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설 꽃샘추위노란 꼬리 달고털모자 반쯤 벗은 꽃눈마다서성거린다덩그러니 빈 까치 둥지에도애달픈 님 그림자 안고잿빛 마음 흠뻑 설움에 겨워아직은 봄 맞을 준비 이르니침묵의 고독한 정원(庭園)햇빛 쏟아져 속살거릴 즈음에봄아고운 단장(丹粧) 꽃나래 펼치고 저 넓은 초원 찬란한 꽃뜰휘- 돌아한아름꿈을안고나의 창(蒼)가로 오렴 내 님 닮은 미소로.
- 김승희
잔설 꽃샘추위노란 꼬리 달고털모자 반쯤 벗은 꽃눈마다서성거린다덩그러니 빈 까치 둥지에도애달픈 님 그림자 안고잿빛 마음 흠뻑 설움에 겨워아직은 봄 맞을 준비 이르니침묵의 고독한 정원(庭園)햇빛 쏟아져 속살거릴 즈음에봄아고운 단장(丹粧) 꽃나래 펼치고 저 넓은 초원 찬란한 꽃뜰휘- 돌아한아름꿈을안고나의 창(蒼)가로 오렴 내 님 닮은 미소로.
바람이 주저앉았던 자리제멋대로 자란 풀들이마당에 조용히그림을 그리고 있다고양이 한 마리배롱나무 그늘에 웅크리고 앉아누구를 기다리다가어느새 바람같이 사라진다.녹슬어 부스러진 철문 앞에걸어놓은 빛바랜 액자 하나단란한 가족들함박웃음 가득하다가랑비 그치고꽃이 지는 모퉁이 돌면 버려진 헌 신발 한 짝에 고인 햇빛이 졸고 있다.
부산 앞바다푸른 물결 위에 수평선을 배경으로수많은 배들한 폭의 그림으로 걸려 있다한척한척이어우러져그림이 된 액자 속에바람 따라 파도 따라뱃사람들의 이야기 싣고 있다부산 항구가펼쳐보이는 묘박지는 한 폭의 풍경떠나기 위해 머무는 배희망을 싣고 그리움을 싣는다봄여름가을겨울한 시절을 돌 듯시작이고 마침이 되는 기다림은한 폭의 그림으로 오롯이 가슴에 안긴다삼백예순다
붉은 바다 회오리바람 눈동자를동그랗게 만드느라 수증기를 생산하는8월, 찜통더위를 잊게 해주는 풀벌레들의 밤빈곤을 극복한 욕망의 발자국들이 모여둥글거나 모난 식탁 의자 앉거나수레바퀴를 돌리면서 살았다오래된 곁가지와 뿌리를 넘어지게했었던 빗방울 방울은 잊을 만하면빙하 사이로 먹구름들이 몰려왔었다뜨거운 장작불 가마솥도 아니고파란 가스 노란 냄비 속 물방울 방울처
갓 잡아 올린 참조기 아가미 떼고소금에 절여 해풍에 말린 굴비조심스레 석쇠에 뉘여벌겋게 볼이 달아오른 연탄불에 올리면 바다에서 사투 벌이며 견뎌 온 흔적인가 뼛속 깊숙이 스며든 진액 뿜으며노릇노릇 익어 밥상 위 제왕이 되었다바라보는 자식들 눈망울 안쓰러워 생선은 대가리가 최고라며대가리부터 드시던 아버지굴비는 아버지를 향한어머니의
“할머니 늙었어요”“그래그럼우째야하노”“할머니 꿈을 꾸세요”“무슨 꿈 밤에 자는 꿈”“아니요 할머니 어릴 때 꿈요”지인의 7살 손자와의영상 통화다7살 어린 꼬마가늙음의 치료제로기발한 꿈 이야기를 하다니놀랍지 않은가우리에게 꿈은 있기나 한지어릴 때 꾸었던무지갯빛 꿈은 아닐지라도젊어지는 약꿈 주머니를 열어봐야겠다.
어스름저녁 식탁철판 위에 구워지는인심 가득한 소주 한잔 채워 가며발그스레 미소들은영혼을 다독이며 가슴속 고인 아픔잠재워 뉘여 놓고오늘이 마지막인 듯 울어대는산까치의 열애에도 감사함과 겸손한복들이 주렁주렁열리는 하루서로의 희락을 나누는 사랑하는사람들의 정이 모인 곳동네 어귀오가는 길목에 사랑방 같은 식당벤치에 앉아 담배연기밤하늘로 돌린다
바다는 안다속세를 떠나 수행하는 암자의 선승처럼태고부터 내 조상 대대로바다와 함께 살아왔다창공을 나는 날개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고 은빛 고기들의 꿈을 다독이며적막한 이불 속에 파묻혀 잠들다가종종 바람인 듯 스치는 말씀‘절대로 사람들을 가까이 하지 마라’ 알 수 없는 악연의 고리들욕망의 세상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고독과 함께 사는
뜨거운 태양이 쉬던산기슭 샘은 시가 되어한 모금에 읽는 영혼의 기쁨으로목마름 달래주던 그 세월은 정이라고가시 돋친 계절에도하늘 흐린 날들에도 꽃은 필 거라고 별을 가리키는 풀향기에아끼는 것에 대한 생각이란햇살이 내리는 바위 곁에는너무 뜨거워 너무 뜨거워도쓰러질 수 없는 풀에게 줄 거라며 밤새 이슬 모으는 당신은그렇게 너무 아름다웠
세면대 위에 꽂혀 있는아내의 칫솔모가 벌어진 채 신음하고 있다1년 전인가, 한국을 방문할 때대한항공 기내 안에서 받은 미니 칫솔을 지금껏 쓰고 있었다니남편과 자식을 울타리 삼아그 안에서 걱정 모르는 줄 알았더니볼품없는 칫솔과 함께 분주하였구나아하, 그렇구나아름다움과 행복이이것에서 나왔구나이 작고 휘어지고 갈라진 칫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