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어느 문예지 편집장으로 있는 후배로부터 단편소설 신인상 심사를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며칠 전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승낙했고 바로 다음 날 여러 편의 소설들이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그쪽에서 먼저 원고를 거른 터라 정작 내게 넘어온 편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단숨에 응모작들을 읽어 내려갔다. 이삼일 내로 끝낼 생각이었다. 나는 끼니도 거른 채
- 채종인
1어느 문예지 편집장으로 있는 후배로부터 단편소설 신인상 심사를 맡아달라는 전화를 받은 것은 며칠 전이었다. 나는 마지못해 승낙했고 바로 다음 날 여러 편의 소설들이 택배로 배달되어 왔다. 그쪽에서 먼저 원고를 거른 터라 정작 내게 넘어온 편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는 단숨에 응모작들을 읽어 내려갔다. 이삼일 내로 끝낼 생각이었다. 나는 끼니도 거른 채
어느 늦가을, 비가 구질구질 내리고 있었다. 작고 허술한 트럭 한 대가 빗속에서 덜커덩 소리를 마치고 찍-하며 멈추어 섰다. 기사인 듯 싶은 한 남정이 운전석에서 쿵 하고 내려서더니 차 위에 덮였던 비닐을 잡아당겨 벗겼다. 조촐한 이삿짐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둘 짐을 내려 놓는다. 내려지는 짐과 함께 그 속에 웅크리고 있던 두 사람이 차에서 내렸다. 얼굴
등장인물_ 남자(관광버스 소유자. 50대 중후반. 반백의 긴 머리를 뒤로 묶었다. 자유분방하다)|여자(화가. 50대 중반. 정숙하고 규범을 잘 지키는 성품을 지녔다) * 두 인물은 각자 다르면서도 같은 존재일 수도 있다. 때문에 방백이 빈번하고, 인물의 대화가 바뀌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때_ 현대곳_ 산 중턱 언덕 위의 목련동산 정원무대_ 여자 혼자 사는
5월 들어 한층 연둣빛 초록으로 짙어 가며 싱그럽더니 부슬부슬 촉촉한 그리움을 부추기는 5월 15일 스승의 날입니다. 김용재 시인께서 지난 4월 29일 타계, 30일 국제PEN 한국본부 문인장 영결식, 5월 1일 발인을 마치고 애도하며 2주가 흘러갔습니다.아직 가상인지 실제인지 실감이 오락가락해 인터뷰 전 먼저 약력과 짧은 시 2편을 묵음으로 마음을 추스르
집에 와 보니 식탁에 빵이 몇 개 놓여 있다. 한 입 베어 물으니 슈크림빵이다. 정말 오래간만에 먹어 본다. 엄마는 오후에 일 나가시면서 간식을 놓고 가신다. 새로 연 빵집에 큰 슈크림빵이 있었나 보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슈크림이 입 속에서 기분 좋게 퍼진다. 불쑥 오래전 위층 살던 해솔이 생각이 난다. 우린 둘 다 슈크림빵을 좋아했다. 언제나 나는 빵 가
교실 안은 낯선 말로 가득 찼다. 반 아이들이 하는 말은 하나도 모르겠다. 온종일 시끄러운 소리로 머리가 아팠다. 솔직히 나도 큰 소리로 말하고 싶다. 하지만 나는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박다미르, 잘 가!”짝꿍이 내게 손을 흔들었다. 나는 어색하게 손만 흔들었다. 짝꿍이 말을 시킬까 봐 겁이 났다. 얼른 돌아서서 교실을 빠져나왔다. 마치 도망치는 사람
욱이는 일기장에 이런 글을 쓴 적이 있지요.할아버지 팔은 내 베개다. 할아버지 팔만 베면 저절로 잠이 온다. 할아버지는 내 장난 친구다. 할아버지와 놀면 너무 재미있어. 할머니는 내 밥이다. 할머니만 보면 배가 부르니까.그렇지만 지금 할아버지 할머니는 집에 없었어요. 멀리, 천 리나 멀리 떨어져 있는 남쪽 마을에 가 계시거든요. 할아버지 할머니 사시는 집이
파도는 바다의 울음이야 소금은 바다의 눈물이지흐르는 눈물에도 알맹이가 있지 눈물은 닦아내도알맹이는 가슴에 쌓이지 그래서 가슴이 아프고 슬픔은 오래 가는 거야포옹이 필요한 거지 따뜻하게 안아주면 좀더 빨리 녹일 수 있거든
“이 작은 손으로 무얼 할꼬! ” 우리 할머니,태어난 지 두 달 된 늦둥이 내 동생 목욕시키며 혼잣말하신다.쪼글쪼글 검버섯 핀 손, 작고 여린 손 쥐고,“좋은 일 하는 손 되게 해주세요.” 간절히 기도하신다.나한테도 저렇게 정성 쏟으신 할머니 손, 거룩해 보인다.식당일하며홀로우리아빠키워 가정 지켜낸 할머니 손,닿는 곳마다 향기가 난다.
앞으로 가는 자뒤로 가는 자운동장 전체가 떠들썩하다 뛰다가 넘어지고얽히고 설켜 뒤죽박죽인 운동장그러면서 자란다 다치기도 하고 코피도 흘리면서일어나 함께 가자 너와나힘모아 더 나은 내일을 향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