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렸다눈이 내렸다 비어 있는 땅에색을 칠하고색의 빈 사이를메우는 일을 했다 무수히도 내리고무수히 짓기도 한꿈에서 오는사람아
- 양아림
비가 내렸다눈이 내렸다 비어 있는 땅에색을 칠하고색의 빈 사이를메우는 일을 했다 무수히도 내리고무수히 짓기도 한꿈에서 오는사람아
네가 오지 않으니내가 너에게로 갈 수밖에 가만히 눈을 덮고날 부르지도 않고 있는데나는 비를 맞으며너를 만나러 간다 여기저기 움푹 파인 도로가몹시 싫어하는 티를 내도사파리 차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리저리 흔들리면서마침내 도착한 그곳 우연(雨煙)을 피워아무도 모르게 너 혼자암보셀리 초원을 다 키워 놓았구나 무리 지어
여명의 새날이 동터올 때사랑의 밀어를 꿈꾸며새벽길을 걷던 광음의 뒤안길추상의 문을 열고꽃잎이 지는 아쉬움에회색빛 눈물의 독백을 삼킨다 지는 석양의 아름다움이적막의 고요를 부를 때침묵으로 달구어진영혼의 목소리 들으며한세월 꽃피웠던 사랑의 물결로남루한 영혼을 세탁한다 새 생명이 잉태된축복의 노래 소리 멀어져 가고불침번으로 휘몰이하는심장 박동
연 그리고 수련이고요를 더하고내려보는 구름조차 숨 멎은 한낮이제 곧 피어날 수국도 머리 숙이고우산 같은 연잎마저 침묵 연못 속황금잉어 떼 잠영하면서도그저 입만 뻐끔뻐끔따가운 태양의 아우성도닿으면 잦아드는 궁남지 연꽃잎 버엉긋님 향해 피어날 때미소도 향기 되어 날고서 있는 황포돛배도저어 갈 여름날만 기다린다.
수세미 머리로는 세월을 닦아내지 못했다살아온 이력서가 얼굴이 된 노인이같이 늙어버린 리어카와길에 버려진 고물을 줍는다기역자로 후들거리는 노인의 다리바람이 반쯤이나 빠진 리어카 바퀴가칭얼칭얼 투덜댄다 고물도반짝이던 한때는 마냥 그대로인 줄 알았다반질반질 닦여져시간을 먹을수록 값이 배불러지는골동품으로 모셔져 있을 줄 알았다 고봉밥으로 실린 고
물때를 만난 싱싱한 몸짓으로우리는 밤새 섬을 만들었지만가늠할 수 없는 임당수 물속결국엔 썰물 되어 서로에게밑바닥까지 다 보여 주었다 비틀거렸던 강물이 바다가 된 포구불빛은 밤샘한 듯 흐려지고어둠을 걷고 날아간 새는어느 항구로 갔을까 비릿한 젓갈처럼 절어진 아침잔을 비울 때마다하얀 파도에 발자국 쓸리고먼바다 배는 한 뼘씩 옮겨 간다.
공기가 이렇게 귀한 줄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자유가 이렇게 편안한 줄예전에는 왜 몰랐을까 얽매이고 짜여진 삶의 진면목이만신창이 육신의 허방대는 시간의 길목파란만장한 대륙, 푸른 꿈의 창파에뿌연 안개 낀 수평선이 버티고 있다 누군가 그어 놓은 선도 아닌데욱하고 가슴이 먹먹하다울부짖는 짐승의 절규인 것 같기도 하고몸부림치는 생명체들의 하소연
깜짝이야그녀의 고슴도치 호위병이 말을 걸어 왔지 하늑하늑 담벼락 허물고 있는여인의 젖꼭지에 몇 가마 피가 서려한 폭의 벽화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느냐고 푸른 가지에 짙게 배어 있는 관능(官能)저토록 부시게 햇살 홀리고 있는 거라고내 굳이 발설하지 않겠네 저두요당신이 오신 날에는 미치도록 붉어져서가슴에 와락 불을 지를 수 있는 장
소복이 쌓인 눈 위로설날 아침,또 눈이 온다일상은 어제와 똑같은데먼 여행을 떠나듯이런저런 설렘이마음을 오고 간다 눈길을 뚫고 오는 딸을 기다리며잘 청소된 거실은베드르지흐 스메타나1)의「나의 조국(Ma vlast)」2) 중 블타바3)의 선율이더욱 아름답게 춤을 춘다 나의 조국,봄이 지척에 있는나의 조국이여, 두 강줄기가 만나한 몸으
이렇게 살아 있지요죽은 이들의 얼굴에서 숨결을 찾았지요억울했습니다그렇지요그들이 두고간 광녘의 모습에는내가 살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부끄럽고 늘 아픕니다죽음 앞에 많은 이들이 두고 간하얀 국화꽃그 꽃의 향기를 맡아 보는이를 못 보았지요그리고 눈감은 이들의 무심함 때문에꽃들은 차갑게 시들지요 오히려 그 하얀 꽃잎 속에 숨기를 바라는방황을 볼 때질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