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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선화 꽃값

한국문인협회 로고 이정원

책 제목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5월 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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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낭독한 ‘백주년 기념 축하글’ 안에 나의 십 년도 함께 담겨 있다는 걸 그들은 헤아릴 수 있었을까요. 그곳에 속한 사람도 아닌 내가 왜 꼭 그 글을 낭독하고자 했는지 말이에요. 경상북도에 세워진 첫 성당으로 지금은 본당 건물과 사제관이 유형 문화재로 지정된 가실 성당에 처음 간 건 십 년 전 아들과 함께였어요.
그 무렵 아들은 왜관 수도원 선물방에서 일하고 있었지요. 느닷없이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삶의 행로에 대한 갈등을 안고 지인 수사님이 있는 수도원으로 내려가겠다고 했을 때 허락이 쉽지는 않았어요. 그해 겨울에 찾아가니 프랑스 성모 성지인 루르드를 닮은 동굴이 있고 키 큰 동백나무 한 그루는 붉은 꽃송이가 한창이었어요.
두 번째는 왜관 수도원에서 피정을 한 봉헌 회원들과 함께였는데 설명을 듣게 됐어요.
“이곳에 있는 성모님의 어머니인 안나 성녀님 상은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해요. 첨탑에도 안나의 상이 새겨진 종이 걸려 있어 아직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고요. 예수님의 성체가 감실에 모셔져 있다는 걸 알려주는 성체등 또한 전기가 아니라 살아 있는 불꽃이지요.”
그걸 꺼뜨리지 않으려면 일주일에 세 번 파라핀유를 부어줘야 하는데 그 비용이 꽤 들어간다는 말에, 주저 없이 매달 얼마씩 아들의 이름으로 후원을 약속했어요. 낯선 곳에서의 삶을 이어가고 있는 아들에 대한 어미의 걱정을 그 성체등 불꽃에 담아 덜고 싶은 심정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세 번째는 아들이 다시 올라오기로 마음먹은 봄이었어요. 내려간 지 5년이 되어 갈 무렵, 가장을 잃고 우리가 새롭게 정착했던 곳으로 돌아와 직장을 가지기로 했어요. 그곳에서의 시간이 아주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말을 들으며 갔는데 사제관 앞의 화단에 노란 수선화가 만발해 있었어요. 봄을 한가득 품기에 모자람이 없는 수선화 무리에서 또 하나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지요.
성당 안에 모셔진 안나 어머니의 손길 아래 아직은 앳된 모습으로 고개 숙인 성모님. 소녀의 미소를 띤 그 얼굴이 다름 아닌 수선화로 피어났다는 사실 말이에요. 아들의 시신을 끌어안아야 했던 성모님의 쓰라림은 아직 그 꽃에 담겨 있지 않아, 내 마음이 그랬듯이 마냥 행복감으로 물들어 있어도 좋은 모양새로 여겨졌어요.
그리고 다시 5년, 아플 때면 그곳의 성체등 불꽃을 떠올렸어요. 잊었다가도 성탄 때면 주임신부님의 손편지 카드와 함께 오는 과자 선물을 통해 후원을 기억하곤 했지요. 감사 인사를 하다가 그동안 정기적인 후원자는 나밖에 없고, 그것으로 일 년 비용이 충분하다는 걸 알고 나니 내 간절함에서 시작한 일이 오히려 송구스러워지더군요.
몇 달 동안 온 힘을 다해 쓴 축하글을 낭독하기 위해서는 전날 왜관 수도원으로 내려가야 했어요. 새로 지은 문화 영성센터에서 자고 이른 아침 가실 성당으로 출발했어요. 도착해 보니 역사 전시실 축복식을 위해 이미 대구대교구장님과 왜관 수도원 아빠스를 비롯해 신부님, 수사님, 수녀님 그리고 신자들이 벌써 마당에 한가득. 미사 후에 이어진 축하잔치에서 낭독하러 제단에 올라갔을 땐 내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릴 정도였지요.

 

“예전엔 강변 가득한 갈대숲, 지금은 아름다운 집의 이름 가실. 그 백 년의 시간을 보듬어 지켜온 그대들은 알고 있나요. 낙동강 나루터 동산에 루르드를 닮은 동굴이 있고, 한 그루 동백나무가 서 있어 핏방울 같은 꽃이 피어나는 까닭을. 상처 입은 전선의 병사들을 양쪽 모두 끌어안았건만, 한쪽은 안나 성녀님 가슴에 총알 박아 놓고서야 직성이 풀렸다지요. 피가 스며든 흙에서 핀 백 송이 동백꽃은 그래서 질 때도 선연함 그대로인 걸까요.
긴 시간 잠들어 있던 유물들이 그 자태를 눈부신 햇살 속에 드러내는 날. 그대들은 정녕 알고 있나요. 동백이 피었다 진 뜰에 봄의 전령 같은 노란 수선화가 왜 꼭 피어나야 하는지를. 안나 어머님의 손길 아래 당신의 숙명이 담긴 두루마리를 받아든 앳된 성모님. 수선화를 닮은 성모님의 그 얼굴 안에서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 입지 않은, 아니 아픔의 얼굴조차 모르는 고운 행복을 꿈꾸고 있는 건 아닐는지요.
밀물처럼 왔던 손님들이 떠나고 저녁 해가 기울면, 그대들은 또 잔잔히 이어지는 백 년 또 백 년의 시간을 지켜 가겠지요. 살아 움직이는 불꽃으로 성체를 밝히는 이곳에선 그래서 오늘도 내일도 안나의 종이 울리고, 퍼져 나간 그 소리가 먼 곳까지 닿아 어느 날 우리를 또다시 불러 모으진 않으실까요. 아름다운 기도의 숲길, 가실로 말이에요.”

 

다 읽고 나올 때 한참을 이어지는 박수 소리가 또박또박 잘 읽어냈다는 걸 확인시켜 주었어요. 봄날 만났던 수선화가 일제히 꽃잎 안쪽의 부관으로 내는 나팔소리처럼 들려왔던 그 환희가 지나자 안도감에 비로소 다리가 휘청거려지더군요. 한데 돌아와 지독한 몸살을 앓으며 다시 들어본 동영상 속에서 어떤 깨달음을 얻었는지 짐작이나 하실까요.
수도원의 기록 사진만 오십 년 넘게 찍어 오신 노 수사님이 ― 처음 가지는 사진전에서 두 개의 꽃으로 이루어진 해바라기. 남을 위한 기록 사진이 눈에 띄는 꽃잎인 혀꽃이라면, 오늘의 사진들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열매의 관꽃이라는 글을 낭독해 드렸던 ― 찍어 주신 거였는데, 거기에 바로 답이 들어 있었지요.
백 년을 기리는 축하글 안에 나의 십 년이 담겨 이루어진 그 낭독이야말로 그동안 내가 해 온 낭독의 정점이었다는 사실. 누군가를 위한 낭독이 앞으로 더 이어진다 해도 그날 이상의 빛을 지닐 수는 없으리라는 사실이 뿌듯함 속에 찾은 자숙을 위한 마침표라면, 그리고 그것이 가실 성당 수선화의 값이라면 이제는 미련 없이 접어야 하는 게 아닐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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