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문학
월간문학 2025년 5월 6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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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집에만 있습니다. 열다섯 살이니 중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지만 자퇴했어요. 학교 성적은 하위권이었어요. 학교가 정말 다니기 싫었으니, 공부는 당연히 안 했죠. 그렇다고 게임에 빠져 있거나 왕따도 아니었어요. 물론 불량 청소년도 아니고요. 모든 게 다 귀찮고 움직이는 게 싫어요. 그래서 엄마는 답답한 마음으로 어디 가서 나쁜 짓이라도 하라며 한숨을 내쉬어요.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흔히들 말하는 청소년 우울증인지, 아니면 사춘기 탓인지, 어쩌면 그 어느 것도 아닌 태생적으로 타고났는지….
엄마는 청담동에서 규모가 큰 미용실을 운영하는 대표예요. 명문대 출신 엄마는 학창 시절에 공부를 굉장히 잘했다고 해요. 지금도 무엇이든 열심히 해요. 전공과 무관한 일을 하고 있지만 잘하고 있어요.
첫돌 사진에는 아빠가 없어요. 일찍이 이혼한 엄마는 아빠에 대해 전혀 말하지 않았어요. 나도 아빠 이야기를 묻지 않았죠. 처음부터 없었던 존재였기에 골똘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요즘 들어서는 가끔 생각하게 돼요.
난 아빠의 외모와 성격을 닮았나 봐요. 엄마하고는 다른 부분이 많아요. 같은 것은 성별이 여자인 것 말고는 없어요. 아마도 성격 차이로 일찍 이혼한 것 같아요.
나하고는 다른 세계에 있는 엄마인 것을 알고부터 대화의 양이 상당히 줄었어요.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세요? 사실 난 매일 지각했어요. 그것도 엄마가 승용차로 학교 앞까지 내려주지만, 행동이 느려 집에서 항상 늦게 나오죠. 차에 대기하고 있는 엄마는 늦게 나온다고 항상 똑같은 말을 해요.
“너는 도대체 어떻게 생겨 먹은 애가 매일 늦니, 학교 다니기 싫으면 다니지 마라.”
그러잖아도 다니기 싫은 학교를 엄마가 먼저 다니지 말라고 해요. 그래도 안 다닐 수는 없잖아요. 어쩔 수 없이 억지로 다니는데, 자식한테 할 소리는 아니라고 봐요.
엄마 말에 힘입어 반년 동안 엄청나게 고민했어요. 십오 년을 사는 동안 가장 심각했어요. 학교에 다니지 않기로 마음먹었죠. 엄마한테 어떻게 말해야 하나 겁이 났어요. 엄마가 말은 그렇게 해도 학교 그만둔다고 하면 못된 성격이 나올 것 같아 걱정됐어요.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어요.
그날도 엄마는 집에서 유튜브에 올릴 영상을 찍고 있었어요. 집 안 곳곳에 있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낱낱이 알리기 위해서요. 내 방만큼은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어서 찍히지 않았지만요.
난 엄마가 카메라를 끄기만 기다렸어요. 항상 바쁘고 성질이 고약한 엄마라서 집중하고 있을 때 잘못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내요. 그런데 한 시간이 넘도록 기다리는데 도무지 끝나지 않아요. 화가 스멀스멀 올라왔어요. 더는 못 기다리겠더라고요. 처음 생각과 달리 퉁명스럽게 말이 나갔어요.
“엄마는 내가 기다리고 있는 것 안 보여?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거야?”
“왜? 할 말 있으면 그냥 해!”
“나 학교 자퇴할 거야! 다니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얘기한 적 있었지.”
그제야 엄마는 저를 빤히 쳐다보았어요.
“그래. 그렇게 다니기 싫으면 할 수 없지. 그만둔 후 뭘 할 건데?”
“…지금부터 생각하려고.”
“엄마한테 계획까지 먼저 말해야 하는 것 아니니?”
예상 밖 질문에 당황해서 멀뚱멀뚱 엄마 얼굴만 쳐다봤어요.
한참 동안 말이 없던 엄마는 말을 이어갔어요.
“너 나름대로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것 같은데, 알았다. 이후 계획은 함께 고민해 보자.”
“어.”
예전에도 다른 엄마들처럼 학원 안 간다고 난리 치지 않았어요. 다니기 싫으면 어쩔 수 없다며 쿨하게 말하는 엄마였어요. 그건 나도 인정해요. 이번 자퇴 건도 내 의사 결정을 존중해 주는 것을 보고 엄마 같은 사람도 없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같은 부분도 많지만 이래서 엄마를 좋아하나 봐요.
