어서니 토방에 새벽까지도 없던 낯선 신발이 얌전하게 놓여 있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웬수가 또 나타난 것이다. 남편은 오입쟁이 바람 들듯 한 번씩 집을 나가면 짧게는 반 년, 길게는 일 년이 넘도록 소식이 없다가 독립운동 주모자처럼 오밤중이나 새벽에 슬그머니 들어오곤 했다. 들어와서는 며칠 밤낮으로 송장처럼 잠만 잤다. 그렇게 한 번씩 왔다 가고 나면 무슨 웬수로 배가 불러왔고 떠돌이 남편은 집에 들를 때마다 낯모르는 아이가 하나씩 있었지만 옆집 강아지 보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어느 날 아내는 그것도 서방이라고 아들 수업료 낼 돈을 내놓으며 송아지를 사서 키워 어미 소 되면 밑천 만들어 한번 살아보자고 했다. 남편은 좌정하고 앉아 수긍도 거절도 아닌 애매한 표정으로 상체를 좌우로 움직이면서 아내를 빤히 쳐다보기만 했다.
그날 밤도 방 안이 어둠 속으로 침몰하자 아낙의 가슴은 여지없이 답답해지고 있었고 장날인 다음 날 송아지 살 돈을 가지고 나간 남편은 그 길로 소식 없는 것이 일 년이 가까워오고 있었다. 그때 끓인 병이 화병이 되어 지금도 소화가 안 되고 있었다. 당장 죽이고 싶은 마음에 방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베개도 없이 맨바닥에 새우처럼 웅크리고 이번에도 송장처럼 자고 있었다. 추레한 몰골이 비 오는 날 주인에게 매 맞고 쫓겨난 개가 따로 없었다. 기가 막혔다. 죽이더라도 잠이나 깨면 죽이자 하고 아내는 열어젖혔던 문을 도로 닫는다. 들판에서 밤을 꼬박 새웠지만 저 화상이 누워 있는 방 안에서는 잠이 올 것 같지 않았다. 잠은커녕 암탉처럼 또 밑에 깔리는 신세가 되지 말라는 법도 없기에 아낙은 뒤란 굴뚝을 등지고 땅에 주저앉는다. 고단한 육신 하나 뉘일 곳이 없다 싶으니 울화가 치민다. 옆집에서 얻어다 심은 몇 그루 안 되는 고추 모종에는 어느새 애고추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저런 미물 초목도 살아보겠다고 용을 쓰는데 사람으로 태어나서 저렇게밖에는 살 수 없는 한 인간이 한심했다. 그가 하필이면 내 인연임을 생각하니 새삼스럽게 설움이 북받친다.
‘딸 팔자는 그 어미 팔자라더니.’
그렁그렁한 눈물로 세상이 흐릿하게 굴절되어 보이다가 잠 속으로 빠져버린다. 꿈속에서도 아낙은 보리를 베고 있었다. 저 보리를 다 베지 않으면 아들 수업료를 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조급하다. 보릿대를 한 줌 움켜쥐고 낫으로 베려는데 팔이 움직이지를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낫이 보릿대에 닿지 않고 애를 먹인다. 이번에는 뒤에서 뭔가 자꾸 잡아당기고 있었다. 날이 샐 때까지는 다 베어야 하는데 말이다.
‘에잇!’
잡아당기는 이물질을 힘껏 내치다가 번쩍 눈을 뜬다. 그런데 송장처럼 잠자던 남편이 팔을 잡고 일으켜 세우느라 낑낑대고 있었다.
“한데서 잠자다가 탈 생기면 어쩔라고, 어여 방으로 들어와서 자아.”
꿈속에서 내쳤던 이물질을 이번에는 생시에 힘껏 내치고 일어난다. 땅바닥의 습기로 궁둥이가 눅눅했다. 한데서 선잠을 깬 터라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저 웬수를 죽이기 전에 우선 잠이 더 급했다. 방에 들어와 요를 깔고 눕기도 전에 잠 속으로 떨어졌다. 천금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은 달콤한 수면이다. 포근한 목화솜 뭉치를 안고 한없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했다. 숨을 몰아쉬어 본다. 소용이 없다. 이번에는 몸이 마구 짓눌리면서 흔들린다. 포근하던 햇솜 뭉치는 어디로 사라지고 묵직한 물건이 내 몸 위에 얹혀 있다. 물건을 밀어버리려는데 팔이 움직이질 않는다. 이 기막힌 잠을 방해하는 물건을 치워야 하는데 말이다. 요동치는 흔들림과 아래에 심한 압박을 느끼고 잠 속을 겨우 빠져나온다. 눈을 뜬 것과 동시에 남편이 몸에서 분리되어 천장을 쳐다보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내는 개구리 튀듯 발딱 일어나더니 사내의 멱살을 획 휘어잡는다.
“이 웬수 보래이! 나가 뒤지기라도 하재 왜 기어 들어와 식구들 다 몬 살게 하나 말이다. 제발 사는 사람이나 살게 식구들 눈앞에 나타나지 말거래이. 이 새끼덜이 니 눈에는 안 보이나? 끼니거리가 없어 불어터진 멀건 수제비나 먹으면서 크는 이 새끼덜이 안 보이나 말이다. 그러고도 모지래서 또 눈구멍이 벌게 지집을 탐하나? 도대체 짐승이야 사람이야. 새끼가 적어서 여기다 더 보태줄라고 기어 들어왔나?”
아내의 손에 이번에는 사내의 몸이 사정없이 흔들린다.
