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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숭생숭 봄밤도서관

한국문인협회 로고 강수성

책 제목한국문학인 이천이십오년 가을호 2025년 9월 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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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는 사람들_ 아이 소년(10대 중반)|어른1(맹순 할아버지; 70대 후반)|어른2(양구 할머니; 70대 초반)|어른3(상출 할아버지; 70대 초반)|어른4(홍자 할머니; 60대 후반)|맹순(10세 안팎의 소녀)|양구(10세 안팎의 소년)|상출(10세 안팎의 소년)|홍자(10세 안팎의 소녀)
때와 곳_ 봄밤의 어느 도서관
무대_ 여느 도서관과 같은 구조이면 된다. 정면은 유리창들로 밖의 통로가 환히 보이고 오른쪽 구석에 출입문, 그 앞에 책상과 의자가 놓여 있다. 이 외의 무대는 서가로 채워지나 등장인물들의 동선 파악을 위해 서가들은 적당한 높이로 제한함이 좋을 것 같다. 무대 전면은 넓은 공간을 확보해 놓는다.

 

1
무대 어두운 가운데 시를 낭송하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소리     봄밤도서관 이명윤 지음.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하여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리면 출입구는 자동 개방됩니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고요한 독서를 위해 잡담은 삼가 주세요.

 

시의 낭송이 끝나고,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면서 무대가 희미하게 밝아지면 아이가 출입구 쪽 책상 앞에 앉아 졸고 있다. 풀벌레 소리가 한껏 높아졌다가 천천히 낮아지면서 환하게 밝아오는 무대. 밖에 어른1이 나타난다. 유리창을 통해 안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문을 두드린다. 그래도 아이는 꾸벅꾸벅 졸고 있다. 어른1이 더 크게 문을 두드린다. 그때서야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두리번, 출입문으로 다가가서 밖을 내다본다.

 

아이     (문을 열고 내다본다)
어른1   (아이를 밀며 들어오는데)
아이     (막아서며)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세요.
어른1   ……? (멍)
아이     할아버지, 제 말이 안 들리세요?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시라니까요.
어른1   왜?
아이     이 도서관의 규칙을 위해서예요.
어른1   규칙?
아이     이 도서관은 풀벌레 소리가 들리면 출입구가 자동으로 열리게 되어 있답니다.
어른1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보곤) 풀벌레 소리가 들리지 않는데…?
아이     풀벌레 소리가 들려야 자동으로 열리게 돼 있는데 제가 문을 열어 드렸잖아요?
어른1   그래서 내가 들어왔잖아. 그러면 됐지, 내가 다시 나갔다가 들어올 것 없잖아. 안 그래?
아이     할아버지, 밤새 잠이 오지 않아서 도서관에 오셨지요?
어른1   (아이를 빤히 보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이     그래서 봄밤도서관을 찾아오셨잖아요. 그러니까 이 도서관 규칙을 지키셔야지요. 잠 못 드는 사람을 위하여 풀벌레 소리가 들리면 봄밤도서관 출입구는 자동 개방됩니다. 자동 개방된 출입구를 지나야만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할아버지, 귀찮지만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세요.
어른1   허, 그것 참…. (혀를 끌끌 차면서 밖으로 나간다)

 

아이가 출입구 문을 닫는다. 고요함…. 이윽고 풀벌레 소리가 들려오는데 어른1이 밖에서 잠시 주춤하다가 출입구 문으로 다가서면 문이 스르르 열린다. 어른1, 들어온다.

 

아이     어서 오세요.
어른1  (하품을 길게 한다)
아이     이 봄밤도서관은 잠 못 드는 사람들을 환영합니다.
어른1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진다)
아이     입장료는 받지 않습니다.
어른1   (서가 쪽으로 다가가려고 하는데)
아이     잠깐.
어른1   (멈칫 서며) ……?
아이     고요한 독서를 위해 잡담은 삼가 주세요.
어른1   (도서관을 둘러보곤) 잡담할 사람도 없는 것 같은데, 뭘…?
아이     한두 분 있을 거예요.
어른1   그럼, 나 말고 또 누가 와 있다는 말?
아이     잠 못 드는 사람이 할아버지뿐이겠어요? 이 봄밤도서관을 찾아오는 사람이 할아버지뿐이겠어요? (자리로 돌아간다)
어른1   나 말고 그런 사람이 또 있어? (고개를 갸웃하며) 누구지…?