어릴 때부터 유독 엄마의 품이 그리웠어요. 물론 식구가 엄마뿐이라서 그런 것도 있지만요.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원 빠지는 날이 많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았어요. 나를 돌봐주는 아줌마만 있을 뿐인데 엄마가 없는 집으로 바로 갔어요. 방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거나 했어요. 계속 시계를 보면서 엄마가 돌아올 시간을 손가락으로 꼽으면서요.
밤이 되어서 돌아온 엄마는 눈도 마주치지 않고 피곤해 죽겠다며 침실로 가기에 바빴어요. 온종일 기다린 나는 허탈하지만 엄마를 보면 그냥 좋았어요. 엄마 품에 파고들어 냄새를 맡았어요. 은은한 허브 향기의 화장품 냄새가 엄마 냄새였어요. 나를 품은 엄마는 어느새 등지고 돌아누워 코를 골았어요. 잠든 엄마 등에다 동그라미를 그리고 눈코입을 그려 넣다가 잠이 들곤 했어요. 어릴 때부터 늦게 자는 게 버릇이 되어 지금까지 아침이면 정신을 못 차려요.
엄마는 유튜브를 시작하면서 엔도르핀이 터지는지 생기가 돌았어요. 예전에는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요즘은 힘들다고는 말하지만 즐거워 보여요. 내가 엄마의 관심 서열에서 자꾸 밀려나는 것 같아 유쾌한 일은 아니에요.
사람에게 주목받는 것을 좋아하는 엄마는 본인 영상뿐만 아니라 다른 유튜버들에게도 초대를 많이 받아요. 물론 거절이라는 건 엄마 사전에는 없어요. 신나서 머리하고 화장하고 한껏 치장하고 나가요.
내가 어떻게 아냐고요? 엄마의 행동이 못마땅하지만, 이상하게 출연하는 모든 영상을 보게 돼요. 웃기는 일이죠. 내가 엄마를 일일이 감시한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에요. 엄마의 생각이 어떤지 알 수 있기도 해요. 아무 상관없는 사람에게 시시콜콜 말하는 게 이해되지 않지만요.
*
엄마가 이른 시간에 들어왔어요. 기쁜 일이 있는지 두 발을 동동거리며 나를 붙잡고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해요. 이럴 때는 어린아이 같아요.
“종편 방송에 나가게 됐다.”
엄마 목소리가 나풀나풀 날아갈 듯 가벼웠어요. 콧노래를 부르며 아주 신이 났어요.
어떤 프로인지도 모르면서 들뜬 엄마가 보기 싫었어요. 심통이 났어요. 그래도 감정을 누르며 냉랭하게 말했어요.
“나가서 엄마 이야기만 해. 내 얘기는 하지 마!”
“야∼ 얘기하다 보면 네 얘기도 하는 거지 뭐.”
“하기만 해 봐. 가출할 거니까 그런 줄 알아!”
“나도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
엄마는 눈을 흘기며 나를 쳐다봤어요.
무슨 주제로 나가는 거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대답을 회피해요. 언제 방송되냐고 물으니 모른다고 해요. 일부러 가르쳐 주지 않는 게 분명해요. 그렇다고 모를 내가 아니죠. 엄마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가서 무슨 말을 할지 뻔해요.
화면에 보이는 엄마는 예뻤어요. 저렇게 예뻤는지 새삼스러웠어요. 그런 엄마를 닮지 않은 내가 싫었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도 성격까지 닮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열다섯 살 딸이 있다는 게 도저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예뻤어요. 마사지를 많이 받았는지 이마와 볼에서 광채가 났어요. 화장은 누드 메이크업으로 자연스럽게 했고 옷도 미색 상의를 입은 게 얌전하게 보였어요. 액세서리도 하지 않고 명품 시계 하나만 찼어요. 물론 손톱은 연분홍색으로 정성껏 네일아트 받은 게 눈에 띄었어요. 일단 비주얼은 마음에 들어요. 그렇다고 엄마에게 예뻤다고 말하지 않을 거예요. 말했다간 도를 넘는 엄마의 반응이 예상돼요. 그런 모습을 길게 보고 싶지는 않거든요.
방송의 내용은 상담하는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동안 엄마가 출연한 영상의 콘텐츠와는 달랐어요. 엄마는 많은 영상에 출연하니 이상한 곳도 많았어요. 심지어 성에 관한 이야기도 스스럼없이 할 때도 있었어요. 부끄럼은 내 몫이었죠.
