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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순리에 감사하며

한국문인협회 로고 조한순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5월 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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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중턱쯤에 황톳길 걷기가 건강에 좋다는 소문이 돌면서 고척돔구장을 조금 지나 안양천 둑길에 조성된 황톳길이 두 곳이나 되었다. 나도 호기심이 발동해 남편을 설득하여 함께 걷기에 동참했다. 오후 3시쯤인데 꽤 많은 인원이 걷고 있었다.
걷기에 어떤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맨발로 걷는 이들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다. 1백 미터의 거리를 한 번 오가면 2백 미터가 된다. 빨리 달리듯 걷는 이, 천천히 걸으면서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이, 옆에 무거운 짐을 끼고 걷는 이까지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였다. 안내판에는 휴대폰을 보면서 걷지 말라고 적혀 있는데도 마이동풍이네!
우리 둘은 다섯 바퀴를 기준으로 하고 걸었다. 그러면 왕복 1킬로를 걷는 계산이 나온다. 다 마치면 수돗가에 앉아서 발의 흙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으면 끝이다. 양옆에 나뭇가지가 그늘이 되어 늦가을임에도 30도를 오르내리는 오후의 햇살을 가려주니 금상첨화였다. 발을 씻고 집으로 돌아오는 발걸음은 아주 상쾌하다. 일주일도 안 돼 서로 인사를 나누는 이도 생겼다. 어떤 이는 우리 부부가 걷는 것을 보면서 “부럽습니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그런 말이 싫지는 않았다. 어느새 차를 같이 마시자는 이도 있어 그들과 두어 번 차를 마시기도 했다. 차츰 많은 사람이 북적였다.
달포 정도를 다니다가 황톳길보다는 산자락을 오르는 것이 더 나을 듯싶어 능골산에 가보자고 남편에게 제안했다. 능골산 자락은 익숙한 길이기도 하면서 황톳길과 거리상으로는 거의 비슷하여 운동에 무리가 없는 거리다.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동네 어귀에 연결된 덕의공원에는 운동기구도 설치되어 있고 이어서 산자락은 데크길로 잘 조성해 놓은 능골산 오름길이다. 친환경 목재 데크로드는 부드러운 S자 모양으로 언덕이라는 느낌도 전혀 들지 않고 숲길 오르기는 편했다. 경사길을 굽이길로 연결해 놓고 1백 미터 걸음마다 15칼로리가 소모된다는 계산까지 해놓아 걷기 운동하는 동안 성취욕도 높여 주고 있다. 5백 미터까지 올라가 벤치에 앉아 나무숲을 감상하고 잠시 쉬었다 내려오면 1킬로가 된다.
12월 말 눈이 많이 쏟아진 며칠 동안은 ‘출입금지’라는 띠를 매 놓았다. 살짝 들여다보니 얼음이 두껍게 얼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들어가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최근 영상 7∼8도 기온이 되면서 그곳이 궁금해 찾아갔다. 곱게 물들었던 단풍잎이 늦은 가을에도 떨어지지 못하고 겨울을 견디면서 몸부림치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해가 바뀌니 단풍잎도 세월을 이기지 못하고 모두 떠나고 앙상한 뼈대만 남아 있어 가여운 생각까지 들었다. 피천득 선생은 “1월이 되면 새봄이 온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다. 며칠 사이 나무줄기에 생기가 돈다. 줄기에 물이 올라 녹색이 선연하다. 마치 나무에 물 오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 있는 목단 가지에도 빨간 봄눈이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불쑥 올라와 있다. 햇살을 반기는 줄기와 뿌리에서 봄을 재촉하는 수목의 속삭임 소리가 귓전에 퍼진다.
봄 햇살 포근한 덕의공원 둑 바위틈에 어렵사리 자리 잡은 철쭉의 잎이 싱싱하다. 저 혼자 겨울과 싸워 이긴 듯 의기양양하고 꽃대에 봉오리가 삐죽하다. 어쩜 봄을 미리 알고 있을까! 자연의 조화다. 나는 꽃을 반기는 양으로 더욱 가까이 고개를 숙여 살펴보았다.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무엇을 보느냐고 묻는다. “꽃을 맺었어요”라고 말해주자 그녀는 벌써요? 하며 신기해한다.
정월이 지나고 맑은 햇살 따라 너의 얼굴을 볼 듯싶어 지날 때마다 살펴볼 것이다. 그 봄날 일조량이 다 차면 황급히 얼굴 내밀고 올라오는 널 화들짝 반기고 싶다. 운동도 하고 산길도 걷는 즐거움 때문에 봄을 더 기다린다. 설 전날부터 함박눈이 쉬엄쉬엄 내린다.
‘철없이 봉오리를 맺은 꽃은 어찌하고 있을까! 눈이 쌓였는데 철쭉은 눈을 이불처럼 덮고 있을까?’
눈보라 흩뿌려지면서 봄이 조금은 더디 오겠지만 나무들은 뿌리 굳건히 딛고 잎 틔울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전능하신 분의 힘과 자연의 신비다.
입춘 추위에 폭설도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혹, 철쭉이 추워 움츠리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아주 이성을 잃고 쓰러져 있지는 않을까? 봄바람 살랑이는 날 서둘러 찾아가 봐야겠다.
우리 집에서 왕복 한 시간 반 정도 운동거리인 능골산은 수목이 우거져 있다. 자연이 환경에 적응하는 신비에 감탄하면서 저마다 숨 쉬는 생명의 숲길을 느릿느릿 걸어 보리라. 벌써 봄을 만나는 내 마음은 화사했던 지난봄의 철쭉꽃과 하얀 팥배나무와 분홍 벚꽃나무까지 화려한 봄의 향연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봄이 짧다고는 하지만 시원한 바람과 공기를 한껏 마실 수 있는 우리나라의 사계에 고마움을 더하면서 봄과 여름을 반기는 나는 그이와 손잡고 자연 속을 걷는 행복을 만끽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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