 

이때 속삭이듯 어렴풋이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    (어둠 속에서) 영감니임…, 영감니임….
아이    (급히 와서) 고요한 독서를 위해 잡담은 삼가 주세요!
어른1  (멀뚱) 난 아무 소리도 안 했는데….
아이    그러니까 얼른 자리에 앉으세요. 빨리요!
어른1  보고 싶은 책을 골라야 자리에 앉을 것 아니냐?
아이    얼른 고르세요. 그래야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가 나지 않지요.
어른1   글쎄, 나는 아무 소리도 못 들었다니까. 가만있자…, 어느 책을 고를까…?
아이    (서가에서 얼른 책 한 권을 뽑아서 어른 1에게 내밀며) 이거 어때요?
어른1  (책을 받아서 불빛에 비춰 보며) 백목련의 귀환? 백목련이 돌아왔다…?

 

아이와 어른1의 동작 그대로, 무대가 급히 희미하게 어두워지면서 시를 낭송하는 소리가 스며든다.

 

소리   백목련의 귀환, 최신판을 읽고 싶은 분들은 산수유 가지에 걸어 놓은 달 조명등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시각장애인들은 밤하늘에 설치한 별 점자판을 터치하시면 불편 없이 독서하실 수 있습니다.

 

시의 낭송이 끝남과 동시에 무대가 밝아지면 조금 전의 그 장면. 아이와 어른1.

 

아이    읽어 보세요. 재미있어요.
어른1  참, 우리 집 대문 옆에 목련나무가 한 그루 있지. 그것도 백목련이 핀단다. 그런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 피지 않았어.
아이    올 거예요. 아직 올 때가 아니잖아요. 할아버지 집 목련나무에 백목련이 필 때를 기다리며 이 책 읽어 보세요.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를 거예요.
어른1  그럴까…. (하며 아무 데나 앉으려고 하는데)
아이    (할아버지를 붙들며) 할아버지, 이 책은 읽는 장소가 따로 있어요.
어른1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아이    백목련의 귀환, 최신판을 읽고 싶은 분들은 산수유 가지에 걸어 놓은 달 조명등을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봄밤도서관에서는 특별히 그런 장소를 마련해 놓았거든요. 이리로 오세요.

 

아이가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무대 한쪽으로 이끌고 간다.

 

아이    참, 할아버진… 눈은 어둡지 않으시지요?
어른1  눈?
아이    잘 보이시죠?
어른1  그래. 안경은 끼지만… 신문까지 본다. 왜?
아이    우리 도서관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서 특별한 장치가 돼 있거든요.
어른1  그래? 그래서 앞이 잘 안 보이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이 도서관을 찾아온다는 말이 있었군.
아이    특별히 마련해 놓은 좌석으로 가 앉아서 밤하늘에 설치해 놓은 별 점자판을 터치하시면 불편 없이 책을 읽을 수 있어요.
어른1  (호기심에) 나도 그리로 가서 책을 볼까…?
아이    안 돼요!
어른1  왜?
아이    눈 밝은 사람이 가서 앉으면 별 점자판이 그냥 사라져 버려요.
어른1  거 참, 희한하구나!
아이    시각장애인만의 특권이지요!
어른1  그래? 그런 좋은 특권도 있구나! (웃음소리 크다) 핫하하.
아이    조용히 하고 어서 자리에 앉으세요.

 

무대 급히 어두워진다.

 

2
어둠 속에서 조용히 시를 낭송하는 소리가 들린다.

 

소리    많은 분들이 요청하신 『살구꽃 향기』는 다음 주 그림책으로 나올 예정이며, 지난해 대하장편소설 『진달래』 개정판을 대출해 가신 분은 봄비가 오기 전에 서둘러 반납 바랍니다.

 

무대가 밝아지면 어른1, 안경을 끼고 책상에 앉아 책을 보고 있다. 창밖으로 산수유 한 그루. 가지에 달 모양의 조명등이 주위를 밝혀준다. 안경을 고쳐 올리며 책을 열심히 보고 있는 어른1. 어디선가 가만히 부르는 여자 소리가 들린다.