모녀 간의 문제를 푸는 솔루션 프로그램에 그 문제라는 게 결국 나였어요. 다른 영상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에피소드의 하나로 잠깐 말하는 게 고작이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솔루션을 제시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방송이었어요.
엄마의 철없는 행동이 예상되어 겁이 덜컥 났어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려면 내 십오 년을 다 읊을 것 같았어요. 진짜 폭망하는 인생이 되겠다 싶었죠. 프로그램이 본격적으로 시작하기도 전에 난 벌써 마음이 상했어요. 꺼버리려다 참고 보기로 했어요.
첫 이야기는 내가 자퇴한 것부터 시작했어요. 그건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엄마는 나와 했던 대화를 빠짐없이 말했어요. 명확하고 정확한 발음으로 수업 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정답을 말하듯이요. 평소에도 마침표까지 매듭지어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명확한 것을 넘어 냉정하게 들렸어요. 우물쭈물 말끝을 흐리는 나와는 대조적이었죠.
자퇴 이야기는 영상을 통해 여러 번 들었어요. 다른 영상에서는 낄낄거리며 우습지도 않은 이야기를 웃으며 말하는 엄마가 너무 싫었는데, 이번에는 달랐어요. 엄마의 태도가 진중했어요. 있었던 일만 알리는 게 아니라 그 이면에 엄마의 감춰진 그림자 이야기를 듣게 되었어요.
“저도 학교 다닐 때 공부가 너무 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딸에게도 하기 싫은 공부 억지로 하지 말라고 했어요. 학교를 꼭 다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예전과 다르잖아요. 학교 공부가 아니더라도 본인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그것을 향해 어떤 교육의 방법이 되든 하면 되니까요. 제가 학교 다닐 땐 그렇지 않았잖아요. 저는 공부가 하기 싫을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했어요. 집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집에서 저는 강아지보다 못한 존재였어요. 남동생은 황태자였고요. 어머니는 아들이라면 당신의 전부를 바쳤어요. 전생에 사랑했던 연인이 아들로 태어난 게 분명해요. 집안이 어렵지는 않았어요. 아버지는 굉장히 권위적인 가장이었어요. 아버지 또한 뿌리 깊게 남아선호 사상으로 중무장한 분이셨어요. 아버지의 사고가 그러니 어머니는 더욱 아들만 챙겼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딸을 서울로 유학 보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일이었어요. 저는 죽으라고 공부한 결과 좋은 대학에 들어갔지만, 어머니의 반응은 시큰둥했어요. 남동생이 특목고에 합격했을 때는 동네 잔치를 시끌벅적하게 했죠. 서울 친척 집에서 기거하며 대학에 다녔는데 어머니가 주는 용돈은 항상 빠듯했어요. 대학교 때 먹는 것, 입는 것, 제대로 못 했어요. 친척 집에서 특별히 눈치 주는 건 없었지만 편치 않았어요. 내 입장을 어머니는 단 한 번도 생각해 주지 않았어요. 대학에 다니는 동안 아르바이트를 계속했어요. 방학이 끝나고 집을 나설 때면, 기숙사 생활하는 고등학생 남동생에게는 십만 원권 수표를 척척 주면서 저한테는 너무나 인색했어요. 고속버스 타기 직전까지 징징거려야 겨우 몇만 원을 집어주는 게 다였어요. 지금도 대학교 3학년 겨울방학이 잊히지 않아요. 그때도 고속버스를 타기 직전까지 용돈 달라고 졸랐어요. 어머니는 못마땅하듯 만 원권 몇 장을 휙 던지듯이 줬는데 제가 재빠르게 받지 못했어요. 지폐가 겨울바람에 날아갔어요. 마치 저한테 오기 싫어 도망가듯이요. 그때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이리저리 흩어진 돈을 주웠어요. 그런 제 모습을 어머니는 못마땅하게 눈을 흘기며 보고 있었죠. 주운 돈을 헤아리니 사만 원이었어요. 그때까지는 괜찮았는데 버스를 타고 서울로 오는 두 시간 내내 소리도 못 내고 한없이 울었어요. 제가 이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저한테 “네가 그러면 그렇지. 뭐 하나 잘하는 게 있냐.”며 혀를 찼어요. 이혼의 모든 책임이 저한테 있듯이 얘기했어요. 위로받을 생각을 한 건 아니지만 참담했죠.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너는 태어나지 말아야 했는데 태어났다고 말했어요. 무슨 의미인지 지금도 모르겠어요. 알려고 하지 않았어요. 마음속으로 어머니를 무시했는지 모르겠어요. 어머니의 독한 말이 더 이상 상처가 되지 않았어요. 간혹 어머니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었던 말처럼 나도 무의식 중에 딸에게 상처를 주는 건 아닌가 생각해 보긴 해요. 사실 제가 사랑을 받아보지 않아서 내 딸에게 어떻게 전해야 할지, 어떤 게 사랑인지 잘 모르겠어요.”
