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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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에도 속삭임이 있다. 자연의 속삭임은 심오하고 아름답다. 물소리, 바람소리, 나뭇잎 팔랑이는 소리는 듣고 싶은 소리로 귀 기울여야 들을 수 있다. 물소리도 천차만별이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우렁찬 물소리가 있고, 실개천을 졸졸 흘러내리는 편안한 물소리도 있다. 바람 소리도 그렇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위압적인 소리가 있고, 나뭇잎을 팔랑이는 부드러운 소리도 있다. 천지를 뒤흔드는 천둥번개 소리 또한 위압적이다. 자연의 속삭임은 때로는 노래로, 때로는 고함으로, 때로는 울부짖음으로 들린다.
자연의 속삭임은 꾸밈없고 가식이 없어서 좋다. 노래와도 같은 부드럽고 달콤한 소리도 좋고, 폭풍우 소리, 천둥번개 소리, 태풍에 철썩이는 바닷물 소리도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다. 이러한 자연의 소리는 아쉽게도 한곳에서 일시적으로 나지 않기에 물소리 합창을 듣기는 어렵다. 인위적으로 녹음된 자연의 소리로 합주곡을 만들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자연의 연출이 아니기에 가치가 떨어진다.
자연의 소리는 모두가 속삭임이다. 위압적인 천둥번개 소리일지라도 귀 막을 정도로 듣기 싫은 소리는 아니다. 자연의 속삭임이 때로는 격앙된 소리를 내기도 한다. 다양한 자연의 소리는 일괄하여 백색소음으로 듣기 좋은 소리다. 도시에는 자연의 소리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 속에도 숲이 있고 강물이 흐르지만, 각종 소음과 희뿌연 매연 속 자연의 소리는 퇴색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적한 숲을 찾고 해변을 찾아 그곳의 속삭임을 듣는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계곡의 물소리, 바위섬에 앉아 바다의 낭만과 함께 듣는 파도 소리, 울창한 숲속에서 듣는 새들의 지저귐은 어떤 음악 못지않게 힐링이 된다. 이런 낭만을 즐기기 위해 깊은 산속이나 해변에 집을 짓고 생활하는 이도 있다. 그런 곳에서 생활하는 동안 불치의 병이 나았다는 이야기도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이런 호사를 누리기는 쉽지 않다. 요즘 숲속 펜션, 해변 펜션도 곳곳에 있어 이용할 수 있다. 대구 근교만 해도 숲속 펜션이 더러 있다. 그곳을 이용하려면 적어도 보름 전에는 예약해야 한다. 특히 공휴일이나 연휴는 예약 사이트를 오픈하자마자 순식간에 마감된다. 나의 경우 한 달 후의 사정을 감안하여 예약을 망설이다 예약 기회마저 놓친 경우가 많다. 로또 복권이 어렵다는 건 이해하지만, 평범해야 할 일상까지 로또 복권을 닮아 가는 것 같다. 아파트 청약만 해도 그렇다. 살아갈 집을 마련하는 데도 선택을 받아야만 하는 현실에 마음이 무겁다.
요즘 시골에는 빈집이 많다. 허술한 집이지만 조금만 손보면 고풍스럽고 운치 있게 꾸밀 수도 있어, 어렵잖게 전원주택 하나 가질 수 있다. 나의 시골집이 그렇다. 주말이면 들러 전원주택처럼 사용하기도 하지만 밭농사도 조금 짓기에 농가주택이기도 하다. 아침이면 뒷산 갈참나무에서 까치가 지저귀고, 밤이면 농수로에서 개구리 소리가 요란하다. 조용한 농촌 마을은 자연과 가깝게 있어 늘 자연의 합창을 들을 수 있다.
도시에서 가끔 자연과 대화를 나눠보고자 집 가까이 금호강 둔치의 댓닢 소리 길을 걷는다. 조성된 지 10여 년 정도지만 숲속은 꽤 울창하여 대낮인데도 햇볕을 가려 다소 컴컴하다. 대나무 등받이 의자가 곳곳에 있어 비스듬히 누우면 한여름 더위가 싹 가신다. 강바람이 대나무 숲을 흔들기 때문이다. 댓닢 소리가 난다. 새소리도 들린다. 땀을 식히고, 음악을 들으면 자연에 더 가까이하고 싶은 욕심이 난다. 귀 기울여 자연의 속삭임을 듣는다. 지친 심신을 달래 주겠노라고 한다. 멋진 글제를 주겠노라고 한다. 연인이 되어 주겠노라고 한다. 끊임없이 주겠다고 화답하지만, 노인이 과욕을 부리면 추하다기에 적당히 갖고 다음을 기약하며 일어선다.
이렇듯 자연의 속삭임은 모든 것을 포용하고 심신을 치유한다. 인간은 속삭임으로 부드러운 소통과 아름다운 나눔을 갖는다지만 의문이다. 어버이, 스승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자신의 욕심대로 하려는 이기심으로 가득 찬 것이 인간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의 마음 저변에는 아름다운 마음을 깔고 있다.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마주쳐 보자. 박노해 시인의 시가 와닿는다. ‘마음은 소리가 없다/ 바람처럼 다른 무언가와 마주쳐서 소리를 낼 뿐/ 하늘과 세상과 만남 속에 울려오는 내 마음의 소리.’ 때 묻지 않은 자연의 속삭임을 닮아 보자. 모두를 위한 세상, 행복 공동체를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