남자는 이번에도 바람처럼 들어와서 송장처럼 잠만 잤다. 밤에는 아이들을 시켜 막걸리를 사오라 하여 마시고는 품 팔고 들어온 아내를 탐했다. 아이들 때문에 실랑이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지라 아내는 아이 학비가 아닌 남편을 피해 들판에서 밤을 새우는 일을 찾아 나선다.
며칠을 방 안에서만 뭉개던 남편은 이번에도 장날에 나가더니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린 듯이 들어오지 않았다. 집 안에 들었던 구렁이가 나간 것처럼 시원했다.

 

바닷가에서 자란 정숙은 오늘도 양은 함지를 들고 새벽같이 집을 나선다. 어항에는 고깃배가 밤새 잡아 올린 생선들을 부려놓자 아낙들이 생선을 선별하느라 바퀴벌레처럼 까맣게 엎어져 있었다. 선별된 생선들은 각각 상자에 담아 각지에 있는 수산시장으로 나가고 일부는 아낙들이 양은 함지를 들고 나와 생선을 받아간다. 생선을 머리에 인 아낙들은 이렇게 싱싱한 생선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처럼 외치면서 아침 밥상에 올라갈 생선을 파느라 새벽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오늘도 마주 서 있는 사람 얼굴 윤곽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 이른 시각인데 벌써 아낙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늦으면 생선은 이미 동이 나고 그날은 공치는 날이 되어 버린다. 앳된 정숙은 맨 끝에 다소곳이 서 있었다.
“왔나, 오늘도 어매 대신 나왔능가베?”
“어매는 아직도 아프나? 참말로 어데가 그리 아파서 시집도 안 간 딸한테 이 험한 바닷바람을 쏘이게 하노. 피부 거칠어지면 시집을 어찌 보낼라꼬.”
“그래 말이다, 웬만해서는 집에 들앉아 있을 사람이 아인데 말이다. 어매 많이 아프나?”
“허리가… 이제 거반 다 나았심더.”
정숙은 얼굴 윤곽은 없고 목소리만 나오는 아낙들에게 대충 그렇게 얼버무린다.
엄니는 지금 며칠째 일어나지 못하고 누워 있다. 사지를 움직일 때마다 어금니를 악문 신음 소리가 새어 나왔고 뒤이어 어김없이 욕설이 튀어나왔다.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문디 웬수.”
그녀가 아버지라고 부르는 사람은 며칠 만에 한 번씩 도둑놈 소굴 수색하듯이 들이닥쳐서는 어머니에게 돈을 내놓으라며 행패를 부렸다. 
그 사람을 처음 본 것은 그녀가 열한 살이 되던 어느 날 자다가 오줌을 누려고 일어났는데 어둠 속에 어렴풋이 어머니 옆에 내가 아닌 또 한 사람이 자고 있었다. 처음에는 나도 모르는 친척인가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어머니는 이미 어항에 나가고 없고 어머니 옆에서 자고 있던 사람도 온데간데없었다. 예나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아이는 학교 갈 준비를 했고 조금 있으니 어머니가 비릿한 냄새를 풍기면서 빈 함지를 들고 들어왔다.
“어매! 그 사람 누구요?”
“무슨 소리하노. 누구 말인데?”
“어매 옆에서 자던 사람 안 있었나?”
“니 알 거 없다. 언능 핵교 갈 준비나 해라.”
아이는 며칠에 한 번씩 오줌이 마려워 일어나면 어머니 옆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어머니도 없고 옆에서 자던 사람도 없었는데 어느 날 어머니가 차리는 아침 밥상을 보니 평소에 없던 반찬 몇 가지가 더 올라와 있었다. 숟가락, 젓가락도 하나 더 올라와 있다. 그날은 밥상 앞에 앉은 사람도 한 사람이 더 있었다.
그날 이후부터 아침에 눈을 떠보면 어머니는 없고 옆에서 자던 사람만 네 활개를 펴고 자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면 그 사람은 여전히 잠을 자거나 어떤 날은 아이에게 술을 사 오라 하여 술을 마시기도 했다. 아이는 그 사람이 징그럽게 싫었지만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밖에 나가 장사를 하다가도 헐레벌떡 들어와 차린 밥상에는 정성이 뚝뚝 떨어졌다. 그 사람은 그런 어머니에게 다정했고 어머니는 행복해 보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어보고 그 사람이 없으면 아이는 커다란 시름을 내려놓은 것처럼 편안했다. 그 사람은 그렇게 한 번씩 나갔다가 며칠 만에 들어왔다. 그리고 가끔씩 아이에게 용돈을 주기도 했다. 아이는 어머니에게 그 사람이 준 돈을 내밀면 아꼈다가 필요한 학용품을 사라고 했다. 그런 날은 어머니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른거렸다.
어머니 몸에서는 언제나 생선 비린내가 났다. 아이는 그 생선 비린내가 어머니 냄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는 그 냄새가 결코 싫지가 않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들어오고 나서 어머니는 저녁마다 물을 데워 몸을 씻었다. 오랜 시간을 두고 비린내를 무슨 원수같이 씻어냈다. 그러고도 방에 들어와서 어머니는 그 사람에게 묻는다.
“냄새가 아직도 나지요? 비린내가 앵간히 질긴기라, 씻어도 냄새가 그대로 있으니 말이오, 더 씻어야겠지예?”
“됐다, 그만해라. 그런다고 몸에 붙댕긴 냄새가 어데 간다꼬…. 그만 자자.”
