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를 학령보다 두 살 아래인 6살에 입학했다. 6·25 전쟁 중이었고 학기가 시작되고 한참 지난 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해방 이후부터 진주사범학교에 교사로 근무하셨던 어머니께서 진주사범 부속 국민학교에 나를 입학시키실 때는 출퇴근 때 학교에 데리고 다니다가 그 이듬해 유급을 시킬 생각이셨다. 1학년이 끝나고 유급 신청을 하러 어머니와 함께 학교에 가
- 정기화
초등학교를 학령보다 두 살 아래인 6살에 입학했다. 6·25 전쟁 중이었고 학기가 시작되고 한참 지난 뒤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해방 이후부터 진주사범학교에 교사로 근무하셨던 어머니께서 진주사범 부속 국민학교에 나를 입학시키실 때는 출퇴근 때 학교에 데리고 다니다가 그 이듬해 유급을 시킬 생각이셨다. 1학년이 끝나고 유급 신청을 하러 어머니와 함께 학교에 가
물때가 바뀌는 4월의 함평바다는 조차 때마다 파란 파래가 물가에 팔랑였다. 어린 나는 늘 배가 고팠다. 날마다 밤마다 막연한 꿈을 꾸며 마냥 이 가난한 고향이 성에 차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넓은 광야에 뛰쳐나가 새로운 역사를 마음껏 펼칠 수 있을까 마음속으로 불을 지피고 있었다.어느 날 야밤에 어떤 할머니 치마폭에 숨어 무임승차로 호남선 밤 열차에 올랐다
국가의 첫 번째 자산은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국가는 국민이 있어야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중요한 첫 번째 자산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심각한 일이다. 이제는 OECD국가 중 최하위라고 한다. 정부에서 다양한 출산 장려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해마다 출산율은 줄어들고 있다. 출산도 자유이므로 대책이 어렵다. 결혼하면 아들을 낳아 가문의 대를 잇던 가부장제
평소 친구가 사용했던 번호여서 반갑게 받았는데 뜻밖에도 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아침 남편이 생을 마감했다는 다급한 톤의 목소리에 무척 황당해져 버렸다. 그 무렵 주말에 그가 입원한 B대 병원에 가보기로 하였는데 어처구니없이 그렇게 떠나버렸다니 도무지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학창 시절 무전여행이랍시고 군용텐트를 지고 여기저기에 돌아다니면서 많은 추억거
미국에 사는 오빠는 올케언니 장례식 동영상과 함께 소천소식을 전해왔다. 갑작스런 일이라 놀라움으로, 함께 나누었던 시간과 대화를 떠올리며 그 순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문득 지난 일들이 그리워진다. 두 살 터울의 오빠는 고교 시절 미국으로 유학 가서 긴 세월 떨어져 살았다. 한인교회에서 만난 여성과 약혼한다며 편지를 보내오고 그때부터 반대하는 부모님의 입
나는 현재 나의 모교 강릉제일고 역사관 명예관장을 맡고 있다. 이를테면 역사관 큐레이터로 봉사하는 일이다. 새로 부임해 오신 교장선생님께서 부임한 지 1주일 되던 날 내게 부탁의 말씀이 있다며 면담을 요청해 왔다. 만나보니 축구선수들에 관한 이야기다. 축구선수들의 모교애(母校愛)가 도무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이다. 신임 교장선생님은 예전에 우리모교에 교사로
거실 안마기 소리가 꼭두새벽을 울린다. 찌뿌둥함을 참다 못한 아내가 안마의자에 올라앉은 게다. 저런다고 거듭되는 들일 품앗이로 뻐근해진 삭신을 다독일 수 있나. 새벽잠을 설칠지언정 소방수가 나설 차례이다. 제아무리 신식 안마기라 해도 내 손만 하랴. 수건 한 장 찾아 들고 어둠 속 안방을 향하며 아내 귀에 속삭인다. “고마 방으로 들오소.” 아내는 발바닥이
지구가 정말 화가 난 것일까. 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세찬 소낙비가 쏟아지다가 눈부신 뙤약볕이 내려쬐다가. 봄인가 하면 겨울이고, 겨울인가 싶으면 또 어느새 봄이 성큼 다가와 있는 변덕스런 날씨에 우리네 심신 또한 흩날리는 꽃잎처럼 나른하고 무기력한 계절이다.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설마 했던 친구도 한 편의 콩트 같은 황당한 일을 경험했다니,
장롱에 차곡차곡 쌓아두었던 옷을 다림질한다. 다리미로 살살 문지르니 주름이 펴지며 반듯한 제모습을 갖춘다. 와이셔츠와 양복바지는 봄바람을 쐬러 갈 기대로 부푼 듯 윤기가 흐른다. 내 마음속에 접혀 있던 주름마저 펴지는 기분이다. 남편은 정년퇴직 후 양복을 입을 기회가 잘 없었다. 수십 년 동안 입고 다녔던 정장 대신 편한 옷을 선호했다. 청바지와 티셔츠 점
집 앞마당 주목에 매미처럼 붙어 있는 빨간 우체통은 나의 서툰 솜씨로 만들어진 것인데 주로 지인들이 보내준 서적들과 납세 고지서, 청첩장 등을 수취하거나 가끔 작은 물품이 전해지기도 하는 우리 집 소통 걸작이 되었다. 오늘도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적잖은 우편물이 들어있었다. 한데 이번에는 낯선 봉투가 두 개나 눈에 띄었다. 경찰서장이 보낸 ‘과태료 부과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