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1월 67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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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을 탈 때마다 듣는 말이 있다.
“문이 열립니다”
“스크린 도어가 열립니다”
“문이 닫힙니다”
“스크린 도어가 닫힙니다”
이 말은 지하철 문이 열리고 닫힐 때마다 듣는 안내 방송이다. 이 안내 방송을 들을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게 된다. 차 안쪽 문이 열릴 때 “문이 열립니다”라고 하였으면 차 바깥문이 열릴 때도 “덧문이 열립니다”라고 하던지 차 바깥문이 닫힐 때 “스크린 도어가 닫힙니다”라고 하였으면 차 안쪽 문이 닫힐 때도 “도어가 닫힙니다” 라고 해야 적어도 ‘문’ 하나를 두고는 그 명칭에 통일을 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인류가 만물의 영장 노릇을 하는 데에는 특별히 뛰어난 요소가 많겠지만 말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자기 내면의 표현이나 의사소통, 협업 등 말이 없고서는 이룰 수 없는 많은 일들이 있다. 말이 있었기에 인류 는 단순히 생물학적 진화만이 아니라 문명 과 문화의 창조와 진보를 이룰 수 있었다.
각 민족은 고유한 민족어가 있고 국가에는 국어가 있다.
언어학자들의 최근 연구에 의하면 세계에는 무려 6000을 넘어 7000에 가까운 말이 있다고 한다. 연구가 거듭될수록 그 숫자는 늘어나지 않을 까 싶다. 말 중에는 중국어처럼 몇억이 넘는 사람들이 쓰는 말이 있는가 하면 영어처럼 지구촌 여러 곳에서 널리 쓰이는 말이 있다. 그런가 하면 소수민족이 쓰는 특이한 말도 있다. 민족이 멸망하면 말도 사라지고 말 이 없어지면 민족도 사라진다. 말은 생존을 위한 도구에 그치지 않고 그 민족의 민족성을 형성하는 영혼의 신령함을 담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침략하거나 지배하였을 때 제일 먼저 말살하려 한 것이 피지배 나라의 말이다.
그런데 인류가 입으로 소리 내고 귀로 듣는 말은 발화와 동시에 사라 지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한계성을 뛰어넘기 위하여 발명한 문자, 즉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는 기호의 발명은 인류 문명사의 획기적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순간에 사라지는 말을 문자로 기록함으로써 정보의 저장, 지식의 축적, 언어 눙력의 향상, 문화의 전승과 전파 등 인류의 삶을 한층 드높이는 데에 절대적 역할을 하였다. 또한 문자의 발전과 변화는 인류 사회의 발전과 문화적 진화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그러나 말은 있으나 문자가 없는 경우가 많다. 문자가 없는 말은 그 세력이 약할 수 밖에 없다.
인류의 삶에 있어 이토록 중요한 말과 문자를 다만 생존을 위한 표현이나 전달의 도구로만 간주함이 아니라 그 속에 담긴 신령한 정신을 찾아내는 무상의 행위가 곧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한민족에게 말은 있고 문자가 아직 없었던 때에 우리 문학은 구비문학이었다. 그리고 중국의 한자가 유입되었을 때 우리 문학은 한자로 기록된 한문문학이었기에 당연히 말과 글이 다를 수 밖에 없었다. 한 자와 한문을 열심히 익히고 공부하여 썼지만 우리나라 문학작품들을 중국에서는 “소국의 잡문”이라고 폄하하였다. 말과 글자가 다르니 이 또 한 당연한 결과이었겠다.
드디어 훈민정음이 창제되었을 때 우리는 말과 글이 일치하는 쾌거를 이룰 수 있었고 문맹을 탈피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의 한자 사대주의는 오히려 언문, 암클이라는 이름으로 비하하였고 여전히 식자 계급층은 한자를 사용한 한문을 썼으며 우리 글자는 구결이나 이두로 쓰여 한문을 보조하는 역할을 하였을 뿐이다. 이런 중에도 문학 작품만은 우리글로 창작되었으며 구비문학 작품들이 문자화되어 정착하였고 많은 언해가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훈민정음이 한민족의 정체성을 찾고 민족의 정기를 상징하는 절대적인 존재로 인지된 것은 오히려 나라를 빼앗기어 말과 글과 글자를 잃어 버린 시기였다.
