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8
0
세상은 온통 소리로 꽉 차 있다. 그것이 시끄러워서 좀 조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다. 내가 청력을 잃기 전에는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던 소리들이 이제 보청기를 끼고 나니 새삼스럽게 세상은 소란한 소리가 많은 곳이란 생각을 더욱 갖게 한다. 거리로 나가면 전에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들었던 자동차 달리는 소리가 왜 그리 시끄러운지. 그 밖에 시내에 널려 있는 소리들이 소란하다. 듣고 싶은 소리가 소음에 묻혀 파악이 안 되면 엉뚱하게, 그리고 이상하게 소음만 전보다 더 크게 들리는 것 같다. 그게 싫어서 나는 요즈음 혼자 있을 때마다 보청기를 끄고 산다. 그러면 세상이 적막하다. 때때로 느끼는 것이지만 소음 없는 그 적막의 세계가 좋기도 하다. 그러나 어찌 살아 있는 사람이 적막강산에서만 살 수 있겠는가. 그것도 딱한 노릇이다. 생각해 보라. 보청기를 켜면 들리는 소리가 확대되는 건 좋은데 소음도 확대되어 사람의 목소리가 그 소음에 묻혀 선명히 들리지 않는다면 어떤 심경이 되겠는가. 대화하는 상대에게 지금 무슨 말을 했느냐고 다시 또 물어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야 할 때 나도 미안하지만 상대방은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대화가 원활하지 못해서 겪는 심적 고통을 아는 사람만 안다. 그러나 뾰족한 수단이 없으니 어떻게 하랴. 불편하지만 참고 견디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러자니 스트레스만 쌓인다. 때로는 사람과의 대화를 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고 그때마다 대중 속에 외톨이라는 소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세상엔 소음만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새벽에 기도를 하고 돌아오면서 보청기를 켜둔다. 고요 속을 헤집고 나오는 풀벌레 소리가 좋아서이다. 그 소리가 나에겐 감미로운 노래고 서정적인 시(詩)다. 나는 오래전에 어떤 문학잡지에 글 한 줄을 써 보냈다. 그랬더니 당선 통지가 왔고 그 이후로는 황송하게도 시인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그럼에도 내 처지가 참 딱하다. 내 시를 읽고 감동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모르겠다. 그런데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수많은 사람이 감동을 받고 있다. 물론 나도 거기에 포함된다. 글쎄 모르겠다. 풀벌레 소리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가. 자기들끼리는 소통하는 의미가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의미를 모른다. 그럼에도 풀벌레는 의미 모르는 소리로 우리들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고 있다. 정서적인 측면에서 인성을 도야하고 순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한다. 그게 어디 풀벌레들뿐인가. 새들의 노랫소리,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 바다의 파도 소리, 하늘을 가르는 천둥 소리,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소리, 하다못해 깊은 밤에 들려오는 개 짖는 소리, 무논에서 들려오는 개구리의 합창 소리. 자연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하나같이 정겹다. 그립게도 하고, 외롭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고, 안타깝게도 하고 잔잔한 기쁨을 주기도 한다. 그러니 이들이 예술가가 아니고 무엇이며, 그들이 내놓는 소리가 시가가 아닐 수 있는가. 나는 내 나름대로 의미를 담고 정교하게 다듬어서 시라고 써서 내보내지만 부끄럽다.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 한 가닥 소리만도 못하고 깊은 밤에 사락사락 내리는 함박눈 소리만도 못하다.
그렇다면 세상의 주인 역할을 자처하는 사람들의 소리는 어떤가. 자연의 소리는 뚜렷한 의미가 없는 반면에 사람의 말은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이웃에게 전달하며, 서로의 의사를 나누며 산다는 것은 얼마나 고급스러운 일인가. 그 의미가 있는 말을 소리로 전하면서 얼마든지 이웃에게 감동을 주어야 마땅할 것이다. 사랑의 소리, 교훈의 소리, 배려의 소리, 존중의 소리, 겸손과 친절의 소리. 얼마든지 우아하고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남을 즐겁게 할 수 있다. 그런데 의미가 있는 고급의 언어를 가지고 살면서 왜 그렇게 시끄러운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말이 진실과 품위를 잃으면 새 소리나 벌레 소리만도 못하다. 사람들은 그런 소리를 잔소리, 잡소리, 신소리, 헛소리, 쌍소리,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심지어 개소리라고도 한다. 우격다짐으로 남을 제압하려는 폭력의 소리가 높아지고 속임수로 제 앞에 큰 감을 놓으려는 야비한 소리가 사회 저변에 깔려 진실의 소리가 숨도 크게 쉬지 못하는 데라면 무슨 소망이 있겠는가. 아름답고 조화된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면 소리를 낮추자. 감동을 주는 소리가 들리면 기쁘게 반응하며 응원하자. 내 입으로 소리를 내서 말도 하고, 노래도 하고, 열려진 귀로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큰 축복인가. 그 축복이 축복이 되게 하기 위하여 시끄러운 소리나 남에게 상처를 주는 소리를 내지 않도록 조심하자. 늦가을이다. 낙엽이 지고 있다. 조용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