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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퍼즐

한국문인협회 로고 탁현수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5월 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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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친정집 거실 탁자 위에는 A4용지보다 조금 작은 퍼즐 하나가 놓여 있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의 것이라고 한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시면 먼저 그 퍼즐 세트를 완전하게 맞춘 다음에 식사를 드신단다.
주변에서 연로한 어른들이 가지고 계시는 것을 본 적은 있지만 아버지와 퍼즐, 그것은 도저히 상관관계가 보이지 않는 물건이다. 퍼즐이라 하면 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되는, 이미 재단된 공식 안에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엄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당신에게 환경적으로 주어진 호수를 이탈하여 어머니나 우리들에게는 낯설고 무서울 뿐인 거친 바다에 시선을 두고 사셨다. 사람의 바다, 정치의 바다, 이성(異性)의 바다에 늘 한쪽 발이 잠겨 있어서 많은 시간 우리들을 외롭게 했다. 눈부시게 반짝거리던 아버지의 구두는 항상 외출 중이었고, 혹 돌아온 날에도 댓돌 위가 아니라 말끔하게 닦아진 마루 위에 가지런히 홀로 놓여 있어서 식구들과의 거리감을 좁힐 수가 없었다.
대문 옆 살구나무에 연분홍 꽃구름이 피어오르던 어느 봄날,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벗어놓은 아버지의 구두 옆에 뾰족구두와 양산이 살포시 놓여 있었다. 그날 이후, 산골마을 어느 집에도 불지 않는 알 수 없는 기류의 새로운 바람이 우리 집에만 불었다. 그 바람은 묵묵히 부엌일을 하시는 어머니의 가슴을 넘어 수시로 우리에게까지 건너오곤 했다.
주르르 동생들…. 고물고물, 우리는 너무 어리기만 했다. 어머니의 마음이나 처지를 헤아린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저 어머니에게서 나지 않는 지분 냄새와 그녀가 내미는 달콤하고 알록달록한 온갖 ‘마녀의 사과’에 끌려 가끔씩 불투명하게 다가오는 죄의식쯤이야 문제도 아니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구두 옆에 새하얀 뾰족구두가 놓이는 날을 은근히 기다렸다는 생각까지 든다. 어떤 때는 그녀의 상냥한 미소와 말씨가 미지 세계의 문을 여는 주문으로 느껴져 함께 웃으며 머리를 주억거리기까지 했으니…. 평생을 두고 어머니께 어찌해야 할까.
그렇게 봄이 가고, 계절이 바뀌어도 집안에 드리워진 안개 같은 기운은 점점 짙어만 갔다. 할머니를 필두로 어른들의 심상찮은 눈빛의 수런거림은 계속되었고, 비방이라는 비밀스러운 모사로까지 이어졌다. 어스레한 저녁만 되면 아버지의 베개가 부엌으로 나오기도 하고, 셋째 고모가 심각한 얼굴로 구두 밑바닥에 무언가를 바르기도 했다.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언뜻언뜻 들리는 말소리로 충분히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앞으로 우리 새끼들을 위해 죽어도 외방 자손은 없어야 해.”
옥색 치맛자락을 가슴까지 휘감아 올려 질끈 동여맨 채로 앞산 봉우리를 향해 비장하게 내뱉는 할머니의 한마디는 산을 넘어 하늘까지 울리는 것 같았다. 우리 집안에 서자 ‘홍길동’ 탄생을 막으려는 결의에 찬 몸부림. 아득하게 세월이 흘렀지만, 홍길동의 친모 ‘춘섬’의 우리 집 출연은 온 힘을 다해 아버지를 껴안지 못하는 이유가 되어 우리 형제들의 공통적인 아픔으로 남아 있다.
칠순 즈음부터였을까. 아버지는 인생 궤도에서 선회하시더니 어머니라는 퍼즐의 명제에 갇히기 시작하셨다. 근래에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품어 안고 하루하루 구도자처럼 고요히 해넘이를 준비하고 계신다. 당신의 건강이나 치매를 지나치게 걱정하시는 것도 순전히 어머니 때문인 듯하다.
사람의 한평생이 퍼즐처럼 잘 짜인 인생이면 어떠하며 새처럼 자유로운 인생이면 어떠하랴. 솟고 지는 그 장엄한 순간만은 일출인지 일몰인지조차도 착각할 때가 많지 않던가. 다만 동쪽과 서쪽이라는 방위만 다를 뿐이다. 자연은, 아니 인생은 그렇게 퍼즐 맞추기 한 판이 끝나면 쏟아내어 다시 시작하듯 오는 것이나 가는 것이나 하나의 순환일 뿐이다.
하지만 나를 존재하게 한 부모와의 인연을 영원히 끊어내야 하는 시점에서 그 해넘이가 좀 더 평온하고 아름다웠으면 하는 바람은 세상 자식들 모두의 절실한 소망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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