“이혼하게 된 경위를 들을 수 있을까요?”
“그동안 아이에게 아빠에 관한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어요. 지금 여기서 이야기한다는 게 옳은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네요.”
“곤란하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러나 자연스럽게 이런 자리를 빌려 이야기하는 것도 괜찮을 거라 생각됩니다.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지만, 자녀가 자기 정체성에 관해 혼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설사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도 자기 뿌리를 찾는 것에 이성과 감성이 서로 충돌해 혼란을 겪는 일이 생깁니다. 그건 본능이고 자아 정체성을 찾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나는 숨을 죽이며 봤어요. 상담사의 마지막 질문에 끝내 말하지 않는 엄마의 얼굴이 클로즈업됐어요. 엄마의 입술 끝에 고집스러운 완고함이 보였어요.
방송 내내 엄마는 눈물은 고사하고 울먹이지도 않았어요. 당당하기까지 했어요. 마치 엄마에게는 이런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란 듯 지나간 아픈 기억을 에피소드처럼 편하게 말했어요. 오히려 듣고 있는 내가 힘들었어요. 가슴에 알지 못하는 물체가 가득 차 터질 것 같아 눈물이라도 쏟아내야 가슴이 편해질 것 같아서 소리 내어 울었어요.
외할머니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 이유를 알게 됐어요. 어릴 때 이모라고 불렀던 아줌마가 나를 돌봐주었지만, 외할머니와의 왕래는 수년간 없었어요. 외갓집에 다니기 시작한 것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였어요. 명절날 두 번 정도 보는 게 고작이지만요.
지금 생각하니 이혼하고 혼자 사는 딸과 아빠 없이 자라는 손녀에게 측은지심이 없었고, 이혼한 딸을 집안 수치로 여겼던 것 같아요. 사촌과 차이를 두는 건 나도 일찍이 알았어요. 밥상에서 외할머니는 사촌동생들 앞으로 음식을 옮기느라 바빴으니까요.
엄마와 외삼촌과의 차별도 내가 알 수 있을 정도였어요. 외삼촌을 바라보는 외할머니 눈에는 따뜻함과 이유 없는 안쓰러움이 배어 있지만, 엄마에게는 의례적인 인사만 할 뿐 애틋한 눈길은 찾을 수 없었어요. 우리 엄마 너무 불쌍해요. 요즘 같은 시대에 이혼이 무슨 큰 죄도 아니고 또 아들이 뭐라고 그렇게까지 차별하는지. 부모가 준 상처가 얼마나 큰 슬픔인지 알았으면 좋겠어요.
방송에서 한 이야기는 엄마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이혼의 경위는 말하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 부분은 엄마를 이해하는 문제와는 별개인 것 같아요. 상담사의 원론적인 솔루션보다 엄마의 지난 이야기가 해답이었어요.
*
엄마가 들떠 있어요. 유튜브 영상에서 조금 알려지고 그것으로 방송을 한 번 타더니 더 바빠졌어요. 유튜버들의 초대가 줄이었어요. 초대받은 채널은 콘텐츠가 뒤죽박죽, 종잡을 수 없어요. 엄마 채널도 뒤죽박죽이기는 마찬가지지만 인기 요인은 따로 있어요. 필터링되지 않는 채 이야기하는 게 재밌기는 해요. 그런 엄마를 솔직한 성격이라고 포장하고 싶지는 않아요. 엄마도 고치려는 생각은 없어 보여요. 오히려 장점으로 생각해 날이 갈수록 강화돼요.