 

소리    (들릴 듯 말 듯) 영가암… 니임….
어른1  ……?
소리    (좀 가깝게) 영감니임….

 

아이는 입구 쪽 책상 앞에 앉아서 꾸벅꾸벅 졸고 있다. 슬그머니 나타나는 어른2, 어른1 곁으로 사뿐히 다가와서 옆자리에 앉는데 손에 살구꽃을 들고 있다.

 

어른2   (속삭이듯) 맹순 할아버지….
어른1   (돌아보곤) 양구 할머니… 아닌가…?
어른2   잠이… 안 와서…. 조금 전에… 왔어요.
어른1   (살구꽃을 보곤) 그거 살구꽃 아닌가?
어른2   맞아요, 살구꽃. (어른 1의 코 가까이 꽃을 갖다 대며) 향기 좋지요?
어른1   (코로 숨을 들이쉬고는) 향기도 없는데, 뭘…?
어른2   맹순 할아버지는 이 좋은 향기도 못 느끼나? …늙었네요!
어른1   가서 책이나 읽어요. 봄밤도서관에서는 잡담은 하지 말라고 하던걸.
어른2   (애교 섞어) 살구꽃 향기가 너무 좋아서 책 읽기가 싫어요.
어른1   (버럭) 그럼, 집에 가든지!
어른2   큰일이네요!
어른1   무슨 큰일?
어른2   이 살구꽃 향기를 맡을 수 없다면 다음 주 나올 『살구꽃 향기』 그림책을 볼 수 없다지 뭐예요?
어른1   (퉁명스럽게) 못 보면 그만이지, 뭐!
어른2   늙었네요!
아이     (쏜살같이 다가와서 나무라듯) 조용히 해요! 다른 분들에게 방해되잖아요!
어른2   (조용한 소리로) 이 할아버지가 살구꽃에서 향기를 못 맡고 있다니까.
아이     (어른1 앞으로 다가서며) 코가 이상한가 보네요. 
어른2   향기 있는 꽃을 향기 없는 꽃으로 값을 깎아 버리면 어떻게 해? 그러면 이 봄밤도서관이 어떻게 되는 거냐고?
아이     그러면 할아버지에게 숙제를 낼게요.
어른1   숙제?
아이     다음 주까지 살구꽃 향기 맡는 숙제를 해 오세요. 알았지요?
어른1   여기가 학교야? 숙제 따위를 다 내고?
아이     안 그러면 이 봄밤도서관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어른2   (손뼉을 치며) 잘 됐다, 됐어!
아이     그래야 재미 만점의 『살구꽃 향기』 그림책도 볼 수 있어요.
어른2   맹순 할아버지, 그렇게 하세요. 내가 날마다 가서 도와드릴게요.
어른1   우리 할멈이 양구 할머니를 보기 싫다고 하던데…?
어른2   시샘도 팔자다! 내가 뭐, 맹순 할아버지를 꼬실까 봐서? 택도 없다!
아이     (어른2에게) 참, 할머니. 작년에 대출해 가신 책을 왜 지금까지 반납 안 하고 있지요? 대하장편소설 『진달래』. 아직도 덜 읽었습니까?
어른1   뭐라고? 작년에 대출해 간 책을 아직? 노망이다, 노망!
어른2   (어른1을 쏘아보며 팽) 맹순 할아버지!
아이     조용히 해요, 조용히!
어른2   (기가 꺾여) 아직 읽고 있다…. 너무 길어서….
어른1   (나무라듯) 욕심은 많아서…. 욕심이 목에까지 차서 끙끙대고 있군. 나이 많은 우리 같은 늙은이들은 짧은 것을 읽어야 해. 대하장편소설 『진달래』는 양구 할머니한테는 너무 과해.
아이     할머니, 빨리 읽고 반납하세요.
어른2   알았다….
아이     봄비가 언제 올지 몰라요.
어른2   얼른 내리지 말라고 하느님께 빌어놨다.
아이     하느님이 할머니 부탁을 들어줄까요?
어른1   봄비야, 그만 내일이라도 내려버려라!
어른2   살구꽃 향기야, 맹순 할아버지 코에서 천리만리 달아나 버려라!
어른1   봄비야 얼른 내려라!
어른2   살구꽃 향기야 얼른 사라져라!
어른1   (너털웃음) 헛허허….
어른2   (동시에 애교 섞어) 홋호호….
아이     봄비가 오기 전에 서둘러 반납해야 합니다.
어른2   알았…다니까….