그 시간에 아이는 잠이 들었으려니 했지만 아이의 귀는 열려 있었다. 옷 벗는 소리 사각거리고 이부자리 들추는 소리, 잠이 오지 않는지 계속 뒤척이는 소리, 그러다가 어매가 낮에 하는 장사일이 힘이 들었는지 킁킁 앓는 소리, 그 사람도 숨이 막히는지 푸푸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어렴풋이 듣다가 아이는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어머니는 새벽부터 나가 장사를 했고 쉬는 날이 없었다. 그런데도 여전히 가난했다. 가난하면서도 어머니는 그 사람이 오고 나서 두 번째 배가 불러오고 있었다. 정숙은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어린 동생을 돌보면서 이제 열여섯 살이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 얼굴이 이제는 행복해 보이지가 않았다. 그 사람은 어머니 배가 불러오자 집을 나가더니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 어머니는 부른 배를 안고 새벽이면 여전히 함지를 들고 어항으로 나가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어느 날 잠을 자다가 이상한 소리가 나서 잠이 깼다. 방 안은 아직 캄캄했다. 그런데 분명히 잠들기 전에는 없었던 그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술 냄새도 풍겼다.
“안 줄래? 니 정말 그럴래?”
“보소, 인자는 내도 더는 몬해 주요. 이 아들을 굶기게 생이요. 이제 그마 정신 좀 차리소 마. 지난번에 가져간 것도 빨리 갚으라고 성화요. 그런데 또 어데서 돈을 꾸란 말이요.”
“내 부탁하는데… 한 번만 더 도와도. 이번이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어이?”
“더는 몬 해요. 쥑이든지 살리든지 맘대로 하소 마, 내는 모리겠소.”
그때, ‘퍽’ 소리가 둔탁하게 들리고 동시에, ‘어억’ 하는 소리에 이어 둔탁한 소리가 연거푸 나면서 어매 입에서는 전에 킁킁대며 앓던 소리하고는 전혀 다른 신음 소리가 방 안에 퍼졌다. 이제 열여섯 살이 된 정숙은 반사적으로 발딱 일어나더니 고함을 지른다.
“아배요! 어매한테 왜 이라요? 어매 쥑일락카요? 어매가 뭘 잘못해서 그리 패능교 예? 어매는 왜 빙신 천치같이 그리 사나 말이다, 인자 매까지 맞아야 하나?”
머리가 컸다고 조목조목 따지고 드는 딸 앞에서 그 사람은 방문짝이 부서지게 열어젖히면서 나가버리고, 어매는 매를 맞고도 죄인처럼 고개를 들지 못한다. 날이 밝아 어매 얼굴을 보니 한쪽 눈이 시퍼렇게 멍든 채로 거의 감기다시피 부어 있었다. 그 얼굴을 하고 새벽에 나가 골목을 누비다가 비린내 나는 빈 함지를 들고 들어오는 것이다. 다음 날 새벽 어머니는 배가 아파 끙끙거리며 사방을 헤매더니 붉은 덩어리 하나를 쏟아낸다. 손가락, 발가락까지 얼추 다 갖춘 핏덩이가 핏물에 섞여 방바닥에 처연하게 엎디어 있었다.
“어매! 이게 뭐꼬.”
“조용히 해라.”
기함하듯 놀라 소리 지르는 딸을 발로 확 밀어 버리더니 푸대 종이로 살덩어리를 둘둘 말아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생선을 싸듯 아무렇지도 않게 말이다. 어미는 부들부들 떨고 있는 딸에게 부엌 찬장에 미역꼬리 남은 것 조금 있으니 끓이라 이르고, 피가 묻은 이불 홑을 뜯어내어 방바닥에 흘린 핏물을 닦는다. 부엌으로 나온 정숙은 부랴부랴 미역국을 끓이고 밥을 지어 방으로 들여간다. 어머니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핏기 없는 하얀 얼굴이 마치 차가운 대리석 같은 것이 순간, 섬뜩했다.
“어매요! 일어나 밥 묵소.”
부르니 절대 떠질 것 같지 않던 어미 눈꺼풀이 힘겹게 열린다.
“어매, 괜찮나?”
“괜찮지 그람, 뭐 어때서.”
정숙이의 섬뜩함도 제자리를 찾는다.
다음 날 새벽에 바구니처럼 부은 얼굴을 한 어미가 일어나 빈 함지를 들고 나선다. 맞아서 부은 얼굴에 유산까지 했으니, 너무 부어서 높낮이가 없어진 얼굴은 호박 같았다. 정숙은 그런 어미를 찢어지게 불렀지만 막무가내였다. 맨발로 쫓아나와 비린내 나는 함지를 뺏는다.
“어매! 죽을라고 작정했는가 베, 그 몸을 해 갖고 어데를 간다꼬, 이웃이 부끄럽다, 이리 내라. 내가 갈란다.”
“니가 뭘 안다꼬, 안 나가믄 내 단골이 기다릴 낀데, 어제도 안 나가고 오늘도 안 나가불먼 단골 뺏길지도 모린다. 이리 내라.”
“그래도 사람이 살아야지. 지금 나가면 어매 죽는다. 그깟 단골은 다시 만들면 되는 것이고 내가 나갈란다. 어매는 밥도 하지 말고 그냥 쉬소, 갔다 와서 내가 할끼니까네, 알았나?”
그녀가 처음으로 드샌 바닷바람을 쏘이게 된 동기였다.
어항에 줄을 서려면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 바다는 거대한 검은 보자기가 펼쳐진 듯 엎디어 있었다. 갈매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고깃배가 아직 들어오지 않았고, 바퀴벌레처럼 엎어져 생선을 선별하는 아낙들도 아직 없었다. 그 이른 시각에 조그만 옷가방을 들고 어항 근처에 서서 서성이는 여자가 있었다. 정숙이었다.