엄마의 영상 활동이 사업에 큰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에요. 물론 비즈니스 때문에 그런 건 절대 아니지만요. 오히려 그랬다면 좋겠어요. 최소한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까요. 요즘 엄마는 이유 없이 피식 잘 웃고 콧노래도 흥얼거려요. 엄마한테서 봄바람이 불고 있어요. 뭔가 좋은 일이 있는 것 같아요. 카메라를 많이 받아서인지 외모가 더 예뻐지고 어려 보여요. 볼에 복숭앗빛 블러셔를 칠한 게 카카오 피치의 얼굴 같아요. 혹시 남자친구가 생긴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은 하기도 싫지만… 엄마는 아직 젊고 예쁘고 능력 있고, 흠이 있다면 내가 있는 건데. 그래서 툭하면 내가 엄마 발목을 잡았다고 얘기하나 봐요.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내가 엄마한테 걸리적거리는 존재로 여겨진다면 진짜 슬플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엄마가 갑자기 사라져 버릴까 불안했어요. 지금도 불안감이 없어진 건 아닌데, 언제까지 내 엄마로 남아주길 바라는 마음은 그대로예요. 누군가와 엄마를 나누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 생각을 하니 우울하고 불안해요.
엄마가 나온 다른 채널 영상을 봤어요. 출연진 중 한 사람이 다른 곳에서도 엄마와 함께 여러 번 나온 사람이었어요. 생긴 건 그런대로 스마트했어요. 직업은 그냥 유튜버인 것 같았어요. 근데 자꾸 그 남자가 마음에 걸려요. 엄마는 남자 옆에 앉아서 평상시와 다르게 웃어요. 웃으면서 남자 어깨를 때리기까지 해요. 교태를 부리는 것 같아 너무 꼴 보기 싫어요.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웃을 일도 아닌데 말이죠. 엄마 단속을 조금 해야겠어요. 단속이라는 표현이 과하죠? 그럼 다시 말해서 챙겨야겠어요.
엄마에게 전화했어요. 주로 문자를 하는데 챙겨야 하니 직접 전화했죠. 그런데 받지 않아요. 무슨 이유로 바쁜지 모르겠지만 오 분 후에 또 했어요. 여전히 받지 않아요. 신경질이 나서 연달아 열 번 이상 전화했어요. 드디어 열두 번째 전화에 엄마가 받았어요. 그런데 받자마자 엄마가 더 성질을 부려요. 어이없어서 가만히 있었어요. 사실 급한 일로 전화한 게 아니니까요. 엄마는 목소리를 더 높여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어요.
“왜 이렇게 전화를 해대.”
“나 귀 안 먹었어.”
“시끄러워, 용건이 뭐야?”
“엄마가 소리 질러서 더 시끄러워.”
“야! 너 정말.”
“…엄마 일찍 오라고.”
엄마는 내 대답을 듣고 대꾸도 안 하고 끊어버렸어요. 아무튼 엄마는 외할머니한테 가정교육을 제대로 못 받은 게 확실해요.
내가 이해해야죠. 외할머니한테 그렇게 구박받고 자랐으니, 정상이 아닌 게 당연해요. 그것 생각하면 엄마가 안 됐어요.
*
-현아, 아빠다. 한 번 보고 싶구나.
존재가 없던 아빠. 딸의 생사를 잊고 살았을 것 같은 아빠. 나한테는 원래부터 없었던 아빠한테 연락이 왔어요. SNS 메시지로 한 번 보고 싶다고. 처음에는 누가 장난치나 싶었는데 아닌 걸 느낌으로 알았어요. 나를 검색해서 찾았나 봐요. 내 이름을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어요. 아빠 계정은 게시물이 일 개도 없고 사진도 없어요. 아마 나를 찾기 위해 개설한 것 같아요.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아빠의 문자를 받은 내 심정이 어떤지 아세요. 가슴속에서 무언가 철렁 내려앉아 푹 꺼지는 느낌이었어요. 흔히들 간이 떨어졌다고 하죠. 그 정도가 아니에요. 심장과 위, 간, 콩팥, 갈비뼈까지 내려앉은 기분이랄까. 텅 빈 몸통에서 짙은 바닷바람이 불었어요. 지금까지 아빠라는 존재가 나한테 어떤 작용도 하지 않았는데. 직접 본 것도 아니고 문자만 왔을 뿐인데 말이죠.
어떻게 해야 할지. 벌써 한 시간이 지나도록 대답을 못 했어요. 정말 만나기 싫다면 대답이 쉬웠겠지만 싫다 좋다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이제부터라도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사실 만나는 것도 겁나요. 엄마가 알면 뭐라 그럴까? 걱정도 되고, 배신 행위를 저지르는 것은 아닐까? 하고요.