 

갑자기 랩(rap) 음악이 저 멀리서 아련히 들려온다. 어른3과 어른4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각각 무대 양쪽에서 등장한다. 복장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밝고 휘황찬란한 색깔이다. 모자도 젊은이들처럼 역시. 랩 음악은 여전히 낮게 낮게 깔리면서 두 사람의 춤은 빠르고 경쾌하지만 나이가 나이인 만큼 조금은 어색한 동작들이다. 이때 아이가 불쑥 뛰어나와 시를 낭송한다.

 

아이    랩 마니아를 위한 특별 이벤트로 4월 중순부터 무논 시청각실에서는 개구리 울음을 상영하오니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잠시 개구리 울음에 두 사람의 춤 동작이 스톱 모션으로 정지. 사이…. 다시 랩 음악과 두 사람의 춤이 계속되면 아이가 시의 운율에 맞춰 다음의 멘트를 한다.

 

아이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무논 시청각실에서 개구리 울음 상영. 4월 중순부터입니다. 특별 이벤트. 랩 마니아를 위한 특별 이벤트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어른1과 어른2가 이들(아이, 어른3, 어른4) 곁으로 급히 다가오면서 랩 음악이 뚝 끊어진다.

 

어른2   왜 이리 시끄럽나? 좀 조용히들 해!
어른1   (아이에게 나무라듯) 너는 조용히 책 읽으라고 해놓고 이렇게 네가 떠들면 어떻게 하나? 도서관이 노래 부르는 곳이냐?
아이     지금은 무논 시청각실의 홍보 시간이거든요.
어른4   맹순 할아버지, 같이 춤춰요. 좋은 운동이에요.
어른3   양구 할머니, 몸이 튼튼해야 책도 많이 읽을 수 있어요.
어른2   상출 할아범, 별밤에 코 고는 소리 그만해라!
어른1   홍자 할매, 달밤에 체조 그만해라!
어른1·2  (함께) 그만해라, 그만해!
어른4   양구 할머니, 양구가 우리 홍자를 자꾸 따라다닌대요.
어른3   맹순 할아버지, 맹순이가 우리 상출이를 자꾸 집적거린대요.
어른1   맹순이가 상출이를?
어른2   양구가 홍자를? 홍자가 좋아서 그랬겠지, 뭐…?
어른1   상출이가 미운 짓을 했겠지. 안 봐도 알겠는걸.
어른3   우리 상출이는 미운 짓 할 애가 아니에요!
어른2   양구 그놈은 홍자 어디가 좋아서 따라다닐까…? 잘생기기를 했나, 귀염도 없는데….
어른4   (발끈하여) 양구 할머니!
어른3   (발끈하여) 맹순 할아버지, 상출이가 미운 짓 하는 걸 봤어요?

 

랩 음악 솟아오르면서 무대는 급히 어둠에 잠긴다.

 

3
어둠 속에서 시를 낭송하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무대가 밝아지면 어른들이 책상 앞에 앉아서 폰을 꺼내 들고 멍하니 있다.

 

소리      봄밤도서관은 봄밤의 마음으로 개설되며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문자 싱숭생숭은 차곡차곡 적립되어 도서관 운영에 큰 힘이 됩니다. 감사드리며 아름다운 당신의 봄밤 속으로 지금 바로 입장하세요.

 

어른2   (부끄러워 기어드는 소리로) 문자를 어떻게 보내지…?
어른1   (역시, 그러나 응원을 바라는 듯한 소리로) 글쎄, 이걸…? (주위를 흘긋흘긋 두리번거린다)
어른3   (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으흠, 으흠. 가만있자…. (어른4를 넘본다)
어른4   (폰에 시선을 꽂은 채 열심히 만지작거리다가 드디어 환호) 됐다, 됐다!