그녀의 어미가 미처 몸을 다 추스르기도 전에 그 사람이 들어왔다. 이번에는 열흘 만이었다. 지난번에 털어가지 못한 전대에 미련이 있어 그러려니 했다. 어미는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전대를 비우지 않으리라는 굳은 결심을 했는지 처음부터 제법 대가 세게 나왔다.
다음 날부터 그 사람은 방 귀신처럼 방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열일곱 처녀가 다 된 정숙은 그 사람이 있는 방에는 절대 들어가지 않았고, 허드렛일을 하면서 밖으로만 빙빙 돌았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이틀이고 못할 노릇이었다. 정숙은 빈둥거리는 저 화상을 안 볼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다. 더구나 요즘 특별히 돈을 내놓으라고 졸림을 받지도 않고, 매도 맞지 않는 어머니는 차츰 얼굴이 밝아지면서 그 화상 밥상을 차리기 위해 부엌에서 보내는 시간도 많아졌다. 장사하고 들어와서 비린내도 열심히 씻어 내렸다. 그런 어미까지 못 견디게 싫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법이다. 정숙은 옷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오늘 이른 새벽에 부엌 나무청에 숨겨 놓은 옷가방을 들고 집을 나선 것이다. 수중에는 돈도 없다. 딱히 갈 곳을 정해 놓은 것도 없다. 어미 곁을 떠나는데 서럽지도 않았다. 어항에 나가면 서울 수산시장으로 배달하는 생선 차들이 많았다. 서울까지만 태워 달라고 사정을 해보리라.
새벽은 바다에서부터 오는 것인가. 세상이 차츰 잿빛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약속이나 한 듯 발자국 소리를 몰고 거뭇거뭇 인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정숙은 함지 든 아낙들을 피해 멀찍이 생선 차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출항했던 고깃배가 들어오자 어항은 금세 시끌시끌했다. 하루가 시작되는 신호처럼 활기를 띠고 꿈틀거렸다. 아낙들은 오늘도 영락없이 엎어져 고깃배가 부려놓은 생선을 선별할 것이고, 생선 차는 선별한 생선을 싣고 각지에 있는 수산시장을 향해 새벽길을 쌩쌩 달릴 것이다. 함지에 생선을 받아 머리에 인 아낙들은 새벽 골목을 누비며 ‘생선이 왔이오, 싱싱한 생선이 왔이오’ 하고, 생선이 제 발로 걸어온 것처럼 소리를 지를 것이고, 거기에는 내 어매도 영락없이 끼어 있을 것이다. 정숙은 생선 함지를 머리에 인 어매를 생각하자 비로소 콧등이 시큰하면서 먹먹하게 목이 멘다.
그 사람이 들어오고 나서 정숙은 처음으로 아버지가 궁금하기 시작했다. 열다섯 살이 되던 해, 어머니에게 물었다. 너무 진지하게 묻는 딸을 찬찬히 쳐다보던 어미의 입에서 하르르 한숨이 나온다.
건어물 도매상 하는 친척집에 얹혀 살면서 살림도 하고 장사일도 거들던 어머니가 소매상 하는 단골집 아들과 눈이 맞았고, 한 번 두 번 만나 다 보니 입덧을 했단다. 그런데 웬만큼 먹고살 만한 신랑 집에서 이 혼인은 어림도 없었다. 입덧 아니라 튼실한 고추 달린 아이가 나와 앵앵 운다 해도 식모살이 하는 여자를 며느리로 들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남자 집에서는 이 혼사를 깨기 위해 다른 곳으로 혼인을 해 버렸다. 배는 하루하루 불러오고 대책이 없었다. 처녀가 애를 배도 할 말이 있다 했는데 받아줄 데가 있어야 말이든 핑계든 해 보는 것이고, 처녀는 친척이 마련해 준 얼마간의 돈을 갖고 아무도 모르는 이곳으로 와서 혼자 아이를 낳았다. 여자는 스스로 과부라 자칭하면서 생선 장사 길로 나섰다. 결혼도 해 보지 않고 과부가 되어버린 여자다. 여자는 새벽에 잠든 간난아이를 들쳐 업고 돌아다녔다. 아이가 말귀를 알아들을 만큼 컸을 때 집에 있으라는 말을 알아듣고 아이는 동구 밖을 바라보며 어미를 기다렸다. 아이를 집에 두고 나온 여자의 머리에는 더 많은 생선이 올라와 있었고, 발걸음도 빨랐다. 전대에 들어오는 돈도 그만큼 많았다. 이제 장사도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고정적인 단골도 확보하게 되었다. 그 무렵 생선을 받아가는 젊은 여자를 유심히 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배를 타는 사람이었다. 출항해서 돌아올 때는 따로 좋은 생선을 골라 두었다가 아무렇지 않게 여자 함지에 듬썩 넣어 주곤 했다. 처음에는 선주 눈을 속여 구린 뒷돈을 마련하는 뱃놈쯤으로 알았다. 여자는 생선 값을 몰래 쥐어 주려고 그 사람을 찾았다.
“보소! 여기 내한테 준 생선 값 받으소. 생선이 좋다꼬 단골이 많이 늘었십니더. 고맙심더. 돈이 모지래면 말씀하소 마.”
“돈 받자고 준 거 아이오. 처치할 수 없어 그냥 준 거요. 맘 쓰지 마소.”
그렇게 두 사람은 어느덧 어항에서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고, 어느 날 아이가 오줌을 누러 일어났을 때는 어미 곁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고 있었던 것이다.
바로 옆에 있는 생선 차가 움직이려는지 시동 켜는 소리가 들린다. 정숙은 높은 운전석을 올려다보며 묻는다.
“아저씨! 말 좀 물어보입시더. 혹시 이 차가 어데로 갑니꺼?”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가는데….”