아빠에 대한 미움은 없어요. 본 적 없는 아빠를 미워할 이유도, 그리워할 필요도 없으니깐요.
엄마는 아빠의 모든 흔적을 없애버렸어요. 너무나 미워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엄마의 행동에 대해 화난 적은 없었어요. 요즘 들어 아빠라는 존재에 아주 가끔 생각한 적은 있었지만. 막상 연락받으니 만나 보고 싶기도 해요.
난 엄마를 닮지 않았으니, 아빠를 닮았겠죠. 남자 얼굴에서 내 모습이 보인다면 조금 잘생기지 않았을까 싶어요. 내가 아빠를 보고 싶어서가 아니라, 생김새가 궁금할 뿐이에요.
도산공원으로 가면서 혹시 엄마를 만날까 봐 걱정했어요. 이 시간에 엄마가 공원에 오지는 않겠지만요. 그런데 왜 하필 공원인지 모르겠어요. 장소가 어디가 되든 심장이 두근두근, 발랑발랑 종잇장이 바람에 팔랑거리듯 나부꼈어요. 내 심장이 나를 데리고 어디로든 날아갈 것 같아 가슴에 손을 얹고 꼭 눌렀어요. 이렇게까지 긴장될지 몰랐어요. 그래도 막상 아빠를 보면 괜찮겠죠?
멀리서 보니 도산공원 입구에 어떤 남자가 서 있어요. 저 사람이 아빠인가? 그러기에는 너무 나이가 많은 것 같아요. 작은 신장에 등이 구부정하고, 먹구름이 낀 것처럼 주변에 회색빛이 감돌았어요. 11월 쓸쓸한 공원의 잿빛 하늘과 걸맞았어요.
저 남자가 아빠가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구체적으로 외모를 떠올린 적은 없지만, 막연하게 나와 비슷하게 생겼고 엄마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을 거로 생각했으니까요.
에르메스 전시장의 화려한 색이 내 발길을 멈추게 했어요. 오렌지색 배경을 등지고 앉아 있는 남자 마네킹. 멋진 슈트를 입었으나 눈코입이 없는 얼굴. 어떻게 생겼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문제를 낸 것 같아요. 아빠를 맞혀 보라는 것처럼. 그 마네킹에 넋을 놓아버렸어요.
약속 장소로 가는 발걸음이 선뜻 내키지 않아요. 서 있는 남자가 아무리 생각해도 아빠가 맞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가슴이 서늘해졌어요.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나 늙고 초라한 행색의 아빠여서인지, 태어나 처음으로 보는 아빠라서 그런 건지, 복잡한 감정이 들었어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어요. 도산공원에서 삼십 미터 떨어진 지점에 갔을 때쯤 남자는 나를 힐끔 봤어요. 순간적으로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땅을 봤어요. 남자가 저한테 오는 것이 느껴져요. 다시 가슴이 팔랑거려요. 가던 걸음을 멈추어 버렸어요.
어느새 남자의 구두가 내 시야에 들어왔어요. 회색빛을 안고 있었던 남자. 확인되지 않은 칙칙한 남자가 내 아빠인 것을 구두가 확인시켜 주었어요.
구두는 형태가 틀어져 앞코가 유난히 들렸고, 발폭이 넓은지 가로 주름이 깊게 파인 낡은 구두였어요. 그동안 삶이 그대로 묻어 있는 구두. 그래도 딸을 본다고 가장 좋은 구두를 신고 나왔을 텐데.
드디어 남자가 말을 걸어와요. 제발 길을 묻는 거라면 좋겠어요.
“현아, 맞지?”
세상에 나만큼 불쌍한 아이도 없을 거예요. 아빠라는 사람이 딸의 얼굴을 보고 맞냐고 확인하고 있으니까요. 나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어요. 순간 괜히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좀 걷자.”
아빠는 한 걸음 앞서서 걸었어요.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흘끔 쳐다봤어요. 굽은 등을 보니 평소 운동은 하지 않은 것 같고, 나이는 엄마보다 열 살 이상 많은 것 같아요. 직업이 뭘까? 재혼은 했나? 나 말고 딴 자식이 있겠지? 꼬리에 꼬리를 물었어요. 그런 것까지 생각하는 내가 웃기죠.
아빠도 쉽게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나 봐요. 이런 무거운 분위기 정말 싫은데 그렇다고 내가 먼저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우리 저기 의자에 좀 앉을까?”
