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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필리핀 보홀 여행

여행 간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저녁 비행기를 탔다. 새벽 4시쯤에 도착한 곳은 필리핀 팡라오 공항이다. 첫째딸 가족이 간다기에 이때 아니면 언제 가랴 싶어 따라 나선 여행이다. 여명에 실루엣으로 보이는 장대한 야자수와 얼굴을 스치는 더운 새벽 공기가 여기는 필리핀이라고 하는 것 같았다. 숙소로 향하는 차 안에서 한국인 가이드가 알려준 것은 오토바이치기나 차치

  • 정명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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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둔감은 나의 힘

대학 시절 만나 40여 년간 알고 지내는 친구는 나에게‘너는 생각이 없는 애’라고 자주 말한다. 생각 없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 속으로 아니라 항변하지만 그 이야길 하도 많이 들어 정말 내가 그런 사람인가 생각하기도 한다. 하긴 힘든 일을 당하거나 풀지 못할 문제가 생기면 잠부터 잤으니 그런 말을 들을 법도 하다. 물론 처음부터 잠이 오는 건 아니다. 화도

  • 김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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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다시, 봄

봄볕이 완연하다. 겨우내 이상 기온으로 변덕을 부리더니 계절의 전령은 어김없이 봄소식을 전해왔다. 모처럼 뒷동산으로 봄맞이를 하러 올랐다. 꼬물꼬물 새싹들이 배꼽 인사를 하고 수줍은 진달래가 봄 처녀로 돌아왔다. 부슬부슬 봄비가 오는데도 둘레길 산책을 나서며 아직 내게 이런 감성이 남아 있어 다행이라며 혼자 피식 웃었다. 우리 부부는 젊어서부터 나이 들수록

  • 박남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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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날 잊지 말아요

사람이 꽃이라고 어느 시인은 노래했습니다. 그렇다면 꽃이 또한 사람이겠지요. 화려하고 탐스럽고 잘생긴 재배 꽃들은 잘나고 잘 생겼지만, 이 땅에 저절로 피고 지는 들꽃, 풀꽃들도 그와 못지않게 모두 소중하고도 귀한 생명입니다. 이 땅에 살다 간 조상 대대로의 영혼들이 세상에서 못다 한 한을 달래고자 들꽃으로 피고 지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6월이 되면 개망초

  • 조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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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야학과 온국수

나이 들면 미래보다 과거를 되새긴다고 한다. 문득 지난날 첫 직장을 다녔던 일이 생각난다. 나에게 군복무와 야학은 연관이 깊다. 나는 1966년 초복 중복 말복 시기에 훈련을 받았다. 더위와 싸운 일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3보 이상 구보, 아침저녁 심지어 야간에도 연병장을 수십 바퀴씩 달렸다. 군가를 얼마나 열심히 불렀는지 지금도 잠자리에 들면 나도 모르게

  • 이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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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희곡문학의 본질

희곡은 모든 존재를 의인화한다. 게다가 사람 중심이다. 더 나아가 관계의 틀 안에 모두 귀속된다. 동물이 등장해도 나무가 서 있어도 별들이 나타나도 이야기 속에 들어 있는 모든 존재들은 사람처럼 이야기하고 서로의 관계라는 설정 안에 얽혀 있다. 특히 현재라는 강력한 시간으로 점철되어 있다. 반전이라는 무기는 희곡문학의 핵심요소이다. 귀납보다 연역적 사고방식

  • 김대현희곡작가·한국문인협회 희곡분과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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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깜부기

산발한 머리통 하나가 뚝 떨어졌다. 키를 넘는 옥수수 밭에서 익은 것들을 따던 내 심장도 그대로 철렁하다가 오그라들었다. 진짜 성인의 머리만 했다. 태어나 오십 년 넘게 살며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물체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그래도 재차 가슴을 쓸어내리며 실눈을 뜨고 바닥을 살폈다. 내 발등을 스쳐 튕겨나간 물체는 잿빛이다 못해 거무튀튀한 곰팡이다. 탐스

  • 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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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가슴으로 쓰는 일기

중국 근세 사상가 리쭝우(李宗吾; 1879∼1944) 말이 인상 깊다.‘면후심흑(面厚心黑)’, 이 말은“낯가죽은 두꺼워야 하고 내면은 검다”를 이르는 말이다. 리쭝우는 당시 위대한 통치자들의 속성을 이 말로 정의했다. 그는 통치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중국의 영웅호걸들도 얼굴 거죽은 말할 수 없이 두텁고 속은 헤아릴 수 없이 시커멓다고 말했다. 이로보아 인간이

  • 김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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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오래된 기억

어두침침한 방에 군복 같은 걸 입은 보좌관들이 쭉 서있고 뒤쪽에서 육중한 몸뚱이에 얼굴이 크고 넙데데한 상관이 앞으로 쓱 나섰다. “일들 보시오. 동무는 거기 편히 앉으시고.” 딱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이 자가 바로 전 세계 지도자들을 골치 아프게 만들고 너 죽고 나 죽자고 마음만 먹으면 지구를 파멸시킬 수도 있다는 그 김정은이란 말인가? “뵙게 되

  • 박종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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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6 664호 설명절

그믐날 여수로 내려갔다. 자식들로부터 금년 설에는 여수 호텔을 잡아 놓았으니 여수에서 설을 쇠자는 것이다. 자식들한테 이기는 부모가 있겠는가! 침묵을 지키다 결국 며칠 전에야‘그러마’하고 답을 했다. 그런데 왜 하필 여수냐고 그랬더니 큰아들 회사에서 직원 복지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호텔이 여수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설을 여수의 한 호텔에

  • 김상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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