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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정품카 529

메밀국수가 먹고 싶었다. 양평으로 드라이브 겸 길을 나섰다. 며칠 동안 퍼부은 장마로 한강 물빛은 누런 흙탕물이었다. 파란 강물로 싱그럽던 양평의 풍경이 흐린 하늘과 흙탕물로 먹먹한 색이다. 인생이 시시각각 변화하듯 풍경도 날씨와 계절에 따라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세미원 부근을 지날 때 연꽃 군락지에는 연꽃이 절정 시기가 아니어서 몇 송이씩 피어 있고 강

  • 류미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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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교수님이세요?

언제부터인가 싱어송라이터 C의 인터넷 개인방송을 듣기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피아노 콘텐츠 창작자 S의 영향이었다. 나는 유튜브로 음악을 즐겨 듣는데,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S가 유명 애니메이션 <강철의 연금술사>의 주제곡을 피아노로 연주하는 영상을 접했다. 원곡보다도 곡의 애절한 정서를 더 잘 녹여낸 S의 연주에

  • 이동민(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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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볏짚의 죽살이

일상에서 만나는 대상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볏짚이 그렇다. 솔솔 부는 가을바람이 외출을 부추겨, 시흥 농장으로 가는 버스를 탄다. 목감(牧甘)을 지나 월미마을 정류장에 내린다. 눈앞에 펼쳐진 호조 들판이 삭발한 듯 썰렁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노랗게 익은 벼 이삭이 파도처럼 출렁이던 황금 들판이었는데….어느새 고개 숙인 열매들을 콤

  • 장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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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파뿌리의 사랑

설 명절을 맞으려고 가방을 둘러메고 아내 뒤를 따라 전통시장으로 따라 나섰다. 나물과 채소상들이 모여 있는 시장은 각종 남새와 봄나물들을 사려는 사람에 밀려 왁자지껄 발 디딜 틈도 없이 분주하게 돌아간다.의례 명절 때마다 내가 차지하는 부침개와 전 부치는 일은 어머니가 계셨던 중학생부터 도와드린 터라 기술이 늘어 이젠 척척 부쳐대니 내 차지가 되고 말았다.

  • 이영우(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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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서여기인(書如其人)

서여기인, 글씨는 그것을 쓴 사람을 닮는다는 뜻입니다. 사람마다 외모며 성품이 다르듯, 다른 사람의 글씨를 똑같이 베껴 쓸 수는 없다는 의미도 되겠고요. 그래서 필적감정이라는 수사기법도 있는 것인지요.옛 중국의 동진(東晋)이라는 나라에 왕희지(王羲之)라는 명필이 있었습니다. 서예를 숭상하는 한자문화권에서 서성(書聖)으로 추앙받는 대가였지요. 그에게 헌지(獻

  • 김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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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나는 ‘길’이란 단어를 좋아한다. 길은 여러 면의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걸어 다니는 보도와 탈 것이 지나다니는 도로, 하늘길, 물길 등 물리적인 길이 있다. 또 사람으로서 행해야 할 윤리 도적적인 길이 있으며, 뜻을 향하는 마음의 길이 있다. 그래서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속설이 있나 보다.어렸을 때 신작로는 나의 호기심의 길이었다. 그 길을 따

  • 양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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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냄새는 기억을 담는다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 속 여자를 천천히 바라본다. 시간과 기억, 나와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다. 파운데이션을 가볍게 눌러본다. 부드럽게 퍼지는 크림은 주름진 피부 위를 매끄럽게 덮으며, 어둠 속에서 비어 있던 색을 채운다. 화장대 앞에 앉은 모습은 언제나 조금 특별한 미감을 자극한다. 육체에 수용되기 위해 기다리는 색채의 제단, 화장대는 제의를 연상시킨다.

  • 강미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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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그 집

정말 오랜만이었다. 처음엔 긴가민가해서 한참 서성거렸다. 대문도 예전의 그 대문이 아니었다. 소박한 철문에 아주 낮은 담 대신 웅장하고 견고한 높은 대문에 내 키의 반 이상이나 높은 그런 담이었다. 아무리 내가 까치발을 들어도 안쪽을 보기에는 턱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철문 사이로 실눈을 뜨고 들여다보았다. 예전엔 문만 열면 바로 보이던 대청마루가 있던

  • 신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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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천막촌을 울린 할아버지의 노래

세상이 잠든 시간, 흰눈이 왈츠를 추듯 나풀나풀 내린다. 세상의 더러움, 지저분함, 허술함을 다 덮어 주려나. 삶에 지친 이의 설움, 아픔, 한숨을 위로해 주려나.오늘은 천막촌에 가는 날이다. 명절마다 홀몸 댁에서 ‘시낭송 힐링 콘서트’를 해온 지 벌써 200회가 넘었다. 올 설날맞이는 천막촌 세 가정이다. 생필품과 식료품을 챙기고 그림을 곧잘 그리는 아홉

  • 국혜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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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 70호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

후삼국시대에 후고구려의 후신 태봉을 건국한 궁예의 관심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생각을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이용하여 사람을 통제 관리했다고 한다. 궁예는 스스로 이 능력이 있어서 역심을 품은 사람의 마음을 모두 꿰뚫어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실에는 있을 수 없지만 이는 정적 제거에 아주 유용하게 써먹기 위한 공포 정치의 한 방법에 불과

  • 안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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