아빠는 의문형으로 질문했으나 내 대답을 듣지 않고 그냥 앉더라고요. 순순히 하자는 대로 그냥 했어요.
아빠는 매번 ‘좀’이라는 부사를 사용했어요. 평소에도 잘 쓰는 말인가 봐요. 말의 속도도 조금 느렸어요. 명료하고 속도감 있게 말하는 엄마와 대조적이었어요. 확실히 난 엄마 쪽은 아닌 것 같아요.
아빠가 말하기 시작했어요.
“너한테는 씻을 수 없는 죄인이라 선뜻 나서지 못했다. 예쁘게 잘 컸구나.”
아빠는 자라목을 들어 허공을 응시하며 말했어요. 그리고 짧은 공백을 만들었어요.
“엄마하고는 잘 지내지?”
허공에 두었던 시선을 나에게로 옮기며 아빠가 물었어요.
엄마와의 관계를 묻는 건지 그 말 속에 엄마의 안부를 묻는 건지. 나로서는 질문의 요지를 몰라 대답하지 않았어요. 내 운동화만 쳐다봤어요.
“엄마가 아빠에 대해 어떻게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너를 잊은 적은 없었다.”
주말 가족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였어요. 상투적인 말을 듣고 나니 앞으로 무슨 말을 할지 알겠더라고요. 짐작된 말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니 이 자리가 불편하고 지루했어요. 집에 빨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산하게 부는 가을바람에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깨를 움츠렸어요.
“뭐 좀 먹으러 어디 들어갈까?”
“저 학원 가야 할 시간 됐어요.”
나도 모르게 거짓말이 튀어나왔어요.
아빠에게 처음 내뱉은 말이 거짓말이라니. 맙소사. 나쁜 딸임이 틀림없어요. 그러나 아빠도 결코 좋은 아빠는 아니니 상쇄해서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을 거예요. 사실 아빠의 마음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고 듣고 싶지 않았어요.
내가 한 말이 핑계인 것을 알았는지 아빠는 미간에 세로 주름을 세웠어요. 내 마음을 다 읽은 것 같아요. 아빠가 벌떡 일어나더니 택시를 태워 주겠다는 것을 그냥 버스 타고 가겠다고 했어요. 내가 간다는 말에 마음이 상한 게 분명해요.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아빠가 한 걸음 늦게 따라왔어요. 뒤통수가 뜨거웠어요. 내가 했듯이 아빠도 나를 샅샅이 뜯어보고 있을 거예요.
그 뜨거운 눈길 속에 아빠 목소리가 들렸어요.
“식사도 못 하고, 헤어지니 섭섭하구나.”
“…….”
“전화번호 알고 싶은데….”
아빠도 저처럼 말끝을 흐렸어요. 아빠의 휴대전화에 제 번호를 찍어 줬어요. 이것마저 거절할 용기는 없었어요.
나는 버스를 타고 나서야 비로소 아빠를 정면으로 봤어요. 아빠는 손을 흔들었어요. 나는 웃지 않았고 손을 들지도 않았어요. 빨리 버스가 출발하길 바랐어요.
아빠를 뒤로하고 버스는 서서히 출발했어요. 지금도 뒤에서 보고 있겠죠. 휴대전화 시계를 봤어요. 정확히 삼십 분. 아빠를 만난 시간이었어요.
아빠는 여유를 가지고 딸에게 말하고 싶었을 거예요. 이렇게 된 상황에 대한 이유를, 그동안 연락하지 못한 변명을, 사무치도록 보고 싶었다는 부풀린 거짓말을요. 그게 아니라면 생물학적으로 당기는 본능일 수도 있고요. 지금 와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게 불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더는 아빠에 대해 생각 안 할래요.
갑자기 초콜릿 생각이 나네요. 왜 단 게 먹고 싶을까요.
*
복숭앗빛이 나던 엄마가 근심이 생긴 것 같아요. 목소리 톤이 두 단계는 내려왔어요. 말수도 적어졌고요. 걱정이 살짝 돼요.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있는지 확인하지 않았으나 그 사람하고 잘 안됐나 봐요. 힘 빠진 모습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아요. 내 존재만으로도 엄마의 고운 깃털을 억지로 뽑아버린 것 같아요. 또다시 엄마 발목을 붙잡은 게 아닌가 해서요.
아빠를 만난 이후 엄마에게 엄청 미안했어요. 몰래 죄를 지은 것 같아서요. 물론 죄를 씻기 위해 엄마에게 고해성사는 절대로 하지 않을 거예요. 여러 가지 이유로 계속 마음이 무거워요.