“그라믄 아재요. 내 좀 거기까지만 실어다주먼 안 되겠습니꺼? 꼭 가야 해서 그러는데예.”
“안 될 거는 없지마는, 거기에다 내려주기만 하만 되는가?”
“예, 그렇심더.”
“타 보소.”
“참말로 고맙십니더. 그라모 신세 좀 질랍니더.”
조수석 바닥에는 담배꽁초가 수북하게 버려져 있고, 쓰레기통을 거꾸로 부어 버린 것같이 지저분했다. 정숙이 엎디어 신문지 위에 쓰레기를 주워 담아 대강 주위를 정리한다.
“치워도 또 그래요. 맘 쓰지 마소. 지금 서울 가먼 올 때는 기차 타고 오겠네. 오늘 올 것은 아닌가 모리겄지만.”
“고향에는 이제 안 올랍니더. 이 길로 아주 떠나는 깁니더.”
“고향이라 카는 것이 떠나고 싶다고 떠나지는 것이건데? 객지에서 서러브면 질로 먼저 생각나는 기 고향인기라,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리겠지만 서울이라 카는 데가 찾아갈 만한 친척이라도 있으면 모리까 무작정 갈 디는 절대 못 되는 곳이라, 갈 디는 정해 놓고 가는 기가?”
“지는 찾아갈 곳도 없십더. 사람이 사는 곳인데 내 하나 부비고 몬 살까요?”
“어허, 정말 큰일 저지를 색시구마, 안 된다. 서울이 얼매나 험하고 무서븐 덴 줄 모리나? 이렇게 무작정 기어 올라온 시악시 꼬셔다가 팔고 사고 하는 곳이라 말이다. 팔려간 시악시들은 그날부터 죽은 목숨이나 진배없는 신세가 되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기라. 안 되겄구마는, 내 올 때같이 이 차 타고 와야쓰것네.”
“말씀은 고맙지만도 지는 고향에 안 내려올랍니더. 돈 벌어서 혼자 살아볼 거라예.”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리겠는데 나잇살 묵은 내 말 들으라마. 내는 색시를 혼자 서울에 떨피 놓고는 몬 돌아서겠는데.”
정숙은 갑자기 자기를 걱정해 주는 아저씨가 고맙고 마음이 놓이면서 거침없이 눈물이 흐른다.
“걱정해 줘서… 고맙십더.”
“…색시를 처음 보는데 어려서 죽은 내 누이 생각이 퍼뜩 나데. 그 아가 살아 있으믄 지금쯤 색시만 한 나이가 얼추 됐을 긴데…. 그래서 색시를 혼자 내버려 두고 올 수 없다는 기라.”
“그랬구마요. 지는 여태 어매랑 둘이만 살았심더. 어매가 결혼도 안 하고 나를 뱄던가 베요. 아배는 결혼하자고 했지만 아배 집에서는 죽어도 안 된다 카면서 아배를 다른 여자하고 혼인을 시켜 버렸다데요. 어매는 혼자서 아를 낳고 생선 장사하면서 내를 키우고 살았이요. 그런데 그 사람이 나타나고부터는….”
그동안 부당하게 어머니를 때린 그 사람하고는 한 집에서 도저히 살 수 없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장사 나가고 없는 집에서 단둘이 있을 수가 없어 이렇게 나왔다고 했다.
“듣고 보이 참 딱하구마. 내 장담은 몬 하겠는데. 이 생선 받아가는 주인을 내가 잘 안다 아이가. 우선에 그 집에 당분간 있어 보면 어떨까 싶은데.”
“아재를 만난 것이 하늘이 지를 도운 것 같아예. 지는 열심히 할 수 있어예, 고맙십니더.”
닭똥 같은 눈물을 툭툭 떨어뜨리는 여자를 안쓰럽게 쳐다보는데 세 살 먹은 여동생이 우물에 빠져 둥둥 떠 있던 모습이 앞을 가린다.
사내들만 득실거리던 집안에 마지막으로 누이가 태어났을 때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아버지를 식구들은 처음 보았다.
“허허허, 자네도 기집아를 놀 줄 아능구마이. 드센 머슴아밖에는 몬 놓는 줄 알았구마.”
“가스나가 뭐 그리 좋다꼬, 고생할라꼬 태어난 긴데.”
어머니 욕심에는 이번에도 아들이었으면 싶었던가 보다. 아들만 내리 넷을 뽑아 놓고도 또 아들 욕심이라니. 아버지를 비롯하여 가족들은 누이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다. 조그마한 어선을 가지고 있는 아버지는 출항할 때만 빼놓고 어디를 가나 누이를 데리고 다녔다. 밥상 앞에서도 아버지 무릎에는 누이가 올라앉아 있었다. 거친 오빠들 틈에서 놀다가 우는 소리라도 나게 되면 누이를 달래기 전에 오빠들은 일단 사방으로 튀기 바빴다. 아버지한테 붙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내 누이만큼 예쁜 아이는 생전 처음 본 것 같은데 이웃들 눈에는 그렇지가 않았던지 예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런 누이가 세 돌이 지나고 난 한여름, 뙤약볕이 쨍쨍 내리쬐는 미나리밭 우물물에 둥둥 떠 있는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때가 열여섯 살이었다. 미나리밭에 소변을 시원하게 보고 나서 무심히 우물을 본 것이다. 야트막한 우물은 어머니가 앉은 채 바가지로 물을 퍼서 빨래도 하고 미나리도 씻고 질척거리는 미나리밭에 들어갔다가 나와 다리를 씻기도 하고 허드렛물을 쓰는 우물이었다. 처음에는 누이의 옷이 바람에 날려 우물 속으로 들어간 줄 알았다. 건지려고 허리를 구부리는데 검은 머리가 쪽박처럼 엎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지금 생각에는 눈앞이 아득했다는 생각밖에는 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방에서 찢어지게 울어대는 매미 소리가 들렸던 것 같다. 너무 시끄럽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우는 저 매미들을 모조리 잡아서 불 속에 집어 쳐넣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아니다. 아버지 얼굴이 맨먼저 떠올랐었지 아마.
