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세례. 수학 30점.”“푸하하, 그러게 다섯례라고 지었음 50점인데….”“세례, 네례, 다섯례, 하하하.”친구들은 특이한 이름 ‘세례’를 놀리기 좋아했다. 딱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가끔 도가 지나쳐서 화가 날 만한데, 세례가 항상 배시시 웃고 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듣다 못한 반장 총명이가 한마디 했다.“세례야, 그냥 넘어가자. 죄
- 정찬혜
“야! 세례. 수학 30점.”“푸하하, 그러게 다섯례라고 지었음 50점인데….”“세례, 네례, 다섯례, 하하하.”친구들은 특이한 이름 ‘세례’를 놀리기 좋아했다. 딱히 악의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가끔 도가 지나쳐서 화가 날 만한데, 세례가 항상 배시시 웃고 마는 것은 이상한 일이다. 듣다 못한 반장 총명이가 한마디 했다.“세례야, 그냥 넘어가자. 죄
“에스프레소 좋아해요?”“네?”“에스프레소 좋아하시냐고요. 좋아하시면 타드릴까 싶어서….”공문 발송을 앞두고 서둘러 계획서를 작성하던 나는 바삐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제 들어왔을까. 쉬이 남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교실의 단단한 문은 휑하니 벌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둥근 얼굴이 빼꼼 내밀어지며 나를 보곤 싱긋 웃고
토머스 강 노인은 이따금 벙긋거렸다. 병에서 벗어나는 기쁨 같기도 했고 새 세상을 기대하는 설렘 같기도 했다. 지화는 링거에 주입할 심장마비제 용량을 확인했다. 20cc. 적으면 예정된 시간보다 안락사가 지체되고 많으면 사망 시 통증이 따른다. 병상 맞은편에서 백인 수간호사가 사납게 눈짓했다. 빨리 주사제를 넣으라고 독촉하듯이. 그녀는 왜소한 데다가 남자치
그날 낮 11시경 유튜브를 보고 있는데 경림의 오빠 경석으로부터 전화가 왔다.“이민 갔거나 죽은 줄 알았는데, 한국에 계시우?”경림이 빈정거리듯 말문을 젖혔다.“그러잖아도 너 보기 싫어서 이민을 생각했었지. 그나저나 농담할 때가 아니고….”“왜? 무슨 일?”“방금 너네 아파트단지에 있는 삼화상가 있지?”“그래서?”“너 혹시 칙칙폭폭 팻말이라는 말 들어봤니?
액자 속 ‘나의 이야기’가 열심히 수다 중이다. 더러는 앉고 더러는 빼딱이 서고, 또 더러는 흩날리며 첫눈의 설렘을 풀어내고 있다. 사춘기 소녀마냥 웃음꽃 분분히 피우고 있는 우리들의 작품들. 오늘은 전시 첫날, 내 안의 나를 만나는 날이다.천장에서부터 바닥까지 아카데미 대표 하춘근 작가의 설치미술품 하
“손이 걸어온 길을 본다. 손이 늘 먼저 걸어왔다. 손이 먼저 움직여 글을 쓴다. 손끝이 마음 뒤끝과 닿아, 잇다. 아니 글손〔客〕이 내 마음을 돌아다니다 온 길을 둘러본다.” 이렇게 쓰여 있다. 무얼 쓰려고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질 않는다. 이 글귀를 남겼을 때는 무언가 쓸 게 있었을 텐데, 도무지 한 가닥도 찾아낼 수 없다. 더욱이 제
토함산 중턱에 앉은 미남자오래 전에 집 나온 저 가장석굴에 가부좌 튼 지훌쩍 천 삼백년 나뭇잎 새순 돋을 때 발 간지럽고송화가루 노랗게 날릴 때면재채기 연거푸 나왔을 터한겨울 눈 내리면 손은 또 얼마나 시렸을지 이제달 밝은 밤에는굳은 어깨와 쥐 내리는 무릎 좀 펴시고잘 닦아 놓은 산책길도 쉬엄쉬엄 걸으시어요 그러다 문득두고 온 어
평범한 아침욕실 거울 앞에 섰다 눈코도 알아볼 수 없는 거울에 비친 얼굴이리저리 문지르니뿌연 것이 걷히고선명해진다 하지만 멈칫하며 바라 본 저편에는손끝으로 지울 수 없는 마음속 얼룩잠시 숨을 고르고 씻어낸다 비로소 고요해진 순간 오늘은 어제보다아름다운 모습시나브로 빛을 찾는다
[경기도지회] 한국문인협회 경기도지회는 30개 시, 군 지부가 모인 연합체의 단체로 4,000여 명의 회원과 80여 명의 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서울을 중심으로 빙 둘러싸여 있고, 크게 나누면 북부와 남부인데 북부보다는 남부가 문학인구가 많아 더욱 활발한 셈이다. 특히 다른 지방과는 달리 서울과 인접해 있어 서울도 지방도 아닌 그런 곳이
뇌성마비인을 춤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이후 할 말을 잃었다. 나는 수학과 과학이 더 쉽다. 인문학의 해답을 찾는 것이 어렵다. 정확한 답을 찾는 방향으로 집중했을 때 명쾌하게 결론을 내고 싶다. 그런데 명쾌한 결론이 없는 시를, 문학을 좋아하는 것은 스스로 판단해도 논리가 맞지 않는다. 아마 그래서 뇌성마비아에게서 받은 충격을 춤추는 사람으로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