집에 들어온 엄마에게 요즘은 왜 영상을 안 올리는지 물었어요. 엄마는 만사가 귀찮다며 일찍 침실로 가버렸어요. 침실까지 쫓아가 말을 걸었다가는 소리 지를 게 분명해요. 어쩌면 세상에서 제일 듣기 싫은 소리를 엄마가 할 수도 있어요. “네가 내 발목을 잡았어”라는 말을 듣지 않으려면 조심해야 해요.
따뜻한 차를 준비해서 엄마한테 갔어요. 침대 옆 테이블에 살며시 찻잔을 내려놓았어요. 엄마가 고개를 돌려 저를 빤히 봤어요.
“엄마, 이것 마시고 자.”
“그래, 고맙다.”
엄마가 고맙다는 인사를 정중하게 할 사람이 아닌데 이상해요. 물론 저도 차를 타다 준 적은 처음이긴 해요.
나는 방으로 돌아와 낮에 읽다가 접어두었던 책을 펼쳤어요. 프란츠 카프카 『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 집에 이런 책이 있는 줄 몰랐어요. 내지가 누렇게 변색한 것을 봐서 오래전부터 있던 책 같았어요. 완독하지 않아 결말을 아직 모르지만, 카프카의 아버지라면 지금의 내 경우가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꽂아둔 책, 제목이 주는 표면적 의미. 내가 읽고 있는 이런 상황이 아이러니해요. 그러나 책에 집중이 되지 않아요. 자꾸 엄마의 가라앉은 모습이 떠올랐어요. 내가 아빠의 회색 기운을 엄마에게 이염시켰는지. 아니면 진짜 실연의 그림자가 엄마의 복숭앗빛을 잃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창밖을 보니 캄캄한 하늘만 보여요. 별도 없고 반짝이는 불빛 하나 없어요. 여기로 이사 왔을 때 엄마는 앞이 막힌 곳이 없어 전망이 좋다고 했어요. 지금 사는 삼십삼 층보다 더 높았으면 좋겠다고 했죠. 엄마는 하늘 높은 곳에 닿고 싶은가 봐요.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가 봐요.
나는 높은 곳이 싫었어요. 베란다에 나가서 내려다봐야 건물들이 보였어요. 내려다볼 적마다 현기증이 났어요. 방에서 창을 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요. 그렇다고 하늘이 싫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넓은 집안을 부유하며 이리저리 떠다닌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발을 지면에 닿으려면 도대체 몇 미터를 내려가야 하나 계산한 적도 있었어요. 높은 층이 싫다고 엄마한테 말하지는 않았어요. 엄마 돈으로 사는 집이니깐요.
하얀 불빛이 싫어 형광등을 끄고 노란색 조명과 캔들워머를 켰어요. 은은한 향이 나면서 아늑해졌어요. 다시 집중해 책을 보려 할 때 메시지 알림 진동이 왔어요.
-네가 편한 시간에 다시 보고 싶다.
아빠한테서 온 문자예요. 난 아빠를 보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거절해야 할까? 어떤 말로 답해야지 아빠가 상처를 덜 받을까? 잠시 고민했어요.
계속 만날 게 아니라면 따뜻한 거절이라는 건 없을 것 같아요. 깊이 생각하지 않을래요.
-이젠 연락하지 마세요. 건강하세요.
문자를 전송하고 휴대전화 전원을 껐어요.
형광등의 차가운 기운이 여전히 노란 전구 주변을 맴돌고 있어요. 캔들워머의 향은 이미 희석되어 아무 냄새를 못 느끼겠어요. 변덕스러운 성격은 아닌데 아늑했던 방 안이 서늘해요.
난 베개를 들고 나갔어요. 엄마 방으로 향하면서 넓은 거실 창을 봤어요. 무거운 밤하늘은 세상을 삼켜버릴 기세로 캄캄하게 버티고 있어요. 그래도 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이 되면 모든 게 달라져 있겠죠. 하늘도 마음도.
이젠 엄마 품으로 파고 들어갈 거예요. 따스한 온기와 허브 향이 나는 엄마 냄새를 맡으며 잠들 거예요.
내일 아침 하늘이 바뀌듯이 지금의 엄마가 아닌 내일의 엄마를 위해 날개를 달아줄 방법을 생각하며 잘 거예요. 푸른 하늘을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그렇게 하려면 나에게도 푸른 날개가 필요하겠죠.