아버지는 출항하고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야 한다면서 어장에 품을 팔러 나갔었다. 다른 동생들은 방학이라 코빼기도 볼 수 없었다. 오빠들을 잘 따라다니는 누이가 오빠들을 따라 나간 줄만 알고 있었는데 우물 속에 있었다니.
아버지는 누이를 뒷산에 묻고 난 다음 날 돌아왔다. 아버지 손에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누이에게 입힐 앙증맞은 옷과 꽃신만 달랑 사 들고 들어왔다. 머슴아들한테는 양말 한 짝 신경 안 쓰던 아버지가 번번이 기집아 것만 사 들고 들어오는 아버지에게 어머니는 늘 눈을 흘기었고 누이에게 옷을 입히는 아버지의 입은 함박처럼 벌어졌었다.
아버지가 마당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갯벌에 게처럼 숨어 버린다. 곤두박질치듯 달려 나와 안아 달라고 강아지처럼 보채던 아이도 보이지 않고 집 안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아버지는 장남인 내 이름을 먼저 불렀다. 아버지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도 다리가 떨려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하필 누이를 건져낸 나를 부르실 것이 뭐람, 쭈빗거리며 아버지 앞에 나온 나는 누이가 죽은 것보다도 이 순간에 아버지가 무서워서 그만 소리 내어 울어 버리고 말았다. 그때 어머니가 죄인처럼 아버지 앞에 대령하고 동생들도 게 구멍에서 나와 죄다 그 앞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보소, 지금 오싰네요. 쬐매만 일찍 오싰시만….”
“집에 뭔 일이 있나?”
“…그기….”
어머니가 어렵게 입을 열어 사건 전말을 얘기하는 동안 아버지의 얼굴은 시시각각 사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아는 어데다 묻었드노.”
“뒷산 양지바른 곳에다 잘 눕혀 재웠소.”
“앞장 서거라.”
나는 머뭇거리면서 먼저 어머니를 쳐다보았다. 어머니가 앞장서라는 눈짓을 했다.
애기 무덤답게 봉분이 낮은 붉은 흙덩이는 멀리서도 보였다. 그때 갑자기 뒤따르던 아버지가 잽싸게 달려가는데 아버지 손에는 어느새 삽자루가 들려 있었다. 집을 나오면서 문간에 세워 둔 삽을 들고 나온 것 같았다. 내가 달려갔을 때는 이미 붉은 흙더미가 공중으로 펄펄 날리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 허리를 두 손으로 깍지 끼고 같이 뒹굴었다.
“왜 내 아가 저 속에 있어야 한단 말이고. 아가 얼매나 답답할 끼가 말이다 어이? 놔라. 이눔의 자석이 놓지 몬하나.”
그때 뒤따르던 어머니가 달려오고 동생들이 모두 달려왔다.
“보소, 정신 차리소 마. 인명은 제천이라꼬 지 맹이 고것밖에는 안 되는기라예. 우짜겠능교, 이런다고 아가 다시 살아날 것도 아이고 그러니까네 제발 이라지 좀 마이소 예?”
식구들 만류로 삽을 뺏긴 아버지는 이번에는 손으로 후벼 파다가 무덤에 엎어져 짐승처럼 울기 시작했다. 누이가 태어났을 때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아버지를 식구들이 처음 보았던 것처럼 이번에는 그렇게 큰 소리로 우는 아버지를 처음 보았다.
산에서 내려온 아버지는 그 길로 나가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왔다. 아버지의 술버릇이 고약해지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아이를 잃어버린 괴로움을 학대하듯 혼자서 그렇게 술로 풀었다. 결국 아버지는 간이 망가질 대로 망가져 배가 동산처럼 부풀은 상태로 돌아가시고 말았다. 아이 봉분 옆에는 커다란 봉분 하나가 더 생겼고 두 봉분은 이제 절대로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지금도 여전히 예쁜 얼굴로 기억되는 누이였다.
정숙은 아저씨의 주선으로 시장 안에서 생활하게 되었다. 아저씨가 생선차를 몰고 서울에 오게 되면 영락없이 정숙이를 찾았고 정숙이도 아저씨를 무척 반겼다. 겨울에는 발이 시리다고 털신도 사다 주고 손이 시리다고 장갑도 사다 끼워 주었다. 정숙은 아저씨를 대할 때마다 생전에 보지도 못한 아버지 같은 부정을 느꼈고 아저씨는 정숙을 볼 때마다 누이 같은 오누이 정을 느꼈다. 이렇게 두 사람은 각기 다른 정이지만 가족처럼 친근해져서 스스럼없이 지냈다. 시장 안에서는 당연히 친척 아저씨로 알고 있었다.
정숙이 이제 꽉 찬 스무 살이 되었다. 건강하고 성실한 정숙을 탐내는 여자가 있었는데 성남에 사는 주인여자 먼 동서지간이라 했다. 아들 하나 낳고 일찍 혼자 된 과수댁이 우연히 가게에 들렀다가 정숙을 보더니 대뜸 대들었다. 주인여자는 거절을 못하고 생선차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정숙이 혼인 말을 꺼내 보았다. 주인여자는 동서 말만 듣고 부자는 아니지만 먹고사는 데는 지장 없다면서 두 사람을 엮어 주자고 했다. 아저씨는 먼저 당사자의 의견을 물어보았고 인연이라 그랬는지 팔자소관이라 그랬는지, 순순하게 혼인이 성사되고 말았다.