 

입구 책상 앞에 앉아 밖을 멍하니 보고 있던 아이가 폰의 신호음을 듣고 확인한다. 순간 벌떡 일어나 어른들 앞으로 재빨리 온다.

 

아이      누가 저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추궁하듯) 누구예요?
어른4   (슬몃슬몃 아이의 눈치를 보며 어깨가 움츠러든다)
아이      (큰 소리로) 누가 저한테 문자를 보냈어요? 누구예요?
어른1   (돌아보며) 없는데…?
어른3   (돌아보며) 그럴 리가…?
어른2   (그만 당당해진다) 우리는 문자 보낼 줄도 모른다!
아이      (어른2를 쏘아보며) 그런데 ‘사랑한다’라는 문자가 왜 들어와요?
어른1·2·3   (서로를 돌아보며 함께) 사랑한다?
아이      (폰의 번호를 확인하고) 번호가 000-0000-0000이군요. 누구예요? 얼른 자수하세요!
어른4   (목이 더 움츠러들며 고개를 숙인다)
어른2   (어른4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네가 보냈나?
어른4   (모두 자기를 돌아보는데 고개를 꼿꼿이 들고 불쑥 큰 소리다) 그래, 내가 보냈다!
아이      할머니가 저를 사랑한단 말입니까?
어른1·2·3   (웃음이 터진다) 핫하하…!
어른4   (더 당당하게) 내가 너를 좋아하면 안 되나?
어른2   그렇게 좋아하거든 그만 뽀뽀를 해 버려라!
어른1·3   헛허허…!
아이      나는 할머니를 사랑할 마음이 눈곱 반만큼도 없는데요?
어른4   (일어나 아이에게 바짝 다가서며) 나는 네가 그만 좋아지고 말았다! 어쩔래?
아이      (대들듯) 할머니, 그만 홍자를 나한테 데리고 오세요! 내가 사랑해 줄게요!
어른1·2·3   (손뼉을 치며) 그래, 그래, 맞다, 맞다!
어른4   택도 없다! (자리에 가 앉으며)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문자 싱숭생숭, 어쩌고 하는 바람에 정신이 싱숭생숭해져서 그만 그런 문자를 보냈다. 없애버리려면 어떻게 하나?
어른2   참, 싱숭생숭이다!
어른3   싱숭생숭.
어른1   싱숭생숭.

 

모두 웃음을 터뜨린다.

 

어른2   문자 싱숭생숭을 보내자. 어떻게 보내지?
어른1·3   문자 싱숭생숭을 보내자. 어떻게 보내나?
어른4   내가 가르쳐줄까요?
어른2   홍자한테 배웠구나?
아이     제가 가르쳐드릴게요. 모두 제가 하라는 대로 해 보세요. 천천히 따라 해 보세요.

 

아이가 폰을 들고 문자 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기 시작한다. 이하 마임으로. 어른들, 열심히 따라 하는데 무대 천천히 어두워진다.

 

4
무대 밝아지면 어른들이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다음의 노래가 들려온다.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하여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리면 봄밤도서관의 출입구는 자동 개방됩니다∼.’ 노래는 계속 반복해 들려온다. 그래도 곤히 자고 있는 어른들. 코 고는 소리까지 들려올 정도이다. 이때, 아이들의 부르는 소리.

 

소리     홍자 할머니, 할머니∼. 맹순 할아버지, 할아버지∼. 양구 할머니, 할머니∼. 상출 할아버지, 할아버지∼.

 

네 아이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에 이어서 맹순과 양구는 무대 오른쪽에서, 홍자와 상출은 무대 왼쪽에서 뛰어 들어온다.

 

맹순     할아버지, 일어나요.
홍자     할머니, 일어나요.
양구     할머니, 일어나요.
상출     할아버지, 일어나요.
네 아이    (함께) 일어나요! 일어나요! 지금이 어느 땐데 아직도, 아직도…. (가까이 다가서며 더 크게) 일어나요!

 

어른들, 그제야 부스스 눈을 떠 기지개를 켜며 하품을 토해낸다.

