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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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서 하늘 냄새가 날 때가 있다. 그런 사람과 함께할 때면 말보다 마음이 먼저 닿고, 눈빛이 먼저 문을 두드린다. 깊은 산골짜기에 스쳐 가는 바람에 실려 아득한 향이 코끝에 맴돈다. 비 온 뒤 능선을 감도는 바람 냄새, 갓 피어난 들꽃에 맺힌 첫 이슬의 향기. 그런 향기를 지닌 사람이 있다. 하늘 냄새란, 스스로 맑은 영혼을 품은 사람에게서 맡을 수 있는 은밀한 향이다.
삶의 순간순간 떠오르는 보배 같은 친구가 있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호박넝쿨 사이에서 애호박 하나를 발견했을 때 문득 떠오르는 친구. 산길을 걷다 청초롬히 피어난 들꽃 앞에서 함께 바라보고 싶은 얼굴. 그런 친구는 삶의 무게를 나누며 걸어가는 인생의 보배다. 그런 친구는 비록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영혼의 그림자처럼 곁에 있는 듯 느껴진다. 가까이 있어도 부담스럽지 않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리운 사람, 친구란 그런 존재다. 저마다의 색채를 가꾸면서도 그 결을 함께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선홍빛 동백보다 눈 속에 피는 설중매를 나는 더 좋아한다. 함박눈을 이고 핀 꽃처럼, 사람 사이에도 절제된 거리가 필요하다. 너무 가까우면 그리움이 사라지고, 너무 멀면 온기가 닿지 않는다. 거문고 줄은 서로 닿지 않기에 울리고, 아쟁의 외줄은 손끝의 떨림 사이에서 음률을 얻는다. 그런 거리를 지키며 우정을 가꾸는 이들에게는 저마다의 품격이 있다.
친구도 품격이 있다. 품격은 절제에서 비롯된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은 기다림이듯이, 진정한 행복은 마음속에 신뢰를 품고 피어난다. 진실한 우정은 마음의 깊은 자리에서 우러나오는 나눔이다. 요즘은 더치페이 또는 공동 육아를 통한 공평한 가치에 무게를 두지만, 관계가 계산적으로 흐르기 쉽다. 진짜 친구란 서로 따지지 않고도 따뜻하게 머무를 수 있는 사이여야 한다. 무조건적인 공유보다 절제된 배려 속에 더 깊은 울림이 있다. 그저 믿고, 그저 품으며, 그저 내 안에 따뜻한 자리를 내어 주는 친구가 보배다.
나에게도 하늘 냄새가 나는 친구가 있다. 남대천에서 물장구치던 고향의 불알친구, 교정 위를 휘젓던 학창 시절의 벗, 그리고 사관학교 동기였던 진광이. 그는 여동생 관련 사건으로 광주 5·18 항쟁을 이끌다 지금은 국립 5·18 묘지에 잠들어 있다. 그를 만나러 대구에서 지리산을 넘어 남원을 거쳐 광주까지 달리던 포니(pony) 자가용. 그 설렘은 지금도 내 안에 맑게 남아 있다. 가족처럼 함께했던 명환이, 병철이, 태웅이도 각자의 지병으로 내 곁을 떠났다. 그 이름을 국립 묘지 돌비석에서 더듬을 때면 시퍼렇게 멍든 하늘이 가슴에 내려앉는다. 보고 싶은 마음이 스며든 자락마다 그리움이 붉게 물들어 내 가슴은 금방 벌겋게 타오른다.
하늘 냄새가 나는 이들 중엔 상영이도 있다. 지금은 경기도 현리골에서 막걸릿잔을 기울이고 있을 것이다. 십 년 넘게 왕래는 끊겼지만, 그의 아내 화정 씨를 통해 나는 여전히 그에게서 풍기던 하늘 냄새를 맡는다. 자존심 때문만이 아니다. 말 한마디 건네야 했을 작은 도리를 나누지 않았음이다. 하지만 고해의 바다로 내 스스로를 던진 셈이 되었다. 계절마다 들풀 냄새가 묻어나는 그녀는 나에게 남은 하늘의 잔향이다. 그런 인연들이 내 곁을 이으며 나는 다시 일상의 벗들과 잔잔한 우정을 쌓고 있다.
내 곁에 머무는 동네 친구가 있다. ‘객지 벗 삼 년’이라 했던가. 위아래 한 살 터울인 범석이와 상제라는 친구다. 만남은 어느새 십오 년여를 넘기고 있다. 외국계 기업의 회장을 지낸 이는 곰살맞고 소박하다. 노인성 시력과 허리 통증으로 많이 약해졌지만, 그런 모습마저 다정하다. 대단한 것까지는 없지만 저절로 존경심이 우러나는 친우다. 섬유 업계에서 잔뼈 굵은 또 한 친구는 천국의 맛과 지옥의 냄새를 지녔다는 두리안(durian)을 닮았다. 언뜻 세속에 물든 듯 보여도 가까이할수록 묘하게 끌리는 순수의 결을 간직한 친구다.
여름 장마철, 후련한 소낙비도 아닌 청승맞은 여우비가 산하를 적시는 날이나. 한겨울, 함박눈이 돌풍에 휘말려 붉은 솔가지와 푸른 솔잎이 진저리를 칠 때, 나는 떠난 이들을 불러본다. 자꾸만 뭉게구름 가득히 피어나는 하늘 한켠에 뭉클거리는 그리움 한 자락을 띄운다. 이내 마음이 묵직해지고 눈시울이 절로 젖는다. 그리고 울컥 한 줌의 그리움을 토해내랴 싶으면, 그런 나의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는 아내다. ‘그대, 하늘 냄새를 맡아본 적 있는가…’ 하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그러나 감정에 휘말리는 걸 못 견디는 아내는, 언제나처럼 시큰둥한 눈빛으로 피식 웃고 만다.
이제 나는 노년의 ‘품위 있는 죽음’을 향해 천천히 삶을 정리한다. 그립다는 말도 사치처럼 느껴지는 나날이다. 거창한 우정도, 요란한 만남도 바라지 않는다. 이따금 차 한 잔 앞에 두고 조용히 마주 앉아 있을 벗이면 좋겠다. 그 안에서 나는 다시 하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이렇게 불리길 소망한다.
“그 친구, 하늘 냄새가 났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