시집을 와 보니 홀애비는 이가 서 말이요 과부는 금이 서 말이라는데 이 과수댁한테는 이슬을 피할 수 있는 초가가 전 재산이었다. 그런 처지임에도 이 혼인을 서두른 이유가 있었다. 어느 날 떠돌이 점쟁이가 동네에 들어왔다. 청상은 아들 앞길이 고속도로처럼 훤할 것임을 의심치 않고 복채를 놓았다.
“이 사주는 처자식이 없는 사주여.”
대뜸 점쟁이 입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청상은 건강한 내 아들이 뭐가 모자라 장가를 못 간단 말이냐, 선무당 사람 잡는다더니 엉터리 점쟁이가 내 아들 잡는다고 길길이 뛰면서 복채를 도로 내놓으라 했다. 점쟁이는 빙긋이 웃으면서 복채를 내주었다. 복채를 받아내기는 했어도 청상은 늘상 점쟁이 말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었다.
‘점쟁이 남의 돈 그냥 안 먹는다는데.’
아들이 스무 살이 되자 어머니는 혼처를 물색하고 돌아다녔다. 청상 과부 시어머니만으로도 고개를 사정없이 돌릴 판인데 시골에서 농토는커녕 신랑감이 내세울 만한 학벌도 직업도 없었다. 아들 나이 삼십이 가까워 와도 혼인하겠다는 집이 없자 어미는 치마만 둘렀으면 지나가는 여자도 붙들어 올 기세였는데 이렇게 건강하고 참한 며느리를 보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는 집에 시집온 새댁은 품 팔러 나가는 시어머니를 따라 나서야 했다. 남편은 기생 기둥서방처럼 밖으로만 나돌았고 집에 있는 날에는 송장처럼 잠만 잤다. 시어머니가 죽게 되자 새댁은 시어머니로부터 곳간 열쇠 대신 가난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아들이 커서 영장이 나왔다. 아침을 굶고도 운동장에서 고래처럼 뛰던 아들이었다. 아들은 입대하는 날 아침 어미 손에 쌀 열 가마가 넘는 돈을 쥐어 주었다. 입대하기 전날까지 공사판에 나가 번 돈이었다. 밥만 먹으면 나가는 아들이 입대하기 전에 친구들을 만나 송별회를 하는 줄로만 알았다. 아들이 쥐어 준 돈의 정체를 알게 된 어미는 뒤란에 있는 굴뚝을 등지고 앉아 피를 토하듯 울었다. 내일이면 고된 훈련을 받을 아들이 하루도 쉬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지켜보는 어미 마음은 그대로 지옥이었다. 그녀는 그 길로 아들의 피땀을 고스란히 아들 이름으로 통장에 넣고 돌아왔다. 그런데 집 나간 남편이 돌아와 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에는 송장처럼 조용하지 않고 코까지 골고 있었다. 미운 놈은 입에서 나오는 매화타령도 듣기 싫다는데 코 고는 소리라니. 방문을 닫으려는데 언뜻 남편 입에서 침이 지르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반쯤 내려앉은 눈꺼풀 사이로 흐리멍덩한 눈동자가 낮달처럼 떠 있었다. 남편은 코를 고는 것이 아니었다. 저승사자에게 끌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가래 끓는 소리였다. 뇌졸중이었다. 세상은 유독 그녀에게만 인색했다. 아들이 입대하는 날 쥐어 준 쌀 열 가마 값은 병원비로 다 날리고 아내는 이제 남편 대소변까지 받아내야 했다. 집 나간 남편을 집 안에 든 뱀이 나간 듯이 시원해하던 아내에게 남편은 보복이라도 하듯 그렇게 삼 년을 힘들게 하고 떠났다. 점쟁이 말대로 그는 처자식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하루도 살아보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점쟁이가 며느리 사주를 보았다면 아마도 ‘이 사주는 남편이 없는 사주여’ 했을 것이다. 타고난 팔자대로 사는 것이지 남의 팔자에 동승해서 사는 인생은 없는 것이다. 너 때문에 내가 못 사는 것이 아니고 내 팔자 때문에 너를 만난 것이니 누구를 탓할 것이더냐.
자식들이 장성하여 가정을 꾸리고 제 밥벌이를 하니 그녀에게도 드디어 쨍하고 햇빛이 떴다. 그런데 쨍하던 햇빛은 그녀가 환갑이 지나고 얼마 안 되어 지고 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 암덩어리가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자녀들은 서둘러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키고 수술을 받게 했으나 불행히도 수술은 아주 비관적이었다. 환자는 점점 가족들과의 대화가 불가능해지고 남편처럼 누군가에게 자신을 맡겨야만 했다.
‘우짠 일로 아덜이 다 모있구마. 가만, 자덜이 뭐라 카노 시방. 어매를 어데로 보내자 카는 것 같은데.’
“엄니를 요양원으로 보내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너희들 의견은 어떠냐?”