 

어른1   재미있게 잘 읽었다. 책 읽느라고 잠이 그만 도망을 갔구나.
어른2   아이고, 책이 너무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어른3   (더 크게 기지개) 정말 잘 잤다….
어른4   (더 큰 하품) 잠 한번 잘 잤다….
홍자     할머니, 책 안 읽고 잠만 잤어요?
상출     할아버지, 도서관에서 잠을 잤어요?
양구     우리 할머니는 참 착하시다!
맹순     우리 할아버지는 봄밤도서관의 우수 회원이시다!
어른3   (두리번거리며 어리벙벙) 내가 춤추다가 잠만 잤나…?
어른4   상출 할아버지 따라 춤추다가 그만 피곤해서 책 안 보고 잠을 잔 모양이네…?
홍자     할머니 미워!
상출     할아버지도 미워요!
홍자·상출    (함께) 미워요, 미워! 미워요, 미워! 미워요, 미워!
맹순·양구    (홍자와 상출의 말에 재빨리 박자를 맞추어 손뼉을 쳐 준다)
어른4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그래도 나는 봄밤도서관의 우수 회원이다. 하루도 빠지지 않았거든.
어른3   (역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나도, 나도, 우수 회원!
어른4   거짓말. 비 오고 뇌성벽력 하는 날… 그날 빠졌잖아요!
어른3   홍자 할멈, 좀 봐주면 안 되나? 그날은 어쩔 수 없었거든.
어른4   호호호, 그날은 나도 빠졌어요. 봐줄게요, 봐줄게요.

 

이때, 아이가 이들 가운데로 들어선다.

 

아이     봄밤도서관에서 책 안 읽고 잠을 잔 상출 할아버지와 홍자 할머니에게는 사흘 동안 도서관 출입 금지 명령을 내립니다.
어른3·4   (함께) 뭐라고? (눈들이 동그래진다)
홍자     (어른4를 쏘아보며) 할머니, 잘 됐다!
상출     (어른3을 놀리듯) 할아버지, 엄마 아빠한테 일러바친다!
어른3   이놈아, 좀 봐줘라.
아이     책을 열심히 읽으신 맹순 할아버지와 양구 할머니에게는 봄밤도서관의 관장님께서 많은 혜택이 들어있는 우수 회원증을 드릴 것입니다.

 

맹순과 양구가 함께 손뼉을 친다. 상출과 홍자는 자기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흘긋거리면서 더 크게 손뼉을 친다. 아이들의 박수가 끝나고, 배경막에 시 「봄밤도서관」(이명윤 지음)의 전문이 나타나면서 랩 음악이 무대를 감싸고 흐른다. 이와 함께 무대 위의 인물들(어른 넷과 아이 넷)이 함께 춤을 추며 다음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는데 아이가 부리나케 뛰어나와 맨 앞에서 이에 합류한다.

 

봄밤도서관 봄밤도서관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봄밤도서관
봄밤의 마음으로 문 여는 봄밤도서관
아름다운 당신의 봄밤 속으로
지금 바로 지금 바로 입장하세요
싱숭생숭 싱숭생숭 싱숭생숭
응원의 문자 많이 보내주세요
싱숭생숭 싱숭생숭 봄밤도서관
싱숭생숭 싱숭생숭 봄밤도서관
아름다운 당신의 봄밤 속으로
지금 바로 지금 바로 입장하세요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한 봄밤도서관

 

랩 음악이 천천히 낮아지지만 춤은 더욱 고조되는데, 무대가 차츰 어두워져 가다가 완전히 어두워지면…, 배경막의 시 「봄밤도서관」이 뚜렷해짐과 동시에 아이가 핀 라이트 속에서 시를 낭송한다. 이에 등장인물들과 관객들도 시를 함께 낭송한다. 시의 낭송이 끝날 때까지 관객은 퇴장하지 않고(퇴장하는 관객도 있지만) 시를 낭송한다. 드디어 시의 낭송이 끝남과 동시에 극장이 환하게 밝아지면 무대 위 등장인물들의 인사에 이어 관객들의 박수….
—막

 

*이 작품은 이명윤 시인의 시집 『이것은 농담에 가깝습니다』에 실려 있는 시 「봄밤도서관」을 바탕으로 하여 극화한 동극입니다. 이명윤 시인에게 고마움의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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