일제강점기에 훈민정음은 한글이라는 새 이름을 얻었으며 한글과 한 국어를 지키기 위하여 신명을 다하고 목숨을 바친 학자들과 애국지사들이 있었다. 그리고 문인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모두 한글로 작품을 썼다. 그 엄혹하던 시기에 한글로 문학 작품을 썼다는 것은 큰 용기이며 저항이며 투쟁이 아니었겠는가.
6000이 넘는 인류의 언어 가운데 문자를 가진 언어는 고작 몇백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런 문자 중에서도 한글은 제작자나 제작 동기, 글자의 원리, 효용적 측면 등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로 인정받아 1997년에 훈민 정음이 유네스코 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하였다. 한글은 가장 완전한 음소문자로서 세계 어느 나라 말이든 다 기록할 수가 있으니 가장 으뜸가는 문자라는 것이다. 이러하기에 우리나라에서는 한글을 자랑하고 그 위의를 널리 알리는 세계적인 모임을 개최한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함에도 불구하고 막상 한국어와 한글의 현실은 그 가치를 다하지 못 하고 있는 것 같다.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를 잠깐만 훑어보아도 이런 현상이 곧바로 눈에 띈다.
HOME PLUS EXPRESS, ADORE CUCINA, PIT A PAT, ARCHITECTUR & INTERIORS, PARMACY DRUG STORE, ,wit n cynical, 이런 간판을 단 상점들이 있는가 하면 YoonSukJa 미용실, SK에너지, GS25, 7 ELEVEN, 아름당 AREUM jewelry, Myeung Ryun Church, 퓨전음악학원, 새우버거, 바디팩토리, 백제로컬, 꽃 Flower Garden, 백동당구클럽, 점핑&체온 다이어트, 제일부동산, 참좋은 부동산 등등이 있다. 이들을 잘 보면 외국어를 외국문자, 특히 로마자로 쓴 것, 우리말을 한글 아닌 로마자로 쓴 것, 외국어를 한글로 쓴 것, 외국어를 앞에 두고 한국어를 합성한 것, 한국어를 앞에 두고 외국어를 합성한 것 등이 있다. 이런 현상은 거리의 간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령 BTS라고 하면 방탄소년단이라는 한국어를 로마자로 축약하여 쓴 것이다. 신문이나 방송 등 대중을 상대하는 매체와 더욱이 디지털 언어에 이러르면 이런 현상은 더욱 두드러지고 있다. 경음화, 격음화, 축음화, 그리고 많은 외국어의 차용 뿐만이 아니라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문자라고 하는 우리 한글 대신 로마자를 많이 쓰는 우리 나라의 형편이 딱하고 안타깝다.
우리나라 말에는 한자어가 많기에 그 원활한 소통과 이해를 위하여서 국한문을 혼용하자는 주장도 한때는 있었으며 지금도 그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없지 않다. 하지만 요즘의 경향으로 말하면 국영문을 혼용하자 는 주장이 나올 판이다. 심지어 영어를 국어로 삼자는 인사도 있었지 않았던가.
이러한 현실에서 한국어와 한글로 글을 짓고 쓰는 한국의 문인과 문학은 어떠하여야 할까. 고민이 될 때가 많다.
훌륭한 한글이지만 널리 쓰이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문학을 세계에 많이 알리고 소개하기 위하여서는 번역이라는 장벽을 넘어야 한다. 노벨 문학상이라고 하는 상금 많고 이름 높은 상도 그 수상자 대다수가 영어권 작가들이었다. 기타 나라의 수상작들의 경우는 그 문학성보다는 오히려 정치적, 사회적 논쟁거리에 초점을 맞춘 것이 많았고 훌륭한 번 역자의 도움이 컸다.
한글 전용을 주창하는 국문학자에게 “비행기를 ‘날틀’이라고 할 것이냐”고 비이냥거리던 한 때가 있었다. 그렇다. 그때는 아니지만 지금은 ‘飛行機’나 ‘air plane’이 아니라 ‘날틀’이다. ‘날틀’이라는 말을 수출하고 싶다.
아름다운 한국어를 최고의 문자인 한글로 구사하여 훌륭한 작품을 창작하는 소임은 한국 문인들에게 주어진 권리이며 의무이다. 그리하여 널리 수용자의 공감과 감동을 공유할 때 우리말, 우리문자, 우리 문학은 인류 공동의 위대한 자산이 될 것이다.
새해가 밝아온다.
한국문학이여! 한국문인이여!
붓을 단단히 거머쥐고 새해의 흰 종이 위에 큰 획을 긋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