‘뭐라꼬, 요양원이라꼬? 거그 가만 물이 먹고 싶다 캐도 오줌 싼다꼬 안 주고 자석들이 어매 먹일라꼬 사 온 떡도 과일도 똥 싼다꼬 잘 안 준다 카던데. 어매는 그런 데 가기 싫다. 거기 보낼라 카믄 차라리 날 직이라 고마. 부모는 자석을 키울 때 계산을 안 하는데 자석은 부모 하나 모실라 카믄 저렇게 모이앉아 계산들을 하니라고 숱하게 재고 있구마. 어매요! 보고 싶소. 어매가 위독하다는 소식 듣고도 가보지 못했시오. 나중에 어매 죽었다 캐서 달려갔는데 어매가 그리도 좋아하던 그 사람이 옆에 있다가 지를 보더마는, 왔나? 어매가 많이 기다는데 합디다. 어매 시신 앞에 엎드려 창자가 끊어지게 울고 왔심더. 어매요! 아덜이 내를 어데로 보내 뿌린다 카네요. 부모는 열 자석을 거느리지만도 열 자석은 한 부모를 못 본다 카더마는 그 말이 맞는 갑네요.’
‘아재요! 아재는 지금 뭐하능가요. 내 시집오고 나서도 아재가 많이 보고 싶었지예. 보고 싶다고 쪼르르 달려갈 수도 없는데 우짜겠는교. 그란데 그날은 우짠 일로 아재가 우리 집을 다 찾아왔었능교. 하필이면 남의 집 보리 베어 주기로 한 날이었지예. 아덜이 어매는 보리밭에서 보리 밴다고 해서 언제 들어오는가 물으니까네 아침에 들어온다고 했다데요. 그 길로 아재는 들에까지 오지 않았능교. 사방은 어둑한데 달빛이 교교한 들판에 난데없이 아재가 풀썩 나타나더마는 내 손에서 낫을 뺏어 들었지예. 그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보리를 싹싹 베기만 하지 않았능교. 내는 아재가 귀신인 줄 알고 시껍을 했시오. 차마 우짠 일인가 묻지도 몬하고 옆에 있는 낫을 들고 지도 그냥 보리만 베었다 아이오. 낫날이 무뎌지만 쓸라꼬 낫을 한 개 더 가져온 거라예. 그란데 와 그리 눈물이 쏟아지던지예. 들판에서 그리도 밤을 많이 새웠지만도 지 신세 고달파 울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말입니더. 달빛에 엎드려 보리 베는 아재를 보니 꼭 고생하는 딸을 본 친정아부지가 차마 돌아서지 못하고 늙은 몸을 엎드린 것만 같았어예. 한편으로는 부끄러븐 생각도 들고, 지 가슴 안에 그리 많은 눈물이 쟁기 있는 줄 몰랐어예. 눈물 때문에 보리를 벨 수가 없었구마요. 아재는 지가 울고 있는 줄을 알아 뿌렀든가베요. 금방 날샌다, 이 보리 언제 다 벨라카노, 부지런히 해라 카는데 아재도 꼭 품삯 받은 사람 같았다 말입니더. 지 혼자서는 오늘 밤하고 낮 하루를 더 베야 끝나는 일이었는데 아재가 들어서니까네 새벽이 올라카먼 한참을 더 있어야 하는데 벨 보리가 없었다 아입니꺼. 마지막 보리 다 베고 난 아재는, 절대 아프지 말거래이, 아프면 안 된데이 알긋나? 한마디 하더만 땀과 이슬로 후질근하게 젖은 채 빈 들판을 휘적휘적 걸어가드마요. 지는 말 한마디 몬하고 그냥 장승처럼 서 있기만 했시오. 안개 속으로 사라진 아재가 더 이상 보이지 않으니까네 참말로 귀신한테 홀리뿌린 것 같았어예. 꼭 꿈을 꾼 것도 같고 그랬다 말입니더. 새벽이 부옇게 다가오는데도 지는 그렇게 서 있었시요. 나도 모르게 많이 울었던가베요. 목구멍에서 쉴 새 없이 딸꾹질이 나왔으니까네요. 그란데 참 이상한 일이 생기부렀다 아이오. 그 후부터는 밤에 들판에 나가 낫질을 할 때마다 꼭 아재가 같이 있는 것만 같았다 말입니더. 지는 달빛에 드러난 부연 들판에 엎디어 낫질을 하면서 아재에게 온갖 이야기를 다 했시오. 힘든 세상살이, 속상한 일들, 앞이 캄캄하고 절망스러운 일들, 신통하고 착한 내 자석덜 얘기도 했시오. 어느새 날이 훤히 밝아오마 아재는 어데로 가삐고 없더마요. 한번 안개 속으로 가버린 아재는 다시는 볼 수 없었는데 여태 옆에 있었던 것만 같았다 말입니더. 지는요 아재하고 이야기하는 밤이 그렇게 좋았다 아입니꺼. 밤에 들판에 나와 있으마 마음이 봄날같이 행복했다 말임더. 아재요! 아재가 절대로 아프지 말라캤는데 지는 지금 많이 아픔니더. 아덜이 내를 어데로 보낸다 카는데 지는 참말로 가기 싫어예. 우짜면 좋습니꺼?’

 

어머니를 요양소에 입실시키고 돌아가는 자손들 가슴은 맷돌이 얹혀 있었다. 차창 밖에는 아름다운 강산이 병풍처럼 펼쳐 있고 높은 하늘에 떠 있는 목화송이 같은 하얀 구름 한 조각이 나들이 나온 듯 한가롭다. 산천이 붉게 물든 깊어진 가을을 딛고 겨울 문턱을 넘으면 또 한 해가 저문다. 다가오는 계절을 막을 수 있는가. 겨울 문턱을 거부할 자 누구며 저무는 해를 마다할 수 있는가. 우리의 인생길도 저문다. 세월의 수레바퀴는 오늘도 지칠 줄 모르고 새로운 문명이라는 자식을 낳기 위해 굴러가고 부모를 모셨던 마지막 세대는 문명의 자식들로부터 버림받는 첫 세대가 되어 이렇게 외로운 죽음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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