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증은 한밤중을 깨운다텅 빈 거실과 조금 전부터내 체온이 식어 간 침대 한때 밤하늘을 식탁 삼아며칠을 뜬눈으로 보낸 적이 있다어제보다 조금 더 많은 별을 열어 보며 달걀이 부화되는 방식을프라이팬이 대신 생각하는 동안병아리가 되지 못한 약속들이껍질 안에서 금이 간다 책이 읽히지 않는 밤이면귀뚜라미들을 보일러실로 추방하던 시절&nbs
- 김영미(심전)
갈증은 한밤중을 깨운다텅 빈 거실과 조금 전부터내 체온이 식어 간 침대 한때 밤하늘을 식탁 삼아며칠을 뜬눈으로 보낸 적이 있다어제보다 조금 더 많은 별을 열어 보며 달걀이 부화되는 방식을프라이팬이 대신 생각하는 동안병아리가 되지 못한 약속들이껍질 안에서 금이 간다 책이 읽히지 않는 밤이면귀뚜라미들을 보일러실로 추방하던 시절&nbs
건기와 우기는 멀고도 가깝다 보이지 않는 승리를 벼리던 습기들 빛조차 스며들지 않는 침묵 속에 숨어 촉촉이 젖겠다며 기회를 노려 제습기를 켜자 낡은 관절 기침하듯 떨고투명하고 싸늘한 바람공중으로 부드럽게 부딪치며 날아올라 기습적으로 시간의 경계 없이 뒤엉킨다 골인 지점은 넓고 넓은 우주젖은 몸은
텅 빈 들녘을 본받아내 마음도 앙상해지는 저녁뚝배기에서 끓어오르는 된장국 냄새가 허기를 흔들어 깨웁니다후루룩,뜨거운 국물 한 모금이식도를 타고 내려가면비로소 몸속 깊은 곳에서“살아 있다”는 더운 숨이 터져 나옵니다 겨울은 웅크림이 아니라깊어지는 시간입니다처마 밑 시래기처럼찬바람 속에 물기를 비워내고언젠가 당신의 식탁 위가장 구수한 기도로
낙동강변으로 덜컹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자지러지는 매화 가지, 꽃잎은 혼비백산이다한 무리는 기찻길로, 또 한 무리는 강물 위로 하르르하르르 날리고 세세연년 우리는 원동 매화 꽃그늘 아래 설레는 눈빛으로 마주앉아 동동주 한 사발에 천첩만첩 꽃잎 띄우며저마다 향기로운 봄날에 까무룩 취했다 낙동강변으로 덜컹거리는 기차가 지나갈 때마
진정한 시란그리스도의 말처럼 쉽고그리스도의 말처럼 깊어야 한다진정한 시란그리스도의 생애처럼 짧고그리스도의 부활처럼 눈부셔야 한다 진정한 시란골고다 언덕 위의 강도(强盜)같이완전한 결어(結語)를쓸수있어야한다 진정한 시란그 강도를 손잡고 갈 사랑이 있어야 한다
수위를 낮춘 강변에먼저 돋는 잎맥 속의인자한 이른 봄미리 깨어 있는 새들 한 소절의 노래로 햇볕 돋는 귓가에 먼저 놓이는그대의 전언처럼 공손한데 아직도 꽃 얼음 아래 여울물 소리물사위 푸른 피안에서이 하루의 증언도 풍경으로 아릿한데아직도 머나먼 약속도 보이지 않는 산촌 그대와 나는 자꾸만 봄 설레는 저 새들처럼 서로의 심
그 여름 흙벽을 두른 황초굴은 뜨거운 전장이고 고통이 좀 스는 우리 엄마 가슴은 활활 탔다 잘 엮인 담뱃잎이 굴비두릅같이 층층으로 걸렸다 사흘 밤낮으로 불을 때는 엄마 적삼 밑에 쓰린 땀띠가 솟을수록 황초굴 안의 담뱃잎은 노랗게 쪄갔다 숨도 못 쉬게 꼭 끌어안고 버티는 시간불 조절에 안간힘을 쓰는 엄마도 누렇게
혼자 남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울어 울어 아직도 온몸이 붉다 우르르 몰려 뒹굴던 가랑잎도한 곳에 모여 조용하고새들도 높은 가지에 앉아고개 숙여 지켜본다 지치고 지친 슬픔이 스스로 몸을 낮출 때까지 산속의 생명들은 그를 다독인다 결코 죽음이 끝이 아님을다시 살아야 할 피안임을 알 때까지 우주의 모든 생명들
밤안개처럼 쳐들어와 여린 살 헤집고 꽃 피웠으니,내가 애써서 쫓아내지 않더라도어서 스스로 돌아가게나. 볕바른 안마당에 멋대로 스미어 수놓듯 꽃 피웠으니,내가 칼날로 도려내지 않더라도 어서 스스로 돌아가게나. 무심한 틈을 비집고 텃밭 아랫목에 꽃 피웠으니,호미랑 괭이, 내가 솎아내기 전에 어서 스
나는 오늘도 산에 와 거주한다.남들은 나의 걸음을 보고산책 중이라 할 것이나날마다 산길을 걷는나의 걸음은 나의 거주존재의 거주이다. 걸으면서 화살기도를 올리고한 걸음마다 묵주에 힘을 주고숲의 푸르른 숨소리에영혼이 맑아지는순례자가 되기 위해 산에 와 거주한다.진정한 거주를 꿈꾸며진정한 삶의 수행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